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차 아나운서 퇴사합니다 조수빈

더 늦기 전에, 바로 지금!

글 : 김재우 프리랜서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몇 년 전, 앳된 얼굴의 아나운서가 9시 뉴스 앵커석에 앉은 걸 보고 인터뷰 요청을 했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전날 TV서 듣던 똑 부러진 것과는 사뭇 달랐다. 소녀처럼 수줍어하면서도 들뜬 떨림마저 전해져왔다. 조수빈 KBS 전 아나운서와는 처음부터 격 없는 대화가 이뤄졌다. 그 인연이 10년이다. 지난봄 그는 난데없이 프리 선언을 했다.
더는 뉴스에선 볼 수 없는 건가 싶어 아쉬운 마음이 앞섰다.
2005년, 31기 아나운서로 KBS에 입사해 올해로 꼭 15년. 조수빈 전 아나운서는 다년간 메인 뉴스를 진행했고, 단독 MC로 〈글로벌 정보쇼 세계인〉 시사 프로그램까지 두루 경험했다. 최근 1년간 진행을 맡은 〈그녀들의 여유만만〉은 촬영 현장에서도 행복감이 전해졌다. 아나운서 선후배들과 합을 맞춰가는 작업은 신선했고, 신입 이후론 안 하던 야외 현장 리포트를 하면서 초심으로 돌아간, 잊지 못할 좋은 시간이었다.

그런 그의 가슴을 요동치게 한 건, 주제와 이슈에 맞춰 다양한 패널이 출연하면서다. 방송을 천직 삼아 한눈팔 일 많지 않던 그가 방송 밖의 일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동경하게 된 것. 특히 미디어 생태계가 폭발적으로 변화하면서 등장한 크리에이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더 늦기 전, 지금이 기회’라는 조바심마저 생겼다. 퇴사를 결심하게 된 동기인 셈이다.

“1인 미디어가 성행하는 뉴미디어 시대, 미래의 동력은 새로운 시장에 있다는 확신을 얻었어요. 더는 현실에 안주할 수 없었죠. 대학원에서 방송 영상을 공부하면서 미래의 트렌드를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채널보다 콘텐츠의 시대. 이용자들이 기존 매체보다 유튜브 같은 새로운 매체를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얻고 다양한 선택을 하는 시대잖아요.”

안정적인 자리를 박차고 세상 밖으로 나온 그는 긍정적인 성격답게 여유만만이다. 어쩌면 이는 그간의 방송을 통해 얻은 소중한 자양분일 수 있다.

“여러 채널에서 출연 제의도 들어오고 있지만, 지금은 자유를 맘껏 누리면서 다음 자리를 검토해보고 싶어요. 방송이 아니더라도 제 브랜드를 갖고 일도 하고 싶고요. 가보지 않은 길에 미련을 갖기 보단 후회하더라도 부딪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아나운서를 준비할 때도 ‘난 이미 아나운서가 됐다’ 스스로 최면을 걸고 그에 맞게 행동했거든요. 지금도 그 비슷한 동기 부여가 필요할 것 같아요.”


사고뭉치 앵커?

올곧고 바른말, 가지런한 이미지의 아나운서는 닮고 싶은 직업인으로, 여전히 여대생들 사이에서는 선망의 대상이다. 또박또박 뉴스를 읽어주는 앵커. 오랜 세월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은 아나운서에 대한 편견을 깨준 사람이 조수빈 전 아나운서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 KBS 9시 뉴스를 진행해온 그는 보통의 아나운서들과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장단음까지 정확하게 짚어내는 딱딱한 이미지가 아닌,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입담의 소유자라고나 할까.

“9시 뉴스 앵커는 평소의 저와는 거리가 있어요. 천성이 치밀하진 못해 크고 작은 방송 사고(?)를 일으켰고, 그때마다 스트레스와 자책감이 크게 다가왔어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실수 몇 번이 여태 회자되는 걸 보면 정말 무거운 자리였구나 싶죠.”

2012년 5월 2일, 초유의 방송 사고가 KBS 〈뉴스9〉 현장에서 일어났다. 민경욱 앵커가 오프닝 멘트를 하던 중 조수빈 전 아나운서의 휴대폰 알람이 힘차게 울렸던 것. 스튜디오 밖에 있어야 할 휴대폰이 왜 여기 있는지 생각할 틈도, 지체할 틈도 없었다.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알람을 끄고 다음 멘트를 이어갔다.

“주말에 뉴스를 챙겨 보기 위해 알람을 설정해놨던 건데, 깜빡하고 있었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뉴스를 마치고 스튜디오를 나서 보도국을 지나가면서 그 따가운 시선을 온몸으로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종합편성채널이 등장하기 전, 공영방송사의 메인 뉴스는 대중의 눈을 독점했다. 시청률만 봐도 그렇다. 9시 뉴스는 인기 드라마와 궤를 같이할 정도로 높은 시청률을 보여왔다. 5년을, 그의 말마따나 천성을 최대한 숨기고 뉴스를 진행해왔으니, 그간의 고단함을 한껏 치하할 만하다.


무명의 아나운서, 메인 뉴스 앵커 되기까지


막연하게 아나운서를 하고 싶어 하던 학창 시절. 하지만 그는 보통의 아나운서와는 거리가 먼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약간은 허스키하면서도 발음 또한 좋지 않았다. 게다가 안경까지 끼고 있어서 비주얼도 소위 ‘깜’이 아니었다. 긴 머리를 단정하게 자르고 안경 대신 렌즈를 꼈다. 딱 1년만 노력해보기로 했다.

“당시 이른 나이에 9시 뉴스 앵커가 되다 보니, 실패를 모르고 쉽게 신데렐라가 됐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9시 뉴스를 맡기 전까진 언더그라운드 아나운서였어요. KBS 입사 후 4년간 정체성의 혼란도 수없이 겪어야 했죠. ‘넌 도대체 어떻게 아나운서가 된 거냐?’는 말을 선배들에게 돌아가면서 들었어요.”

동기나 후배들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맡아 승승장구하는데, 그는 겨우 10분 라디오 뉴스에 나올 뿐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시청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인지도 없는 프로그램에 투입되는 일이 허다했다. 게다가 모든 동기가 차례로 출연했던, 인기 예능 프로그램 〈스타 골든벨〉에도 자신만 쏙 빠져 소외감마저 들었다.

“일련의 부침을 겪으면서 오기가 발동했어요. 선천적으로 타고난 게 없다면 ‘어떻게 해야 앵커처럼 보일까?’ 최면을 걸며 집요하리만큼 고민하고 행동으로 옮겼죠. 패배주의에 빠져 있기보다 나만의 경쟁력을 갖추려 노력한 것이 주효했던 것 같아요. 소통이 중요한 시대, 시청자들과의 교감을 생각해낸 거죠.”

2008년 초, 8시 뉴스를 진행할 때였다. 뉴스는 5개월 만에 막을 내렸지만 남다른 소통으로 진행에 대한 평가가 좋았다. 시청자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네고 인사를 나누며 자신만의 소통 포인트를 발견한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떨지 않고, 실수 없이 9시 뉴스 오디션을 치렀어요. 오디션 참가자 중 가장 어렸던 저는 ‘뉴스를 뉴스 같지 않게 한다’는 평가와 지적이 동시에 있었어요. 오디션 반응이 괜찮았는데도 큰 기대를 할 수 없었죠. 그렇다 보니 9시 뉴스 앵커석에 앉게 됐을 때 주변 사람들이 더 많이 놀랐어요. 4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죠. 저 같은 사람도 아나운서가 되고, 뉴스 앵커가 됐으니 꿈이란 그 누구든 한 번쯤 꿔볼 만한 일이 아닐까 싶어요.”

이제 방송인 조수빈으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그는 막연한 미래를 위해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졌다. 변화와 발전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스스로 다듬고 깎아 나가는 일에 게으름이 없어야 한다. 또 어떤 대가를 치를 수도 있고, 어느 한 부분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셀 수 없는 그 지난한 과정들이 꿈을 향해 나아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란 사실이다.
  • 2019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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