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일기》 펴낸 작가 김연수

소설가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생애전환기’라는 게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는 만 40세와 만 66세를 생애전환기로 명명해 몸에 커다란 변화가 올 수 있으니 중점적으로 검진 받으라 권한다. 《동의보감》에는 “사람이 마흔 살이 되기 전에는 제멋대로 살다가 마흔 살이 넘으면 문득 기력이 쇠한 것을 깨닫는 경우가 많다. 일단 기력이 쇠하면 온갖 병이 벌떼처럼 일어나 오랫동안 치료하지 않으면 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고 쓰여 있다.

작가 김연수는 실제 그의 나이 마흔에 생애의 전환을 경험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통보를 받고 “만 40세 이후의 삶은 절정이고, 만 66세 이후의 삶은 결말인가” 생각했다. 이야기가 절정에 이르면 절망이 가장 깊어진다는 사실을 소설가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정말로 그랬다. 마흔을 지나 그즈음 들려오는 참혹한 소식들을 접하면서 “이다지도 나쁜 세계가 왜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이 생겼다.

어릴 적 그가 영원하리라 생각했던 존재들이 세상을 떠났다. 마이클 잭슨이 죽었고, 그의 삶에도 죽음이 덮쳤다. 더구나 이 세계에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남겨진 자들은 남겨졌다. 소설가 한강이 《소년이 온다》에 쓴 문장대로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생명은 소중하고 고귀한 것이라고 말하기에 이 세상에는 슬픈 죽음들이 너무 많았고, 이런 세계라면 차라리 지금 당장 끝장나는 게 옳겠다는 생각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그는 이 의문의 답을 찾기 위해 세계의 끝을 헤맸다. 세계의 끝까지 가면 고통으로 가득한 세계를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에게 세계의 끝으로 나아가는 길은, 자신의 안으로 들어가는 ‘글쓰기’였다. 매일 쓰고 매일 지우며 한 시절을 살았다. 지난 7월 발간된 《시절일기》는 그 10년의 기록이다.


“어쩌면 글을 쓰는 데 예술적 자아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고 때로는 방해가 된다는 걸 알았어요. 그게 저로서는 굉장히 중요한 40대의 발견이에요.”


“이번 책은 2005년부터 2018년 정도까지 쓴 글들이에요. 발표한 글도 있고 발표하지 않고 그냥 쓴 글도 섞여 있죠. 지난 10년 동안 소설가이자 자연인으로서 겪은 일들을 썼어요.

쓸 때는 뭔가를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 자신의 질문과 고민을 그대로 썼고요. 10년이 지나 50이 되고 보니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게 보였어요.”

청춘의 그는 시간이 흐르면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줄 알았고, 세상은 좀 더 좋아질 줄 알았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지만’ 그는 글을 읽고, 글을 썼다.

그의 말마따나 문학은 세상의 불행에 역접으로 접속하는 힘이 있었다.

“마흔 이전에는 작가로서 글을 쓸 때 행복한 상태였어요. 그저 쓰기만 하면 됐죠.

그러다 마흔이 되면서 ‘결말이 안 좋을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있었어요. 그 이전까지의 삶에서는 결말이 기승전결을 향해 가거나 적어도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알게 되리라는 낙관이 있었는데, 점점 비관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거예요. 저에겐 너무 치명적인 거죠. 이걸 내 나름대로 풀지 못하면 나아가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꼭 10년 전인 2009년 그의 소설 《세계의 끝 여자친구》에는 “우리는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쓰여 있다. ‘네 마음을 안다’는 말보다 ‘네가 하는 말의 뜻을 모른다’고 할 때 오히려 희망이 있다고 말이다. 한계를 알아야 노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노력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일이 바로 인생을 살아볼 만하게 만든다”고 그는 말한다.

절망 속에서도 사랑하고 노력하는 그는 《시절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타자의 고통 앞에서 문학은 충분히 애도할 수 없다. 애도를 속히 완결 지으려는 욕망을 버리고 해석이 불가능해 떨쳐버릴 수 없는 이 모호한 감정을 받아들이는 게 문학의 일이다.”

그래서 그는 영구히 다시 쓰고 읽는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커다랗게 생긴 애도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 노동자와 일꾼과 농부처럼.

“《세계의 끝 여자친구》에는 용산참사 문제가 나와요. 우리는 각자가, 작가로 또 독자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데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과 제가 살아가는 세상이 같은 세상이에요. 저는 사회 구성원으로 이 사회에 영향을 받고 이걸 이해하기 위해 글을 써요. 개인적인 느낌을 책으로 썼다고 생각하지만 글은 공적인 글쓰기가 돼요. 세계가 같기 때문이죠. 글 쓰는 사람은 그 경험을 제공하는 플랫폼이에요. 작가는 동시대에 대해 쓰고 독서의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어요.”


“어떤 글은 소설이 되기도 하고 산문이 되기도 하죠.
처음의 원고에서부터 책이 되기까지는 아주 멀고 아주 오랜 과정이에요.
메모할 때는 어떻게 완성될지 거의 몰라요.”



김연수 작가의 오른손 옆에는 손바닥보다 작은 수첩과 펜 하나가 있다. 늘 갖고 다닌다.

그 작은 수첩에 기록되는 작은 말들은 낙서처럼 보이기도 한다.

“글은 매일 써요. 사람들이 제가 처음 쓴 글을 보면 글이라고 생각 안 할 거예요.

그런데 저는 글쓰기가 이 최초의 글에 있다고 생각해요. 이 글이 있어야 다음이 있거든요. 최초의 글쓰기는 사실 별로 안 어려워요. 처음부터 최종적인 버전의 글을 쓰려면 너무 어렵지만요. 그래서 중도에 포기하게 되는 거죠. 제가 쓰는 매일의 글은, 제가 쓸 수 있는 모든 글이에요. 대신 그 글들은 사라지죠.”

그는 《소설가의 일》에서도 “‘매일 글을 쓴다’ 그리고 ‘작가가 된다’ 이 두 문장 사이에 새로운 사람이 되는 비밀이 숨어 있다”고 말했다.

“글을 완성하려면 시행착오를 많이 겪잖아요. 소설은 엄청나게 많이 썼다 지웠다를 반복해요. 장편소설을 본 분들은, 책을 순서대로 쓸 거라고 생각하세요.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쓸 것이라고요.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순서와 관계없이 계속 고쳐요. 제가 창작하면서 경험한 건 그거예요. 저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시작하는데 점점 제 의도는 사라지고 소설의 의도만 남거든요. 그럼 ‘이건 좋은 소설이다’라고 느끼게 돼요.”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이듬해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하고, 지금까지 산문집을 포함해 약 열일곱 권의 책을 냈다. 참여한 책까지 포함하면 스무 권이 넘는다. 그는 강연에서나 인터뷰에서 ‘내 책을 읽는 즐거움’에 대해 수줍게 말하기도 했다. 자신이 쓴 글을 읽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말이다. 적어도 그 글을 읽을 때 부끄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다. 그가 믿기에 좋은 글은 시간을 견디는 글인데, 지금까지는 그런 글을 써왔다고 믿는다.

“고전이 훌륭한 이유는 시간을 견디기 때문이잖아요. 사실 저는 등단하고도 작가가 뭔지 잘 몰랐어요. 작가를 안 할 생각으로 취직을 하고 회사에 다니면서 ‘마지막으로 한 번 써보자’ 싶었던 소설이 《굳빠이 이상》이었고 그때 큰 좌절을 맛봤어요. 연재였는데 첫 회를 쓰고 그다음 회 마감을 못 하겠더라고요. 도망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운명인지 2회 차 문예지가 나와야 하는 때에 휴간을 했어요. 제가 포기하겠다고 전화를 하기 직전까지 갔는데, 그러면 작가로서 끝이라는 생각에 망설였어요. 마침 문예지에서 먼저 연락이 왔죠. 지옥 같은 밤을 보내고 나서 다시 쓰기 시작했어요.”

지옥이 지나자 천국이 찾아왔다. 그 지옥에서 그를 꺼낸 빛은 다름 아닌 ‘끝내기만 하면 된다’는 안도였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드는 글을 쓰거나, 시대에 맞는 글이 아니라 끝낼 수 있는 글을 쓰면 되는 일이었다.

“그때 알게 된 게 많아요. 그 이전까지 소설을 쓸 때는 ‘뭘 쓰지?’ ‘이걸 쓰면 어떻게 되지?’ ‘독자는 누굴까, 팔릴까?’ ‘트렌드에 맞을까?’ 이런 생각을 했는데, 이런 질문은 마감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도움이 되는 생각은 오직 ‘마감을 한다’였어요. 다시 글을 쓰면서 아주 행복했어요. 아주 만족했고요. 만약 그때 어떤 소설가가 와서 ‘너는 끝내기만 하면 돼’라는 말을 해줬더라도 저는 믿지 않았을 거예요. 그 경험을 통해 작가의 일이란 ‘헌신’에 가까운 것이라는 걸 알게 됐죠. 어떤 보상도 글을 쓰게 해주지 않아요.”


“이제는 ‘겸손하지 않으면 좋은 글을 쓰기가 어려워진다’ 정도로는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등단했을 때는 20년이 지나서도 글을 쓰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25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글을 쓴다. 세상은 점점 더 나빠지지만 ‘하지만, 그렇지만’ 이 나쁜 세계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를 묻고 고민하며 글을 쓴다.

“예전에는 노인이 되면 모든 게 선명해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 70이 되고 80이 돼도 가만히 있으면 나빠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동안 저는 학원을 거의 안 갔는데 요가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제가 제 몸을 잘 쓰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 좌절했죠.

그때 알았어요. 어딘가 마음 학원이 있다면, 누군가는 연습을 열심히 해서 마음을 잘 쓸 텐데, 누군가는 마음을 못 쓰는 거죠. 마음 쓰는 법도 계속 연습이 필요한 거예요.

처음부터 낙천적인 사람이 있다기보다 그러기 위해 노력하고 연습한 거죠.”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서점을 방랑하는 시간이다. 커다란 서점에서 저마다의 서가를 거닐다 어떤 책등을 발견하고 그 책을 펴들었는데 그 안에서 어떤 빛을 발견했을 때 그는 행복하다. 그렇게 발견한 책 중에는 다이애너 애실이 쓴 《어떻게 늙을까》도 있다.

김연수 작가는 “늙으면 더 이상 타인의 관심 대상이 되지 못하니 외롭고 서글퍼지리라 생각했는데 웬걸, 이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자는 긍정적 태도가 생긴다”는 점에 감명받는다. 나치 수용소까지 경험한 이 여든아홉의 할머니는 책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악에 대해 잘 알지만 오직 선한 것만 봅니다.”

작가는 여기서 겸손을 배웠다.

1991년 ‘5월 투쟁’으로 대학생들의 죽음이 연이어 일어난, 서늘한 여름을 지난 김연수는 내면의 불길을 태우며 글을 썼다. 그 불에 덴 마음으로 그는 자신의 삶을 작가의 삶으로 바꾸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시대의 불길이 그의 마음을 태우면 그는 그을음과 어둠을 품고 글을 쓴다. 글이 결국 한 줌 빛으로 인도해준다. 25년이 지나 생애의 전환기를 보내는 지금 깨닫는 건 그는 여전히 소설가가 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치열한 한 시절이 또 한 번 여물고 있다.
  • 2019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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