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담은 공간’ 진해수·권민경 대표

미래로 편지 띄우는 엽서 카페

글 : 차지현 명예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 옛 북수동 골목길. 통 큰 유리창 너머로 카페 안을 빼곡히 채운 365개의 함이 보인다.
하얀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나무로 된 우편함이 시선을 압도한다.
영화 〈해리포터〉 속 요술지팡이를 파는 ‘올리밴더스’가 떠오르는 공간.
365개의 상자 안에는 수많은 엽서가 주인에게 배달되길 기다리고 있다.
진해수(위), 권민경(아래) 대표
‘널 담은 공간’(이하 널담)은 미래로 편지를 보내는 엽서 카페다. 365개의 날짜가 적힌 우편함 중 원하는 날짜의 함에 엽서를 넣어두면 이듬해 같은 날짜에 엽서가 배달된다. 널담은 2017년 서울 해방촌에 처음 문을 연 이후 안산점과 수원점까지 세 곳으로 확장했다. 나만의 비전이 담긴 곳을 만들고 싶다는 진해수 대표의 오랜 꿈이 실현된 공간이다.

“1년이라는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어요. 내년을 기약하며 기다리는 설렘도 있고요. 나중에는 3년이나 5년도 시도할 수 있겠죠?” (진해수)

그가 처음부터 엽서 카페라는 콘셉트를 내세운 건 아니다. 널담 브랜드의 탄생은 진해수 대표의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 때부터 창업에 관심이 많았어요. 소중한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거든요. 군대에 다녀와 복학한 후 무작정 교수님들을 찾아뵙고 양해를 구해 각 수업이 끝나고 5분의 시간을 얻었습니다. 친구들 앞에서 창업에 관한 비전을 이야기하고, 함께할 친구들을 기다린다는 뜻을 전했어요. 현재 공동 대표로 있는 권민경 대표도 당시 만난 친구 중 하나죠. 비슷한 아이디어를 가진 친구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진해수)

널담 팀이 공감하는 가치는 ‘소중한 이들은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다. 일상의 소중함, 가까이 있는 가족과 연인의 소중함을 전달하는 것을 사업 목표로 잡았다. 그러나 창업의 길은 쉽지 않았다. 컴퓨터공학과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권 대표와 힘을 합쳐 창업 지원 사업에 여러 번 도전했지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오랫동안 구상한 아이템이 엎어지는 일도 잦았다. 여섯 번, 일곱 번 실패가 이어졌다. 팀원이 떠나가고, 받은 장학금이 바닥나 자금난을 겪기도 했다.

그러다 생각해낸 것이 ‘편지’였다.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힘들었던 군 시절, 하는 일이 풀리지 않을 때마다 편지에서 위안을 얻었던 진해수 대표의 경험이 아이디어의 시작이었다.

“늘 제게 편지를 써주시던 할아버지와 제가 써드린 편지를 항상 지갑에 넣고 다니던 어머니가 떠올랐습니다. 편지라는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 됐어요.” (진해수)


크라우드 펀딩서 목표 금액 838% 달성,
카카오메이커스 1만 5000부 이상 판매


엽서 카페 ‘널 담은 공간’은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공간을 지향한다. 해방촌점에 이어 안산점, 수원점으로도 확장했다. 사진은 수원점 내부.
하지만 편지가 사라져가는 시대, 편지 사업이 성공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널담 팀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했다. 학교가 있는 안산 근처, 노적봉폭포공원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설문지를 돌렸다. 편지를 쓴 경험이 있는지, 요즘에도 편지를 쓰고 싶은지, 편지를 왜 쓰는지 등 편지와 관련된 질문으로 구성했다. 대부분이 편지를 쓰고 싶어도 기회나 매개가 부족해 쓰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아냈다. 편지에 대한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처음 도전한 것이 편지집 ‘널 담은 책’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표현을 부끄러워하고 어려워한다는 걸 알았어요. 소중한 사람에게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도 표현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그 마음이 전달되지 않잖아요. 마음을 표현할 기회가 적은 요즘, 편지는 마음을 표현하는 연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권민경)

원하는 날짜의 우편함에 엽서를 넣어두면 이듬해 같은 날짜에 엽서가 배달된다.
‘50가지 주제’로 만들어진 ‘널 담은 책’은 마음을 전달하는 편지집인 동시에 편지를 쓰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가이드북이다. ‘첫인상’이라는 주제의 편지지에는 첫인상과 관련해 편지를 쓰는 식이다. 널 담은 책의 하이라이트는 책 뒤표지에 있는 ‘스크래치 스티커’다. 편지집을 완성한 후 가장 마지막 순간에 차마 쓰지 못한 말이나 전하고 싶은 말을 쓴 뒤 그 위에 스크래치 스티커를 붙이면 비밀 페이지가 완성된다. 복권을 긁듯 스크래치를 하나하나 없애야 그 소중한 문구를 확인할 수 있다.

널 담은 책은 크라우드 펀딩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크라우드 펀딩 ‘텀블벅’을 통해 목표 금액의 838%, 1500만 원에 달하는 펀딩에 성공하고, 카카오메이커스에서 1만 5000부 이상 판매했다. 널 담은 책보다는 조금 가볍고 재미난 느낌의 ‘널 담은 문답’도 만들었다. 편지집과 문답집으로 프러포즈를 하는 손님, 추억을 엮은 편지집을 주문 제작해달라는 손님 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널 담은 책’ 이어 ‘널 담은 문답’

‘50가지 주제’를 테마로 한 ‘널 담은 책’. 마음을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가이드북이다.
널담은 편지와 공간이 시너지를 내는 곳이다. 널담 팀은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기에 최적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처음 문을 연 해방촌점은 인테리어부터 식음료, 디저트까지 팀원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편지는 방문자뿐 아니라 널담 팀에게도 특별하다. 말로 전하지 못한 진심을 직원들끼리 편지로 주고받기도 한다. 팀원의 생일에는 널 담은 책에 다른 팀원들이 편지를 채워 선물한다. 진해수 대표는 월급을 줄 때 팀원 한 명 한 명에게 편지를 쓴다.

널담은 재방문율이 높다. 표현에 고파 온 이들이 1년 뒤 편지를 받고 다시 오는 경우가 많다. 편지와 기다림이 주는 힘을 느꼈기 때문이다. 편지 쓰는 모임이나 즉흥적으로 편지를 주고받는 이벤트도 준비 중이다. 고객층을 다양화하기 위해 비건을 위한 디저트나 저당 상품 같은 건강한 음식 연구도 계속하고 있다.

“표현의 방법이 반드시 편지일 필요는 없어요. 편지가 아니더라도 표현을 많이 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요.” (권민경)

표현의 방법은 바뀌더라도 마음을 전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 널담이 추구하는 지향점이다.
  • 2020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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