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남자, 규현

글 : 선수현 기자  / 사진제공 : SM엔터테인먼트, EMK 뮤직컴퍼니 

차분하게 이야기하다가도 불쑥 튀어나오는 장난기. 인터뷰 내내 규현은 그랬다.
15년 차 장수 아이돌이자 10년째 뮤지컬 무대에 서온 내공이 만만치 않았다.
거기에 독한 예능으로 탄탄하게 다져진 관록이 더해져서인지 어떠한 질문에도 막힘없이 술술 대답이 나왔다.
아이돌 가수, 뮤지컬 배우, 예능인, 어떤 역할이든 소화하는 규현을 만났다.
사회복무요원 소집해제 후 규현은 각종 예능에 출연하며 몸풀기에 나섰다. 연예 활동에 탄력이 붙자 그는 본격 라운드로 뮤지컬 〈웃는 남자〉를 선택했다. 뮤지컬 배우 10년 차에 선택한 작품이었다. 규현은 “10년이라고 하면 거창하고 대단해 보이지만 공백도 있었고 크게 연륜 있는 배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처음 하는 느낌으로 무대에 서고 있다”고 말했다.

〈웃는 남자〉는 ‘조커’의 탄생에 모티브로 알려진 빅토르 위고의 1869년 소설 《웃는 남자》가 원작이다. 신분 차별이 극심했던 17세기 영국, 아이들을 납치해 기형적인 괴물로 만들어 귀족들의 놀잇감으로 팔던 인신매매단 콤프라치코스에 의해 입이 찢긴 그윈플렌. 작품은 끔찍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순수한 마음을 가진 그윈플렌의 여정을 따라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의 가치에 대해 깊이 있게 조명하고 있다. 〈웃는 남자〉는 5년의 제작 기간, 총 175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초대형 작품으로, 2018년 초연 당시 한국 창작 뮤지컬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재치와 순발력으로 무장한 ‘규윈플렌’


규현은 2020년 〈웃는 남자〉에 이석훈, 박강현, 수호와 함께 그윈플렌 역에 쿼드라 캐스팅됐다. 작품에서 네 명의 그윈플렌이 각기 다른 해석으로 인물을 소화하는 가운데 ‘규윈플렌’은 평소 밝은 규현의 성격대로 그려졌다. 규현은 “극에 저해되지 않는 선에서 즐거운 부분을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함께 출연하는 신영숙 배우 역시 규현을 두고 “재치와 순발력이 엄청나서 순간순간 재밌는 에너지를 뿜는다”고 평하기도 했다. 관객은 그런 모습에서 더욱 재미를 느낀다.

연출가는 일찍이 그윈플렌 역에 규현을 염두에 뒀다고 했다. 규현 역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며 〈웃는 남자〉를 두 번이나 관람해 각별한 관심을 드러낸 바 있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박)효신이 형, 수호가 출연하는 걸로 두 번 봤어요. 솔직히 처음 봤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두 번째 보니까 다르더라고요. 그윈플렌이 부와 권력을 내던지고 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밑바닥으로 돌아가는 마음이 이해됐어요. 캐릭터가 비슷해서였을까요? 그윈플렌은 찢어진 입을 가졌지만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청년인데, 저도 긍정적인 편이거든요.”

규현은 하층민에서 귀족으로 극변하는 인물의 서사에 따라 발생하는 기쁨과 환희, 고독감과 상실감도 충실히 표현해냈다. 특히 공연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그 눈을 떠’는 감성적이고 호소력 짙은 규현의 음색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그 역시 가장 좋아하는 넘버(뮤지컬의 노래)다. 그윈플렌이 공작의 아들로 알려지면서 얻게 된 부와 권력으로 세상을 바꿔보고자 마음먹으며 시작하는 장면. 규현은 “사람들에게 잘 살아보자고, 지옥 같은 세상에서 행복하자고 넘버를 열창하고 나면 속이 후련해진다”고 했다.

〈웃는 남자〉에서 규현이 맡은 공연은 총 스물한 차례. 회를 거듭할수록 그의 무대는 진화했다. 감정을 담아 넘버를 표현하는 데 어려움도 있었지만, 선배 옥주현이 도움을 줬다. 규현의 시츠프로브(리허설) 영상을 보고 먼저 연락해온 것이다. 규현은 옥주현이 발성, 발음, 호흡 등을 조언해준 덕분에 첫 공연과 지금의 공연이 많이 달라졌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또 〈모차르트!〉 당시에는 성대 결절로 아쉬움이 짙었는데 목 상태가 좋아져 넘버 소화력도 나아졌다고 자부했다. 규현은 음악감독으로부터 “네가 이렇게 노래를 잘했었니?”라는 칭찬을 우연히 들었다며 능청스럽게 웃어 보였다.


뮤지컬로 진출한 아이돌, 새로운 기회를 잡다


규현이 뮤지컬 무대에 발을 들인 건 2010년 〈삼총사〉를 통해서다. 2005년 데뷔한 슈퍼주니어는 당시 ‘쏘리 쏘리’ ‘미인아’ 등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아시아 슈퍼스타였다. 해외로 활동 영역을 넓히는 데 집중할 수 있었지만 그는 뮤지컬을 선택했다.

“멤버들이 개인 활동을 많이 했어요. 당시 저는 팬들만 아는 가수였는데 제가 잘할 수 있는 어떤 기회가 오길 바랐죠. 감사하게도 〈삼총사〉 제작사에서 뮤지컬 제의가 왔는데 너무 재밌더라고요. 정말 열심히 했어요.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도 생기고 새로운 작품에 도전하고 싶은 열망도 일었어요.”

이후 규현은 〈캐치 미 이프 유 캔〉 〈해를 품은 달〉 〈싱잉 인 더 레인〉 〈그날들〉 〈로빈훗〉 〈베르테르〉 〈모차르트!〉 등으로 뮤지컬 배우로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초기에는 뮤지컬 배우라는 호칭조차 어색했지만 다섯 번째 작품 〈그날들〉을 할 무렵, 제법 뮤지컬에 익숙해졌다. 새로운 장르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어간 이유도 있지만 스스로 다른 공연을 관람하며 표현하는 법을 습득한 덕이 크다. 평소 눈치가 빠르고 말귀를 잘 알아듣는 그는 받아들이는 속도도 빨랐다.

“인간 규현은 가치관이 있으니까 할 수 있는 선택이 대략 정해져 있잖아요. 뮤지컬에서 각각의 캐릭터들은 제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죠. 평소 못 하는 걸 표현하고 쌓아가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껴요. 노래하고 연기하며 다른 누군가가 돼서 표현하고 전달하는 게 좋아요.”


추억을 떠올리는 가수, 믿고 보는 배우가 목표


규현은 최근 슈퍼주니어 정규 9집으로 가수 활동도 재개했다. 지코가 작사·작곡에 참여한 ‘2YA2YAO!’로 첫 힙합 도전에 나섰다. 예능에서 그의 존재감도 여전하다. 최근 tvN 〈신서유기7〉에서는 조커, 지니, 스머프 등 독한 분장도 거뜬히 소화하며 웃음을 선사했다. 예능에서의 이미지가 굳어질까 잠시 걱정도 했지만 우선 주어진 일을 최대한 소화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제가 포기할 수 없는 건 일이에요. 일이라고 하면 고된 걸로 느껴지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일들,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고 팬들과 호흡하는 게 좋아요. 국내외 팬들과 뮤지컬, 콘서트 무대 등 저를 필요로 하는 분들을 위해 노래하고 연기하는 일은 포기할 수 없어요.”

한눈에 봐도 벅차 보이는 스케줄 때문에 주변에서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다. 그러나 누구나 좋아하는 일을 할 때 힘든 줄 모르고 전력 질주하듯 규현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한다. 수면시간도 충분하고 종종 지인을 만나 맛있는 걸 먹으며 일상의 균형도 맞추고 있다면서. 끝으로 가수로서, 뮤지컬 배우로서 목표를 물었다.

“어떤 노래를 들으면 즐겨 듣던 시기와 추억이 떠오르잖아요. 누군가에게 추억의 시간을 선물하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그만큼 의미 있는 노래를 불러야겠죠. 또 10년 동안 많은 뮤지컬 작품을 했는데, 어떤 역할이든 ‘규현’ 하면 믿고 볼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장르 불문, 규현은 한결같이 웃고 있었다. 어떠한 상황도 즐길 줄 아는 자세. 그 에너지는 무대 바깥으로도 전달됐다. 15년 차 아이돌, 10년 차 뮤지컬 배우 규현이 꾸준하게 사랑받는 이유다.
  • 2020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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