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생 프랑스 남자 오헬리엉 루베르가 말한다

‘지극히 사적인’ 요즘 프랑스 그리고 한국

글 : 서경리 기자  / 사진제공 : 씨즈온 

프랑스는 ‘파리지앵’이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된다. 낭만의 도시, 패션의 중심지, 문화 자본을 가진 화려한 나라. 우리가 생각하는 프랑스에 대한 이미지다. 하지만 프랑스에 대한 환상은 프랑스에서 깨진다고 했던가.

프랑스 북부에서 나고 자란 80년대생 오헬리엉 루베르(38·Aurelien Loubert)는 책 《지극히 사적인 프랑스》를 통해 환상을 걷어낸 프랑스의 오늘을 냉정한 시선으로 읊는다. 우리가 바라보는 프랑스는 세계 문화를 선도하는 선진국이자 복지와 사회 안전망이 잘 갖춰진 나라다. 하지만 그는 프랑스를 향해 “행정 지옥은 진행형, 복지 천국은 옛말”이라고 직언한다. “프랑스의 행정 지옥을 겪고 나면, 오히려 한국 행정의 효율성에 감탄할 정도”라고 말이다.

프랑스인이 말하는 프랑스는 우리가 알던 그 프랑스가 아니다. 도도한 파리지앵이 ‘파리고(잘난 체하고 무례한 파리 사람을 의미)’라는 본색을 숨기고 있듯.

“프랑스의 행정 서비스는 최악이에요. 일 처리가 너무 느리고, 행정기관의 운영 시간도 짧아요. 게다가 행정기관이 너무 많고 복잡합니다. ‘복지 천국’도 옛말이죠. 오히려 복지제도가 없어지고 있어요. 뉴스에서는 연일 병원 스태프들의 파업 소식이 전해져요. 파업은 한번 시작되면 잘 멈추지도 않아요. 공공 서비스가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또 프랑스는 세금을 많이 걷어 가면서 공공 서비스에 예산을 적절히 배치하지 않아요.”

오헬리엉은 JTBC 〈비정상회담〉에서 프랑스 대표를 맡아 출연하며 대중에 얼굴을 알렸다. 모국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프랑스인답지 않게, 그는 종종 프랑스를 거침없이 비판했다. ‘내 나라의 과거와 현재’를 두고 토론을 벌일 때 오헬리엉은 “프랑스에서는 ‘사회적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다’는 말이 나온다”며 “과거에 비해 젊은 세대가 살기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복지제도가 잘 정비돼 있고 학비가 거의 들지 않는 나라라는 이미지는 허상”이라며 돌직구를 던지기도 했다.

최근 펴낸 그의 책 《지극히 사적인 프랑스》는 방송에서 못다 한 이야기의 연장선이다. 그는 ‘프랑스의 선입견과 오해’를 깰 기회라는 생각에 출간 제의를 받아들였다. 책 머리말에도 “프랑스의 변화를 이야기하고 싶다. 없어진 것, 남아 있는 것 그리고 최근에 생긴 것을 성실하게 보여주고자 했다”고 썼다. 물론 그의 이야기가 객관적일 수는 없다. 그래서 제목에 ‘지극히 사적인’이라는 전제가 붙는다.


일본, 중국을 거쳐 10년 전 한국에 정착

프랑스 북부 도시 릴(Lille)에서 나고 자란 오헬리엉이 한국에 온 건 10년여 전. 릴3대학에서 일어일문학과 FLE(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랑스어 교육)를 전공한 그는 일본 도쿄와 중국 칭다오에서 잠시 머무른 후 2009년 한국으로 넘어왔다. 육군사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서울여자대학교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강의한 그는 지금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객원 교수로 일하고 있다.

“어렸을 때 태권도를 배워서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였죠. 한국인 사범님이 워낙 무서운 데다, 한국의 조폭 영화를 보면서 한국인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어요. 게다가 남자들은 의무적으로 군대를 다녀오니까 ‘폭력적이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는 자신이 가진 선입견을 깨고 싶어 한국에 머물렀다고 했다.

“실제로 겪은 한국 사회는 매력적이었어요. 특히 인간관계요. 조금만 친해져도 형이나 누나라고 부르잖아요. 한국에 머물면서 편견이 많이 깨졌어요. 책을 낸 계기도 같아요. 프랑스에 대한 선입견을 깨주고 싶었어요. 그게 기분 좋은 편견이든, 듣기에 거북한 이야기가 됐든 말이죠. 지금까지 내가 알던 프랑스가 진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1년에 한 번씩 고향을 찾는 오헬리엉에게도 프랑스는 매번 새롭게 다가온다.

“10년 전과 지금은 많이 달라요. 사소한 부분에서 서서히 바뀌고 있어요. 프랑스 사람들은 도전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행정이 복잡하기 때문에 개인 사업자를 내려고 해도 귀찮아서 안 하는데 요즘 제 고향에 가보면 사람들이 달라졌어요. ‘무언가’를 하고 있죠. 그 ‘무언가’로 본인들의 상황이 나아지고 있고요.”

오헬리엉이 전하는 프랑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리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무너진 계층 사다리’나 ‘청년 실업’ ‘경제 불황’ ‘이민자 증가’ 등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은 전 세계의 고민인 동시에 우리 현실이기도 하다.


20대, 경험하고 부딪쳐야 할 때


방송에 출연하고 책도 펴냈지만, 오헬리엉은 자신의 정체성을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에서 찾는다. 그는 한국 대학생들과 대화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모른다’는 데서 가장 놀랐다고 했다. 한국 학생들에게 ‘뭘 좋아하는지’ ‘취미가 무엇인지’ 물으면 ‘잠자기’ 혹은 ‘맛있는 음식 먹기’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다고. 자고 먹는 행위는 기본 욕구인데 어떻게 이걸 취미라고 말하는 건지, 프랑스인의 시선으로 보면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프랑스에서는 상상도 못 할 대답이에요. 대학 전공도 원하는 게 아닌 경우가 많더군요. 프랑스 학생들에게 청소년기는 미래를 위해 공부하느라 희생하는 시간이 아니에요. 물론 바칼로레아(프랑스의 대입 자격시험) 걱정을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학생들보다는 시간도 마음도 여유롭죠. 청소년기는 자기 자신을 만들어가는 시기입니다.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탐색하죠.”

그에게도 10대는 방황의 기간이었다. 학교 다니기 싫어했고, 노력 없이 다니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낙제를 받고 공부할 기회를 잃었다.

“그대로 머물러 있으니까 기분은 좋지 않았어요. 하지만 결국 사람은 각자의 리듬으로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닫고 뒤늦게 대학에 들어갔어요. 자기만의 리듬을 갖고 내가 뭘 하고 싶은지 고민하고 방황하는 시간은 분명 인생에 도움이 됩니다.”

그는 자신의 방황을 떠올리며 청년들에게 “경험하고 부딪쳐봐라”고 권한다.

“20대는 경험하는 시기예요. 기회를 만들어보세요. 프랑스에 가는 것도 좋죠. 워킹홀리데이 비자도 있고요. 나중에 그 시간이 행복하지 않았다고 생각되어도 ‘OK’. 경험해봤잖아요. 다 잃은 건 아니에요. 그것만으로 보람 있는 거죠. 실패해도 괜찮아요.”

자신을 향해, 프랑스를 향해, 한국을 향해 30대 프랑스 청년이 전하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다.
  • 2019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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