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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연의 찬란한 새벽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제공 : 넷플릭스 

동트기 전 새벽은 기온은 낮지만 빛은 어둠을 몰아낼 정도로 강하다. 황동혁 감독이 〈오징어 게임〉 새벽에게 새벽이라는 이름을 준 건 하나의 메타포다. 그는 이 지옥 같은 게임 속에서 섬광처럼 획을 그어버린다. 어둠 속에서 태어났으나 어둠에 지지 않는 결기다.

정호연은 배우 데뷔작으로 〈오징어 게임〉을 만나 새벽이 되었고, 그의 삶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현재 그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는 세계인은 2120만 명이 넘는다(10월 18일 기준). 한국 배우로는 SNS 무림의 강호였던 송혜교·이성경을 넘는 수치고, 〈오징어 게임〉 주연인 관록의 배우 이정재·박해수도 훌쩍 뛰어넘는 기록이다.

〈오징어 게임〉은 전 세계 넷플릭스에서 독보적 성취를 이뤄내고 있고, 정호연은 그 안에서도 낭중지추다. 이 뾰족한 배우를 궁금해하는 이들이 전 세계에 2000만 명이 넘는 셈이다. 그에게 DM을 보내는 이들 중에는 세계적인 톱모델, 글로벌 하이엔드 브랜드 디자이너도 있다. 2013년부터 활동한 톱모델 정호연과 교분을 쌓은 이들이다. 정호연은 2019년 아시아모델어워즈에서 아시아스타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패션브랜드 모델로 입지를 굳혀왔다. 이들은 자신의 뮤즈가 새로운 세계에서 날갯짓하는 모습을 자랑스레 지켜본다. 모델로 정상에 선 정호연은 이제 배우로서의 첫발을 내딛었다. 그 발이 너무 높은 데까지 닿아버리고 말았지만.



중학교 시절 큰 키 때문에 “모델 해라”는 권유를 받았고 실제로 꿈을 이뤄 모델이 됐습니다.
배우 꿈을 꾸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요.


“해외에서 모델 커리어를 쌓아가는 중이었습니다. 그곳은 치열하지만 일이 끝나면 자신을 돌아볼 시간도 확보할 수 있었죠. 모처럼 스스로에게 많은 시간을 주어 좋은 영화도 보고 책도 읽었어요. 인간에 대한 탐구 욕심이 생겼는데, 연기를 해보고 싶은 열망이 정말 컸습니다. 패션은 외적인 것에 집중돼 있는 일이라, 진짜 속 안의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고민과 갈증이 있었어요.”


실제로 모델 전문 에이전시에 있다가 배우들을 관리하는 소속사(사람엔터테인먼트)로 옮긴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오징어 게임〉 오디션을 보고 합격했습니다. 황동혁 감독은 “네가 바로 새벽이다”라고 했다고요.

“오디션 영상을 만들어본 건 처음이라 며칠 동안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찍었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더 절박했던 것 같아요. 더 이상은 못 하겠다 싶을 때 보냈고요. 합격하고도 불안했어요.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죠. 이러다간 큰일 나겠다 싶어 감독님께 차든 밥이든 먹자고 했습니다. 감독님이 ‘너 자체가 새벽이니까 믿어라’고 하셨어요. 눈빛에 야생마 같은 느낌이 있다고, 삶에 대한 의지가 보인다고 했던 거 같아요. 이후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해졌어요. 감독님은 기술적인 디렉션보다는 핵심을 말해주는 식으로 정신 차리게 해줬죠. 불안하지 않게, 배우가 현장에서 확신을 갖고 연기할 수 있게 도움을 줬습니다.”


본인은 없었나요.
나와 새벽이가 같구나 하고 느낀 순간이.


“새로운 환경에서 일하게 된 경험이 새벽이와 공감이 됐어요. 저는 저 하나의 삶을 책임지는 것도 힘들고 외로웠는데,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새벽이는 더했을 겁니다. 매일 새벽이 입장에서 일기를 썼어요. 주로 새벽이가 과거에 겪었을 일들을 구체화하는 작업이었죠. (탈북 새터민인 새벽이가) 강을 건널 때 아버지의 모습이라든지 중국에서 엄마가 공안에 끌려가면서 남긴 마지막 말을 썼어요. 그런 에너지를 담고 있는 것, 그 과거들을 보이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다르다고 느낀 점은요.

“저는 어려서부터 일하면서 개인의 목표나 성공을 위해 살았는데, 새벽이는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인물이라 놀라웠어요.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이지만 리액션을 안 하는 것도 이 친구의 액션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를 보호할 방법을 찾은 거죠. 누구를 만나도 기죽으면 안 되니까요. 하지만 속으로는 따뜻하고요.”


해외 생활은 어땠나요.

“뉴욕에서 3년 정도를 보낸 뒤였고, 어떤 의미로는 뉴욕이 제 집처럼 느껴졌어요. 세계를 돌아다니다가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면 안정감이 들었거든요. 모델로서 커리어도 정점을 찍어봤고, 이제 슬슬 내려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고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했어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까 기대도 되지만 뭔가 두렵기도 했고요.”


모델로서 개인의 목표와 성공을 이뤘다고 보나요.

“수년째 런웨이에 서면서도 여전히 많이 떨려요. 그래도 모델 일은 실수나 긴장을 하더라도 방법을 찾을 시간, 옵션이 좀 더 있는데 배우는 경험이 없다 보니 긴장을 떨치는 옵션이 아직은 부족해요. 하지만 모델 일을 할 때 ‘도움 받는 법’을 배웠어요. 그게 인생 공부였던 거 같아요.”



겸손하게 말하지만 모델 정호연은 루이비통 글로벌 앰버서더(독점 모델)죠.
디자이너에게서도 연락이 왔다고요.


“해외 모델들에게 DM, 댓글을 받았어요. 모두 어메이징했다고 하더라고요. 알고 있던 모든 친구들이 다 본 것 같아요. 그게 너무 놀라웠죠. 한 번 만난 포토그래퍼 친구한테서도 연락이 왔어요. 루이비통 디자이너 니콜라스도 메시지를 보냈더라고요. 쇼(〈오징어 게임〉) 너무 멋있고 좋았다는 내용이었어요.”


특히 이유미 배우와의 구슬치기 장면을 명장면으로 꼽은 이들이 많습니다.
두 사람의 짧지만 진한 우정은 ‘깐부(짝꿍·동지)’의 의미를 다른 각도로 보여줬죠.


“아, 그때는 둘 다 너무 몰입해서 그런지 얼굴만 봐도 눈물이 나더라고요.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 촬영했어요. 너무 좋은 또래 배우를 만났고, ‘배역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게 이런 거구나’ 생각했어요. 유미는 제가 하는 고민을 먼저 해봤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를 해도 이해해줍니다. 다른 작품에서도 이미 너무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앞으로도 함께 잘 걸어가고 싶어요.”


이정재 배우는 “우리는 동료니 편하게 하라”고 했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정말 편했을까요(웃음).

“많은 선배님들이 ‘연기엔 정답이 없다’고 하시는데, 다양한 연기 모델을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정재 선배님은 처음부터 긴장을 풀어주는 큰오빠였죠. 제가 아쉬워하면 ‘한 번 더 해봐’ 해줬어요. 해수 선배님은 둘째 오빠였고요. 제가 찡찡대면 유쾌하고 센스 있게 받아줬어요. 허성태 선배님과는 둘 다 소심해서 뭔가 통했어요. 서로 맨날 놀렸죠. 맞고 때리는 액션신도 있었는데 허성태 선배님이 너무 착하셔서 신 끝나면 매번 괜찮냐고 물어보셨어요. 오영수 선배님은 ‘새벽이? 좋았어!’ 해주시고 핵심을 알려주셨죠. 그 핵심은 저만 알고 있겠어요(웃음).”



핵심이 뭘까요. 궁금한데요.

“시청자로서 오영수 선배님을 볼 때 깜짝 놀랐어요. 아마 전 모든 배우, 선배님들이 얼마나 캐릭터를 위해 노력했는지 봤기 때문일 거예요. 오영수 선배님의 마지막 눈빛이 기억에 남아요. 삶이란 무엇인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것 같았어요. 현장에서도 우리는 선배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갔어요. 선배님의 대사를 관객처럼 들었죠. 끝나면 모두가 박수를 쳤고요. 저도 저런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SNS 팔로워로는 이미 세계적인 배우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싶어요. 전 여전히 제 연기의 미흡함이 보여요. 하지만 많은 스태프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에요. SNS 팔로워 수는 〈오징어 게임〉의 영향력이라 생각합니다. 저 개인의 성취가 아니고요. 작품에 합류한 뒤에는 디카페인 커피만 먹어요. 너무 큰 규모의 작품에 함께하게 돼서 심장이 계속 뛰더라고요. 커피만 마셔도 심장이 뛰어요(웃음).”


앞으로 정호연은 어떤 길을 가게 될까요.

“연기는 인간을 탐구하는 일이라 매력 있어요. 예전에는 이렇게 깊게까지 생각을 못 해본 것 같아요. 연기를 하면서 ‘Why’를 더 많이 생각했어요. 왜 이런 말을 하고, 왜 이런 행동을 하고,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보게 됐죠. 타인에 대한 이해도가 올라갔어요. 너무 신기해요. 어떤 사람을 최선을 다해 이해해보려고 에너지를 쓰는 게 너무 매력 있고 소중한 경험이에요. 연기하면서 더 탐구해보고 싶어요.”



“저를 모르시겠죠…?” 〈오징어 게임〉 전 소속사 유튜브에 올라온 정호연의 소개 영상이다. 당시 그는 자신을 “연기를 준비하는 모델 정호연”이라고 소개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세상은 달라졌다. 첫 작품으로 제대로 신고식을 치렀다. 넷플릭스라는 거대한 판에서 데뷔한 터라 눈도장도 확실하게 찍었다. 그가 하고 있는 공부 중에는 ‘영어로 연기하는 연습’도 있다. 〈오징어 게임〉이 그랬듯 앞으로 그의 앞에 어떤 길과 가능성이 열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정호연과 배우 이동휘는 조용하고 묵묵하게 6년째 교제 중이다. 인간을 탐구하는 기쁨을 이미 깊이 알고 있는 이동휘는 연인의 선전에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낸다. 작품 들어가기 전부터 “최선을 다해 하라, 후회 없이 하라”고 조언했던 그다. 지금은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고, 진심으로 행복해하고, 많은 응원을 보내주고 있다. 선배이자 연인의 조언대로 최선을 다해, 후회 없이 ‘새벽’을 살아낸 정호연. 덕분에 이제는 이동휘가 ‘정호연의 남자친구’로 소개될 듯하다.
  • 202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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