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영 코햄체 대표

버려지는 해녀복의 무한 변신

글 : 최선희 객원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해녀들의 필수품인 해녀 옷, 즉 검은색 잠수복은 합성고무 소재인 ‘네오프렌(neoprene)’으로 만들어진다. 방수 기능은 물론 원단 내에 두터운 공기층이 형성돼 있어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도 해녀들이 체온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해녀들이 이 신소재의 해녀복을 입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 이후 해녀들의 생산성은 크게 높아졌다. 수온의 영향을 덜 받아 겨울에도 평상시처럼 일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그러나 천연 소재가 아닌 합성고무 해녀복은 ‘환경오염’이라는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냈다.

섬유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들고 있는 박소영 코햄체 대표는 이 점에 주목했다. 업사이클링은 버려지는 제품에 디자인을 입혀 전혀 다른 형태로 변신시키는 작업.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단순히 물건을 재활용하는 리사이클링과는 다른 개념이다.

섬유디자인을 전공해 버려지는 원단들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잘 알고 있던 그는 해녀복에 관심을 가졌다. 마침 지난해 7월, 제주영상·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한 ‘제주형 융복합 문화콘텐츠 상품 제작 지원’ 사업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제주를 주제로 자유롭게 작품을 만드는 일종의 공모전이었어요. 해녀복은 제주만의 아이템이라 그 자체로도 의미 있잖아요. 다행히 수상작에 선정돼, 제작·마케팅 비용을 지원받고 팝업스토어에서 판매도 했어요. 그 일을 계기로 계속 해녀복 업사이클링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해둥이네 친구들, 제주의 돌을 형상화한 해맹이, 해녀가 주로 잡는 해산물 중 하나인 멍게를 닮은 해멍이까지, 해녀와 관련된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었다. 이와 함께 파우치, 텀블러 백, 열쇠고리, 노트 등 캐릭터를 활용한 여러 종류의 기념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의 작품은 버려지는 해녀복을 사용한다는 점과 제주의 특징을 잘 살린 캐릭터 제품들로 눈길을 끌면서 호평을 얻었다. 최근에는 열쇠고리나 가방 장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몸찌’를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해녀에 대해 공부하다 ‘몸찌’라는 걸 알게 됐어요. 해녀들이 물질하기 전에 무사히 작업을 마칠 수 있기를 기원하며 바다에 던지는, 일종의 부적이에요. 제가 본 건 쌀과 동전을 한지에 넣고 무명실로 묶어 만드는데 제주도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모양이나 내용물, 명칭이 조금씩 다르더라고요. 이걸 현대적으로 디자인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작은 주머니에 소원을 적는 종이, 제주 바다의 조개껍질, 해녀복 천 등을 담았죠. 주문할 때 소원을 말해주면 저희가 적어서 보내주기도 하고, 직접 적을 수도 있어요. 늘 지니고 다니면서 소원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거죠.(웃음)”

그는 “아이디어는 아직도 많은데, 원단의 특성상 바느질이 어렵고, 해녀복 수급 문제가 원활하지 않아 작업이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영국 매장에서 러브콜

해녀복을 업사이클링해 만든 텀블러 백, 열쇠고리, 지갑 등. © 코햄체
헌 해녀복은 직접 해녀들을 만나서 구한다.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 해녀복을 얻어야겠다는 일념으로, ‘해녀 연구’로 유명한 안미정 해양대학교 교수를 무작정 찾아갔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젊은 디자이너의 열정에 감동한 안 교수는 흔쾌히 해녀들을 연결해줬고, 지금도 그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한창 바쁠 때 찾아와 귀찮게 한다”며 타박을 주던 해녀 어르신들도 지금은 그의 방문을 반긴다.

“해녀복 한 벌로 텀블러 백이나 파우치 열 개 정도 만들 수 있어요. 얼마 전에 텀블러 백 500개를 단체 주문받았는데 해녀복을 그만큼 구할 수가 없어서 결국 포기했어요. 바쁘신 분들이라 일일이 택배로 보내달라고 할 수가 없으니 제가 직접 가야 하거든요. 그만한 양을 한꺼번에 구할 수도 없고요. 작년에는 영국의 한 기념품 매장에서 연락이 왔어요. 열쇠고리 제작을 의논했는데 판매 단가가 맞지 않아 수출로 연결되지는 못했죠. 아쉬움이 크지만 외국 진출에 대한 가능성을 보게 됐다는 점에서 큰 힘이 됐어요.”

그는 “해마다 버려지는 해녀복이 1000벌이 넘는다”며 “해녀복 수급 문제만 잘 해결된다면 제주를 알리면서 환경에도 기여할 수 있는 독특한 업사이클링 제품을 지속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소영 대표가 코햄체를 만든 것은 2018년 8월. 당시 그는 계명대 텍스타일디자인과 4학년 학생이었다. 평소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섬유를 공부하며 오염원으로서 합성섬유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섬유 업사이클링을 통해 기업가로 성장하고, 환경에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곧바로 사업자 등록을 했다.


버려지는 웨딩드레스로 업사이클링

버려지는 웨딩드레스는 에코백, 파우치, 클러치 등의 소재가 된다.
코햄체라는 이름은 ‘사랑’이라는 뜻의 폴란드어 ‘코함치엥’을 발음하기 편리하게 변형시킨 것이다. 회사 이름을 고민하던 그에게 동생이 건넨 아이디어였다. 그는 “웨딩드레스 업사이클링을 염두에 두고 창업한 거라, ‘사랑’이라는 뜻을 담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다들 무슨 뜻이냐고, 이름이 너무 어렵다고 한다”며 웃었다.

“연간 170만 벌의 웨딩드레스가 버려진다는 기사를 봤어요. 생각보다 많은 양이어서 놀랐고, 또 그 예쁜 옷들이 쓰레기가 된다는 게 아까웠어요. 그래서 웨딩드레스로 파우치, 에코백, 클러치백 등을 만들게 됐죠. 드레스 한 벌에 에코백은 다섯 개 정도, 파우치는 스무 개 정도 나오는데 제작 단가가 높은 편이라 아직 매출은 미미합니다.”

모교의 청년 창업 지원 프로그램 덕분에 계명대 캠퍼스 안에 사무공간을 얻어 사용하고 있는 그는 현재 직원 한 명과 함께 일한다. 아직은 시작 단계라 매출보다는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일에 열정적으로, 즐겁게 매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혼모 쉼터를 찾아 미혼모들과 함께하는 원데이 클래스도 시작했다.

“드레스에서 나온 자투리 레이스의 활용 방법을 고민하다 드림캐처를 떠올렸어요. 드림캐처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악몽을 걸러주고 좋은 꿈만 꾸게 해준다는 의미로 만든 전통 장신구로, 고리 안에 그물이 쳐져 있어요. 그 그물을 드레스 레이스로 만드는 거죠. 여기서 만든 제품은 저희가 판매 대행할 계획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제가 하는 업사이클링 작업에 이들을 참여시켜 미혼모들의 경제적인 자립을 돕고 싶어요.”

새로운 수익 모델을 만들기 위해 요즘은 수영복 출시를 준비 중이다. 페트병에서 뽑아낸 원사를 활용해 소재를 만들고, 여기에 해녀복으로 만든 가방을 조화시켜 ‘친환경 물놀이 패션’이라는 점을 부각할 계획이다.

“모두들 4차 산업만을 이야기하지만 섬유 업사이클링도 얼마든지 미래 지향적 산업이 될 수 있습니다.”

환경과 사람을 모두 이롭게 하는 기업가가 되고 싶다는 그의 꿈은 이미 출발선을 넘어 순항 중이다.
  • 2020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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