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진웅

이 정도 진심이면 끝까지 간다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제공 : 쇼박스 

배우가 신명나게 놀면, 그 흥이 관객에게까지 전달된다. 조진웅은 스스로를 ‘광대’라고 부르는데, 멍석이 깔리면 몸 사리지 않고 흥을 끌어올린다는 점에서 그 말은 맞다. 전작인 〈광대들〉부터 최신작인 〈퍼펙트맨〉까지 시대와 배경이 다를 뿐, 조진웅이 일으키는 기운에는 호랑이와 곰을 섞은 것 같은 호쾌함이 있다. 호랑이처럼 날렵하고, 곰처럼 묵직하다.

사투리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을 보면 외국어를 능숙하게 하는 사람을 볼 때처럼 경이감이 드는데 〈퍼펙트맨〉의 조진웅이 그렇다. 부산 토박이의 사투리에는 배워서 쓰는 사람이 가질 수 없는 ‘까리함’이 있다. 조진웅은 부산 사나이다. 부산 영도에서 자랐고, 부산에서 대학을 나와 첫 극단 생활도 부산에서 했다. 영화의 대본을 쓰고 연출한 용수 감독도 부산 출신이다. 둘은 그동안 서울 사람들 틈에서 표준어를 쓰며 억눌러온 부산 ‘소울’을 원 없이 터뜨렸다.

“저는 시나리오를 볼 때 첫 장은 떼고 봐요. 누가 썼는지, 어떤 경력을 갖고 있는지를 알면 선입견이 생길까 봐서요. 〈퍼펙트맨〉은 보면서 키득키득 웃었어요. 부산을 잘 아는 사람이 봐야 보이는 부분들이 있더라고요. 이 정도 진심을 담았다면 가도 되지 않을까 싶었죠.”


MSG 필요 없는 연기 맛집

인지도 없는 신인 감독의 입봉작. 조진웅은 흔쾌히 그의 손을 잡았지만 제작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1년 가까이 기다림이 이어지자 그 역시 제작진의 마음이 되어 속이 탔다. 그의 상대역인 장수 역 캐스팅이 난항이었다. 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로펌의 대표, 손발이 묶인 채 죽음을 기다리는 인물. 눈빛과 표정만으로 채워야 하는, 여백이 큰 역할이었다.

“설경구 선배가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듣고 머리가 천장에 닿을 듯이 뛰었습니다. 제가 연기를 시작할 때부터 경구 선배는 롤 모델이었어요. 엎어질지 몰랐던 영화를 설경구 선배가 ‘안아주신’ 거죠.”

연기자 지망생 시절 조진웅은 극단 학전이 공연하는 〈지하철 1호선〉을 봤다. 그때 설경구는 1인 다역을 하며 작품을 채우고 있었다. 매 장면이 잊히지 않아 조진웅은 공연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배우와 악수를 했다.

“경구 선배의 연기는 ‘노포 맛집’ 같은 느낌이에요. 전통도 있고, 내공도 있는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그런 맛이요. 시간이 흘러 변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변하지 않고, 오히려 더 깊은 육수를 내는 분이죠.”


조진웅의 시간은 빼곡하다

용수 감독은 “조진웅은 시나리오에 숨을 불어넣고 살을 붙이는 연기를 한다면, 설경구는 시나리오의 핵심을 뽑아내 엑기스를 보여주는 연기를 한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이 둘의 밸런스는 피와 살이 도는 ‘퍼펙트’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퍼펙트맨〉에는 다른 MSG가 없다. 모든 걸 다 가졌지만 죽음을 앞둔 로펌 대표와 아무것도 없지만 폼에 살고 폼에 죽는 건달 영기. 영화는 오직 두 사람의 ‘티키타카’로 처음부터 끝까지 밀고 간다.

“영화 속에서 영기와 장수가 황령산에 올라가는 장면이 있어요. 산 아래 반짝이는 불빛을 보면서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죠. 부모님 이야기도 하고, 가난한 시절 이야기도 하고요. 저한테 황령산이 꼭 그런 곳이었어요. 연극을 할 때였는데, 살기는 힘들고 연기는 안 되고 답답할 때마다 황령산에 올랐죠. 지금은 그때보다 불빛이 많아졌더라고요. 저는 그대로인 것 같은데 제 앞에 카메라가 있고, 제 옆엔 설경구 선배가 있어요. (가슴에 손을 대며) 여기가 뭉클하더라고요.”

조진웅은 대학로에 갈 때 긴장한다. 연극하는 후배들을 보면 숨고 싶을 정도로 잘하는 친구들이 많다. 숨 한 번 크게 쉬지 못하고 두 시간 동안 그 작은 의자에 앉아서, ‘내가 이들보다 나은가’를 생각한다. 그로서는 뒤풀이 때 술 한잔 사는 게 해줄 수 있는 전부라, 미안한 마음뿐이다.

“뒤풀이에 가면 저는 노트를 펴고 적을 준비를 해요. 그리고 물어봐요. ‘아까 그 연기 어떻게 한 거야? 그 중간에 치고 나갈 때는 어떤 느낌으로 했어?’, 그럼 그 친구들이 이야기를 해주는데 매번 놀라요. 정말 열심히 하거든요. 세상에 연기 잘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조진웅의 시간은 빼곡하다. 8월에 개봉한 영화 〈광대들〉에 이어 10월에는 〈퍼펙트맨〉이 개봉했고, 곧 정지영 감독과 함께한 〈블랙머니〉 개봉도 앞두고 있다. 〈공작〉과 〈독전〉, 〈완벽한 타인〉에 연달아 출연했던 것도 불과 지난해다.

“다음 작품에 대한 계획은 없어요. 그저 작품이 오면 읽어보고 거절을 하더라도 꼭 찾아뵙죠. 저는 단역, 조연을 할 때도 시나리오를 굉장히 까다롭게 봤어요. 그때 더 골랐어요.(일동 웃음) 그때나 지금이나 배우로서 자존심을 걸고 작품에 임하죠.”


낭만에 대하여


한창 오디션을 보던 시절, 거절당하는 게 일상이던 때도 있었다. 오디션장에 들어가면 “매니저 말고 배우분 들어오세요”라고 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래도 위축되지 않으려고 했다. 다리가 부러져도 함부로 고개 숙이지 않는 〈퍼펙트맨〉의 영기처럼, 조진웅은 광대의 자존심을 지키며 여기까지 왔다. 약자에게 예의 바르고 강자 앞에서 비굴하지 않는 부산 사나이는 죽으나 사나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하는 순정도 갖고 있다.

“롯데 팬들에게는 쉽지 않은 한 해였습니다. 그래도 뭐 어쩌겠습니까. 영화도, 스포츠도 잘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죠.”

영화 현장 환경이 좋아진 만큼 낭만이 사라지는 건 한편으로 그의 슬픔이다. 푹 익혀서 음미하며 먹어야 하는데, 패스트푸드처럼 소비된다. 작지만 의미 있는 영화가 스코어 때문에 금세 세상에서 잊혀간다. 영화에는 시장 논리가 설명할 수 없는 ‘정서’가 있는데 말이다.

“영화도 결국 사람이 만드는 거잖아요. 숫자로만 판단하고 기억된다면, 〈대부〉 같은 명작이 나올 수 있을까요. 한 번쯤은 둘러보고, 두고 보고 하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한국 영화의 호흡은 너무 밭은 거 같아요.”

부산 사람들은 말한다. 부산의 돼지국밥은 다른 지역에서 먹을 수가 없다고. 순대국밥도 맛있고 뼈해장국도 좋지만, 돼지국밥은 꼭 부산에서 먹어야 한다고 말이다. 〈퍼펙트맨〉은 그런 맛이다. 국물은 진하고, 고기는 실하다. 돼지국밥 한 그릇을 먹으러 부산에 가도 아깝지 않을 맛이다.
  • 2019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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