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위윌락유〉로 돌아온 정동하

“퀸이 없었다면, 저도 이 자리에 없었을 거예요”

글 : 변희원 조선일보 기자  / 사진제공 : 엠에스컨텐츠그룹 

전설적인 록밴드 퀸(Queen)의 명곡 24곡으로 구성한 주크박스 뮤지컬 〈위윌락유(We Will Rock You)〉가 12월 17일 국내 초연을 시작했다. 2002년 5월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처음 무대에 오른 후 지금까지 17개국에서 1500만 명 이상이 관람한 작품이다. 작품의 배경은 라이브 음악이 금지된 2302년의 먼 미래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혁명을 주도하는 ‘갈릴레오’와 ‘스카라무슈’, 세상을 통제하는 악당 ‘킬러퀸’ 사이에서 펼쳐지는 대립을 그린다.

만약 이 작품에서처럼 음악이, 그중에서도 라이브 음악이 금지된 세상이 온다면 가장 고통스러워할 사람 중 한 명이 정동하일 것이다. 단지 그가 노래를 잘 부르고 많이 불러서가 아니다. 그는 무대에서 고음을 낼 때도 관객의 분위기에 따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때로는 편안하게 말하는 것처럼 차분히 흘려보내고, 때로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시원하게 내지른다. 콘서트를 하든, 뮤지컬을 하든, 그는 스스로를 “무대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그가 〈위윌락유〉에서 음악이 사라진 세상에서 심장을 깨울 진짜 음악을 위해 전설의 악기를 찾아나서는 보헤미안 갈릴레오 역을 맡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1990년대 중반부터 거론된 퀸의 주크박스 뮤지컬은 원래 프레디 머큐리의 생애를 다루려고 했다. 당시 로버트 드 니로도 여기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애초의 기획은 무산됐고, 대신 작가 벤 엘톤이 퀸 음악의 정신을 담아 쓴 이야기로 뮤지컬을 만들게 됐다. 한국에선 지난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10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면서 30대 이상에게는 옛 추억을 되살리고, 10~20대에게는 퀸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2008년 뮤지컬 〈위윌락유〉의 내한 공연이 있었지만, 그사이 ‘퀸’의 인기와 위상이 확연히 달라지면서 이번 뮤지컬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위윌락유〉 개막 일주일을 앞두고, 정동하를 만났다.


〈위윌락유〉 출연을 결심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퀸이니까요. 퀸의 주크박스 뮤지컬이란 말에 바로 출연을 결정했어요.”


뮤지컬 내용도 안 보고요?

“네. 퀸이 없었으면 저도 이 자리에 없었을 거예요. 퀸의 노래를 처음 들은 건 1991년 프레디 머큐리가 죽고 난 직후였어요. 라디오에서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퀸의 보컬 어쩌고’ 멘트가 나온 뒤 〈보헤미안 랩소디〉를 틀어줬는데, 너무 놀라웠어요. ‘이건 어느 별에서 온 노래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기했죠. 고등학교 1학년 때 퀸의 베스트앨범을 들으면서 ‘이런 완벽한 하모니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밴드에 가입했어요. 퀸이 아니었다면 음악을 시작하지 않았을 거고, 저도 이 자리에 없었겠죠.”


이번 뮤지컬에서 퀸의 노래를 맘껏 부르겠군요.

“(손가락으로 노래를 꼽아보면서) 생각보다 많지는 않네요. 여덟 곡을 부르는데, 솔로곡은 그중 두 곡이에요. 그리고 커튼콜의 싱어롱(관객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에서 ‘위 윌 락유’ ‘보헤미안 랩소디’ ‘위 아 더 챔피언’을 부를 예정이에요.”


대본을 읽지도 않고 출연을 결정했다고 했지요. 대본을 읽고 나서는 어땠나요?

“음, 처음에 대본 보고 좀 당황했어요. 팝의 역사를 잘 알아야 이해가 가고 재밌는 부분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한국 공연 버전에서는 그런 걸 몰라도 즐길 수 있도록 바뀌었어요. 퀸 노래 가사들은 이야기에 딱딱 맞아떨어져서 바꿀 필요 없이 그대로 유지했죠.”



정동하는 2012년 처음 뮤지컬 무대에 서기 시작해 지금까지 일곱 편의 뮤지컬에 출연했다. 1년에 한 편꼴이니, 뮤지컬 배우로서도 활발하게 활동한 셈이다. 〈롤리폴리〉로 시작해 〈요셉 어메이징〉 〈잭 더 리퍼〉 〈두 도시 이야기〉 〈투란도트〉 〈에드거 앨런 포〉 등에 출연했다. 정동하를 뮤지컬 팬들에게 깊이 각인시킨 작품은 〈노트르담 드 파리〉다.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출연한 이 작품에서 그는 그랭구와르 역할만 맡았다.


뮤지컬과 다른 장르 음악 작업은 어떻게 다른가요?

“뮤지컬에는 더 순수하게 접근해요. 인생 자체에 대한 목마름이 있거든요.”


목마름이라. 이렇게 많은 일을 하고, 큰 사랑을 받는데도 목마름이 있군요.
뮤지컬이 결핍을 어떻게 채워주죠?


“어렸을 때 이사를 많이 다니다 보니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어요. 성격도 내향적이었고요. 그래서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면 그게 뭔지는 알겠는데 공감을 못 해요. 사람들과 어울리질 않았으니까요. 실제의 저는 흐릿한 자아를 가졌는데, 뮤지컬 배역 속의 자아는 정말 뚜렷하거든요. 그 배역을 통해 드라마틱한 삶을 살 수 있어요. 공연 하나가 끝나고 나면 전생 하나가 생긴 것 같죠. 이번에 맡은 갈릴레오 피가로 역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피가로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서요. 저는 무대 위에서 (연기를 넘어 삶을) 살아가는 셈이에요.”


갈릴레오 피가로?
이것도 퀸 때문에 붙인 이름인가요?


“맞아요. ‘보헤미안 랩소디’ 가사에 나오는 이름이에요. 음악이 없는 미래가 배경인데, 인간의 머리에 칩을 심고, 교육을 통해 그들의 사고를 통제해서 사람들이 진짜 사랑이나 우정을 모르고 살아요. 그런데 보헤미안이라 불리는 깨어난 사람들이 선구자를 기다리죠. 갈릴레오가 꿈을 꾸고 계시를 받는데, 그가 바로 꿈을 꾸는 자이자 선구자예요. 배우들이 모여서 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지금의 세태를 비판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요즘에는 우정이나 사랑도 온라인에서 이뤄지고 진짜 소통을 잘 안 하니까요.”


갈릴레오를 어떻게 표현할 생각이에요?

“(웃으면서) 이 친구가 고등학생이에요. 배경이 한국이 아니라서 교복은 안 입어요. 고등학생이니까 너무 프레디 머큐리의 색을 입히지 않으려고 해요. 팬들이 기억하는 제 모습에 갈릴레오가 녹아 있을 거예요. 약간 귀엽고 섹시하고 매력 넘치는? 하하. 대신 커튼콜에서 노래 부를 땐 프레디 머큐리의 색과 제 색을 섞을 거예요.”



정동하를 알거나 좋아하는 사람들 중 다수는 그를 KBS2 음악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에서 접했을 것이다. 그만큼 그는 경연 프로그램에 자주 나왔고, 나올 때마다 이겼다. 그는 〈불후의 명곡〉에서 ‘승부의 아이콘’ ‘도전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역동적이면서 꽉 찬 무대를 보여줄 때가 많고, 도전적이고 파격적인 시도도 자주 한다. 동요를 부르고도 그는 개인 최고점을 경신했다. 2019년 12월 현재, 정동하는 여전히 〈불후의 명곡〉 최다 우승자다.


〈불후의 명곡〉으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아요.
2012년 9월에 첫 출연을 했으니, 출연 경력이 꽤 됐죠?


“네. 그런데 최다 우승을 한 거지, 최다 출연을 하진 않았어요.”


그게 더 대단하죠.

“신이 경연을 하라고 나를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는 경연 프로그램에 특화된 사람 같아요.”


경연에 특화된 자신만의 강점이 있다면요.

“노래를 빨리 외워요. 경연에선 다른 가수의 노래를 부르니까 (가사를 빨리 외우는 게) 유리하죠. 한때는 매주 경연을 나갔어요. 월요일에 노래를 정해주면, 편곡하는 데 시간을 많이 쓰고, 연습할 시간은 안무 포함해서 이틀이거든요. 가사를 빨리 외우면 아무래도 유리할 수밖에 없죠.”


그러면 외우는 노래가 엄청 많겠어요.

“하하. 빨리 외우는 대신, 빨리 까먹어요. 빨리 들여보내고, 빨리 비워내는 것 같아요. 안 그랬으면 그 노래들이 다 쌓여서 머리가 터졌을지도 몰라요.”


또 다른 장점이 있나요?

“서문탁 선배님처럼 대단한 분, 존경하는 분과 경연에서 맞붙으면 부담을 느끼는 게 당연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부담을 느끼는 대신 더 힘을 낸다고 할까요. 제 안의 무언가가 활성화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경연은 TV 시청자가 아니라 라이브 현장에서 판정을 하잖아요. 저는 라이브 현장에서 유리한 가수 같아요.”



정동하가 스스로에 대해 내린 평가 중 “라이브 현장에서 유리한 가수”라는 건, 그의 콘서트에 가본 사람들은 다 동의할 것이다. 그는 콘서트나 라디오 등에서 음원과 흡사한 라이브 혹은 음원 이상의 라이브를 보여준다. 라디오에서 정동하의 라이브를 들은 가수 김창렬과 KCM은 “CD로 듣는 것보다 라이브가 훨씬 좋다” “라이브에서 주는 감동이 확실하게 다르다”며 감탄했을 정도다. 그는 사람들에게 라이브로 노래를 들려줄 곳을 끊임없이 찾는다. 뮤지컬에 출연하면서도 그는 지난 11월 23일 전주 공연을 시작으로 전국 투어 콘서트를 시작했다.


콘서트, 앨범 작업, 뮤지컬, 방송 출연까지, 이 스케줄을 동시에 진행하는 게 가능한가요?

“그래도 요즘은 한가한 편이에요. 〈불후의 명곡〉에 출연하면서 하루에 두 번씩 부활 콘서트도 했고, 네 시즌 내내 뮤지컬에 출연한 해도 있었거든요. 틈틈이 취미로 레이싱도 했고요.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활동한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나아진 거죠.”


이제 뮤지컬과 콘서트 무대에 번갈아 서겠네요.
왜 이렇게 부지런히 무대에 오르죠?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빚이 많은가 봐요’라고 할 정도예요. 그런데 저는 힘이 없을 때 무대에 오르면 힘이 생겨요. 제가 오히려 관객들에게 에너지를 얻는 것 같아요.”


관객들도 얻는 게 있으니 계속 정동하의 무대를 찾겠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목소리를 만들어가는 중이에요. 저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이 많이 들어갈 때가 있는데 힘을 빼고 툭툭 던지는 듯한 목소리를 내보려고 해요.”


정동하는 퀸 이야기를 하다가 “어린 시절부터 존 본 조비, 건즈 앤 로지즈, 너바나, 라디오헤드 등을 좋아했다”며 “아무래도 눌려 있고, 틀에 갇혀 살던 시기였기 때문에 (자유롭게 분출하는) 이들의 노래가 좋았다”고 했다. 이야기 끝에 그는 “퀸의 베스트앨범의 첫 곡 ‘위 윌 락 유’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공연장에서 관객들과 함께 발을 구르고 박수를 치는 상상을 해봤다. 이번 공연의 커튼콜에서 그게 이뤄질 것 같다”며 신이 난 듯 말했다. 지금까지 해온 것과는 또 다른 무대를 앞두고 설레는 그에게 만약 이 뮤지컬에서처럼 음악이 사라지고 라이브를 할 수 없는 세상이 된다면 어떨 것 같으냐고 물었다.

“상상하기도 싫은데요? 얼마나 속상할지 상상도 안 돼요. 만약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계속 무대를 꿈꾸며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 2020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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