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작가 김우진

사육사를 꿈꾸던 청년이 만든 유토피아

글·사진 : 서경리 기자

매해 열리는 키아프(KIAF, 한국국제아트페어)의 화젯거리 중 하나는 유명 컬렉터들의 ‘픽’이다.
지난해는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키아프 방문이 화제가 됐다. 그 자리에서 뷔는 유명 작가가 아닌, 서른을 갓 넘긴 신진작가 김우진의 ‘디어(deer)’를 구매했다. 스테인리스 유닛을 불규칙적으로 이어 붙여 만든 대형 동물 조형이다.
평소 캐릭터류의 작품을 선호하는 뷔의 취향에 딱 맞는 선택이었다. 김우진 작가는 어린 시절 품은 사육사의 꿈을 작품에 투영해 사슴, 말, 강아지 등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서초구 띠오아트(TheoArt)에서 그를 만났다.
김우진 작가가 그리는 ‘유토피아’는 자그마한 꿈에서 시작한다. 그는 어릴 적 동화책에서 본 동물이 좋아 사육사를 꿈꿨다. 자라면서 부모의 손에 이끌려 예고를 졸업하고 미술교육과에 진학해 교사의 길로 들어섰지만, 내면에서 울리는 외침이 그 발길을 멈춰 세웠다. ‘내가 진정으로 꿈꾸던 삶은 무엇인가.’ 자신을 향한 질문이 내면 깊숙이 파고들 즈음, 작가는 어릴 적 꿈꿨던 사육사를 떠올렸다.

“어릴 적 꿈은 하나같이 오답노트처럼 보였어요. 부모님이 바라는 삶이 ‘정답’ 같았죠. 대학에 가서도 똑같았어요. 그러다 문득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뭔가, 반문하게 됐고 그 물음 끝에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 작업은 진솔한 내면의 이야기이자, 꿈에 대한 고백이다. 그는 직접적으로 사육사를 보여주기보다 상상 속 동물을 작품으로 재현함으로써 어릴 적 꿈을 하나둘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김우진 작가는 빨간색과 파란색, 노란색과 초록색 등 갖가지 색상의 작은 조각들을 이어 붙여 거대한 동물 형태를 만든다. 수천 개의 유닛을 불규칙적으로 쌓아올린 형상에서 자유분방함이 읽힌다. 그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자신의 외향적 성향이 평면의 회화 작업보다 입체적인 조형 작업과 맞았다고 했다.

그는 동물을 오브제로 가져가면서도 겉모습의 닮음보다 기억의 재현에 집중했다. 기억과 추억에는 때때로 상상력이 더해져 과장되거나 부풀려지기 마련. 7m에 달하는 말과 사슴, 건물 한 층 높이의 강아지는 어릴 때의 눈높이로 바라본, 작가의 경험과 자의식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사슴과 말, 강아지로 형상화된 꿈의 조각들은 작가의 유토피아에서, 작가 자신의 존재성이 투영된 생명체로 빛난다.

‘2019 키아프’에서 방탄소년단 뷔가 구매한 김우진 작가의 작품.
‘deer’, 30x60x75cm, 스테인레스에 우레탄 도장, 2019. © TheoArt

작업은 꿈의 조각을 꿰어가는 과정

김우진 작가의 초기 작품은 플라스틱을 주재료로 한다. 플라스틱이 현대사회에서 대량 생산되는 소비재인 데다 대학교 주변에 흔하게 굴러다니는 게 플라스틱 의자라 접근이 쉬웠다. 그는 “현대사회에서 무의미하게 대량생산된 플라스틱을 불규칙적으로 붙여 넣은 형상이 꼭 우리 삶과 닮아 있다”고 말했다.

“쉽게 소비되고 쓰임을 다해 폐기처분됐다가 재활용되는 플라스틱이 마치 사람의 삶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결국 내가 살고 있는 삶의 이야기더라고요.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 그 안에 나의 삶이 있는 것이죠.”

그는 몇 해 전부터 플라스틱에서 스테인리스로 소재를 바꿨다. 작품의 영구적인 내구성을 보강하기 위함이다. 스테인리스의 강한 물성이 동물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어준다.

김우진 작가의 작품에서 눈여겨볼 점은 색이다. 빨주노초파남보 원색의 스테인리스 유닛은 작품에 생기를 더한다. 저마다의 색은 꿈의 조각이기도 하다.

“컬러 유닛은 꿈에 대한 열정이면서, 하나의 추억이고 기억이에요. 유닛을 조합해 하나의 덩어리로 만드는 작업은 나만의 이야기를 꿰어가는 과정이죠. 색마다 갖는 의미가 달라요. 때론 우울하고 때론 열정적인 ‘그날의 나’입니다. 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매번 눈에 띄는 색이 달라요. 그게 바로 심연에 있는 나인 거죠. 작품을 보는 관람객들도 한 발짝 떨어져서 나를 되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서울 서초구 ‘띠오아트’에서 열린 김우진 작가의 개인전 작품들은 모두 올해 신작으로, 평면 작업 5점과 조형물 11점 등 총 16점이 공개됐다. 전시는 10월 9일부터 11월 29일까지 예약제로 운영된다.
© TheoArt

BTS 뷔가 선택한 그 작가

우리 나이로 서른넷. 작가가 되어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 후로 하루도 쉰 적 없다는 김우진 작가는 지금까지 600점 이상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끊임없는 창작을 향한 갈증이 빚어낸 결과다. 그는 매 작업마다 오답노트를 만드는데, 그 안에는 성취와 호기심, 물음표가 담긴다.

“변화와 시도는 늘 숙제입니다. 요즘은 제 작품이 주변과 어떻게 어우러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이제까지는 높이 3m가 넘는 대형 작품만 해왔는데, 주거 공간에 어울리지 않을 수 있어 작품 사이즈를 작게 만들고 있어요.”

알록달록한 동물 형상이 친근하게 다가오는 김우진 작가의 대형 작품은 미술관뿐만 아니라 아파트 단지나 상업시설에서도 종종 마주하게 된다. 신세계 이마트 트레이더스나 스타필드, 롯데 이천아울렛, 대형 아파트 건설사 등 하나같이 가족이 함께 찾는 공간이다.

신진 작가로 주목받고 있는 김우진 작가. 작품이 아닌 현실에서 그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정당하게 경쟁하고,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이다.

그가 꿈꾸고 걸어온 길은 주변의 시선으로 볼 때 하나같이 ‘오답’이었다. 사육사나 작가의 길은 배고픈 직업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열심히 공부해 안정적인 직업을 얻고 경제적 풍요를 누리는 삶이 어른들의 ‘정답’이었을 테다.

“우리가 색안경으로 바라본 그 세상이 유토피아가 아닐까요. 어른들이 가지 말라고 한, 오답노트가 결국은 나의 삶이고, 내 삶이 곧 정답인 거죠. 저는 지금 작가로 가는 이 길이 행복하거든요.”

‘오답’이 더 이상 오답이 아닌, 나의 삶이라는. 퍽 멋있는 말이다.
  • 202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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