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시인 나태주

“나처럼 살지 말고, 너처럼 사십시오”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제공 : 나태주 

2002년 5월 9일의 일이다. 나태주 시인은 충청남도 공주시 상서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매주 목요일은 특기 적성 교육이 있었는데, 그는 어느 반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모아 함께 시간을 보냈다. 어떤 과제를 줘도 지루해하거나 싫증을 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풀꽃을 그려보자고 했다. 풀꽃 그리기는 시인이 외로울 때나 시가 잘 안 써질 때 쓰는 수련 방법이다. 5월의 정원에는 민들레, 제비꽃, 봄맞이, 밥보재, 큰골풀, 꽃마리, 씀바귀를 포함해 이름 모를 풀꽃이 한가득이었다. 아이들은 종이를 한 장씩 받아들고 풀꽃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자신들의 그림이 엉성해 보였는지, 교장선생님이 그린 풀꽃을 보며 물었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풀꽃을 잘 그릴 수 있어요?”

시인이 답했다.

“우선 여러 개의 풀꽃 가운데 자기 맘에 드는 풀꽃 한 개를 찾아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단다. 그러고는 그 풀꽃을 자세히 보아야 하고 오랫동안 보아야 한단다. 그러면 풀꽃이 예쁘게 보이고 사랑스럽게 보이지.”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귀엽고 예뻐 시인은 자기도 모르게 한마디를 더 내뱉었다.

“그건 너희들도 그렇단다.”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의 탄생 비화다.


“‘너도 그렇다’는 하늘이 내려준 문장입니다”

KBS2 드라마 〈학교 2013〉에서 배우 이종석이 이 시를 낭독하면서 〈풀꽃〉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2012년 봄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현판에도 이 시가 쓰여 있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어려운 단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세 문장이 사람들의 걸음을 붙들었고, “너도 그렇다”는 다섯 글자는 오래오래 마음에 머물렀다. 어떤 시는 삭막해져 갈라진 마음에 반창고처럼 붙는다. 〈풀꽃〉은 초등학교 2학년 읽기 교과서에 수록됐고,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렸다. 시인의 말처럼 이 시에서 가장 폭발력이 강하고 임팩트가 있는 부분은 마지막 연이다. 그는 이 부분을 “하늘이 내려준 문장”이자 “신이 선물한 문장”이라고 말한다. 시의 외양은 조그맣지만, 의미의 외연은 무한대로 확장된다.

“풀꽃은 나에게 그냥 사물이 아니라 인격체로서의 사물이고 상호작용이 가능한 감정적인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수없이 많은 대화를 하고 영감을 얻고 또 기쁨과 보람을 얻습니다. 나아가 한 교훈을 받기도 합니다. 어떤 점에서 풀꽃은 나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그가 공주에서 운영하는 문학관의 이름도 ‘풀꽃문학관’이다. 애써 찾아온 이들이 실망할까 봐 되도록 자리를 비우지 않으려 한다. 그런 그가 맘먹고 길을 나설 때는 청소년 강연을 요청받았을 때다. 그는 강연을 시작하면서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고 “안녕하세요. ‘나’ 좀 ‘태’워 ‘주’세요. 나태주입니다”라고 소개하곤 하는데, 이 역시 교직 생활을 할 때 학생들이 농담처럼 지어준 삼행시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그는 그 장난스러운 마음을 기억해 강연 때마다 써먹는다. 실제로 시인은 운전을 싫어해 평생 자동차를 사지 않았다.

“먼 길을 갈 때면 비록 다리가 붓고 몸이 고달프지만 마음이 기쁩니다. 오히려 에너지가 솟아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믿고 사랑하고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물질적인 면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요인도 중요합니다. 문학 강연은 나에게 정신적인 기쁨, 희열을 줍니다. 강연을 마치면 미진한 느낌이 들면서 좀 더 열심히 잘할 것을, 후회하기도 하지만 그런대로 기쁨과 만족감을 줍니다. 이것이 나에게 행복한 마음을 선물하기도 합니다.”

시인에게는 변하지 않는 동심(童心)이 있다. 이 마음이 그를 계속 시인으로 살게 한다.

그는 재직 기간에도 교사는 직업, 시인은 본업이라고 생각했다. 직업에서 은퇴한 후로, 본업에 더 충실하게 됐다. 여기에는 그가 죽음의 언저리를 다녀온 경험이 작용했다.

“글은 작가 개인의 삶의 체험 한계를 넘지 못합니다. 때로는 작가의 고난이나 결핍이나 스캔들까지도 글쓰기의 도움으로 작용합니다. 나의 경우, 작가로 살아오면서 스캔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2007년 교직 말년에 내 몸이 스캔들을 일으켰습니다. 그 뒤로는 세상과 인생을 내려놓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약간은 미완성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허술함이 독자들을 불러들이고, 독자들에게 마음의 자리를 내주는 거라 생각합니다.”


“시를 낳는 에너지는 호기심, 그리움 그리고 사랑입니다”


투병 이후 그는 지인들에게 “살아줘 고맙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참으로 고마운 말이었다. 삶의 겨울이 닥쳐, 다시는 봄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시인은 이렇게 다시 새 봄을 맞은 것이 감격스럽다.

“청년 시절엔 유난히 가을이 좋았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엔 봄을 좋아합니다. 새로워지고 싶은 욕구가 그렇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특별히 좋아하는 건 11월입니다. 어정쩡함, 미완성, 아쉬움, 그런 정서가 나로 하여금 그렇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105일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주사로 버텼던 시간은, 음식을 포기하는 일을 경험하면서, 다른 것들을 포기하는 힘을 길러줬다. 우선 그는 좋은 집을, 좋은 옷을, 좋은 차를 포기했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가 안 되는 게 있었다. 좋은 글과 책에 대한 열망이다. 그 열망에서 해방되기 위해 그는 오늘도 열심히 글을 쓴다.

“시를 낳는 에너지는 호기심, 그리움, 사랑입니다. 그런데 나에게 그 모든 것이 여전히 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줄어들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말하자면 철이 덜 든 요인인데 이러한 점이 나로 하여금 계속해서 시를 쓰게 만들어줍니다. 스스로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나에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양의 호르몬, 이를테면 도파민이라든지 세로토닌이라든가 그런 것이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가 공주에 터를 잡은 건 열여섯 살 때였다. 일흔다섯인 지금까지 머물고 있으니 60년의 세월을 함께한 셈이다. 충남 서천에서 태어난 시인은 공주사범대를 나와 공주에서 교사가 됐다. 교사가 되고자 한 건 그보다는 부모의 뜻이 컸지만, 돌이켜보면 덕분에 동심을 지키며 조금 더 착하게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공주는 나에게 첫사랑과 같은 도시입니다. 열여섯 살 때 공주에 처음 왔는데, 공주는 나에게 처음으로 서구식 문물을 보여줬습니다. 그래서 대번에 공주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그것은 내게 평생을 두고 ‘공주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소망을 줬습니다.”

병실에 누워서도 어서 돌아가 공주의 풍경이 되고 싶다고 간절히 바랐다.

그 바람이 이뤄져 그는 공주에 돌아와 풀꽃문학상, 공주문학상 등을 만들어 시인들을 격려하고 있다.


“이름 없는 풀꽃은 있어도, 가치 없는 풀꽃은 없습니다”


나태주 시인은 시집과 더불어 산문집도 꾸준히 내고 있는데 올해 1월에는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를, 9월에는 《오늘도 네가 있어 마음속 꽃밭이다》를 펴냈다.

“시와 산문은 글 쓰는 목적부터가 다릅니다. 시는 감동에 목적이 있고 산문은 설득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시는 격정을 다루는 문장이기 때문에 비문, 비약, 생략, 애매모호 같은 것들이 가능하지만 산문은 절대로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무엇보다도 표현이 명확해야 하고 글의 바닥이 잘 들여다보이도록 써야 합니다. 그러면서 독자의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마구잡이로 제멋대로 끌고 나가면 패착입니다. 산문에는 반드시 작심(작가의 마음), 문심(문장의 마음), 독심(독자의 마음)이 골고루 들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의 문장은 미성숙하고 불안전해도 존재 가치를 부여받습니다. 산문은 아닙니다. 문장이 바르지 못하고 표현이 정직하지 못하다면 그 존재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그 스스로도 ‘산문다운 산문’을 쓰기 시작한 건 오십 대를 지나면서다. 지금껏 그는 시집 마흔한 권, 산문집 열 권 정도를 냈다. 시인인 그가 산문을 쓰는 이유는 “시가 따라올 수 없는 산문의 덕성, 품이 넓어 인생을 감싸주는 여유” 때문이다. 시 〈풀꽃〉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그의 투병 생활 그리고 공주에서의 일상다반사를 엿볼 수 있었던 것도 등단 50주년을 기념해 펴낸 산문집을 통해서다.

시를 쓰고 풀꽃을 그리고 산문을 쓸 때 그는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자의식에서 해방되는 느낌”을 맛본다. 난초를 보면, 서로 조화를 이뤄 어우러지지만 서로 천박하게 닮지 않는다. 화합하면서 개성을 잃지 않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실체를 그는 자연을 통해 본다. 지금껏 시인은 교단에서 “나처럼 해봐라, 이렇게”라고 가르쳤는데, 이제는 “너처럼 해봐라, 그렇게”라고 말하고 싶다.

“어른들은 쉽게 어린 세대에게 ‘나처럼 해봐’라고 가르치고 ‘나처럼 살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면서 ‘너처럼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되지, 저렇게 해서도 안 된다’라고 손을 내젓습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우리 교육이었고 제도였고 또 법이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풀꽃을 바라보는 그의 대답은 ‘아니다’다. 제 나름대로 품격을 지니면서 타고난 본성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다. 그의 산문집에는 “부디 나처럼 살지 말고 너처럼 살라”고 말하며 등을 두드리는 시인의 손길이 담겨 있다. 이름 없는 풀꽃은 있을 수 있어도, 가치 없는 풀꽃은 없다. 그건 “너도 그렇다”.
  • 2019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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