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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나리>의 심장 한예리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제공 : 판씨네마 

한예리는 아주 어릴 적부터 무용을 했다. 그의 외할머니는 손녀의 너무 마른 몸을 근심했다. “사람은 모름지기 통통해서 손목은 보이면 안 된다”고 했다. 야윈 손녀를 볼 때면 할머니는 “뭘 먹고 싶으냐”고 물었고, 손녀가 식혜든 삼계탕이든 엿이든 떠오르는 대로 말하면 할머니는 이 모든 음식을 뚝딱뚝딱 만들어냈다. 그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신기하다. 어떻게 만두며 칼국수까지 다 손으로 빚어서 그렇게 빨리, 게다가 맛있게 만들어 따뜻하게 먹이셨을까.

한예리는 20대까지 무용을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도 무용원으로 들어갔다. 그의 전공은 한국전통무용. 한 장소에 있던 영상원의 영화 작업을 도와준 게 계기가 되어 영화 쪽에 발을 디디게 됐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문 정도였고, 배우가 되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지금의 한예리를 보면, 배우 외에 어떤 일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눈빛도 음성도 몸가짐도 가지런한데 당시의 한예리는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글자를 모를 때부터 무용은 알았다. 평생 전통무용을 담던 심신에 새로운 파도가 밀려 들어왔다. 장고 끝에 새로운 바다를 받아들인 그는 작은 규모의 독립영화부터 조심스레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2007년 〈기린과 아프리카〉로 미쟝센단편영화제 연기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은 그는 차곡차곡 필모를 쌓아 2017년 〈춘몽〉으로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정서를 함께 켜켜이 쌓는 작업이 좋았죠”

생각해보면 그가 무용을 할까, 배우를 할까 역할을 고민하던 나이에 그의 엄마는 이미 슬하에 자녀를 여럿 둔 부모 역할을 하고 있었다. 스스로의 앞길도 헤쳐 나가기 막막한 어린 날에 우리 부모는 이미 가족이라는 공동의 몸을 먹이고 입히고 키워야 했다. 영화 〈미나리〉에서 한예리가 맡은 모니카는, 그 시절 우리 엄마의 몸을 하고 있다. 어리고 여린 몸으로 강하고 다부진 삶을 산다.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라는 구호 같은 문장은 그 숱한 여성들의 몸에서 육화되고 삶으로 체화된 언어였다. 이들은 가난한 조국에서든, 험난한 타국에서든 뿌리를 내려 움을 틔워냈다. 그렇게 일군 작은 그늘 아래에서 우리가 자랐다.

“아이작 감독님께 초고를 받고 미국에서 감독님을 만났어요. 대화를 하면서 많은 부분이 채워졌죠. 저는 한국에서 자랐고 감독님은 미국에서 자랐지만 70~8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공통된 정서가 있었어요. 특히 부모님이나 할머님을 향한 마음이 그랬죠. 영화를 보면 모니카가 한국에서 엄마가 온다고 하니까 흰 달력을 뜯어서 서랍에 깔잖아요. 시나리오에 그런 디테일이 있었거든요. 외국 관객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장면이지만 한국 관객은 다 알 거예요. 그런 정서를 함께 켜켜이 쌓을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영화 〈미나리〉의 모니카는 10년 전 남편 제이콥과 함께 미국에 왔다. “미국에 가서 서로를 구해주자”던 두 사람은 손가락에 지문이 닳을 정도로 일했지만 아직 가난하다. 병아리의 암수를 구별하는 감별사를 하는 제이콥은 수입의 일부를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보낸다. 남은 돈으로 부부와 두 아이가 산다. 알을 낳지 못해 버려지고 태워지는 수평아리를 보면서 제이콥은 아들에게 말한다. “쓸모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해”. 그리고 그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제이콥은 가족을 이끌고 아칸소의 드넓은 황야로 온다. 농장을 일구기 위해서다.

“촬영이 끝나면 매일 숙소에 모였어요. 오늘 찍은 장면과 내일 찍을 장면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죠. 감독님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영화지만, 감독님은 배우들이 자유롭게 자기의 인물을 표현하길 바랐어요. 아이작 감독님이 모니카를 두고 ‘영화의 심장 같은 인물’이라고 했는데 그걸 어떻게 표현해낼지는 배우의 몫이었죠.”

영화는 한예리의 눈으로 시작한다. 이삿짐을 실은 트럭을 따라가는 한예리의 불안한 눈, 주변에는 황무지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이웃도 건물도 마트도 없는 땅에 커다란 트레일러 한 대가 서 있다. 한예리의 모니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스크린을 가득 채운 그의 동공에는 타향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이민자들의 불안과 염려, 그럼에도 자식들에게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는 담담함이 서려 있다.

“엄마 역할을 맡아서 소화하기 어렵다는 생각보다는, 모니카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모니카로서 받아들일 수 있을지를 고민했어요. 저였다면 눈물이 쏟아졌겠지만, 모니카라면 울지 않았을 장면들이 있었죠. 모니카는 ‘힘들다’고는 말해도, ‘끝내자’고 하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모니카와 제이콥의 아들 데이빗은 심장이 약하다. 모니카의 하루는 청진기로 데이빗의 심장소리를 체크하고, 약을 챙겨주고, 내일도 데이빗이 무사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아픈 아들과 이제 제법 아가씨 티가 나는 딸을 데리고 학교도 병원도 없는 땅에 정착하려는 제이콥을 모니카는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모니카는 제이콥의 농장일이 자리 잡힐 때까지 병아리 감별을 하며 생계를 돕고, 트레일러와 집안 가재도구를 가지런히 정리한다. 그러다 태풍이 몰아쳐 바퀴 달린 집을 흔들거나, 마실 물이 나오지 않으면 모니카도 더는 참을 수 없다. 두 사람의 언쟁은 다툼이 되고, 겁에 질린 아이들은 방에 숨는다. 〈미나리〉 제작자 크리스티나 오의 말처럼 “어느 가족이든 함께하려고 애쓰는 건 미친 듯이 어렵고 때로 엉망이 되”니까.

“제이콥을 맡은 스티브 연은 정말 훌륭한 배우예요. 두 사람의 감정이 중요한데 그 덕분에 제가 표현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두 사람의 갈등을 혼자 상상할 때보다 그와 감정을 주고받을 때 더 큰 영역이 생겼죠.”



“제 인생에 아름다운 순간이 온다면, 그건 아주 나중이길 바라요”

스티브 연과 아이작 정 감독은 한국에서 태어나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간 이민 2세다. 스티브 연이 〈미나리〉 대본을 보고 브래드 피트가 대표로 있는 ‘플랜B’에 추천하면서 영화가 제작됐다. “이런 비슷한 이야기들이 놓치고 있는 뭔가가 여기에는 있었”기 때문이다. 플랜B는 스티브 연이 출연했던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도 참여한 바 있다. 〈미나리〉는 현재 트로피를 수집하듯 미국에서 열리는 대부분의 영화제에서 연일 수상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데, 자고 일어나면 트로피 개수가 늘어나 있다(3월 16일 기준 미나리는 91관왕을 달성 중이다). 때문에 현재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미나리〉가 아카데미상을 수상할 것인가” “제2의 〈기생충〉이 될 것인가”다.

“우리가 만들 때는 미국에서 찍는다거나 할리우드 시스템이라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을 정도로 작은 규모에 적은 예산을 들인 거라서 지금 이렇게 주목받는 게 좀 겁이 나기도 해요(웃음). 코로나로 다 모이지 못하고, 영화제도 화상으로 진행되는 게 아쉽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너무 호들갑 떨지 않고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차분히 바라볼 수 있어서요. 제 인생에 정말 정말 좋은 일인 건 맞지만 너무 들뜨지 않고 이렇게 일상을 병행하며 이 시기를 지날 수 있는 게 제게는 축복인 거 같아요.”

〈미나리〉에서 모니카의 엄마 ‘순자’역으로 출연한 윤여정은 온라인으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내 앞에서 아카데미 이야기 꺼내는 사람은 만나지 않는다”는 농담을 했다. 그의 말은 오스카의 무게로 무거워진 제작진과 취재진을 모두 가볍게 만들어줬다. 〈미나리〉 촬영지였던 오클라호마 털사에서도 윤여정의 농담은 진귀했다. 긴장을 풀어주고 집중력을 높여줬다.

“저도 막상 미국에 가니까 ‘이게 뭔 줄 알고 내가 여기까지 왔나’ 싶은 순간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연세에 새로운 환경에서 일하는 윤여정 선생님을 보면서 감명을 받았죠. 연기할 때도 물론이지만, 연기가 끝난 뒤의 모습이 더 인상적이었어요. 선생님의 유머감각은 제가 아마 배울 수 없겠지만(웃음), 선생님처럼 나만이 가진, 나의 고유함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게 됐죠.”

윤여정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핫한 배우다. 하지만 오클라호마 털사에 가득한 미국 스태프들 사이에서 그는 철저히 ‘노바디(nobody)’였다. ‘선생님 대우’는커녕, 스스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는 날들이었다. 그런 새로운 도전을 통해 받는 충격이 자신을 “괴물이 아닌 배우로 만들어준다”고, 윤여정은 말했다. “대접만 받다 보면 괴물이 된다”고.

“윤여정 선생님을 보면서 제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온다면 그게 좀 늦게 나중에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선생님처럼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때 온다면 행복하고 감사하겠다고요.”

순자는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혼자 몸으로 딸을 키워 시집까지 보낸 인물이다. 그래서 집안일에는 서툴지만 가족을 지키는 법은 안다. 그가 한국에서 가져온 건 고춧가루, 밤, 보약, 쌈짓돈뿐 아니라 내 새끼를 지켜낸 깊은 생명력이다. 그 상징이 ‘미나리 씨앗’인 셈이다. 미나리는 제이콥이 밤낮없이 일해서 일군 농작물이 다 타서 사라질 때도 홀로 싱싱하게 자란다. 어디에 뿌려놔도 잘 자라고, 주변 물을 맑게 정화시키기까지 한다. “아버지가 만든 농장은 망했지만, 할머니가 뿌려둔 미나리 씨앗은 잘 자랐다”는 것 역시 아이작 감독이 겪은 실화다.

“〈미나리〉를 마치고 한국에 와서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를 했어요.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고, 부모님 세대를 이해하게 되는 내용이었죠. 그분들은 자신의 꿈이나 젊음을 펼치기도 전에 가정을 이루고, 본인의 성장보다 아이들의 성장을 책임져야 했어요. 그때 부딪힐 수밖에 없는 성장통이 있었겠다는 걸 이제는 이해하죠.”

아이작 감독은 일곱 살 난 딸에게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해주다가 〈미나리〉를 쓰게 됐다. “내가 딸에게 단 하나의 작품을 남긴다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가 모티프가 됐다. 처음에 쓸 때 아이작 감독은 아들 데이빗이었지만, 완성된 뒤에는 아버지 제이콥과 맞닿아 있었다. 감독이 데이빗이면서 제이콥인, 그 균형 두기에 성공해서 영화는 신파로 흐르지 않고, 극적인 해피엔딩에도 이르지 않는 그저 아름다운 이야기가 됐다.

“자극적으로 만드는 건 어떻게 보면 쉬운 선택이잖아요. 반대로 강요하지 않으면서 진실되고 담백하게 가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그럼에도 돌아서서 생각해보면 그 순간마다 사진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있죠. ‘그게 인생인가’ 싶어요.”


돌아서서 생각해보면 사진처럼 아름다운 풍경

‘모니카의 가족은 순자가 뿌린 미나리 씨앗으로 미나리를 풍성하게 거둔 뒤 팔아 부자가 되었습니다’는 식의 결론은 없다. 그저 제이콥과 데이빗이 할머니가 뿌려둔 미나리를 찾아가는 걸로 영화는 끝난다. 미나리의 특징 중 또 하나는 땅에 심고 1년은 지나야 잘 자란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자신보다 자신 이후의 딸과 아들 세대가 풍성하고 행복한 삶을 살길 바랐던 부모의 마음도 담겨 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올 때, 뜻밖에 한예리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Rain Song’이라는 노래다. 아이작 감독이 “데이빗에게 자장가를 불러준다는 생각으로 불러달라”고 요청한 곡이다.

“긴 기다림 끝에 / 따스함 속에 / 노래를 부르네 / 온 세상과 숨을 쉬네 / 함께 맞이하는 / 새로운 밤의 꿈.”

관객들의 길을 배웅하는 한예리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오래 발길을 붙잡는다. “긴 기다림 끝에는 따스함이 있을” 거라고, 우리가 함께 있다면 “함께 맞이하는 새로운 꿈”도 이루어질 거라고. 모니카는 그렇게 데이빗을, 앤을, 제이콥을, 순자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다독인다.

이 노래는 무려 아카데미상 주제가상 후보에도 올라 있다. 하지만 그것이 대수랴. 다른 시기에 다른 대륙에서 태어나 다른 언어를 쓰는 이들에게도 미나리 연둣빛이 마음을 물들이고 있다는 게 그보다 더 신비롭다. 아마 그건 이 영화가 단순히 한 사람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아니라 ‘자식의 미래를 위해 희망을 걸었던, 세상 모든 부모를 향한 연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 2021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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