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이나우

클래식과 록 감성을 한 몸에 지닌 보랏빛 음표

글·사진 : 서경리 기자

“한 살 때부터 초등학교 때까지 독일에 살았고, 사는 내내 피아노만 쳤고, 당연히 놀기도 놀았고… 클래식 피아니스트이자 록 피아니스트, 이나우입니다.”
두서없이 중얼중얼 자신을 소개하는 20대 청년. JTBC의 밴드 서바이벌 〈슈퍼밴드〉에서 ‘퍼플레인’ 멤버로 참여해 3위를 차지한 피아니스트 이나우다. 클래식 영재 코스를 밟으며 피아노를 배운 그가 ‘록 피아니스트’로 변모하기까지 속내는 저렇듯 꾸밈없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있긴 했는데, 번개 치듯 소름이 돋았다.” - 수현

“심사평이 아닌 감상평이 될 것 같다.” - 윤종신

“상상을 완전히 벗어나는 편곡을 했는데, 진짜 멋있었다.” - 김종완

“이나우는 이제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뮤지션이라는 게 100프로 증명됐다.” - 서바이벌 참가자


피아니스트 이나우가 속한 밴드의 무대를 본 이들의 평가다. 그는 등장부터 “천재가 맞는 것 같다”는 찬사를 받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OST ‘First step’을 연주하며 피아니스트 이나우를 처음 대중에 소개하는 그 짧은 순간, 그의 손끝에 모두의 숨이 오르내렸다고 할까.

“밴드 오디션에 어떤 곡을 가지고 나가야 할지 감이 안 잡혔어요. 쇼팽의 녹턴을 칠 수도 없고. 클래식 피아노 전공자만이 할 수 있는 화려한 테크닉을 보여주고 싶어 ‘First step’을 제 방식으로 편곡해 연주했죠. 제목도 ‘첫걸음’이라는 의미가 있고요.”

이나우는 라운드를 거칠 때마다 클래식 피아노 위에 자연주의 음악과 록의 색을 덧대어 자신만의 장르를 개척해갔다. “모든 음악이 이나우의 손끝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밴드가 완성되어갈수록 그의 비중은 점점 커졌다.


두 살 때부터 피아노를 친 아이

이나우가 피아노를 시작한 건 그의 기억에도 없는 두 살 때다. 방송을 통해 공개된 영상에는 두 살배기 이나우가 피아노를 향해 까치발을 들고 반기는 표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엄마는 음악 관련 일을 하셨고, 아빠는 어릴 적 꿈이 가수였대요. 매일 음악과 함께 컸던 거죠. ‘이나우는 피아노 치는 애’ 외에 다른 생각을 해본 적 없어요.”

클래식은 일종의 문헌학적 성격을 갖는다. 한 시대의 음악가가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었는지를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고 표현해내는 일이 연주자의 몫이다. 곡 해석 면에서 이나우는 ‘천재적’이라는 찬사를 듣는다. 그는 한국에서 예원예중·예고를 졸업하고 한예종 영재원에서 수학하며 한국의 클래식 영재 코스를 밟았다. ‘독일 청소년 음악 콩쿠르 초등부 피아노&실내악 솔로 1위’ ‘에이클래식 음악 콩쿠르 전체 대상’ ‘코리안 모차르트 오케스트라 콩쿠르 중등부 대상’ ‘일본 아시아쇼팽 음악 콩쿠르 1등’… 이나우의 피아노 콩쿠르 성적은 항상 상위권이었다.

“천재라기보다 영재죠. 천재가 되려면 음악에 대한 이해는 물론 손의 감각까지 완벽해야 할 것 같아요. 피아노 안에서 모든 능력치가 높아야 하죠. 저는 천재는 아니에요. 1등에 대한 욕심보다 피아노를 즐겼다는 말이 맞아요. 주변 친구들은 저를 특이하게 봤죠.”


록 밴드는 일종의 일탈


이나우는 한예종을 중퇴하고 독일에서 유학하던 중 〈슈퍼밴드〉 오디션에 참가했다. 그는 밴드를 통해 자신의 ‘모범생 콤플렉스’를 깨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했다.

“작년에 너무 힘들었어요. 대회 결과도 안 좋았고, 인간관계에서도 회의를 느꼈죠. 방학 동안 한국에 들어와 두 달만 피아노를 쉬면서 재충전하고 싶다 했더니 엄마가 〈슈퍼밴드〉 출전을 권유하셨어요. 평소 실내악을 즐겼거든요. 혼자 연습실에 틀어박혀 연주하는 건 너무 외로운 일이죠. 그래서 함께 연주하는 ‘밴드’라는 단어에 끌렸어요.”

밴드, 특히 ‘록 밴드’는 일종의 일탈이었다.

“우연히 유튜브로 영국 록 밴드 ‘오아시스’의 무대를 보고 ‘어쩜 저렇게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음악으로 관객과 소통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들의 말투나 행동에 자유분방함이 있었어요. 관객들은 그걸 좋아해주고. 그런 모습이 ‘멋짐’으로 인정받는 세상이 있다는 데 놀랐어요.”

그의 어머니가 밴드 서바이벌을 권하며 “실컷 놀다 가라”고 한 말이 인생의 또 다른 ‘First Step’이 된 셈이다.

“밴드 음악은 어떤 클래식보다도 따뜻해요. 잔디에서 기타 하나 들고 연주할 수 있는 쉬운 음악인데도 감성을 건드리죠. 그들의 음악이 제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어요. 내가 지내는 세계에선 인정 못 받던 나의 다른 면을 ‘멋지다’고 말해주는 세상.”

〈슈퍼밴드〉에서 그는 오아시스의 곡 ‘Stop crying your heart out’을 커버하고 난 후 무대 위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감정이 수그러들지 않아 “외줄타기처럼 간당간당했다”고 말했다.

“노래는 ‘울고 있지 말고, 미련 두지 말고, 뭐든 받아들이고 네 걸 챙기고 나가라’고 말해요. 스무 살 때 느낀 좌절감이나 방황한 시간을 회상하며 들었던 곡이죠. 노래가 전하는 메시지를 함께 느꼈습니다. 하지만 울진 않았어요. 무대에서 울면 안 멋있잖아요.”

무대 위의 이나우는 자유로웠다. 화려한 의상은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밴드로 첫 빛을 발한 하얀색 깃털 옷과 밴드 ‘퍼플레인’의 정점을 찍은 공연, ‘Dream on’에서 입은 블랙 깃털 옷. 두 의상은 백조에서 흑조(블랙스완)로 거듭난 이나우의 ‘록 정신’을 대변한다. 평범을 거부하는 그의 날갯짓이 피아노 건반 위를 튕기듯 날아오를 때 몸 안의 뜨거운 열정이 울컥 쏟아졌다. 이제 이나우에게 클래식과 록이라는 양 날개가 생겼다.

방송이 끝나고 그는 두 번의 독주회를 가졌다. 모두 클래식 피아니스트로서의 행보다. 첫 공연 170석이 매진됐고, 두 번째 공연은 9월 기준 500석이 채워졌다. 유명 피아니스트 못지않은 인기다.

“퍼플레인 밴드의 멤버가 되면서 ‘자유분방하게, 멋있어도 된다’고 허락을 받았잖아요. 이젠 진짜 저만의 것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클래식도 록도 다 이나우인 거죠. 멋지잖아요!”

그는 록과 밴드를 이야기할 때마다 ‘멋있다’는 감탄사를 내뿜는다. 그에게 ‘멋짐’이란 무엇일까.

“내 멋대로 사는데,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며 사는 거요. 나인 채로 살면서도 전혀 불안해하지 않는 사람, 그렇게 살려고 노력 중이에요.”

밴드 ‘퍼플레인’이라는 이름에는 파란색이 주는 클래식한 우아함과 빨간색이 주는 록 감성의 강렬함에 더해 비처럼 촉촉한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을 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여기서 파란색, ‘클래식한 우아함’은 이나우의 이미지다. 그동안 바깥으로 보이는 피아니스트 이나우의 색은 정제된 파랑이었다. 이제 그는 밴드를 통해 자신 안에 숨겨진 붉은 열정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
  • 201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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