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신혜

데뷔 17년 차 수확의 계절

글 : 서경리 기자  / 사진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식물을 키우고 있다고 했다. 호접란과 양란을 선물받았는데, 1년이 넘도록 꽃을 피워내더란다. 물만 줬는데도 허브 잎이 쭉쭉 자라고, 하나둘 모으다 보니 베란다가 허브와 작은 선인장으로 가득 찼다고 말하는 박신혜의 목소리가 여름날 파릇한 풀밭처럼 청량했다. 이제는 루콜라도 키워볼까 싶다고 말할 즈음엔 마치 옆집 동생을 카페에서 만난 듯 정겨웠다. 무슨 얘기를 하든 그 커다란 눈망울에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으로 가득했다. 치열한 생존기를 그린 영화 〈#살아있다〉에서 그가 등장하는 장면이 유독 따뜻했던 이유가 이 때문은 아닐까.
코로나19로 뒤숭숭하던 지난 2월, 박신혜는 영화 〈콜〉 제작발표회로 대중에 얼굴을 비쳤다. 그리고 지난 6월에는 새 영화 〈#살아있다〉 시사회 무대에 올랐다. 영화 개봉과 맞물려 JTBC 새 드라마 〈시지프스 : the myth〉(가제) 촬영 현장 소식도 들려왔다. 올해에만 세 작품을 발표하는 셈이다. 한 해 동안 영화와 드라마 각 한 편씩만 출연하는 걸 나름의 목표로 삼은 그로서는 특이한 경험이라고 말한다. 무척 바빠 보이지만 사실 박신혜는 스스로 정한 ‘1년 이모작’이라는 루틴을 착실하게 따르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은 코로나19로 영화 개봉 시점이 엇갈리며 벌어진 일이다.

그는 “인생에 이런 일이 또 있을까 싶다”라고 말하며 화색을 띠었다. 마침 인터뷰 당일 〈#살아있다〉가 사전 예매율 67%를 기록했다는 낭보가 들려온 터다. 개봉 첫날 누적 관객 수는 20만 명. 코로나19로 침체된 영화판에 단비와 같은 소식이다. 많은 영화 팬들은 “한국 영화의 ‘생존 신고’”라며 기뻐했다. 흥행은 7월 셋째 주까지 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라는 기록으로 이어지고 있다.

쏟아지는 축하에 박신혜는 “많은 분이 영화를 보러 와준다고 하니 기쁘면서도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라며 “영화 보러 와달라는 말이 이렇게 어려운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추천 자체가 조심스럽다. 건강하게 즐기고 돌아갔으면 좋겠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거리는 멀어져도 마음은 가까이


영화 〈#살아있다〉는 원인 불명 증세의 사람들의 공격으로 통제 불능에 빠진 도시에서 아파트에 고립된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생존 스릴러다. 극중 박신혜는 치밀하게 자기만의 생존 전략을 짜고 침착하게 살아나갈 방법을 고민하는 생존자 유빈 역을 맡았다. 유빈은 전기와 통신, 수돗물이 끊긴 극한의 상황에서도 물 한 모금을 기꺼이 식물과 나눈다. 끝까지 우리가 지켜야 하는 인간성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살아있다〉는 감염으로 인해 세상과 단절되고 고립되는 설정이 지금의 코로나19 상황과도 맞아떨어진다. 코로나19 생활방역 5대 수칙인 ‘거리는 멀어져도 마음은 가까이’를, 유빈 역의 박신혜가 따뜻하게 그려냈다.


“소소했던 일상이 그리워지는 순간이 있잖아요. 영화를 촬영하면서 난 지금 특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구나, 하고 다시금 생각했어요. 영화를 보는 분들도 힘을 얻어 가면 좋겠어요.”

배우 인생 17년 차 박신혜는 현장에서 ‘박 선생’으로 불린다. 교과서처럼 올곧은 길만 걸어온 그에게 붙은 훈장 같은 것이다. 박신혜는 2003년 가수 이승환의 ‘꽃’ 뮤직비디오로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같은 해 드리마 〈천국의 계단〉에서 최지우의 아역인 한정서 역을 맡아 깊은 인상을 남겼고, 이후 드라마 〈미남이시네요〉 〈이웃집 꽃미남〉 〈상속자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등을 비롯해 영화 〈도마뱀〉 〈전설의 고향〉 〈시라노: 연애 조작단〉 〈뷰티 인사이드〉 등 다양한 작품에서 주연으로 활약하며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무리하지 말자’는 제가 배우를 시작하며 쭉 가지고 온 기조예요. 10대에도 20대의 멜로를 연기했지만, 그땐 사랑이라는 감정을 잘 몰랐어요. 남녀 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서툴 때잖아요. 20대에 들어 친구와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관계가 쌓이다 보니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관계를 통해 배우로서 영역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욕심내지 말고 지금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해요.”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일


어느덧 서른을 넘어서며 박신혜는 ‘잘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무엇이 세상을 따뜻하게 할 수 있을까, 고심하던 그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동물권과 환경으로 이어졌다. 올 초에는 MBC에서 방영한 창사 특집 다큐멘터리 〈휴머니멀〉에 출연해 출연료 전액을 코끼리 보호단체에 기부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에서 박신혜는 아프리카 보츠와나를 방문해 코끼리 보호단체 ‘국경 없는 코끼리회’ 활동가들과 함께 고아 코끼리들을 돌보고, 추적 가능한 GPS 장치를 야생 코끼리에게 부착하는 등 여러 활동에 참여했다. 촬영을 마치고 나온 그는 “이번 다큐멘터리 촬영은 일생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며 동물 애호가로서 면모를 보였다.

박신혜는 “잘 살아가고 싶어요”라며 〈#살아있다〉의 대사를 인용했다.

“우리는 생명을 얻어서 태어나지만, 흙으로 돌아가잖아요. 우리는 지금 살아 있어서 숨은 쉬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 숨이 잦아져서 마른 풀이나 시든 꽃과 같아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내 인생도 아직은 생기가 넘치지만, 꽃을 피우고 결실을 맺다 보면 언젠가는 시들 텐데요, 잘 마르고 싶어요. 인생에서 피워냈던 꽃과 가지의 잎들이 잘 말랐으면 좋겠어요.”

박신혜는 올해 〈#살아있다〉에 이어 새 드라마로 또다시 대중 앞에 선다. 지난해 땀 흘려 농사지은 알곡들이 차례차례 수확의 때를 기다리고 있다. 배우 박신혜의 계절이 알차게 영글어가고 있다.
  • 2020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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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whatcha   ( 2020-07-30 )    수정   삭제 찬성 : 반대 :
마음도 그렇고 딱 놓친 애인같이 생겼다. 훌륭한 연기 보여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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