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안현모

‘이기는 삶’ 대신 ‘스스로 만족하는 삶’

글 : 선수현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SBS 예능 프로그램 〈동상이몽〉에 출연하는 라이머·안현모 부부. 첫 등장에서 남편 라이머가 “5개월 만에 훅 이렇게 (결혼하게) 됐다”고 말하자, 안현모는 “6개월 만에 결혼했어. 자꾸 5개월이라고 하지 마”라고 정정했다. 5개월이든 6개월이든 무슨 차이가 있겠냐 싶지만, 그는 팩트에 민감하다. 피는 속여도 직(職)은 못 속이니까.
현대자동차그룹이 지원하는 사회공헌사업 ‘2019 군인의 품격’ 강연자로 나선 방송인 안현모를 만났다.
남들보다 특이한 이름 탓에 늘 신중했다. 행여 튈세라 인터넷 게시판에 글 하나 쓰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CNN 방송을 동시통역하고, 빌보드 뮤직 어워드(BBMA) 중계방송과 영화 〈어벤져스〉 기자간담회 등 굵직한 행사들의 통역을 도맡으며 안현모는 대중의 관심을 모으는 사람이 됐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스포트라이트에 그는 불편했다.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이고, 국운이 달릴 만큼 중요한 현장에서 일하는 유능한 통역사들도 많은데 자신이 회자되는 게 민망했다.

대중이 그를 주목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일례로 2018 빌보드 뮤직 어워드 중계방송 통역을 할 때였다. 방탄소년단(BTS)이 ‘톱 소셜 아티스트’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고, 멤버 RM이 소감을 발표하는 순간, 그는 통역을 멈췄다. 팬들이 RM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있게 발휘한 센스였다. 아티스트에 대한 풍부한 사전 조사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모든 게 철저한 준비 과정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통역사에게 해박한 지식과 정보는 필수다. 짬짬이 최대한 정보를 찾아봐야 한다. 덜 자고 더 많이 공부해 긴장감을 이겨내면서 화자와 청자를 연결해야 한다. 그래야만 현장에서 더 집중해서 듣고 맥락을 짚어낸 전달을 할 수 있다. 꼼꼼하게 취재해서 시청자에게 뉴스를 전달하는 방송 기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 문장을 말해도 하나하나 따져보고

안현모는 2009년부터 앵커와 기자로 활동했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SBS CNBC가 개국을 앞두고 통역 아르바이트를 모집했다.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아르바이트 자리에 지원했다. 그런데 영어 방송 진행에 적합한 인물을 뽑을 때까지 임시 앵커를 맡아달라는 말에 엉겁결에 방송을 시작했다. 영역은 점차 넓어지며 한국어 방송도 진행하게 됐다. 어느새 그는 SBS CNBC 간판 앵커가 됐다.

글로벌 경제 전문 채널의 진행자는 화면에 비치는 모습 외에도 알아야 할 게 많았다. 국내 경제 상황부터 시시각각 변하는 국제 정세까지. 통번역대학원에서 쌓은 경제·금융 상식이 많은 도움이 됐지만 그는 여전히 배움을 갈구했다. 어려워도 당연히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기사를 작성하는 게 싫었다.

“한 문장을 말해도 맞는 말인지, 쉽게 쓰는 수식어도 근거를 알아봐야 직성이 풀렸어요. ‘국내 최고’라고 하면 왜 최고인지 알아야 했어요. 매출 1위라고 하면 작년 대비 올해는 바뀌지 않았는지 꼭 따져봤죠. 그래서인지 요즘 예능 프로에 나가면 재미를 위해 포장하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힘들어요.”

이후 그는 SBS로 자리를 옮겨 기자 생활을 이어갔다. 제법 인정도 받고 적성에도 맞았지만 어느 순간, 이 길이 맞는 건지 고민이 됐다.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기사가 주를 이루는 속에서 과연 자신이 그럴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딱히 하고 싶은 게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더 큰 세상이 궁금했다.

“기자는 재미있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우연히 시작한 일을 왜 아직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더라고요. 길어야 6개월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고 싶었어요.”

그는 무작정 회사를 나오기보다 일종의 탐색 기간을 갖기로 했다. 기회는 하루아침에 찾아왔지만 마무리는 신중하고 싶었다. 1년 동안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대부분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피아니스트 세이모어 번스타인은 한국전쟁 참전 용사였다. 총은 잘 쏘지 못하지만 피아노는 잘 쳤다. 세이모어는 전장에서 총 100여 차례 위문공연을 했고, 연주를 들은 장병들은 눈물을 흘렸다.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자신이 잘하는 일로 가치를 증명해 보인 셈이다. 그 밖에도 동대문에서 원단을 배달하던 디자이너 최범석, 히말라야 16좌 완등만큼 네팔에 16개 학교를 짓는 산악인 엄홍길, 국내 1호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 국민배우 안성기 등 그들의 이야기를 곱씹을수록 중요한 걸 깨달았다.

“세상은 다른 사람을 이기는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잖아요. 1등이 아닌 삶은 행복하지 않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사람의 연봉이 얼마인지를 비교해서 내 행복과 보람을 느낄 게 아니라, 스스로 만족하는 삶이 필요하더라고요.”


기자, 통역사 모두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


기자 생활 7년째, 그는 자신만의 행복을 찾기로 했다. 그동안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해외 명사들을 인터뷰하고 주요한 영어 문건도 많이 다뤄봤다. 영어 강사를 하든 책을 번역하든 살아갈 방법이 없겠나 싶었다. 동시통역을 할 줄 아는 기자에서 취재하는 통역사로! 안정적인 직장을 나와도 직업인으로서 그의 가치는 살아 있었다. 형태는 변했지만 여전히 그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을 한다. 단어 하나하나 신중히 고르는 것도 여전하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경험이 쌓여가지만, 모두 말로 전달하는 일이에요. 취재해서 기사를 쓸 때나 행사 MC나 통역을 할 때도 메시지를 전하는 직업이죠. 회사를 나왔지만 다른 세상으로 온 것 같지는 않아요. 기자도 통역사도 귀 기울여 들어야 해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으려고 하는 게 제 장점이거든요.”

그의 선택은 옳았다. 행복은 안정된 직장이나 연봉에 있는 게 아니다. 훗날 뭔가를 이룬다고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행복은 일상의 걸음걸음에 있다. 무엇보다 그는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 곁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모두 감사하다. 안현모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래, 이건 팩트다.
  • 2019년 12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