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성은

성장 에세이 《한 뼘만 같이 걸을까요?》로 돌아온 ‘미달이’

글 : 서경리 기자  / 사진제공 : 씨즈온 

IMF 외환위기로 온 국민이 힘겨워하던 때, SBS 시트콤 〈순풍산부인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아역 배우 미달이, 김성은.
한동안 TV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던 그가 최근 에세이 《한 뼘만 같이 걸을까요?》로 소식을 알려왔다.
‘한 뼘’은 발걸음으로 치면 너무나도 조심스러운 움직임이다. ‘성큼’ 내딛는 걸음이 아닌, 손의 길이만큼만 같이 걸어보자는 건데, 앞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작지만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그의 목소리를 따라 행간을 거닐다 보면 우리도 한 뼘 성장하게 된다.
〈순풍산부인과〉는 1998년 외환위기로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웃음을 안겨준 보약 같은 시트콤이었다. 2000년까지 3년을 달려온 이 시트콤에는 갖가지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그중 기자의 ‘최애 캐릭터’를 꼽자면 단연 박미달이다. 지금껏 연기깨나 한다는 아역 배우를 많이 봤지만, 미달이를 연기한 김성은만큼 천연덕스럽게 역할을 소화한 아역 배우는 떠올리기 힘들다. ‘국민 아역’으로 불리며 시청자들과 함께 성장한 미달이, 김성은이 어느덧 서른이 됐다.

“그동안 잊히지 않을 만큼 얼굴을 비쳤어요. 물론 잊히고 싶었던 적도 있지만요. 다시 대중 앞에 나오는 게 두려웠어요. ‘누가 날 기억이나 해줄까’ 하는 두려움이죠.”

어린 나이부터 대중의 관심을 받은 김성은은 사춘기를 거치며 긴 슬럼프에 시달렸다. 유학을 떠났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왔으며, 대학 진학 후에는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며 또 한 번 슬럼프에 빠졌다. 이후 드라마 〈감자별〉로 복귀를 노렸지만 그 역시 잘 안 됐고, 이제껏 눈에 띄는 배역을 맡지 못했다. 미달이로 살았던 그 짧은 시간을 빼면 배우로서 김성은의 삶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었다.

‘속박, 불안, 초조, 불안정한 행복…’. 김성은은 자신의 20대를 이런 단어들로 기억한다. 때론 스스로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며 ‘출구 없는 터널’을 하염없이 걸었다.

“한때 화장이나 성형으로 제 모습을 가꾸던 때가 있었어요. 그때는 몰랐는데, 돌이켜보니 미달이 이미지를 벗고 싶었던 것 같아요. 내가 나를 부정하고 있었죠. 벗어나려고 할수록 헤어나오기 힘든 늪에 빠진 기분이랄까. 미달이가 아닌 ‘나’로 살고 싶어 지난 시간을 부끄러워하고 숨기려 하니 그게 약점이 됐고요.”

《한 뼘만 같이 걸을까요?》는 그런 김성은의 고민이 담긴 에세이다. 불우했던 유년기와 가정사, 화려한 아역 배우로 살았던 시절과 방황기를 거쳐 자신을 되돌아보기까지 덤덤하게 풀어냈다. 그렇다 보니 에세이면서도 성장 소설로 읽힌다. 일기장을 보며 지나온 시간을 되짚듯, ‘그때의 나는 이랬구나, 나는 왜 숨어 살았을까, 왜 나를 포기하며 살았을까, 왜 이리 갈 길 잃고 방황했을까’ 끊임없이 자신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쓰면서 많이 울었어요”


책을 쓰는 일은 그의 인생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김성은은 “조금 더 삶을 바라보는 관록이 생기는 40~50대에 쓰고 싶었는데, 기회가 빨리 왔다”며 수줍게 웃었다.

“힘들었던 시기를 되짚어보는 일은 무척 괴로웠지만, 제 인생을 남의 편집을 거치지 않고 제 목소리로 이야기할 수 있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한 문장, 한 문단을 써내려가며 많이도 울었지만, 그만큼 지나온 시간에도 마침표가 짙게 찍혔다. 과거를 털어내야 더 나아갈 수 있노라고 자신을 다독였다. 김성은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주저했고 갈망했고, 설렘도 있었다. 그래서 용기 냈고, 결심했고,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는 에세이를 통해 “지난 시간을 변명하기보다 나, 이만큼 성장했어요”라고 말하며 함께 한 뼘 더 나아가보자고 권한다.

“힘든 시간도 지나보면 다 성장을 위한 준비라고 생각해요. 모든 것은 첫 경험으로부터 끊임없이 성장하죠. 평범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특별할 것도 없는 삶이었어요. 지금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어서 다행이지요. 제게는 힘든 시기마다 든든하게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분들이 어쩌면 쉬운 그말, ‘성은아 너는 이미 최고의 배우야’라고 말해주는데, 울컥했어요. 겉으로 단단한 척했지만, 속으로 인정받고 싶었나 봐요. 버텨온 시간에 대해서, 잘 버텨냈으니 이제 자신감을 갖고 살라는 거죠. 보통의 제 삶이 저 자신에게 특별해졌어요.”


미달이든, 김성은이든


그는 끊임없이 성장해왔다. 대중에게서 멀어져 멈춰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김성은의 삶은 꾸준히 앞으로 나아갔다. 어느새 돌아보니 그의 마음도 딱 한 뼘만큼 성장해 있었다. 그는 이제 미달이가 아닌 배우 김성은으로 이야기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잊힌 아역 배우들이 많은데, 여전히 미달이를 기억해주는 사람들도 많아요. 무엇으로 불리든 중요하지 않아요. 저를 좋아하고 응원하고 추억하고 기억해주고, 그것만으로 감사하죠. 기회가 된다면 제 속이야기를 더 풀어내고 싶어요. 사소한 감정, 사람 그리고 사랑에 대해서요. 삶의 스펙트럼을 더 넓혀가고 싶어요. 배우로, 직장인으로 또 작가로. 앞으로는 어떻게 불릴지 모르겠지만 제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가 와도 즐거울 것 같아요.”

그에게는 아직 못다 한 버킷리스트가 많다. 그중 하나는 재단을 설립하는 일. 아이들과 소외 계층, 문화예술인을 위한 비영리재단을 운영하면서 교육과 멘토링, 문화계 후원을 하고 싶다고. 또 라디오 DJ를 꿈꾸고 있다.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같이 있어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게 그의 목표다.

“또래 친구들에게 넘어지면 스스로 이 악물고 일어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결국 내가 일어나야 해요. 내 인생의 존재 가치는 내가 만드는 거니까. 나를 더 아껴주세요.”
  • 2020년 06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