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 작가 김애란

‘잊어간다’와 ‘잊기 좋다’의 차이에 대하여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제공 : 열림원, 조선DB 

김애란 작가에게는 쌍둥이 자매가 있다.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산면에서 열아홉 살까지 살았던 그는 어릴 적 쌍둥이 언니와 같은 옷을 입고 동네 어른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는 했다. 한 살 많은 언니까지 세 자매는 격의 없이 자랐는데, 그중 동갑이면서 꼭 닮은 쌍둥이 언니는 그의 단짝이었다.

“일전에 황석영 선생님께서 제가 쌍둥이인 까닭에 일찌감치 자신을 타자화할 수 있게 됐다고, 제 유머의 바탕에 쌍둥이란 사실이 있다고 말씀해주신 기억이 나네요. 예전에는 그냥 웃으며 갸웃거렸는데 어쩌면 정말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시간이 흐르고 나면 ‘정말 그런지도 모르겠다’고 느껴지는 일들이 있다.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 와서 알게 된 것들. 7월 출간한 그의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에는 그런 순간들이 곰살맞게 담겨 있다. 소설이 한 시절 작가의 세계를 담는다면, 산문집은 그가 지나온 세계를 아우른다. 책에는 그가 글 쓰는 삶을 꿈꾸던 시절부터, 최연소 등단 후 스스로 작가라 불리기에 멋쩍었던 날들, 등단 18년이 지나 “시간이 흘러넘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최근의 목소리까지 고르게 분포해 있다. 이 소리들은 ‘도·미·솔’처럼 화음을 이루는데, 그중 가장 높은 소리를 내는 건 명랑함과 예리함을 함께 가졌던 그의 초기 작품들이다.

그의 말마따나 “작가의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책에는 그 시기에만 가능한 에너지가 담뿍 담겨 있다”는데 그 시절 김애란의 등장이 그랬다. 문학이 엄숙하고 무게 잡지만은 않는다는 걸 알려준, 소설이 어른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걸 밝혀준 반가운 경험이었다. 문단과 독자가 함께 반색한 이유다. 젊은이가 뛰어놀 한 평의 땅을 마련한 그는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 동시대의 풍경과 공기를 먹고 자란 기름진 작물을 캐냈다. 김애란의 이야기는 남을 흉내 내지 않았고, 젊음의 치기를 무기로 무례를 범하지도 않았다. 결핍을 말하면서도 연민에 함몰되지 않았던 소설과 소설가의 사생활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훔쳐볼 수 있는 것도 이번 산문집의 재미다.

“그럴 땐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 〈풍경의 쓸모〉 中


《잊기 좋은 이름》은 ‘맛나당’에서 시작한다. 그의 소설 《칼자국》을 읽은 이들은 20년간 손칼국수집 ‘맛나당’을 운영한 그의 어머니의 칼끝이 어떻게 식구들을 먹여 살렸는지 안다. 살림집과 가게가 한집이었던 맛나당에서 김애란은 “인간군상의 공평한 허기”를 봤고, “경제권을 쥔 여자의 당당함과 삶이 제 것이라 느끼는 사람의 얼굴이 긍지로 빛나는 것” 또한 봤다.

“다른 많은 일들도 당시에는 그 의미를 모르고 사후적으로 복기하거나 해석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제게 맛나당이라는 공간도 그렇습니다. 어릴 땐 그저 그곳에서 생활하고 또 놀기 바빴는데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맛나당이 제게 얼마나 많은 것을 줬는지 깨달을 수 있었어요. 그 사실이 고맙습니다.”

맛나당은 “좋은 말은 늘 아버지가 하고 뒷감당은 어머니가 했던”, 그래서 어머니가 “할머니의 청대로 아들을 낳는 대신 국수가게를 차렸던” 시절도 담고 있다. 그의 초기 소설 《달려라, 아비》는 “어머니의 부풀어 오르는 배를 보고 얼굴이 점점 하얘지다가, 그가 태어나기 전날 집을 나가 그 후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가부장제나 가장의 권위 같은 것이 생계의 무게에 역전되던 시절, 아버지의 부재가 콤플렉스가 아니라 어머니의 생활력으로 대체되던 가정의 이야기다.

그의 소설 속 아버지는 원망이나 분노가 아닌, 응시와 연민의 대상이다. 화자는 철들어 애늙은이가 되지 않고 당시의 풍경을 기록하는 이야기꾼이 된다. 산문집에서 김애란은 사람은 좋지만 능력이 부족했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구애하던 장면을 퍽 정겹게 부려놓는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그가, 부모의 연애 시절에 이미 존재하는 느낌이다.

“어릴 때 어머니와 함께한 시간이 많았습니다. 식당과 살림집이 붙어 있어 아마 더 그랬을 텐데요. 어머니와 함께 파를 까고, 설거지를 하고, 바지락을 씻으며 나눈 이야기들이 훗날 제 소설 안에 자연스레 들어왔습니다.”

“어머니는 소처럼 일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민첩하고 활달한 소였다. 적당히 허영심도 있었고, 장사하는 사람은 늘 깔끔해야 한다며 화장품 값도 아끼지 않았다. 어머니는 ‘사장님, 미인이시네요’라는 말을 좋아했고, 그때마다 손사래를 친 뒤 광에 들어가 거울을 봤다.”- 《칼자국》 中

하지만 김애란은 자신을 키운 8할의 칼국수와 그만큼의 기대를 배신하고, 고3 여름방학 때 사범대학에 가라는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고 몰래 예술학교 시험을 봤다. 그 2할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재학 시절, 대학교 컴퓨터실에서 등단 소식을 들었다. 시상식 날 그의 차림은 평범했지만 그날 입은 회색 울 니트와 물 빠진 청바지, 카키색 단화는 사실 전부 새로 산 것이었다. 시상식을 마치고 식사 자리에서 취기가 오른 그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친목회에선 배운 사람일수록 목소리를 크게 하고 발언을 많이 하는데 거기선 모두가 목소리를 삼분지 일만 내고서도 대단한 말들을 하더라. 확실히 지식인들이라 다른 모양이다.”

김애란의 소설을 초기, 중기 그리고 현재로 나눌 수 있다면, 중기의 김애란 소설은 소리가 작아진다. 앞선 ‘솔’보다는 삼분지 일 정도 작아진 ‘미’ 혹은 ‘도’ 소리가 난다.

그는 20대를 지나면서 “죽는 것 따위 하나도 두렵지 않던 시절, 정말로 용감하다기보다 죽음이 너무 멀어, 죽음이 추상이라 깔봤던” 청춘도 흘려보낸다. 초기 그의 작품에는 삶의 비애를 가볍게 비트는 농담과 위트가 있었는데 시간이 흐른 뒤 그는 “내 농담이 선배들의 진담에 빚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좋은 소식은 나쁜 소식과 더 나쁜 소식 뒤에 찾아온다”는 사실도 배웠다. 소설이 엄숙해서가 아니라, 때로는 농담을 할 수 없는 시절이 있다는 걸 알아버린 순간은, “아무리 노력한들 세상에는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이 있다는 걸 안” 순간이기도 했다.

그의 소설집 《비행운》과 《바깥은 여름》에는 이런 장면들이 담겨 있다. 꿈속에서도 박스를 줍고 있는 할머니와, 화장실과 동격으로 취급되는 화장실 청소부가 등장하는 《비행운》을 지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채 덩그러니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바깥은 여름》에 이르면 그의 목소리는 잦아들다 못해 젖어든다. 단편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는 물에 빠진 제자를 구하려다 숨진 교사의 아내가 등장한다. 아내는 긴 여행을 다녀와, 죽은 남편이 구하려 했던 학생의 누나가 보낸 편지를 받는다. 몸이 불편한 지용의 누나는 서툰 글씨로 이렇게 적었다.

“겁이 많은 지용이가 마지막에 움켜쥔 게 차가운 물이 아니라 권도경 선생님 손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놓여요.”

“작년 봄 이후, 한국의 많은 작가들이 작품 활동을 하지 못하거나 어렵게 해나간 걸로 안다. 동시대 시인과 소설가, 비평가가 말이 무너진 자리에서 가까스로 말의 의미와 쓸모를 찾아 나섰고, 그렇게 몇 마디를 떼는 데 몇 계절이 걸린 걸로 안다. 그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들의 글을 열심히 찾아 읽으며 어느 순간 내가 동료들의 말에 기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우리가 함께 어떤 시대를 건너고 있는지 배웠다.”
- 《바깥은 여름》 中



《잊기 좋은 이름》의 중반부에는 그와 함께 한 시대를 지내고 있는 동료 작가들에 대한 애틋한 헌사가 담겼다. 김연수, 편혜영, 윤성희 그리고 고 박완서 작가는 김애란의 문장 안에서 작품과 함께 소환돼 따스한 기록이 된다.

“소설 쓰기는 전적으로 작가 혼자 해야 하는 일이라 좋을 때도 많지만 외로울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땐 내 앞에 혹은 옆에 있는 동료가 힘이 됩니다. 자주 만나지 않더라도 다만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곳이 밝아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부에 실린 글은 그분들에게 선물하는 마음으로 쓴 원고입니다. 그분들을 아끼는 독자분들에게도 좋은 선물이 됐으면 싶습니다.”

글을 쓸수록 그는 독자의 존재에 대한 새로운 감각이 생긴다. 전에는 자신이 쓴 글로 독자와 공감할 수 있는 게 기뻤지만, 타인의 고통을 완전히 알 수 없고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안 뒤 그의 마음은 한없이 겸손해졌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 감각이 조금씩 달라지는데요. 요즘 제게는 독자가 ‘시간을 내어주는 사람’으로 느껴집니다. ‘누군가의 문장을 읽는다는 건 그 문장 안에서 잠시 살다 오는 것’이라는 문장을 쓴 적이 있는데요. 그렇다면 독자란 제게 ‘자신의 삶 일부를 내어주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또 몸으로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그의 답변에는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이 쉼 없이 나온다. 언젠가는 그 말도 쉬이 전할 수 없다는 걸 알아버렸다는 듯이 생생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책 역시 같은 마음으로 엮었다.

“우리가 모든 걸 기억할 순 없지요. 사람이니 잊는 것이 생길 수밖에 없고요. 나중에 우린 스스로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을 맞기도 할 테니까요. 그렇지만 그렇게 ‘잊어간다’는 것과 ‘잊기 좋다’는 말은 다른 뜻 같습니다. 때론 이 세상에서 가장 옅고 약한 이름들부터 지워지곤 하니까요. 가장 소중하고 가까웠던 이름들 역시 때론 제일 먼저 잊히기도 하고요. 작가들이 하는 일 중 하나가 그 이름을 불러주고, 기억하고, 질문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2014년 안산의 임시 분향소에서 두 시간 넘게 조문을 기다리면서 그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의 어쩔 수 없는 선명함을 느꼈다고 했다. 그제야 그는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싶었던 것 못지않게 나와 같은 감정, 같은 슬픔을 느끼는 동시대인들과 함께 있고 싶었다는 걸 깨달았다.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이, ‘잊기 좋은’ 이름이 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그가 겪은 것은 또한 우리가 겪은 것이다. 김애란 작가는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가 겪은 것을 우리와 닮은 목소리로 기록한다. 내 것이되, 내 것이 아닌 목소리. 내 것이 아니지만 꼭 내 것 같은 문장들. 그건 흡사 쌍둥이가 자신의 쌍둥이를 바라보는 느낌이 아닐까.
  • 2019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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