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작가

이토록 산뜻한 일의 슬픔이라니

글 : 김민희 기자  / 사진제공 : 창비 

2019년 초 장류진은 문학계에서 하나의 현상이었다. 취향의 세분화가 심화될수록 대중 다수가 소비하는 콘텐츠는 줄어들게 마련이다. 시청률 40% 넘는 드라마와 밀리언셀러 소설은 점점 희소해진다. 이런 시류에서 그의 소설은 오랜만에 “그거 봤어?”라며 두루 회자됐다. 장류진의 등단작 단편 〈일의 기쁨과 슬픔〉. 입소문을 타고 접속자가 몰리면서 소설을 탑재한 창비 홈페이지는 다운이 됐다. 누적 조회 수는 40만 회가 넘는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판교 테크노밸리 스타트업 종사자들의 필독서로 불린다. 스타트업 종사자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담아내서다. 어설프게 실리콘밸리를 흉내 내는 스크럼, 애자일, 영어 이름 등 스타트업계의 웃픈 현실을 실감나게 드러내 화제가 됐다. 회자되는 주제는 ‘판교서 탱자가 돼버린 실리콘밸리의 귤’ 식이다. 현실은 무시한 채 이상적인 조직 문화의 껍데기만 가져올 경우의 문제점을 낱낱이 보여준다. 조직 문화 연구자들이 이 소설을 경영학 교재처럼 분석하는가 하면, 신문 사설에서도 다뤘다.

장류진 작가는 하나의 장르가 돼가고 있다. 그만큼 그의 소설은 기존 한국 소설계에서 낯설고 생경하다. 자본주의의 엄혹한 작동 원리를 현실 세계의 소소한 에피소드로 펼쳐 보이는 방식이 영민하다. 지극히 개별적 이야기가 보편적 이야기로 읽히도록 한다. 예민하고 섬세한 촉수를 가졌으면서도, 그 촉수로 읽어내는 현실 세계는 뾰족하기보다 둥그스름하다. 치열한 현실 무대에서 한 발 물러나 관망하면서 결국은 쿨하게 끌어안는다. ‘나는 이런 세계에서 사느라 힘든데, 당신도 그렇지요? 당신이 잘됐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시선이 은근히 묻어난다. 허나 그 긍정의 시선은 평화롭거나 따스하기보다 서늘함에 가깝다. 요즘 말로 츤데레스럽다. 극사실주의(하이퍼리얼리즘) 이면에 서린 서늘한 긍정이다. 밥벌이의 엄중함을 일찌감치 알아버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영리하게, 그러나 치열하게 줄타기하는 작가의 시선이 고스란하다.

장류진의 소설에 대한 인아영 문학평론가의 해설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한국 문학이 오랫동안 수호해왔던 내면의 진정성이나 비대한 자아가 없다. 깊은 우물과 서정이 있었던 자리에는 대신 정확하고 객관적인 자기 인식, 신속하고 경쾌한 실천, 삶의 작은 행복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이 있다.”

장류진 작가는 얼마 전 회사를 그만뒀다. 2018년 창비신인소설상을 받고, 10월 단편을 묶어 《일의 기쁨과 슬픔》을 내고서야 작가는 10년간의 직장생활을 놓을 수 있었다. 작가에게 소설 쓰기는 누가 뭐래도,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간절히 ‘하고 싶은 일’이었다. 회사 일 짬짬이 문화센터 문턱을 들락거리고, 사이버대학원에 등록하고, 남들보다 두세 시간 일찍 일어나 새벽에 글을 쓰고 출근하는 날을 이어갔다. 이제 그는 전업 소설가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됐다. 하고 싶은 일을 과감하게 택할 수 있는 현실의 문이 열린 것이다.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니 참 성실해요. 목표가 정확한 편인가요, 아니면 돛단배처럼 흔들리다가 기회가 오면 잡는 편인가요?

“절대로 먼 미래의 목표를 잡지는 않아요. 근미래의 계획만 있죠. 5년, 10년 전에는 제가 이렇게 살지 상상도 못 했어요. 앞으로도 10년 후에 무슨 일이 생길지 상상이 안 가요.”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지요. 회사를 다니면서 소설 쓰기 공부를 병행했다고 들었어요.

“초등학교 때는 장래희망으로 안데르센 같은 동화작가를 꿈꾼 적도 있어요. 머리가 크면서 작가라는 직업이 얼마나 험난한지 알게 됐고, 작가의 꿈을 점점 잊었어요.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소설을 너무 쓰고 싶었어요. 사회학과를 나와서 소설 쓰기를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일과 소설 쓰기를 병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요. 문화센터를 다니면서 소설을 깔짝거렸고, 2016년에는 경희사이버대학원을 다니면서 석사 2학기까지 마쳤어요. 3학기부터는 오프라인 대학원으로 편입할 계획을 짰죠. 1년 정도는 휴직으로 비벼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웃음) 휴직을 못 하더라도 잠깐 쉬었다가 할 수도 있고요.”


사회학 전공이 작가 활동에 도움 된 측면이 있나요?

“사회학은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사회 담론에 대해 꾸준히 들여다보는 학문이잖아요. 국문과가 아니어도 계속 글을 쓰게 되는 전공이기도 해요. 사회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매일 쪽글로 써냈어요. 이 훈련을 4년 내내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쓰기 훈련이 된 측면도 있어요.”


글을 왜 그토록 쓰고 싶었어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문화센터를 다니면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2011년이니 8년 전이네요. 글쓰기가 고통스럽긴 했지만, 다 같이 품평을 하는 경험이 너무 재밌고 즐거웠어요. 중간에 2~3년 안 쓰는 기간이 있었지만, 쓰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었죠.”


대중에게 장 작가의 존재를 널리 알린 《일의 기쁨과 슬픔》은 어떤 상황에서 쓰게 됐나요?


“처음부터 될 때까지 소설을 써야지, 라는 생각은 없었어요. 계획대로 회사를 그만두고, 동국대 국문과 대학원 3학기에 편입해 1년간 다녔어요. 그 후 경력직으로 다시 취업 준비를 했죠.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이력서를 준비하면서 그 기간에 이 소설을 썼어요. 어쨌거나 판교 IT 업계에서 일했고, 다시 일하게 될 공간도 IT 업계이니 자연스럽게 이런 이야기를 구상하게 됐어요. 다시 일하게 될 공간, 함께 일하게 될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소재들이 떠올랐죠.”


장 작가를 스타로 만들어준 건 판교테크노밸리의 현장감 넘치는 소재들이죠. 현실의 부대낌 없이 작가로만 살면 소재의 빈약함에 대한 우려도 듭니다.

“회사를 그만두면서 두 가지 고민이 있었어요. 하나는 경제적인 문제, 또 하나는 이 문제였죠. 경제적인 문제는 원고 청탁이 많아져서 당분간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요, 두 번째 고민이 문제였어요. 그렇다고 소재 때문에 회사를 계속 다니게 되면 쓸 시간이 없어지죠. 계약도 약속이잖아요. 청탁 약속을 지키려면 직장 생활을 병행해서는 불가능해요. 한편으로는 회사를 10년 정도 다녔으니 풀어낼 이야기가 더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얼마 전만 해도 전업 작가는 되지 않겠다고 했는데요.

“절대로 전업 작가가 되지 않겠다는 건 아니었어요. 그때는 청탁을 이렇게 많이 받게 될 줄 몰랐거든요. 청탁이 많지 않았다면 회사를 그만두기 힘들었을 거예요. 작가이기 전에 생활인이잖아요.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회사를 다녀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거죠. 지금은 회사 일 말고도 소설 일이 많아졌으니까 그만둘 용기가 생긴 것이고요.”


어때요? 회사를 그만두면서 불안하지 않았어요?

“당연히 불안하죠. 그래도 불러주는 곳이 있으니까 향후 몇 년 간은 소설 일만으로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작가의 말’에서 “소설 쓰기가 이상하게 부끄러웠다”고 했는데, 어떤 부끄러움인가요?

“‘소설 쓰고 앉아 있네’라는 관용구도 있잖아요. 저는 물론 소설 쓰기를 좋아하지만 소설이라는 자체가 허무맹랑하게 여겨지는 경향이 있죠. 저 스스로는 좋은 글을 쓴다는 확신이 없어서 누가 보여달라고 하면 쉽게 보여줄 수 없었어요. 또 제 주변 친구들은 소설 독자가 아니어서 주말마다 소설 쓰러 다니는 걸 이해받지 못할 것 같았고요.”


지금은 어때요?

“지금은 너무 좋죠.”


그러면 그때의 부끄러움은 소설가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었을까요?

“그것과는 좀 달라요. 설명하기 힘든데, 소설을 쓴다고 하면 뜬구름 잡는 것처럼 비치기도 하잖아요. 이렇게 치열하고 각박한 삶 속에서 소설 쓴다고 하면 한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테고요.”


그럼에도 장 작가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 소설 쓰기를 치열하게 해왔는데요.

“집필이 절정에 달하면 너무너무 재미있어요. 이야기를 완성해나간다는 쾌락이 커요. 네, 쾌락이요.”


그 힘든 글쓰기를 왜 하나요?

“힘들지만 글을 쓸 때의 속 시원함이 있어요. 어떤 소설가는 쓰면서 힐링된다고 하는데, 저는 배설에 가까워요. 마음속에 뭔가 표현하고 싶었던 말이 있는데, 그것을 적당한 언어로 꺼내놓았을 때의 후련함이랄까요.”


장 작가의 캐릭터들은 생동감이 넘칩니다. 주변 누군가의 이야기 같기도 하고요. 신경숙 작가는 언젠가 인터뷰에서 창밖을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가 저 인파 속에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더군요.

“신경숙 선생님과 다르면서도 비슷해요. 소설 속 캐릭터가 일상에서 돌아다닌다는 느낌보다 소설을 쓰는 동안 캐릭터들의 세계가 머릿속에 선하게 그려져요. 표정까지 보이고요. 그 세계의 이야기가 인물의 성격에 따라 만들어지는데, 가끔 생각지 못한 대사를 내뱉거나 행동을 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아주 흥미롭죠.”


소설마다 장 작가를 닮은 페르소나들이 한 명씩 등장하죠. 이들을 보면 따스하면서도 센스가 있어요. 회사에서 업무 성과도 좋았을 것 같습니다.

“회사 팀 송년회 때 연말 MVP로 뽑힌 적 있어요. 하하. 상품으로 와인을 받았던 기억이….(웃음)”


평론, 신문 사설, 경영 전략 분석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장 작가의 소설을 평했지요. 가장 마음에 남는 표현은 뭐였어요?


“너무 많죠. 이번 책의 해설을 써주신 인아영 평론가의 글도 너무 좋았어요.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많이 깨달았고, 깨달으면서 동의했어요. 마음을 울리는 부분이 있어서 많이 울기도 했고요.”


어떤 부분에서요?

“〈잘살겠습니다〉 해설 부분에서요. 그 작품에 빛나 언니가 등장하잖아요. 눈치도 없고 센스도 없어서 ‘왜 저렇게 행동하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같은 여성 노동자로서 회사에서 이해할 수 없이 당해야 했던 취급들이 나도 다르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 부분이 있어요. 언젠간 나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부분을 딱 집어주시더라고요. ‘어떻게 이렇게 내 마음을 잘 아셨지?’ 싶었어요.”


빛나 언니의 행동을 이해 못 하면서도 빛나 언니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양가적 심경이 잘 표현돼 있더군요.

“네, 맞아요. 또 눈물이 나려 하네요. 빛나 언니의 실제 모델이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딱 맞는 모델이 있다기보다 회사 생활을 오래하면서 느낀 캐릭터들을 두루 녹여냈어요. 같은 여자지만 왜 저렇게 할까 싶은 사람도 있잖아요. 내가 만약 미워했다면 미워했던 부분에 대해서 용서를 빌고 싶었고, 또 다른 부분에서는 내가 빛나 언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 복합적인 감정이 녹아 있어요.”


소설 제목 《일의 기쁨과 슬픔》은 알랭 드 보통의 책에서 차용했습니다. 장 작가에게 일이란 뭔가요?

“음. 내 생활을 꾸리기 위해 해야 하는 것, 슬픔을 많이 안기지만 자존감도 안기는 것. 또 일을 하다 보면 재화나 서비스가 생산되니까 사회가 돌아가도록 하는 것.”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려왔지요. 같은 고민을 하는 동료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어요?

“각자의 스타일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 저는 늘 퇴로를 열어두는 스타일이에요. 자신이 건너온 다리를 끊어버려야 비장해져서 더 잘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돌아갈 길이 끊겼다고 생각하면 멘탈 관리가 잘 안 되고 숨 막힐 것 같거든요. 어쨌거나 우리는 생활인이잖아요. 먹고사는 걸 누가 책임져주지 않죠.”


그는 인터뷰에서 ‘생활인’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소설가가 소설을 쓰면서 느꼈던 부끄러움은 결국, 그토록 하고 싶은 소설 쓰는 일이 생활인으로 우뚝 서기 힘든 직업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 무대에서 살아남은 관성은 일터에서도, 작가가 된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에겐 굶더라도 소설을 쓰고 말겠다는 ‘절박함’ 대신 굶지 않도록 밥벌이를 하면서 소설을 쓰겠다는 ‘치열함’이 있다. 진정한 용기란, 하고 싶은 것을 위해 나머지를 다 포기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하고 싶은 것’을 위해 ‘해야 하는 것’의 병행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삶으로 증명한다.
  • 201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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