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스여일삶 대표

“왜 스타트업엔 여성들이 적을까요?”

글 : 차지현 명예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2017년 11월에 만들어진 ‘스타트업 여성들의 일과 삶’(이하 스여일삶)은 페이스북 기반의 여성 중심 스타트업 커뮤니티다.
2018년 페이스북 커뮤니티 리더십 프로그램(FCLP)에 국내에서 유일하게 선정돼 활동 지원금을 받는다.
스여일삶에서는 스타트업 여성들의 고민을 나누거나 커뮤니티 멤버들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들기도 한다.
여성의 입지가 탄탄하지 않은 스타트업 분야에서, 여성도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건강한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일에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스여일삶을 만든 대표의 이름은 김지영. 많은 이들의 눈물을 훔쳤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89년생’ 김지영 대표는 이 땅의 ‘김지영’들이 조금 더 나아진 삶을 영위할 수 있길 고민한다.

본투글로벌센터가 발간한 《대한민국 글로벌 창업백서: Korea Startup Index 2019》에 따르면 2019년 여성 창업자의 비율은 전체의 8.7%다. 남성 창업자 비율이 최근 3년간 91%를 웃도는 것과 비교하면 확연히 낮은 수치다. 여성을 한 명이라도 고용한 스타트업 비율은 81.2%. 단 한 명도 고용하지 않은 스타트업의 비율이 18.8%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여성 관련 통계나 자료 자체가 부족한 경우도 많다. 문제라고 인식해야 조사를 하는데, 문제로 느끼지 않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스타트업 여성 생태계의 문제를 의식조차 못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한다.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을 하는 회사 대표님에게 스타트업 주니어급엔 여성들이 많은데 리더급인 C레벨이나 팀장급에는 여성 비율이 너무 적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대표님은 이 업계에 20년이나 있었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제가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그 말이 오히려 더 충격이었어요.”


남자도, 일반 기업인도 환영합니다

스여일삶은 김 대표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여성으로서 힘든 점이 많았지만 고민을 나눌 사람이 마땅치 않았다. 개발자 중심의 스타트업 특성상 여성 팀원 비중도 낮았고, 대부분 또래로 구성된 젊은 조직이다 보니 롤모델을 찾기도 어려웠다.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해도 이 회사에 다닐 수 있을지 막막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스타트업 여성들을 연결하고, 목소리를 전하는 창구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페이스북에 모여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게 스여일삶으로 성장했다.

“10년 위 선배도 같은 고민을 했더라고요. 저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데, 10년 뒤 후배들도 같은 고민을 하겠지요.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건 구조적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스여일삶은 지난 2018년 커뮤니티 리더들의 육성과 지원을 위해 운영하는 ‘페이스북 커뮤니티 리더십 프로그램(Facebook Community Leader-ship Program·FCLP)’에 선정됐다. 페이스북은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커뮤니티를 선정해 교육 기회와 활동 지원금을 제공하고 있다. 선발 과정이 만만치 않지만, 전 세계적으로 115개, 아시아에서 25개 커뮤니티가 선정된 가운데 스여일삶은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프로그램 지원 당시, 김 대표는 스여일삶이 규모가 작은 신생 커뮤니티여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지원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자는 생각이었지만 면접이 진행되고, 여러 단계를 거치며 커뮤니티의 힘을 느꼈다. 전 세계 네트워크를 경험하며 스여일삶이 가야 할 길을 더욱 또렷하게 깨닫는 시간이 됐다.

“여성들이 스스로를 과소평가한다는 걸 알았어요. 지레 겁을 먹거나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는 등 한계를 설정하는 거죠. 저도 그랬고요. FCLP 선정 과정을 거치며 두려움을 떨쳐내고, 여성에게 가능성과 기회가 무한하다는 걸 알아갔어요.”

김 대표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있다. “남자인데, 가입해도 될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예스다. 스여일삶이 지향하는 가치는 ‘다양성’이다. 그래서 남성이나 스타트업이 아닌 일반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 학생 등 누구나 멤버가 될 수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열린 커뮤니티가 되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여일삶은 스타트업 여성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다른 생각을 자유롭게 소통하는 커뮤니티를 지향한다. 현재 멤버 중에는 남성이 7%, 대학생 또는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20%를 차지한다. 오프라인 행사에 참여하는 남성도 늘고 있다.


끊임없이 연대하고, 작은 실천을 하다 보면


스여일삶이 추구하는 변화는 단기간에 나타나는 것들이 아니다. 스타트업 생태계를 개선하겠다는 큰 비전을 품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연대하고, 작은 일이라도 실천하는 과정을 쌓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스타트업 여성들의 경험과 비전을 공유하는 콘퍼런스나 웨비나(웹 세미나)를 주최할 때 김 대표가 특히 염두에 두는 것이 있다. 여성 연사를 최대한 많이 초청하는 것과 그들에게 합당한 대우를 하는 것이다.

이런 크고 작은 노력 덕분인지, 스타트업 여성 문제에 공감하고 개선을 위한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여성 창업가의 고충이나 개선점을 묻는 연락을 받기도 한다. 서울시와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의 지원으로 대방동에 들어선 여성창업공간 ‘스페이스 살림’도 그중 하나다. ‘스페이스 살림’은 일하는 여성을 중심으로 일과 삶의 균형을 지원하는 여성가족복합시설이다. 더 많은 여성이 창업하고, 스타트업에서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하는 사회적 차원의 노력이 시작된 것이다.

“스여일삶은 아래서부터 시작된 변화의 움직임이지만 위에서도 감지해야 진정한 변화가 이뤄지잖아요. 천천히 계속 일을 해나가다 보니 그런 변화가 실제로 일어나는 걸 느껴요.”

김 대표의 꿈은 한결같고, 확실하다. 30대는 커뮤니티 리더로서 지금 하는 일들을 잘해나가는 게 목표다. 김 대표 자신뿐 아니라 주변의 스타트업 여성이 함께 성장하길 원한다. 40대에는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스타트업 여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계획하고 있다. 가령 스타트업 운영의 재원 마련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을 제안하거나 인맥을 이어주는 일처럼 더 가까이에서 도움을 주는 것이 궁극의 목표다.


대한민국 여성들에게, 김지영 대표가 전하는 말

1.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커뮤니티 멤버들이 가장 큰 위로를 받을 때는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를 느끼는 순간이에요. 구조적 문제 때문에 알 수 없었던,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을 만나고 위안을 얻는 거지요. 만남이 많아지고, 많은 경험을 공유하다 보면 상황은 개선될 수 있습니다.”

2. 네 탓이 아니야!
“우리 주변에서는 잘못된 일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려는 공격이 많아요. 가령 ‘너는 왜 그거밖에 못 하니?’ 같은 비교하는 말들이에요.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모두 의미가 있어요. 주변의 공격에서 우리 자신과 우리가 하는 일을 지킬 필요가 있어요. 의식적으로 ‘잘하고 있어’ 같은 칭찬을 스스로 더 많이 해주면 좋겠어요.”
  • 202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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