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저트 노트》 펴낸 유민주 글래머러스 펭귄 대표

달콤한 디저트로 추억을 채집하는 파티시에

글 : 서경리 기자  / 사진제공 : 씨즈온 

언제부터였을까. 하루 일과로 지칠 때면 근처 카페에서 달달하고 부드러운 초코케이크를 사먹곤 했다. 몸이 지치고 생각이 복잡할수록, 입안에 녹으면서 쫀득하게 감기는 단맛이 생각났다. 케이크를 먹는 건 순간을 기억하는, 혹은 순간을 잊게 하는 가장 달콤한 방법이 아닐까. 달콤한 작은 사치, 디저트는 일상의 구원이다.
유민주 파티시에는 한남동 디저트 카페 ‘글래머러스 펭귄’에서 디저트를 만들어 팔고 사람들의 추억을 채집한다. 8년 동안 굳건히 자리를 지킨 덕에 이곳에 쌓인 사연도 제법 된다. 회식 때마다 거나하게 취해 라즈베리치즈케이크를 사가는 직장인부터 고향의 맛이 그리워 아침마다 에그머핀을 사먹는 이방인들의 이야기까지, 디저트를 팔 때마다 추억이 딸려 온다.

유민주 파티시에가 디저트 카페를 운영하며 경험한 이야기와 노하우를 엮은 책 《디저트 노트》를 펴냈다. 53가지 디저트 레시피를 담은 베이킹 입문서인 동시에, 디저트에 얽힌 사연을 그림과 함께 풀어놓은 이야기책이기도 하다. 유민주는 자신을 디저트를 만드는 파티시에이자, 쉽게 요리하는 법을 연구하는 셰프, 무엇보다 음식으로 행복을 나누는 ‘행복 탐험가’라 소개한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요리하고, 고운 추억으로 남길 수 있을까 고민하며 디저트를 만들어왔어요. 그래서 글래머러스 펭귄에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추억이 빼곡하게 쌓여 있습니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친구가 아쉬워서, 풀리지 않는 일이 많아 속상해서, 연인과 헤어진 날의 헛헛한 마음이 그 어떤 말로도 달래지지 않을 때… 우리는 그렇게 달곰한 위로가 필요할 때 디저트 카페를 찾게 되지요.”


꿈을 찾아 떠난 프랑스


유민주 파티시에가 디저트를 배운 건 프랑스 유학 중에서다. 캐나다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그는 미대 진학의 꿈을 품었지만, 부모님의 뜻에 따라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했다. 겉으로는 무엇 하나 빠질 게 없는 삶이었다. 이제 결혼만 하면 된다는 부모님의 말씀에 어느 날 숨이 턱 막혀왔다.

“삶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꼬박꼬박 월급 받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마음은 항상 세상 밖에 있었죠. 3년이 지났을 때 이건 아니다 싶어 직장을 그만두고 프랑스로 떠났습니다. 제 꿈을 찾기 위한 첫발을 내디딘 거죠.”

프랑스 소르본대학에 입학해 프랑스어를 공부하던 중, 회화를 배우기 위해 신청한 베이킹 클래스가 그의 삶을 바꿔놨다.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아파트였는데, 빵을 굽는 작은 체구의 할머니가 너무 예뻐 보였어요. ‘나이가 들어도 기술이 있으니 이렇게 오래도록 사람이 찾는구나. 기술을 배워 가게를 내고 사람들과 오래도록 소통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프랑스에서 1년의 방황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그는 2002년 한남동에 가게를 냈다. 글래머러스 펭귄의 시작이다.

20대의 객기로 시작한 사업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아스팔트도 안 깔린 자갈길에, 아는 사람만 찾는 한적한 골목. 첫날 매출은 3만 2700원이었다. 그중 2만 원은 가게 오픈했다고 동네 분이 잔돈도 받지 않고 주고 간 돈이다. 부모님에게 전화해 “하루 10만 원만 더 벌었으면 좋겠다”는 투정이 일상이었다. 부족하지만 묵묵하게 버텼고, 그 힘으로 8년을 채웠다.

“사업을 몰랐으니 일만 했어요. 아르바이트도 구하기 힘들어 혼자 열두 시간씩 일했죠. 가게 옆 피자집에 사람이 몰리기에 케이크를 들고 나가 시식회를 연 적도 있어요. 아무도 안 쳐다봐줄 때는 서러웠죠. ‘이게 브랜드 인지도 차이구나’ 싶었어요. 새벽에 시작해 새벽에 끝나는 일과를 소화했어요. 그때 붙은 별명이 ‘한남동 머슴’입니다.”

가게 문을 열면서 자신했던 점은 단 하나, 친화력이다.

“해외에는 ‘로컬 카페’라고, 출근길에 들러 커피 마시고 간단하게 요기하는 가게가 있잖아요. 한남동에는 외국인들이 많으니까 이들의 친구는 돼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당시에는 일본식의 가벼운 디저트가 유행이어서, 당근케이크나 초코브라우니 같은 미국식 홈베이킹이 거의 없었어요. 이런 메뉴를 만들면 수요가 있을 거라고 봤죠. 외국 블로거들 사이에서 맛집으로 알려지며 한국의 로컬 카페로 소개됐고, 점차 동네 사랑방으로 자리 잡았어요.”


‘한남동 머슴’이 운영하는 달곰한 동네 사랑방


그의 일상에 변화가 생긴 건 가게 문을 연 지 3년이 지나서다. 한 케이블 채널에 한남동의 크고 작은 가게들이 방송을 타면서 글래머러스 펭귄이 소개됐다. 이후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매출이 쑥쑥 오르고, 직원을 둘 정도로 성장했다. 유민주 파티시에는 TV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과 〈오늘 뭐 먹지〉 등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한층 넓혔다.

그는 방송을 하면서 작은 소망이 생겼다. 파티시에를 꿈꾸는 아이부터 자영업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디저트 문화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아이들을 위한 쿠킹 클래스 ‘유머러스 캥거루’도 열었다. 또 사회 공헌 사업으로 셰프들의 테스트 키친을 위한 식당 ‘공공빌라’를 세웠다. 능력은 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셰프들이 꿈을 키워가는 공간이다. 2016년 문을 열어 3년 동안 40여 팀이 이곳을 거쳐 갔다.

“아침에는 빵을 굽고, 낮에는 사람을 만나며 저녁에는 글을 써요. 틈틈이 방송에 출연해 디저트를 알리고요. 이 일 자체를 즐기고 있습니다.”

글래머러스 펭귄을 시작한 지 제법 시간이 흘렀지만, 그는 가게를 확장하기보다 내실을 다지는 데 더 힘을 쏟는다.

“수제 디저트를 고집해요. 케이크를 굽는 일부터 포장까지 모두 셰프가 직접 하죠. 사업을 확장하려면 공장을 세워야 하는데, 기본을 지키고 싶습니다. 저는 유명 셰프보다 친근한 ‘동네 언니’이고 싶어요. 학교에 들어가 묵묵히 기술을 익히면 누구나 장인이 될 수 있어요. 하지만 디저트로 누군가의 내면에 들어가 추억을 만들어주고 교류하고 소통하며 교감하는 데는 다른 경험이 필요하죠. 디저트만큼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 음식은 없는 것 같아요. 방송에 나가고, 책을 내는 저의 활동이 디저트에 대한 관심을 열어주는 하나의 채널이 되길 바라요.”

그의 20대가 기술을 배우는 시기였다면, 30대는 팀을 이끌어가는 리더로서 성장하는 시간이었다. 40대 초입에 들어선 그는 자신이 가진 재능과 기술을 나누는 중이다.

“유민주의 케이크는 추억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디저트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 ‘한남동의 작은 가게에서 소개팅을 했는데, 그때 케이크가 맛있었어’ 하고 회상할 수 있는, 추억으로 기억됐으면 합니다.”
  • 2019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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