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종려상 봉준호의 영화로운 순간들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제공 : CJ엔터테인먼트 

영화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황금종려상’이 얼마나 큰 상인지는 안다. 세계 3대 영화제 가운데 최고 권위라는 프랑스 칸영화제, 그중에서도 최고의 상은 경쟁 부문 초청작 중 최고 작품에 주는 황금종려상이다.
영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은 “한국 영화 100주년에 이런 상을 받게 되어 뜻깊다”고 말했다.
1919년 김도산 감독의 영화 〈의리적 구토〉가 단성사에서 상영된 후 100년. 영화의 변방이던 한국에서 한국 감독이 만든 한국어 영화가 세계 최고의 영화로 선정됐다.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기생충〉은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에 선정됐다. 우리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평했다.
#1
열네 살, 영화감독을 꿈꾸다

제72회 칸영화제. © 뉴시스
“열두 살 때부터 영화감독을 꿈꾸던 소심한 소년이 이 자리에 서게 되다니 판타지 같다.”

칸영화제 시상식 무대에 오른 봉준호 감독은 이렇게 운을 뗐다. 일주일 뒤, 언론시사회에서 만난 그는 “사실은 열네 살 때다. 프랑스 나이로 열두 살”이라며 웃었다. 그 와중에 디테일하다. 소년 봉준호는 집 안 ‘방구석 1열’에서 〈주말의 영화〉를 몰아봤다. 집착적으로 〈주말의 명화〉 〈명화극장〉 〈AFKN의 금요영화〉를 챙겨봤다는 그는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집착’이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1988년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 영화동아리 ‘노란문’에서 활동했던 그는 본격적으로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간다. 이때 만든 단편 영화 〈지리멸렬〉을 보고 박찬욱 감독은 “천재구나” 싶었다고 한다. 습작 시절부터 그의 관심은 그럴듯한 사람들에게 숨겨진 ‘지리멸렬’한 모습이었다.

재능은 인정받았으나 입봉은 쉽지 않았다. 1995년 결혼 후 2003년까지는 생계가 늘 아슬아슬했다. 신혼 시절 살던 동네를 배경으로 한 첫 장편 〈플란다스의 개〉는 호평받았으나 흥행엔 참패했다. 이를 악물고 버티던 날들의 끝에 2003년 〈살인의 추억〉이 탄생했다.


#2
만화광, 스토리보드를 직접 만들다

8분간의 기립 박수를 받은 〈기생충〉. © 뉴시스
그가 영화 못지않게 좋아한 게 만화였다. 봉준호 감독의 아버지는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인 봉상균 서울과학대 시각디자인과 교수, 외할아버지는 《천변풍경》으로 알려진 소설가 박태원이다. 그는 모든 작품의 이야기(시나리오)뿐 아니라 그림(스토리보드)도 직접 만든다. 〈설국열차〉는 작은 만화방의 오래된 만화책에서 본 한 장면에서 시작된 작품이다. 기차 외에 모든 이야기는 달라졌지만, 한 장의 이미지는 그에게 한 편의 영화가 됐다. 영화 〈마더〉는 그의 스토리보드와 실제 영화를 비교해가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 《마더 이야기》에서 그는 “그 간극에 나와 제작진의 몸부림이 들어 있다”고 말했다.

워낙 스토리보드가 완성돼 있는 까닭에 현장에서 우왕좌왕하거나 변수가 생기는 일은 거의 없다. 홍경표 카메라감독, 정재일 음악감독은 그와 오랜 시간 함께한 아티스트다. 〈기생충〉의 경우 사건의 90%가 ‘실내’에서 일어나는데, 이 공간은 실제 저택이 아닌 이하준 미술감독이 만들어낸 세트다.


#3
봉준호·송강호, 호호 콤비의 만남

영화 〈기생충〉 스틸
1997년 영화 〈모텔 선인장〉. 당시 무명 배우였던 송강호는 이 작품에 오디션 제의를 받았다. 그는 숱한 오디션을 보고 숱하게 떨어지는 중이었다. 하지만 ‘불합격 통보’를 제대로 해주는 곳은 없었다. 이후 〈반칙왕〉과 〈공동경비구역 JSA〉를 거친 그는 ‘영화계의 블루칩’이 됐다. 그런 그가 〈살인의 추억〉에 함께하자는 무명 감독의 제의에 단박에 OK 사인을 보냈다. 그 옛날 그에게 “예의 바르고 진심 어린 말투로 불합격 통보를 알려준 유일한 조감독”이 〈모텔 선인장〉의 봉준호였기 때문이다. 이후 두 사람은 〈괴물〉 〈설국열차〉 〈기생충〉 등을 함께했다.

칸영화제에서 〈기생충〉이 상영된 후 8분 동안 기립 박수를 받을 때 두 사람은 멋쩍은 듯 “언제 끝나지” “나 배고픈데”라는 실없는 대화를 나눴다. 이후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의 주인공으로 호명됐을 때 가장 먼저 일어나 봉준호 감독과 포옹을 나눈 것도, 봉준호 감독이 무대 위로 불러내 “가장 위대한 배우이자 저의 동반자”라며 함께 영광을 나눈 것도 배우 송강호다. 봉준호 감독이 무릎을 꿇고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송강호에게 바치는 모습은 칸영화제의 포토제닉 중 하나다. 송강호는 이후 그날도 물론 기뻤지만 봉준호 감독이 자신에게 〈기생충〉 시나리오를 보내며 “이제 무거운 짐을 같이 나눠 지자”고 할 때 눈물이 핑 돌았다고 말했다.


#4
봉테일의 진가, 밥때를 지키는 감독

영화 〈기생충〉 스틸
〈살인의 추억〉부터 함께 호흡을 맞춘 류성희 미술감독은 “봉감독의 머릿속에는 스타킹에 들어가는 돌의 크기나 형태까지도 정해져 있다”고 말했다. 그런 디테일이 무섭기까지 하다고 말이다. 〈괴물〉을 함께 만든 할리우드 CG팀 오퍼너지는 “그는 최소의 장치로 최대의 효과를 낼 줄 안다”고 했다. 영화에서 정작 괴물이 등장하는 신은 많지 않지만, 괴물을 맞닥뜨린 시민들의 반응, 카메라의 앵글을 부각시키는 연출은 공포를 증대시켰다.

〈설국열차〉 〈옥자〉 등에서 할리우드와 넷플릭스의 작업 방식을 체득한 그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영화 촬영 현장에도 정착시켰다. 폭염이 있는 낮이나 자정이 넘은 밤에는 아역 배우들을 쉬게 했고, 모든 제작진은 ‘밥때’를 넘기지 않고 일했다. 그와 함께 작업한 이들은 배우부터 막내 스태프까지 모두 그의 편이 된다. 칸영화제에 참석해 그에게 기립 박수를 보낸 배우 틸다 스윈튼이 대표적이다. 그는 “〈설국열차〉와 〈옥자〉를 선택한 유일한 이유는 봉준호”라고 말했다. 영화가 진보한 만큼, 현장도 진보한다. 〈살인의 추억〉은 100회 차를 넘게 촬영했지만, 〈기생충〉은 77회 차 촬영으로 끝냈다.


#5
봉준호라는 하나의 장르

영화 〈기생충〉 스틸
〈기생충〉은 가족극으로 시작해 블랙코미디를 지나 스릴러로 질주한다. 하나의 장르로 묶을 수 없는 이 영화를 영화 비평 전문 매체 ‘인디와이어’는 “봉준호는 결국 하나의 장르가 됐다”고 평했다. 봉준호 감독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라고 화답했다.

어떤 장르를 선택할 것인가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가 영화를 꿈꾸던 순간부터 말하고 싶었던 건 “인간의 존엄과 인간에 대한 예의”다. 신분제가 없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세상에는 ‘지하철을 타는 사람과 탈 일 없는 사람들’이 있고, ‘비가 오면 무너지는 집에 사는 아이와 비가 와도 걱정 없는 미제 캠핑용품을 쌓아둔 아이’가 있다. 그 미묘한 선을 찾아내는 게 봉준호 감독의 장기고, 그 선을 넘었을 때 어떤 균열이 일어나는지를 밝혀내는 게 그의 영화다. 공생이나 상생은 구호일 뿐 기생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사는 이들은 한국의 반지하뿐 아니라 세계 도처에 있다.

〈기생충〉은 세계 192개국에 선판매됐고, 한국에서는 개봉 3주 만에 85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제 칸은 과거”라고 말하는 봉준호 감독은 앞으로도 치밀하게 이 세계의 ‘보이지 않는 선’을 찾아 그 선을 넘나들 예정이다.
  • 2019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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