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자라는 쓸 만한 배우 박정민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소설가 김중혁은 말했다. 좋은 배우란, 5000만이 전부인 한국에서 5000만 한 번째 인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고(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대한민국 인구는 5170만 9098명이다. 엄밀히 말하면 배우가 만들어낸 5170만 9099번째 인물쯤 되겠다). 박정민이 연기하는 인물은 5000만과 5000만 한 번째 그 어디쯤 있다. 분명 그 5000만 중에 한 번은 본 인물인데, 묘하게 처음 보는 사람 같다. 5할의 익숙함과 5할의 신선함, 5할의 찌질함과 5할의 똘기, 5할의 일상성과 5할의 비현실성으로 박정민은 지금 여기에 서 있다.

영화 〈타짜 : 원 아이드 잭(이하 타짜 3)〉은 박정민의 비현실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타짜 3〉는 이미 1편과 2편이 만들어놓은 거대한 장르의 자장 안에 있는 영화고, 〈타짜〉의 주인공은 저마다의 필살기로 판을 뒤흔든다. 일종의 영웅 서사다. 지금의 젊은 감독과 배우에게 〈타짜 3〉는 ‘독이 든 성배’다. 잘해야 본전, 못하면 오함마…라기보다 판돈을 모두 잃는다. 언제 다시 영화판에 낄 수 있을지 모른다.

독립영화 〈돌연변이〉로 특이점 있는 영화를 만들었던 권오광 감독은 이 성배를 박정민과 나눠 마시길 원했다. 그는 처음부터 “박정민이 아니면 안 된다”고 했다. 〈타짜 3〉의 주인공 도일출의 비현실성은 현실성에서 온다. 그는 공무원 준비생이고 흙수저다. 그런 그가 수저의 물성을 따지지 않는 도박판에선 날아오른다. 이 두 가지가 가능한 인물, 박정민이다. 권 감독이 그에게 “건배”를 외쳤을 때, 주변에서는 모두 말렸다. 박정민은 오래 망설였다. 아니, 망설이는 척했다. 사실 그도, 처음부터 하고 싶었다.

“제가 생각이 많고 고민이 많지만, 결정은 결국 분석이 아니라 직관으로 해요. 예상과 다르게 하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이 너무 자주 등장하는 거예요. 당연히 하라고 할 줄 알았는데 당황스럽더라고요. 그런 사람들에게 제가 해야 하는 이유를 막 설명하고 설득하고 있는 게 돌아보니 좀 꼴 보기 싫었어요.(일동 웃음) 결국은 할 거라는 걸 저도 알았으니까요.”


마음의 소리를 들어라

‘잘 들어라.’
연기학교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배운 것이다. 상대의 말 혹은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잘 들어야 한다는 거고, 그것이 연기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연기를 ‘혼자 하는 연기’라고들 하고, 나 같은 놈이 긴장을 하면 저지르는 실수가 바로 그 ‘혼자 하는 연기’다. 하지만 이 실수들을 발견하기가 또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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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 《쓸 만한 인간》 ‘잘 듣고 있습니까’ 中


박정민의 책 《쓸 만한 인간》 개정증보판이 지난 9월 초에 나왔다. 그의 에세이는 2013년부터 시작한다. 5년여 에 연재한 칼럼 〈언희〉를 모은 책이다. 2013년과 2019년의 박정민 사이에는 무명과 유명이라는, 조연과 주연이라는,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라는 큰 강이 흐른다. 그런데 그는 마치 망각의 강을 건너지 않은 것처럼 그대로다. 그때나 지금이나 배우 박정민은 항상 자신이 “재능 없다”고 이야기하는데, 〈타짜 3〉의 도일출은 줄곧 “저 재능 있다니까요”라고 말한다. 상반된 두 인물이 한 사람에게서 나온다. 실은 둘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재능에 기대어 나태해지고 싶지 않고 재능이 없다고 주눅 들고 싶지도 않은 그런 마음, 겸손한 패기다.

“일출을 표현하는 게 쉽지는 않았죠. 재능 있는 인물이어서가 아니라 드라마를 끌고 가야 하는 인물이라서 고민이 많았어요. 웬만하면 실수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카메라 앞에서는 자신감 있는 척하다가도, 카메라 밖에서는 복기하느라고 정신이 없었어요. 실수를 한 것 같을 때는 감독님께 ‘부끄럽지만 기회를 달라’고 말씀드려 다시 찍은 것도 있고요. 기본적으로 세상에 재능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 스스로도 그쪽은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지르는 연기를 할 때 실제 박정민은 감추고 억누르고 사는 걸 ‘해도 된다’고 시나리오에 쓰여 있으니까 카메라 앞에서는 신이 나긴 하죠.”

박정민은 “소년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남자의 얼굴을 보여달라”는 감독의 주문처럼, 매 챕터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로 그는 4개월간 20kg을 감량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입금되면 할 수 있다”고 이 또한 별일 아닌 듯 말하지만, 그가 덜어낸 20kg의 무게 안에는 소년의 순수와 순정도 들어가 있다.

“어쨌든 영화에 박정민이라는 배우가 묻어 나오는 거겠죠. 전 ‘꾸며서 하는 연기’에 기본적으로 거부감이 있어요. 감이 안 왔는데, 잘 모르겠는데 ‘일단 해보자’ 해서 했을 때가 괴롭죠. 결국 OK는 나지만 제 마음에는 안 드니까요. DNA 자체가 거부하는 것들이라고 할까요.”

일출이 영화의 초반부터 후반까지 잃어버리지 않는 재능은 ‘상대의 마음을 읽는 기술’이다. 패로 치는 건 하수고, 패를 쥔 마음을 읽는 건 고수다. 이는 판을 읽는 기술로 확장된다. 박정민이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놓지 않으려 했던 것도 비슷하다. 〈타짜〉 1, 2편과는 달리 3편은 화투가 아닌 카드를 다룬다. 카드는 기본적으로 팀플레이다. 박정민은 영화 전체를 읽고, 각 신의 행간에 공간이 생기지 않길 바랐다. 각각의 플레이어가 저마다의 기술을 선보이는 이 판에서, 박정민은 어디에 가져다놔도 말이 되고 게임이 되는 일종의 조커였다.


내 눈에 나는 여전히 꼬맹이


〈타짜 3〉가 완성되기까지 두 통의 편지가 등장한다. 먼저는 권오광 감독이 박정민에게 보낸 편지다.

“감독님이 같은 학교(한예종) 출신이에요. 감독님 학생 때 저도 학생이었죠. 당시의 기억부터 소환해서 메일을 주셨는데, 누군가 저를 꼬맹이 때부터 지켜봐줬다는 게 감사했어요.”

박정민을 세상에 알린 독립영화 〈파수꾼〉 이전의 작품부터, 권오광 감독은 박정민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뿐 아니다. 〈타짜 3〉의 촬영감독과 조명감독은 함께 〈파수꾼〉을 만든 형들이다.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미술팀 소품팀 막내들까지 다 이름을 알고 부르는 희한한 현장이었어요. 외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외워지는 그런 현장이요. 저는 지금도 제가 ‘꼬맹이’ 같거든요. 촬영감독님과 조명감독님은 그때의 저를 아는 분들이고요. 다들 잘 버티고 지내다가 판이 더 커진 영화에서 메인 배우와 메인 스태프가 되어 만났다는 게 감동적이었죠.”

〈동주〉와 〈변산〉을 만든 이준익 감독은 박정민에게 말했다. “과정이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자”고, “영화가 아니라 영화를 함께 만드는 사람들에게 인생을 걸라”고. 〈타짜 3〉는 이를테면 그런 과정과 사람이 있는 영화였다.

또 한 통의 편지는 박정민이 배우 류승범에게 보낸 것이다. 〈타짜 3〉의 ‘원 아이드 잭’ 즉 ‘애꾸눈 잭’은 류승범이다. 그는 바람처럼 나타나, 또 바람처럼 사라진다. 실제 그의 삶도 방랑 중이다. 지구 어디메에 그가 머무는지 모른다. 권오광 감독은 그를 찾아 인도네시아로 간다고 했다. 그 길에 박정민의 편지도 함께 배달됐다.

“승범이 형한테 시나리오를 보낸다고 하시기에 ‘제가 쓴 편지도 한 통 전해주세요’라고 했죠. 정말 그냥 팬레터였어요. 영화를 같이하고 싶다는 내용은 아니고요. 당신을 보며 꿈을 꿨던 후배가 지금 이렇게 연기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죠. 제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와이키키 브라더스〉거든요. 지금이 아니면 그런 말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았어요. 다른 선배님들은 그래도 한국에 계시니까 어떻게든 만날 기회가 있을 텐데 말이죠.(웃음)”

〈타짜 3〉가 완성되고 첫선을 보인 시사회에서 류승범은 “박정민이 보낸 편지가 나를 움직였다”고 말했다. 박정민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촬영 현장에서 류승범은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저 바라보다가, 문득 찾아와 한마디를 건넸다. 그 한마디가 그를 붙잡았다.

“촬영을 하다가 저를 보셨는데 좀 힘들어 보였나 봐요. 슥 다가오셔서 ‘너무 너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절대로 하기 싫다는 말을 안 해요. 과도하게 남에게 피해 주는 걸 싫어하거든요. 그런데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으니까 너무 고맙고 힘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후반부에 또 슥 찾아오셔서 ‘슬슬 오지?’ 하시더라고요. 그때가 딱 ‘슬슬 올 때’였거든요.(일동 웃음) 깜짝 놀랐어요. 선배님은 다 아시는구나 싶어서요. 선배님은 다 지나오신 길이니까.”


성품이 운명이다


20대와 30대를 주인공으로 치열하게 살았던 류승범은 지금 지구별 여행자다. 세계 어딘가에 아지트를 만들고 유랑하듯 산다. 그가 숨 쉴 수 있는 곳이다. 박정민에게도 아지트가 있다. 책방이다. 스쿠터를 타고 책방에 가는 시간을 그는 좋아한다.

“책방에는 거의 매일 있어요. 처음에는 제가 책을 읽고 글을 쓸 공간을 만들고 싶어서 연 거예요. 여덟 명이 들어오면 꽉 차는 열 평짜리 집이었죠. 처음 일주일은 손님이 아예 없었어요. 너무 한 명도 없어서, ‘이게 과연 뭐하는 짓인가’ 싶었죠. 그러다 한 명 두 명 늘고 그분들이 ‘나만 알고 싶은 공간’이라 비밀을 좀 지켜주셨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나만 알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진 거예요. 그래서 바로 옆 큰길 건물로 옮겼어요. 저한테는 조용한 작업실이길 바랐는데 실패했죠. 하지만 밤늦게까지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인 건 맞아요.”

서울 합정동에 있는 책방의 이름은 ‘책과 밤낮’이다. 처음엔 밤에만 열어서 ‘책과 밤’이었는데, 이젠 낮에도 열어서 ‘책과 밤낮’이다. 이 책방의 입구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네가 울었던 그 책을 밤낮으로 읽었다. 너와 함께 울지 못해 참으로 울었다.”

함께 울지 못함이 괴로워 우는 사람이 있다. 그건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성품의 문제다. 소포클레스의 고전 《오이디푸스》에는 “성품이 곧 운명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박정민은 재능이 아닌 성품으로 연기한다. 그의 성품과 DNA가 그를 가만두지 못하기 때문에, 그가 자신을 괴롭히는 한 그는 계속 자라고 그러므로 계속 잘할 것이다.
  • 201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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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이병곤   ( 2019-10-02 ) 찬성 : 1 반대 : 4
유슬기 기자 참 "연예인에 미친" "머리가 빈" "골빈 여자"시군요. 연예인 좋아하시는 것 알겠습니다. 5천만 인구중 5천만1번째 국민이라.. 인구가 5천만인데 어떻게 5천만1번째 국민이 있겠습니까... 연애인에 미친 "여기자"님이란 느낌 외에는 하나도 안드는 군요. (유슬기 기자님께 악플 중에 악플 남겼습니다)
  애기돼지   ( 2019-09-27 ) 찬성 : 2 반대 : 0
기자분이 글을 잘 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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