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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자본주의자》 박혜윤

열심히 노력하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제공 : 박혜윤 

끝까지 가봐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박혜윤 작가가 그렇다. 그가 세계의 작동원리와 반대 방향으로 힘껏 갈 수 있었던 데는, 이미 정방향으로 끝까지 달려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모른다. 한국에서 가장 좋은 대학을 나왔고, 언론고시를 거쳐 일간지 기자가 됐고, 입사 동기와 결혼해 두 아이를 낳았다.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는 교육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뜻밖에 남편은 기러기 생활로 버텨온 12년의 직장 생활을 접고 마흔에 은퇴를 선언했다. 그 역시 야근, 주말 출근, 술자리 개근을 기록하던 한국 사회의 평범한(?) 엘리트였다. 그대로 간다면 안정적이고 안온한 삶이 트랙처럼 이어질 터였다. 하지만 그의 손에 들린 건 성취감이나 승진이 아니라 외로움과 탈진이었다. 가족 곁으로 가고 싶었지만, 사회적으로 아무도 아닌 존재가 되는 현실이 두려웠다. 당시 심정을 남편 김선우 씨는 이렇게 기록했다.

“내가 평생을 받들고 살아온 틀, 즉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성공해야 한다는 바로 그 틀이 반드시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인정을 한 뒤에야 나는 천천히 ‘은퇴’ 쪽으로 마음을 잡기 시작했다.”
- 김선우, 《40세에 은퇴하다》 中



속세를 떠나자 세상 전체와 연결됐다

미국 시애틀에서 한 시간 떨어진 작은 마을에 구한 오래된 집.
아내 박혜윤 작가는 이미 그전부터 “시골에서 살겠다”는 이야기를 해왔다. 부부는 두 아이와 함께 미국 시애틀에서 한 시간 떨어진 작은 마을에 오래된 집을 구했다. 넓은 땅에 주변은 조용했고, 야생작물이 자라는 곳이었다. 상하수도는 없었지만 전기는 들어왔다. 이들은 빵부터 국수, 된장과 간장 등을 직접 만들어 먹었다. 오븐에 딱 네 개가 들어가는 빵을, 다른 도구 없이 오직 맨손과 이스트로 발효해 일주일에 두 번 빵집을 연다. 물론 이들도 도시에서는 테이크아웃 커피와 베이커리를 달고 살았다.

“빵을 사먹을 때는 농부의 땀에 대해 감흥이 별로 없었어요. 가성비나 뭐가 더 맛있고 좋은가에만 관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밀을 사다가 갈고 반죽을 하다 보니 사소한 게 고마워요. ‘누군가 밀을 농사지어서 말리고 포장해서 마트에 깔끔하게 진열해줬다니, 이런 행운이!’란 생각이 들죠. 내가 생산의 일부를 해보니까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에요. 포대에서 밀을 꺼내 쓰기까지, ‘내가 하는 빵 반죽과는 비교가 안 되는 노동이 들어갔구나’ 짐작이 돼요. 내가 ‘거대한 세계의 일부’라는 걸 느끼고요.”

그러다 ‘내가 이 고생을 왜 하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지속 가능한 행복을 가늠할 수 있는 시간이다. 바로 그때 절제가 필요하다. 즐거움과 기쁨이 차올랐을 때 멈추는 지혜다. 박혜윤 작가는 최고의 빵을 욕망하지 않는다. 그는 욕구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욕구가 어떤 선을 넘어 계속될 때 힘들다는 걸 배웠다. 공부가 힘든 게 아니라 시험을 잘 보지 못하면 큰일 날 것 같은 생각이 힘들었던 것처럼.

박혜윤 작가와 남편 김선우 씨.
자본주의 체계는 대차대조로 흘러간다. 최소의 것으로 최대의 것, 즉 목표한 결과를 거둬야 성공이다. 숲속에서는 다른 방정식이 통한다. 자신 안의 무언가와 부딪치거나, 실제로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참아가며 뭔가를 더 추구하지 않는다. 농사를 지으려던 부부는 이를 위해 비료나 농약을 써야 하고, 다른 야생동물과 싸워야 한다는 걸 알고 접었다. 지금은 자연에서 난 제철 열매를 채집하고, 필요한 만큼만 키워 먹는다. 자급자족을 시도했다가 절충선을 찾은 것처럼, 숲속의 가족은 목표를 성취하는 데 골몰하기보다 적정선을 찾는 데 집중한다. 인터넷도 그렇다.

“코로나 전에는 집에서 외부 세계와 접속이란 게 라디오가 전부였고 매일 도서관에서 인터넷을 했어요. 네 가족이 통화와 문자만 되는 2G폰 두 개를 나눠 썼고요. 코로나 후 동네 도서관은 문을 닫고, 아이들이 학교를 안 가면서 학교에서 핫스팟을 공짜로 나눠줬어요. 인터넷을 쓰게 되면서 이메일 정기 구독도 시작했고, 한국 출판사와 자유롭게 연락을 취할 수 있다 보니 책도 내게 됐습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자체에 대해서는 좋다거나 나쁘다는 생각은 없다. 필요하면 쓰는 거다. 처음에 인터넷을 끊은 것도 비용이나 시간 대비 너무 느려서였다.


“인터넷을 쓰는 행위 하나하나를 따지면 전부 다 좋아요. 세상과 연결돼서 친구들과 소통하고, 정보를 얻고, 오락도 좋고요. 하지만 삶 전체를 놓고 보면 달라요. 심심하고 멍 때리는 시간, 친구랑 연락이 잘 안 돼서 그리운 마음, 직접 만나야만 하는 수고, 길을 잃었는데 온 가족이 고생하면서 찾았던 경험 같은 것들이 섞여야 사는 게 재미있어져요. ‘인터넷을 사용해서 나의 전체 삶이 좋아졌느냐’를 스스로에게 묻는 거죠.”

이들이 숲속에 들어와 얻은 건 ‘질문하는 시간’이다. ‘이게 정말 필요한가?’ ‘어디가 적정선인가’ ‘이걸로 우리 삶이 좋아지고 있나’와 같은 질문은 도시의 소용돌이 안에서는 무용하다. 5G시대의 도시, SNS에 OTT와 넷플릭스까지 활성화돼 24시간이 모자란 도시에서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조차 보장받기 어려우니까.


미국·한국의 차이보다 도시·시골의 차이


만약 이들이 한국에서 계속 머물렀더라면 생활 풍경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73년생 아빠와 75년생 엄마의 선택을 2000년대에 태어난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큰아이가 6학년 때 한 학기 동안 한국의 지방도시에 있는 학교를 다녔어요. 둘째는 2학년 때 전교생 35명인 시골 초등학교에서 두 달간 다녔고요. 미국과 한국의 차이보다 도시와 시골의 차이가 더 커요. 우리가 서울에서 계속 살았다면 공부도 열심히 시키고 문화 혜택을 누리면서 최신 트렌드도 연구했을 거예요. 제가 자랄 때 서울에서 입시와 학원에 찌들어 살았는데 그것도 좋은 게 있어요. 나쁘기만 하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하지는 않겠죠.”

대신 숲속의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을 충분히 누리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쉼 없이 나눈다. 휴일에 몰아서 시간을 보내는 주말가족이 아니라 모든 날, 모든 시간을 공유하는 반려인들이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강요하거나 가르치는 존재가 아니라, 도와주고 들어주는 존재다. 교육심리학 박사이기도 한 그는 언젠가 한국에 돌아와 상담소를 열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전망이 밝지는 않다.

“아마 안 될 거라고 예상해요(웃음). 손님이 없을 거라서요. 저는 답을 주지 않아요. 저에게 없으니까요. 하지만 돈을 내는 사람들은 답을 기대하잖아요. 인간의 소통의 기적은 나도 몰랐던 내 안의 뭔가가 나오는 데 있어요. 그것들이 일상과 합쳐지면서 자기만의 확실한 무엇이 되지요.”

숲속에서 아이들은 물끄러미 바라볼 시간을 얻었다.
그가 일주일에 두 번 운영하는 빵집처럼 그의 상담소에는 손님이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번 다녀간 사람은 통밀 배아를 손 반죽해 오직 이스트로 발효한 빵맛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거기에는 다른 반칙이나 요행 없는 오직 빵의 진수가 들어 있을 테니까.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이 2021년에 쓰인다면, 그 풍경은 박혜윤이 쓴 《숲속의 자본주의자》와 다를지라도 그 안의 정수는 크게 다름이 없을 것이다. 박혜윤 작가가 《월든》에서 가장 사랑하는 구절은 이것이다.

“나는 삶의 깊은 곳까지 내려가 삶이라는 녀석의 골수를 전부 빨아먹고 싶다. 스파르타인처럼 굳건하게 삶을 살아내어, 삶이 아닌 것들은 전부 깨부수고, 기다란 낫을 넓게 휘둘러 삶이란 것을 바싹 깎아내고, 삶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구석으로 몰아 더 이상 줄어들 수 없을 만큼 작은 핵심만 남도록.”
  • 2021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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