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보영 시인

“버리면서 불안 다이어트 하는 중입니다”

글 : 신진주 자유기고가  / 사진제공 : 문보영 시인

일상을 사는 법을 연습하기 위해 유튜브를 시작했다고 했다.
두 번째 산문집 《준최선의 롱런》은 “무너진 일상을 복구하면서 쓴 일기들”이다.
최근 출간한 세 번째 산문집 《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에서 그는 “불안이 습관처럼 일상을 덮칠 때마다 물건을 버리기 시작했다”라고 말한다.
‘잘 살아내기’ 위해 버리는 그의 정리법이자 불안을 덜어내는 생존 의식이다.


“나는 과거를 잘 흘려보낼 줄 모르며 과거 때문에 괴로워하고, 과거에서 뽕 뽑아 글을 쓰며, 과거와 권투를 하다가 뻗는 머저리다. 그래서 이제는 잘 버리는 인간이 되고 싶다. 버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버리기에 재능이 있는 사람, 과거를 건강하게 배웅할 줄 아는 사람. 그래서 나에게 ‘낙천적’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내다본다는 의미보다는 ‘지나간 일들을 너무 자세하고 폭력적으로 돌아보지 않는 것, 지나간 것들이 흐릿해지도록 돕고 묵묵히 앞을 보는 것’에 가깝다.
나는 이제 변하고 싶은 것이다.”
-
《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 중



문보영 시인은 유해한 과거와 이별하면서, 그 자리에 건강한 일상이 들어오길 간절하게 바란다. 버리는 행위는 일상을 지키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시도인 셈이다.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아도, 조금 덜어지길 희망하면서 말이다.

“일상은 제겐 항우울증제 같아요.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 잘 먹고 잘 자고 잘 사는 일상을 꼭 처방받아요. 일상을 지키면 잘 살아낸 보람을 느껴요. 그마저 없으면 다음 날 발판 없이 시작하는 하루 같고요.”

매일 출근한다는 잠실의 한 도서관 카페에서 만난 문보영 시인은 언뜻 봐도 몸피가 작고 한쪽으로 동여맨 짙은 머리카락은 명랑하다. 답변을 곰곰이 생각할 때는 검고 큰 눈동자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수줍게 조용하다가도 종종 치아를 시원스럽게 드러내며 웃는다. 환한 얼굴에서 슬픔과 고통의 그늘을 떠올리기 쉽지 않다.

“1년 넘게 우울증을 겪으면서 엄청난 과수면에 시달렸어요. 며칠간 종일 잘 때도 있었죠. 한없이 일상이 무너지던 시기였어요.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 싶어서 일기 딜리버리와 브이로그를 시작했어요. 책임이 생기니 규칙적으로 도서관으로 올 수밖에 없더군요. 작가라는 직업의식도 이때 생겼어요. 아, 글쓰기는 노동이고 내 직업이구나, 하는.”

문보영 시인은 매달 자신이 쓴 일기를 전하는 구독 시스템 ‘일기 딜리버리’를 운영한다. 매주 정해진 날짜에 이메일로 보내는데, 첫 번째와 마지막 원고는 손글씨로 써서 일반 우편으로 보낸다.

일상 지키기 프로젝트

시인의 일상 지키기 노력은 치열하다. 종종 아프리카에서 걸려오는 전화 영어 수업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도서관 근처 둘레길을 2km가량 뛴다. 휴대전화는 집에 둔 채 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고 사유하며, 손가락으로 글을 꾹꾹 눌러 담는다(그는 모든 글의 초고를 손글씨로 쓴다). 루틴은 잠시 낮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저녁까지 이어진다.

“18개월 동안 일기 딜리버리를 했고, 지난 8월에 마지막 전송을 했어요. 스스로를 회사원이라 생각하고 쉼 없이 이어갔는데, 이것도 창작이라는 부분을 간과했던 것 같아요. 쓸 재료가 줄어드는 것을 잘 몰랐죠. 좋았던 점이 있어요. ‘나’라는 화자가 반복 등장하는 것이 지루해지는 지점이 있었는데, 일기 딜리버리를 하면서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게 됐거든요.”

그는 현재 집필 중인 글을 모아 내년쯤 소설집을 발간할 계획이다.

“규칙적으로 일상을 보내면서 건강은 나아졌는데, 아이러니하게 불면증이 심하게 왔어요. 주로 정오에 일어나고 새벽 5시쯤 잠자리에 들죠. 잠들기를 빌면서 침대에 누워 게임을 하거나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는 낭비의 시간이에요. 그래서 영상을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잠 못 자는 사람의 새벽 12시부터 5시’는 문보영 시인의 불면 챌린지 브이로그의 주제이기도 하다. 미션은 새벽 시간을 쪼개어 다시 일상을 살기. 시계 침이 돌아가는 동안 규칙적으로 글 쓰고 양치하고 라면을 끓이고 비타민을 꿀꺽하고 옷을 한 번 갈아입는다.

“최대한 ‘나답게’ 사는 거예요. 활동량이 많아지니까 정말 잠이 와요. 그 시간에 깨어 있는 구독자도 많고요.”

문보영 시인의 일상이 인상적인 이유는 벗어나고자 하는 불안에 칼과 방패를 쥐고 당당하게 맞서기 때문이다. 그는 일상에 불안이 침투하는 것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글을 쓰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관찰하며, 브이로그를 찍고 힙합댄스를 춘다. 자신만의 속도로 매일을 산다. 때론 투쟁적으로 보일 만큼 부지런하게.


기억의 증거물 없애기

새 바지가 필요해질 수 있도록 오래된 바지를 버리는 ‘바지 환승’이 필요한 것처럼, 그에게 이제 진짜 무엇이든 버릴 준비가 된 것 같다.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 두려워 버리지 못할 때가 잦은데, 그럴 땐 사진을 찍어 남겨요. 기억이 나타날 기회를 주는 거죠. 추억의 증거물을 남겨두면 버리기가 쉬워집니다.”

때론 끄집어내는 것 자체가 고통인 기억도 있다. 그 질량이 너무 크면 가속도가 붙기 전에 힘의 축을 무너뜨려야 한다.

“1년에 한 번 그해 가장 슬픈 달의 일기를 사진 기록 없이 버려요. 찢어버리거나 종이분쇄기에 넣어버리죠. 물리적으로 버리는 행위를 가했을 때, 잊고 싶은 기억이 증발하는 기분이 들어요. 쓩! 버려요, 그냥.”

동시에 그는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엄마의 오줌통을 버릴 때 가장 마음이 아팠고, 꽃다발의 포장지는 결국 마음을 포장했을 거란 이유로 선뜻 버리지 못했으며, 친구가 사준 곰베개도 오랫동안 끌어안고 있었다. 천식과 불면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휴대전화는 집에 두고 책을 읽는 건 시인의 일상 지키기 노력 중 하나다.

‘새 불안은 쓰레기통에!’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버릴 빌미를 기다리는 과정과 같아요. 버릴 수 있을 때를 충분히 기다리면서 놔두는 거죠. 그러다 그 순간이 왔을 때 통쾌하게 버립니다. 그러면 빈 공간 하나가 새롭게 생겨요.”

그래서 공간이 많아졌냐는 질문에 그는 “딱히 그렇진 않다”고 답하며 작게 웃는다. 그가 제일 잘 버리는 것은 채택된 메모다. 글의 씨앗인 작은 메모를 넓은 공책에 옮겨 심은 다음 한 손으로 구겨 쓰레기통에 톡, 하고 던진다. 씨앗은 새롭게 살아남아 시, 소설, 산문으로 자란다.

문보영 시인이 《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 프롤로그에 이런 글을 썼다.

“삶의 무게가 버거울 때, 무언가를 하나씩 버려보는 건 어떨까. 버린 만큼 기억의 무게도, 슬픔의 무게도,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도 조금은 덜 수 있을 것이다. 버리지 못해 붙잡고 있던 것들을 막상 버리고 나면, 내가 그것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깨닫게 된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주 큰 쓰레기통을 하나 사야겠다고 다짐한다. 새로운 기쁨과 행복으로 채워질 마음의 서랍이 ‘뿅’ 하고 나타나길 고대하며.
  • 202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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