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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아신전〉 김은희 작가

전 세계를 매혹시킨 이야기꾼

글 : 선수현 기자  / 사진제공 : 넷플릭스 

전 세계가 기다렸다. 넷플릭스 〈킹덤: 아신전〉을. 〈킹덤〉 시즌2 이후 이 작품이 나오기까지 꼬박 1년 4개월이 걸렸다. 〈킹덤〉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빠른 속도의 좀비(생사역)와 정적이고 아름다운 한국 전통 풍광이 어우러져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킨 작품이다. 여기에 인간 심리를 내밀하게 끄집어낸 김은희 작가의 필력이 완성도를 높였다. 아니나 다를까, 〈킹덤: 아신전〉은 공개와 동시에 넷플릭스 글로벌 차트 2위에 올랐다. 하지만 대본을 집필한 김은희 작가의 관심은 흥행보다 완성도에 있었다.

“전 최고의 겁쟁이예요. 〈킹덤〉이 공개되고 나서 반응을 못 찾아봤어요. 주변에 ‘어땠어?’ 물어보는 정도였죠. 넷플릭스가 평가를 공개하는 플랫폼이 아니어서 흥행 부담보다는 오로지 완전한 퀄리티가 관심사였어요. 영상화되기 어렵겠다고 생각한 작품인데 운 좋게 만들어졌고 세계적인 반향으로 추진력을 가져가면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본 것 같아 만족해요.”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다


〈킹덤〉은 죽지도 살지도 않는 역병으로 좀비가 창궐한 조선에서 왕세자 이창(주지훈)의 고군분투를 담아낸 넷플릭스 시리즈다. 시즌1은 위정자들의 권력에 대한 허기와 백성의 배고픔에서 비롯된 역병의 비극을 그렸고, 시즌2는 혈통을 둘러싼 피의 사투를 보여줬다. 시즌2는 역병을 일으킨 생사초의 기원을 찾아 북방으로 향한 이창 일행이 아신을 만나는 장면을 끝으로 다음 시즌을 기약했다. 특히 아신 역을 맡은 전지현이 얼굴만 10초 등장하면서 수많은 떡밥을 투척했다.

〈킹덤: 아신전〉은 시즌2와 시즌3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스페셜 에피소드다. 시즌3에서 이창 일행의 대척점에 서서 긴장감을 불어넣는 아신이 어떤 사연을 갖고 있는지, 조선을 뒤덮은 거대한 비극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92분 분량으로 풀어냈다. 6회씩 전개된 지난 시즌보다 다소 짧은 편이다.

조선과 여진의 경계, 압록강 국경 일대에서 자란 아신은 언젠가 조선인으로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만 가족과 이웃을 모두 잃고 깊은 한을 품는다. 그 한은 모든 것을 도륙하는 잔인한 칼날이 된다. 아신이 겪은 아픔을 한 꺼풀씩 걷어내고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끝에 잘못된 정치가 있다. 정치에서 파생된 아픔, 아픔으로 인한 대가가 역병인 셈.

넷플릭스 〈킹덤: 아신전〉에서 어린 아신(김시아).
김은희 작가가 〈킹덤〉 시리즈를 통틀어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정치란 무엇인가’로 귀결된다. 잘못된 정치와 개인의 탐욕으로 세상이 얼마만큼 곤두박질칠 수 있는지 말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위기를 극복하는 희망 또한 정치에 있다. 수동적인 세자 이창이 눈앞에 닥친 두려움을 깨고 각성하며, 백성 편에 서서 타락한 권력과 좀비에 맞서 진심으로 싸우는 모습에서 그 희망이 엿보인다.

“북방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다가 성저야인을 봤어요. 이들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생각해봤죠. 시즌2가 지배계층을 중심으로 전개됐다면 시즌3는 피지배계층, 더 넓은 계층의 사람들이 끌어가는 이야기이길 바랐어요. 차별과 멸시로 인한 한을 이야기하는데 성저야인이란 경계인이 그에 걸맞지 않을까 싶었고요. 잘못된 정치로 가장 많은 피해를 받는 건 최하층이라고 생각해요. 그 아픔을 통해 정치에 대한 의미를 더 강렬하게 보여주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시즌2에서 이창과 함께 목숨 건 싸움을 한 어영대장 민치록(박병은)은 〈킹덤: 아신전〉에도 비중 있게 등장한다. 나라에 충성하지만 대의를 위해 주변을 희생시키는 선택도 마다 않는 인물로 이 모든 싸움의 발단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시즌2에서 완벽한 양반의 모습을 보여준 안현 대감(허준호)이 조선의 승리를 위해 백성을 희생시킨 패턴과 비슷하다. 안현 대감이 백성을 희생시켰다는 죄책감으로 그에 걸맞은 결말을 맞은 것처럼 향후 민치록의 끝도 밝아 보이진 않는다.

결국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다는 이야기다. 중요한 갈림길에서 인간은 평소 신념으로 선택한다. 어떠한 상황과 관계에서 취한 행동이든 그 책임을 결과로 맞이할 뿐. 이는 김은희 세계 인물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어떤 캐릭터든 선한 부분만, 악한 부분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모든 캐릭터가 복합적인 부분을 갖고 있죠. 결국 상황과 목적,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선택하는 과정이 캐릭터의 성장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인물이 어떻게 움직이며 자기 가치에 맞게 행동할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재난 앞에서 어떤 성장을 할지 기대해주면 좋겠어요.”


작가 생활에 힘을 보탠 ‘고마운 분들’

넷플릭스 〈킹덤: 아신전〉에서 복수의 칼날을 갈며 성장한 아신(전지현).
〈킹덤: 아신전〉 엔딩 크레딧 ‘고마운 분들’에는 낯익은 이름이 등장한다. 김은희 작가의 남편 장항준 감독과 딸 장윤서다. 〈라이터를 켜라〉 〈기억의 밤〉을 연출한 장 감독은 작가 김은희를 탄생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장 감독이 수기로 쓴 대본을 컴퓨터 파일로 옮기는 일을 하면서 김은희 작가는 꿈틀대는 창작 욕구를 느끼기 시작했다. 장 감독은 진지하게 작가의 길을 고민하는 아내를 독려했다.

“장항준 감독은 제가 작업할 수 있도록 항상 응원하고 격려해주는 사람이에요. 요즘엔 자기 일이 바빠서 ‘이건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으면 ‘네 생각대로 해’ 하고 영혼 없이 말하지만요(웃음). 딸도 마찬가지예요. 엄마가 ‘김은희 작가라 좋다’고 말해줘요. 가족은 제 일을 가장 응원하고 큰 힘이 되는 존재라 앞으로도 ‘고마운 분들’에 계속 이름이 들어갈 것 같아요.”

그는 남편의 지지를 받아 영화 〈그해 여름〉 대본 집필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작가 생활에 들어섰다. 부부는 드라마 〈위기일발 풍년빌라〉와 〈싸인〉을 공동집필하며 환상의 파트너십을 보여줬다. 이후 김은희 작가는 〈유령〉 〈쓰리 데이즈〉로 장르물에서 두각을 드러냈고 〈시그널〉 열풍을 일으키며 남편의 명성을 뛰어넘는 수준에 이르렀다. 부부의 전세가 역전되면서 장항준 감독은 이효리 남편 이상순, 장윤정 남편 도경완과 함께 ‘국민남편’ 이미지를 얻으며 대중의 호감을 샀다. 아내 덕을 보는 ‘신이 내린 팔자’란 별칭과 함께 아내의 성공을 즐기는 모습은 예능 소재가 되기도 했다. “아내가 잘되는데 왜 질투를 하냐?”는 너무나도 당연한 말에 숟가락 얹는 그의 태도가 조금도 밉지 않았다.


멈추지 않는 장르물의 대가


작가로 산 지 15년. 김은희 작가는 한국을 대표하는 ‘장르물의 대가’가 됐다. 그는 극중 사건을 흥미롭게 풀어가면서도 뻔한 소재에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을 줄 안다. 그 정점은 드라마 〈시그널〉에서 발휘됐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무전기로 장기 미제사건을 해결하는 〈시그널〉은 일본에서 리메이크됐으며 종영 5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될 만큼 완성도 높은 드라마로 남았다. 뿐만 아니다. 〈싸인〉은 의문사를 당한 누군가의 마지막 ‘싸인’을 통해 사인을 밝히는 부검의가 활약했고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하며 마무리됐다. 사이버 수사를 소재로 한 〈유령〉은 또 어떤가. 얽히고설킨 설정으로 단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게 독보적인 상상력과 섬세한 필력이 더해진 결과다. 김은희 작가는 세상을 향한 감각을 물음표로 바꿔 차곡차곡 축적하고 거대한 이야기로 풀어냈다.

“제게 내재된 호기심과 생각은 커지고 커지다가 극의 소재가 돼요. 딱 한 가지 소재로 이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킹덤〉을 예로 들면 평소 역사를 좋아해서 책이나 다큐멘터리를 보거든요. 그러다 좋아하는 좀비물을 보며 동떨어졌던 생각이 시간이 지나면서 만나는 순간이 생겨요. 흥미로운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좀비의 배고픔을 잘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요.”

특별한 사건도 결국 보통의 삶 속에서 펼쳐진 이야기다. 그는 모두가 완벽하게 좋아할 수는 없지만 한 명이라도 더 공감할 수 있는 대본을 쓰고자 노력한다. 그가 던지는 주제의식은 항상 날카롭고 묵직하다. 인간의 내면을 깊숙이 파헤쳐 조각조각 꺼낸다. 1회, 2회, 3회 회차마다 성격에 맞는 주제를 펼치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는 촘촘한 병렬을 지어 큰 틀의 목적을 이룬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결국 기획 의도예요. 신인 시절부터 감독님들이 ‘이 얘기로 하려는 게 뭐야?’라고 물어봤어요. 그때는 ‘재미만 있으면 되지, 왜 자꾸 물어봐’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그게 제일 중요하더라고요. 이야기가 흔들리거나 막힐 때, ‘이걸 통해 뭘 얘기하려고 했지?’를 놓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때면 기획 의도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꼭 지키려고 노력해요.”

김은희 작가의 일정은 빼곡하다. 올해 방영 예정인 드라마 〈지리산〉을 비롯해 〈킹덤〉 시즌3 준비에도 여념이 없다. 기회가 되면 〈시그널〉도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주고 싶어 한다. 시청자들은 어떤 이야기든 그의 세계에 빠져들 준비가 돼 있다. 아니, 기다리고 있다. 장르물의 대가로서 실망시킨 적 없으니까.
  • 2021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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