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아트 이재혁 작가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글 : 선수현 기자  / 사진 : 김선아   / 사진제공 : 한국VR아트연구소 

무한한 공허와 암흑.
그의 손길을 따라 빛이 생긴다.
다시 움직이자 하늘과 땅의 경계가 생기고 물이 흐른다.
대지에 생명이 솟아난다.
VR 아티스트 이재혁, 그가 상상하는 세상을 창조하는 데 불가능은 없다.
VR(가상현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기술이다. 일상을 바꿔놓는 기술에 창의성이 더해지니 새로운 예술의 문이 열렸다. VR 아트다. VR 아트는 디자인, 회화, 조각, 퍼포먼스 등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는 종합예술이다. 구글의 틸트 브러시, 그래비티 스케치, 마스터피스 VR 등의 프로그램을 이용해 가상공간에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다. 이제 막 꽃피우기 시작한 분야로 사전 정의조차 없는 생소한 개념이다.

그럼에도 공연 의뢰가 끊이지 않는다. VR 아티스트 이재혁 작가는 하루 두 시간밖에 못 자는 날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 공연은 많은데 정작 공연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다. 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예술 감각적 연출 요소가 필수인데 미술 전공 출신의 VR 아티스트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이 작가는 조각을 전공했다. 대학 생활 내내 순수예술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했다. 주변에 VR 프로그램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구경이나 해볼 심산으로 우연히 VR 프로그램을 접했다. 그때의 충격이란. 평소 SF, 판타지 장르의 영화를 좋아했던 그는 순식간에 마치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간 기분이었다. 예술 세계에 기술이 더해지자, 그가 상상한 세상은 모두 현실이 됐다. 반짝이는 효과가 눈앞에서 생생히 움직이며 그를 사로잡았다. VR 아트 세계에서 캔버스는 2차원에서 3차원으로 확장됐고,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하는 느낌과 전혀 다른 효과를 선사했다. 이 순간 그의 진로도 바뀌었다.

“뭐랄까, 신세계였어요. VR 게임은 많이 들어봤지만 VR 아트는 처음이었거든요. VR 프로그램을 처음 접했을 때 감탄을 금치 못했죠. 이걸로 예술을 하면 큰 가능성이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공간 제약 없는 무한대의 캔버스


2017년 VR 아트는 워낙 생소했다. 해외에서도 몇몇 아티스트만 활동하고 있을 뿐, 국내에는 한 명뿐이었다. VR 아트를 더 알고 싶어도 배울 곳이 마땅치 않았다. 기기는 기존 기계들과 조작하는 방법부터 달랐다. 이 작가는 프로그램 설명서를 읽어가며 기능을 하나씩 익혔다. 알 만할 때쯤이면 또 모르겠고, 도통 모르겠다가도 일사천리로 터득하기도 했다.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자, 어느새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능숙해졌다.

VR 아트 공연은 크게 두 가지로 진행된다. 드로잉 쇼와 퍼포먼스 쇼다. 드로잉 쇼는 아무것도 없는 가상공간에 점과 선을 그리며 채워가는 작업이다. 무대에서 아티스트가 VR 기기를 착용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면, 관객은 1인칭 시점으로 이 과정을 공유할 수 있다. 퍼포먼스 쇼는 사전에 기본 구조를 만들어놓고 거대한 작품 안에서 세부 효과를 연출하는 과정이다. 사전 드로잉 작업에 아티스트의 예술 행위가 더해진다.

“VR 아트의 가장 큰 장점은 공간 제약이 없다는 거예요. 조소는 재료나 공간의 제약이 있어요. 커다란 작품을 만들려면 그만한 공간이 꼭 필요하죠. 그런데 VR은 무한하더라고요. 작품의 규모를 키우고 싶은 대로, 그리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어요.”

작가의 의도대로 무한한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 셈이다. 한 번 만든 작품은 파일로 저장할 수 있어 언제든 수정도 가능하다. 작품의 규모와 분량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한 작품을 만드는 데 한 달가량이 소요된다. 그동안 그가 만든 작품은 대부분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360도 촬영기술을 더해 여행하는 기분으로 3차원 세상을 감상할 수도 있다.

이재혁 작가의 대표작은 〈영원한 보석〉이다. 세계 최초로 VR 아트와 오케스트라 연주의 결합을 시도한 작품이다. 한 기관에서 작품을 의뢰하며 몇 개의 곡을 제안해왔다. 평소 영화를 좋아하는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캐리비안의 해적〉 OST였다. 좋아하는 음악에 모험을 찾아 떠나는 상상력을 더하니 5분 30초 분량의 퍼포먼스가 만들어졌다. 공연 현장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나오고 그 뒤로 VR 아트가 시현됐다. 웅장한 스케일에 황홀한 효과, 촘촘한 스토리는 관객들의 눈과 귀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팝아트와 미디어아트 잇는 새로운 예술 영역

3·1운동 100주년 기념 행사에서 진행한 이재혁 작가의 VR 아트 퍼포먼스.
그의 작품을 찬찬히 감상하다 보면 공간 조성을 위한 세심함이 돋보인다. 공간에 공을 들여 연출하면 관객이 작품을 즐길 수 있는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연의 소재를 얹어 감정이 발현되는 스토리를 전개하는 게 이 작가의 스타일이다. 관객은 아티스트가 만든 세계에 초대받는다. 작품 속으로 들어간 관객은 각자의 방식으로 작품을 해석하고 느낀다.

“가상현실은 다른 세상을 이야기하는 거잖아요. 공간을 만들어 관객을 그 안으로 끌어들이고 싶어요. 제가 만든 작품을 단순히 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관객이 상상하고 생각할 수 있으면 더 좋겠어요.”

독립운동가들의 고난과 핍박에서 탄생한 빨간 나비들과 독립을 향한 염원이 담긴 파란 나비가 태극문양을 이뤄 환상적인 무대를 연출했다.
VR 아트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기술 발달에 따라 여러 형태로 뻗어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VR 아트는 아직 예술 영역보다 퍼포먼스에 가깝다. 이재혁 작가는 VR 아트가 새로운 예술 장르로 자리 잡길 바란다. 팝아트나 미디어아트가 처음 등장했을 때 예술로 인정할 수 있는지 평단의 반응이 갈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예술의 외연을 넓힌 것으로 평가받았듯이. VR 아트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예술의 한 갈래가 되는 날이 멀지않았음을 믿는다.

“VR 아트가 점차 확장되면서 하나의 예술 분야로 자리 잡았으면 해요. 긍정적인 조짐도 곳곳에서 보여요. VR 작업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거든요. 국내에서 VR 아트 전시회도 열리길 기대합니다.”
  • 2019년 12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