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민혁 아워테리토리 대표

꽃미남 아이돌에서 꽃삼촌 사장님으로

글·사진 : 서경리 기자

기타리스트 노민혁. 원조 아이돌 밴드 클릭비 멤버로, 기타 신동으로 이름 날렸던 그가 펫 산업에 뛰어들었다.
10대 시절 꿈에 그리던 아이돌을 ‘음악가’가 아닌, ‘사업가’로 마주하는 일은 퍽 낯설었다.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나온 노민혁은 최근 반려동물 헬스케어 브랜드 펫테리토리로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패기 발랄하던 10대 ‘꽃미남’ 기타리스트는 어느새 30대 후반에 접어든, 농후한 ‘꽃삼촌’ 사장님이 돼 있었다.
“팬이었어요.”(기자)

꼬박 22년 만이다. 새 천년을 앞둔 1999년 노민혁은 아이돌 밴드 클릭비로 가요계에 등장했다. 당시 클릭비는 ‘Click-B’ ‘백전무패’ ‘하늘아’ ‘To be continued’ 등을 히트시킨 1세대 아이돌 밴드로 god, 신화 등과 인기를 나란히 했다. 겨우 아홉 살 때 공중파 방송에 기타 신동으로 소개된 노민혁은 아이돌임에도 발군의 기타 연주로 이름을 떨쳤다. 2002년 클릭비를 탈퇴하는 순간에도, 2008년 밴드 애쉬그레이로 활동할 때도, 또 2012년 KBS2 〈톱밴드2〉에 출연하면서도 줄곧 그의 손에는 기타가 들려 있었다.

기타 연주가 아닌 ‘노래하는’ 노민혁을 본 건 뜻밖에도 지난 3월, MBC 〈복면가왕〉에서다. ‘시베리안허스키’의 탈을 쓰고 나온 그는 ‘커피소년’의 ‘장가갈 수 있을까’를 완창하며 숨겨온 보컬 실력을 뽐냈다.

“일상이 무료하던 차에 섭외 연락이 왔어요. 클릭비로 데뷔할 때가 열일곱 살이었으니, 세월이 많이 지났죠.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다 보니 방송에서 완창할 일이 없어서 떨렸어요. 22년 만의 첫 완창이었죠.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이 무대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노민혁의 아버지는 그가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겸 보컬리스트가 되길 바랐다. 아들이 무대에서 노래는 거의 부르지 않고 기타만 치는 것을 탐탁지 않아 했다. 그의 나이 서른한 살, 아버지의 암 투병 시기는 인생 최고의 변환점이었다. “당장 음악을 때려치워라”고 호통 치던 아버지를 2년 동안 등지고 살아온 그다. 그런 아버지를 위해 보컬로서 무대를 준비했지만, 결국 아버지는 간암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내 음악으로 돈 벌겠다’는 신념 하나로 가난과 고달픔을 견디며 버텨왔는데, 병원비 앞에서 무너졌어요.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보탰죠. 무대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아버지에게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끝내 제 무대를 못 보고 돌아가셨어요. 그날 잠도 안 주무셨대요. 아들 무대 보겠다고.”

눈물로 아버지를 보내며 ‘서른다섯까지만 음악을 해보고 안 되면 접자’고 굳게 결심했다. 악착같이 버틴 서른다섯 해, 지인에게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탈탈 털리고 나서야 미련 없이 음악을 접었다. 그는 “도전할 때도 용기가 필요한데, 내려놓을 때는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사업도 인생도 바닥부터

도망치듯 떠나온 서울. 카니발 한 대에 짐을 싣고 고향 부산으로 내려가며, 18년을 서울에서 악착같이 버텼는데 서울 생활이 이 차 한 칸을 못 채우는구나, 하는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한 달 동안이나 멍하니 아무 일도 못 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당장 살길이 막막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작정 해운대 인근 1인 창조 비즈니스센터로 찾아갔다. 걸음마를 배우듯 하나하나 물어가며 사업 아이템을 찾아다녔다. 지인의 소개로 ‘콘텐츠 커머스’ 사업에 발을 들인 그는 뷰티 분야를 기웃거리다 펫 산업, 그중에서도 반려동물 헬스케어 분야를 만났다. 이미 펫 산업이 6조 원대에 이르는 때라 뒤늦은 승차 같았지만, 영양제 분야라면 공부할 것도 많고 오래갈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무엇보다 어려서부터 반려견을 오랫동안 키워온 경험이 있어 흥미가 갔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17년 한 해에 버려진 동물만 10만 2593마리고, 2016년 대비 14.3% 증가했다. 하루 평균 300마리의 동물이 매일 버려지는 꼴이다.

“버려지는 반려동물 수만 해도 마음이 아픈데, 더 안타까운 것은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안락사를 당하는 비율이 20.2%, 자연사하는 비율은 무려 27.1%라고 해요. 다수의 반려동물이 늙고 병들었다는 이유로 버려져요. 반려동물과 오래 함께 살기 위한 길은 건강을 지켜주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노민혁은 펫 사업을 구체화하면서 창업 관련 교육을 찾아다니고 정부 지원 사업마다 지원서를 냈다. 정부의 창업 포털사이트 K-스타트업에서 조언을 얻은 그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육성프로그램을 받아 제대로 된 사업계획서도 만들었다. 연예계에서 사기를 많이 당했던 실패의 경험을 발판 삼아 몸으로 직접 부딪치며 하나하나 배워나갔다. 그렇게 2년여를 준비한 끝에 중소벤처기업부와 신용보증기금의 지원을 받고 2018년 서울로 돌아왔다.



1세대 아이돌에서 청년 창업가로

서울로 돌아온 노민혁은 6개월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2018년 10월 반려동물 헬스케어 제품을 개발하는 아워테리토리를 법인화했다. 아워테리토리는 ‘우리의 보금자리’라는 뜻으로, 반려동물과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긴 이름이다. 아워테리토리의 첫 브랜드 ‘펫테리토리’는 특허받은 단백질 분해효소를 이용해 반려동물의 소화 흡수를 돕고 장염이나 피부염, 관절염 등을 예방하는 영양제다.

“동물은 말을 할 수 없는 데다 통증에 대한 반응이 늦어요. 병이 들어도 말기가 돼서야 발견하는 경우가 다수고요. 사람도 필요한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해야 하듯 반려동물도 똑같아요. 사료만으로 필수 영양분을 섭취하는 데 한계가 있죠. 반려동물의 건강관리를 위해 영양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펫테리토리는 한국생명과학연구소와 협력해 만든 상품으로, 출시 직후 와디즈를 통해 1차에서 300만 원, 2차에서 1000만 원 이상 펀딩 받았다. 지금은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몰 등에서 판매하고 있으며, 프랜차이즈 동물병원, 마약탐지견센터 등과 B2B 공급도 추진 중이다.

브랜드를 론칭한 이후, 노민혁은 제품 리뷰를 통한 홍보가 아닌 진정성 있는 유기견 방지 캠페인으로 제품을 알리고 있다. 운을 바라지 않고 정석대로 뚜벅뚜벅 가겠다는 의지다.

“지금 당장 제품을 팔아 매출을 내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브랜드가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최소 3, 4년이 걸리니까요. 차곡차곡 쌓아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건강하개! 가족 찾개!’라는 기부 캠페인을 시작했고, 수익금은 유기견 센터에 기부했어요. 또 케이옥션과 자선경매를 진행해 펫테리토리 영양제를 유기견과 구조견 훈련사를 위해 기부했고요. 앞으로도 케이옥션과 함께 다양한 기부 행사를 할 계획입니다. 우리 슬로건은 ‘건강이 유기 방지다’입니다. 함께 성장하며 신뢰를 얻고 싶어요.”

그가 펫 헬스케어 사업을 시작하며 주목하는 건 의료용 대마인 ‘CBD’다. 대마는 크게 CBD와 THC로 나뉘는데, THC가 마약으로 분류되고 CBD는 의료용이나 화장품, 식품 등으로 활용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의료용 대마만 합법화돼 있다.

“100여 종이 넘는 대마 중에서 캘리포니아와 콜로라도 지역에서 나는 사티바 종류의 CBD만 사용하고 있어요. 1등급 대마로 사람뿐만 아니라 반려동물의 분리불안이나 뇌전증, 항암, 치매 등에 탁월한 효능이 있죠. 공격성을 띠는 동물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을 줍니다.”



재 속에서 피어나는 불꽃처럼

아워테리토리는 CBD 국내 독점 수입업체인 ‘그리너리’와 MOU를 맺음으로써 펫 헬스케어에 한해 CBD 독점 사용권을 갖게 됐다. 최근에는 연희동에 CBD 전문 동물병원을 겸한 쇼룸도 준비 중이다.

“이 분야 전문가도 아니고 사업도 처음이라 발로 뛰며 배우고 있어요. 공인된 연구소에서 검증받으며 확실하게 하나씩 짚고 넘어가려 합니다. 연예인 출신은 장단점이 있어요. 시작 단계에서는 단점이 많죠. 융자를 받거나 사업계획서로만 얘기할 때 실체가 없다 보니 ‘평생 기타 쳤다는 사람이 사업할 수 있겠어?’라는 질문도 많이 받았고, 연예인발 내세워 바지 사장 하려는 거 아니냐는 의심도 받았습니다. 이런 불신을 불식시키기 위해 좀 더 전문성을 기르고 제대로 된 실체를 보여주고 싶어요. 그러고 나면 방송계 경험이 장점이 될 수도 있죠.”

노민혁이 클릭비를 나오고 나서 만든 밴드 ‘애쉬그레이’의 본뜻은 ‘재 속에 피어나는 또 하나의 불꽃’. 회색 도시에서 위로가 되는 노래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름이다. 이 말은 그의 인생을 통틀어 전하고 싶은 철학이기도 하다.

“저로 인해 누군가 좋은 영향을 받으면 좋겠어요. 청년 사업가로 시작한 제 경험이 청년들에게 메시지를 줄 수 있을 듯도 하고요. 브랜드를 통해서도, 개인적으로도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힘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 2020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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