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정유정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제공 : 은행나무 

“시간의 어떤 순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서양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말이다. 이 한 문장이 소설가 정유정의 작품의 궤도를 바꿨다. 그는 원래 ‘바다에 갇힌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 1년여 자료 조사도 마쳤고, 줄거리와 개요도 써둔 참이었다. 마지막으로 읽으려던 책 한 권, 그 책의 한 문장이 그의 발목을 잡아 29년 전 어느 날로 데려갔다.
그의 나이 스물다섯, 그는 중환자실에 있었다. 자신이 근무하던 병원의 중환자실에 그의 어머니가 실려 왔다. 이미 3년의 투병 생활을 지켜봤지만, 중환자실에서 본 어머니는 생경했다. 의식은 없지만 호흡은 있는 채로 3일을 보냈다. 러셀의 말대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었다.
© 백다흠
“지난 29년 동안 줄곧 궁금했어요.
엄마는 그 3일 동안 어디에 계셨을까.
시간이 흐르니까 질문이 바뀌더라고요.
나라면 그때, 어디에 있었을까.”


그리움은 상상력이 됐다. 만약 그라면 몸은 멈췄지만 영혼은 움직이는 그 시간, 영장류가 처음 이 세상에 나타났던 그 시원의 시간에 가봤을 것이라 했다. 그 태고의 땅에 있는 존재를 만나고 싶다고 말이다. 유발 하라리의 말을 빌려 “중요한 일이라곤 하나도 하지 않던 하찮은 존재인 인류를 지구상 최고의 포식자로 출세시킨 재능이 무엇인지”도 궁금했다.

생의 가장 치열했던 사흘에 대한 이야기, 소설 《진이, 지니》가 세상에 나온 배경이다. 《7년의 밤》으로 정유정의 세계에 입문한 이들은 ‘슬프지만 다정한’ 새 작품이 낯설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등단작인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를 읽은 이들은 이 작품이 반갑다고 한다.

“저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 소설의 모티프가 되는 소재이기도 하고요. 《진이, 지니》는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와 《내 심장을 쏴라》에 이어지는 이야기예요. 저는 줄곧 인간의 어두운 본성인 악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자유의지라는 두 테마를 가지고 소설을 써왔어요. 작가가 일생 동안 작품을 통해 많은 테마를 다룰 수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저를 유명하게 만든 건 《7년의 밤》이나 《28》, 《종의 기원》인데 이번 소설을 읽은 독자들이 심심하게 느끼진 않을까 걱정되기도 해요.”

자유의지와 악의 문제는 그의 소설의 씨줄과 날줄이다. 어느 것이 더 드러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결이 된다. 그의 이름을 알린 이른바 ‘악의 3부작’은 생의 심연에 가라앉은 악의 바닥을 들여다본다. 삶의 이면에는 선의의 가해자도 나오고 악랄한 피해자도 나온다. 선의를 갖고 살아도 삶은 똑바르지 않고 군데군데 뒤틀려 있다. 운명에 멱살잡혀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때, 인간이 유일하게 쓸 수 있는 마지막 도구가 ‘자유의지’다.


“결국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예요.
운명이 우리 삶을 난파시킬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소설 《진이, 지니》에 등장하는 침팬지 사육사 진이는 성숙한 인물이다. 주어진 삶을 신실하게 살아간다. 인간에게나 동물에게나 공평한, ‘다정한 그녀’다. 진이는 과거, 밀렵된 야생 보노보를 구하지 못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시간이 흘러 사립 동물원에서 이탈한 보노보를 구하러 간 날, 보노보 ‘지니’와 함께 교통사고를 당한 그는 의식을 잃는다. 아니, 진이의 몸이 잃어버린 의식은 보노보 지니의 몸 안에 정착한다. 그는 ‘진이’인가, ‘지니’인가.

“그게 바로 소설적인 상황인 거죠. 상식이 통하지 않는 거예요. 의외로 세상일이 그렇게 흘러가지 않아요. 뒤틀려서 흘러가요. 소설은 그런 상황을 비추죠. 인생의 자그마한 사건이 운명을 뒤바꾸는 일들이요. 그런 이야기가 바로 소설이고, 그걸 어떻게든 본래의 자리로 되돌리려는 노력이 이야기의 줄기가 되는 거죠.”

인간사의 구석구석을 치밀하게 헤치던 정유정의 소설이 판타지의 세계로 넘어온 듯 보인다. 사실 장르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던지고 싶은 물음 중 하나는 ‘인간 중심의 사고가 과연 온당한가’였기 때문이다. 인간과 98.7% 일치하는 유전자를 지닌 보노보. 그는 이번 작품을 쓰기 위해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보노보를 찾아 일본과 독일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가 감명받은 건, 보노보라는 생명체를 대하는 연구진이 보여준 ‘타당한 자세’였다.

“그들은 보노보를 연구하지만, 연구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하나의 생명으로 대하죠. 연구소에서 그들이 하는 모든 행위는 인간을 위한 게 아니라, 보노보를 위한 겁니다. 모든 실험은 보노보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형태로 진행돼요.”

진이의 여정 역시, ‘지니’에 대한 타당한 자세로 귀결된다. 한번 궤도를 이탈한 생은 ‘진이’의 몸으로 돌아가려는 그의 모든 노력을 무력화한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단 한 번의 선택을 해야 하는 그때, 진이는 깨닫는다. 3일 동안 그가 빌려 살고 있는 생의 주인은 ‘지니’라는 것을. 문학 평론가 정여울은 이를 두고 ‘선한 가해자의 트라우마’라고 썼다. 평소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선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누군가를 가해했다는 사실에 고통스러워한다. ‘진이’는 ‘지니’에게 삶을 돌려줌으로써 자신과도 화해한다. 그에게 죽음은 끝이 아닌 선택이었다.

등장인물을 생의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한 뒤에야 정유정의 소설은 전진한다. 그 밀어붙이는 힘은, 《진이, 지니》에도 여지없다. 그는 그 힘을 잃지 않기 위해 지금도 하루 세 시간씩 운동한다. 처음에는 수영, 그다음에는 유산소, 그다음엔 웨이트로 이어지는 운동은 이야기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작가가 힘이 없으면, 이야기도 힘이 없어진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몸이 맑아야 정신도 맑다. 새벽, 가장 맑은 시간에 그는 쓰고 또 쓴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거죠.
이게 바로 이야기의 원형이에요.”


“뒤틀린 인생에 관심이 많아요. 행복하고 평탄한 삶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소설을 통해 알고 싶어 하는 것도 그런 거라 생각해요.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어떻게 할까’ 생각해보는 거죠. 문학의 힘은 삶의 이면을 보는 거예요.”

인간이라는 종(種)의 한계까지 넘어서서 그가 찾고 싶었던 답, ‘하찮은 인간이 지구에서 출세한 이유’를 그는 찾았을까? 그 답은 ‘하찮은’ 인물 민주에게 있다. 그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밀려난 인물이다. 그에게 있는 유일한 재능은 감응력인데, 인간사회에서 출세하는 데는 아무 쓸모가 없다. 하지만 작가는 그의 감응력을 높이 산다. 인간의 감정과 동물의 신음에 미세하게 반응하는 그는 진이와 지니의 여정에 유일한 동반자가 된다.

“갈수록 우리 사회는 공존이나 공감을 무시하는 느낌이에요. 인간이라면 상대방의 고통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거기에 신경을 끄고 마음을 차단하는 사회가 되어가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건 오직 공감이라고 생각해요. 상대를 연민하고, 또 상대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때 오직 인간이 인간답죠.”


“저는 해피엔딩을 믿지 않아서 해피엔딩을 좋아하지 않아요.
세상에 해피엔딩이 얼마나 있겠어요?”



《진이, 지니》는 판타지의 외피를 쓴 성장소설이라고 말하는 정유정 작가 역시 성장 중이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성장한다’고 믿는 그를 자라게 만든 것 역시 운명이 그를 사나운 기세로 몰아붙였을 때다.

“20대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시야가 활짝 열렸어요. 중환자실에서 환자들의 고통과 회복, 죽음을 본 것 역시 저를 크게 만들었죠. 지금 소설에서 제가 보여줄 수 있는 성숙함이 있다면 아마 그 시절에 다 만들어졌을 거예요.”

중환자실은 그 축소판일 뿐 인생이 그렇다. 하나의 고비를 지나면 또 막다른 골목이 나온다. 그럴 때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차가운 물을 건너고 나면, 따뜻한 땅이 있을 거라고.

“글을 쓰면 바로 작가가 될 줄 알았는데, 6년이 걸렸어요. 공모전에서 열한 번 떨어졌죠. 좌절도 좌절인데, ‘나는 글을 쓸 사람이 아닌데, 내가 글을 쓴다고 설치고 있는 건지도 몰라’라며 자기 자신을 의심하게 돼요. 스스로가 초라해 보이고, 내가 쓴 글이 쓰레기 같아 보이죠.”

절치부심 끝에 등단했지만 그의 앞에 꽃길이 펼쳐진 건 아니었다. 여전히 그는 이방인이었다.

“저는 문과가 아니라 이과 출신이었고, 보이지 않는 벽에 이마빡에 피나는 기분으로 부딪혔죠. 제가 등단했을 때가 마흔한 살이었는데, 그전까지 제일 늦게 등단한 분이 박완서 선생님이 마흔에 하신 거라더군요. 문단에 들어온 뒤로도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어요. 그때 생각했죠. ‘나는 작가가 되고 싶나, 글을 쓰고 싶나’, 그 질문은 저의 자유의지를 묻는 거였어요.”

답은 후자였다. 글을 쓰겠다는 의지 하나로, 맨발로 찬물을 건넜다. 자신이 잘 건너고 나면, 다음번엔 어떤 물꼬가 트일 거라 생각했다. 그의 바람대로, 순문학이 주류였던 문단에 장르문학도 하나의 줄기가 됐다. 문학상에서 장르문학, 스릴러문학이 뽑히기 시작한 것도 정유정의 성공 이후였다.

그는 이름에 유자나무 유(柚)에, 우물 정(井)을 쓴다. 이름엔 잘 쓰지 않는 한자인데, 사주에 불(火)이 많은 딸을 염려해 그의 어머니가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불이 많은 그의 소설은 뜨겁다. 한 편의 소설을 읽었을 뿐인데 한바탕 전쟁을 치른 것처럼 기운이 쑥 빠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기운이 생긴다. 하찮은 인간의 존엄함, 그 애잔한 생명에 대한 연민 같은 것들이다. 운명이 우리 삶의 산등성이를 불태워도, 그 민둥산에서 또 새싹은 자라리라는 기대. 밑이 보이지 않는 깊은 우물에서 길어 올린 그 사랑에는 유자처럼 시지만 달큰한 향이 난다.
  • 2019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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