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비의 차실’ 김담비 대표

서촌에서 가장 기이한 찻집

글 : 신진주 자유기고가  / 사진 : 서경리 기자

‘담비의 차실’은 여느 찻집과 다르다.
사람들은 김담비 대표의 가이드에 따라 차를 짓고 향을 제조한다.
음악을 좇아 몸을 움직이다가 명상을 하고 감각에 집중하기도 한다.
‘타로점’을 듣고 그의 일상을 재조합한 루틴으로 허브 치료 여행을 따라나선다.
서촌의 고요한 골목길에 ‘담비의 차실(Dambi’s Tearoom)’이라는 팻말을 써 붙인 한옥이 있다. 작은 안뜰을 가운데 두고 ‘ㄱ’자 형태의 오래된 건물은 바깥으로부터 닫혀 있고, 2층 구조로 바깥으로 돌출된 목조 창문은 적산가옥의 형태를 닮았다. 작고 낡아 보이지만 오픈 쇼룸과 부엌, 다락과 암반이 드러난 뒤뜰을 갖췄고 내부는 현대적이다. 허브차와 식물, 향을 다루며 차실을 운영하는 김담비 대표의 두 번째 독립 공간이다.

“전통 한옥과 차별된 구조에 더 끌렸어요. 고정된 공간이 생기면서 안정적인 차 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2021년 새해를 맞아 신년 차를 부탁하니, 부엌에서 알록달록한 채소와 식물 재료를 꺼내 능숙하게 제조하기 시작한다. 유자절임에 순무를 야무지게 칼질해 국화꽃 모양으로 둥둥 띄운다. ‘담비’표 신년 차다. 일본의 새해 다식인 ‘오세치’를 차로 변형한 것으로 유자와 순무의 향이 달큰하고 조화롭다.

그의 이런 남다른 블렌딩은 호기심 가득한 사람들을 차실로 불러들인다. 예를 들어, 한국 녹차와 노르웨이 미역, 파란 꽃을 섞은 ‘파란 차’나 히비스커스에 목이버섯 종을 섞은 ‘빨간 차’ 같은 것 말이다. 위스키 샷 잔에 공기주머니가 달린 미역과 해초를 넣어 바닷속 풍경으로 꾸민 ‘바다 명상차’는 차를 조형적으로 음미하는 매혹적인 시도다.

2020년에도 흥미로운 메뉴를 많이 선보였다. 금목서꽃에 감잎 등의 가을 재료를 결합한 ‘가을 향수차’, 부채 맨드라미꽃과 엉겅퀴, 칡꽃을 베이스로 만든 ‘담비꽃차’ 그리고 채소와 허브, 향신료 등을 식초에 절여 발효시키는 허브 감기약 등 낯선 이국적 재료들은 전통 관념을 추구하는 차실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불사조의 눈과 매의 발톱이 들어갔다는 ‘마녀 수프’나 플레이트를 ‘재단’이라 표현하는 등 기이한 지점도 있다. 분명한 것은 김담비 대표의 고유한 유희 방식이 존재하고 늘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는 점이다.


김담비 대표는 2019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설치 음악 축제에서 차, 향, 음악이 공존하는 사운드&보디 워크숍을 진행했다. © 김담비
이토록 진취적인 차 생활

“유럽의 자유로운 사고방식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태도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 경험과 에너지가 저의 취향을 완성하고 확장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20대 초반 베를린에서 보낸 유학 생활은 김담비 대표가 펼치는 다양한 퍼포먼스의 초석이 됐다. 그는 당시 교류하던 미국 출신의 안무가 이사벨 루이스의 초청으로 베를린 마틴 그로피우스 바우(Martin-Gropius-Bau) 미술관에서 티 퍼포머로 참여했다. 오감에 집중하는 전시 콘셉트는 감각적으로 차와 향을 다루는 김 대표의 작업을 잇는 것이었고, 이는 곧 다양한 영역의 아티스트와 협업하는 퍼포머로서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미술관에서 계약서를 작성할 때 저의 직업은 차나 향과 관련된 것이 아닌 임프로브 퍼포머(improv performer, 즉흥 공연자)였어요. 그런 용어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죠. 차를 다루는 행위도 하나의 안무가 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2019년 김 대표가 공연한 ‘베를린 아토날(Berlin Atonal)’도 마찬가지다. 베를린 아토날은 구동독 미테 구역의 옛 화력발전소인 크라프트베어크에서 여름마다 열리는 유명 실험 음악 예술제. 그는 차와 향이 아닌 오로지 음악과 무용이 있는 실험 공연의 퍼포머로 무대에 올랐다. 2000명 관중 앞에서 말이다.

“배우이자 전자음악 뮤지션인 친구 소호의 제안으로 하게 됐어요. 모로코, 스웨덴, 덴마크, 미국 그리고 한국 출신의 여성 퍼포머 다섯 명이 주인공이었죠. 고전적 의상을 입고, 여성성을 극대화한 움직임과 소리가 지배하는 새로운 시도의 퍼포먼스였습니다. 일주일 연습 기간에는 떨리지 않았는데, 관중의 시선이 집중되고 에너지가 느껴지니 무척 긴장되더군요. 그 여운이 너무 깊어서 헤어 나오는 데 오래 걸렸어요.”

유럽을 오갈 때마다 무용가, 음악가와 교류한 경험이 쌓였고, 다양한 문화의 접촉은 자연스레 창조적 삶으로 이어졌다.

“새로운 변화와 도전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여러 역할 속에 던져지면서 삶을 다각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죠.”

최근 성수동 코사이어티에서 열린 ‘re-union’ 콘서트와 차회는 김담비 대표가 그동안 경험한 감각들을 입체적으로 보여준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60여 명의 콘서트 관객에게 차와 향, 소리로 움직임을 가이드하는 퍼포먼스로, 관중은 퍼포먼스 같은 차회를 낯설어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다양한 측면의 문화적 체험을 사람들에게 많이 선보이고 싶다고 했다.



향 만들고 공부도 하는 ‘담플스테이’

지난해 1월 베를린행을 계획했다가 코로나19로 국경이 막히자 김 대표의 관심은 온통 건강으로 향했다. 물리적 움직임을 활용한 ‘담비의 헬스센터’를 전면에 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서촌의 무목적 갤러리에서 그는 100가지 운동 동작을 가이드하고, 단백질 분자를 형상화한 디자인 티셔츠를 전시하고 건강 캡슐을 제조했다. ‘2020 명원 세계 차 박람회’에서는 헬씨티바(Healthy Tea Bar)를 운영했다. 천연 식물성 재료로 혼합차, 에너지 샷을 내고 단백질 쿠키와 허브 알약을 선보인 것.

“분위기가 너무 바뀌었다며 당황해하는 반응이 많았어요. 젠 스타일의 정적인 차 문화를 거부하기보다는 한 가지 앵글에서 벗어난 세계로 확장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낯설었을 겁니다. 해외에서 자연이나 생태를 마주하는 건강한 태도를 많이 배웠어요. 환경을 존중하는 아웃도어 문화를 경험하면서 느낀 개념들을 제 방식대로 동적으로 실험한 셈이죠. 흥미롭게도 헬씨티바는 어르신들에게 인기가 무척 많았어요.”

작년 11월에는 1박 2일 허브 치료 프로그램 ‘담플스테이’도 열었다. 향을 만들고 도덕경을 공부하고, 산책도 겸하는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김 대표는 열린 마음으로 현명하게 잘 사는 삶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여러 예술가와 함께 여성들만의 리트릿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국내일 수도 있고, 북유럽 작은 마을이 될 수도 있어요. 모든 감각이 열린 상태로 사는 경험을 탐구하고 싶고, 그 기회가 올 것이라 믿습니다.”



오감이 열린 차 생활이 궁금하다면?

우리가 차를 다루는 방식을 전통이라 말한다면, 김담비 대표는 전통에서 해방되는 작업에 몰두하는 것처럼 보인다. 식자재를 고유 방식으로 재조합하고 자연에서 발견한 재료로 도구를 만들며 새로운 형태의 의식을 ‘담비’라는 이름의 장르로 구현하면서 말이다.

“사람들의 오감을 열어주고 다른 감각으로 안내하는 가이드가 되고 싶어요.”

담비의 차실이 주는 위안을 꼽자면 신경 쓰지 않는 사이에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기대와 휴식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알 수 없는 식물이 황홀하게 쌓여 있고, 이국적 냄새를 풍기는 차실 한편에서는 새로운 감각을 맞닥뜨리게 된다. 후각과 청각이 열리는 감각 놀이터에서 때론 영적인 위안을 얻고 말이다. 그 모든 것을 잘 흡수하려면 먼저 기꺼운 마음이 필요하다. 담비의 차실 대문은 활짝 열려 있다.
  • 2021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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