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훈 ‘제이백 쿠튀르’ 실장

방탄소년단과 이영자의 시상식 의상은 누가 만들었을까?

글 : 이선주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 사진제공 : 백지훈 

방탄소년단의 뷔, 정국, 진, 지민, 슈가, RM이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입었던 턱시도, 방송인 이영자가 2018년 MBC 연예대상에서 입었던 하얀색 바지정장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무대에 선 그들을 더욱 빛나게 했다.
모두 백지훈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그는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 고급 맞춤복) 전문 브랜드 ‘제이백 쿠튀르’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 한남동 제이백 쿠튀르에서 백지훈 디자이너를 만났다. 그의 옷을 입은 유명인은 수두룩하다. 배우 현빈, 김혜수, 이하늬, 이나영, 공효진, 소지섭, 이정재, 변요한, 차은우, 가수 수영, 설현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숨찰 정도다.

“제이백 쿠튀르는 오트 쿠튀르 브랜드입니다. 사람마다 체형이 제각각 다르잖아요. 옷 한 벌을 만들려면 체형과 성격, 취향, 행동 패턴까지 파악해서 디자인하고, 가봉을 거쳐 옷을 완성한 후 입혀드리기까지 고객을 서너 번은 만납니다. 편안하면서도 내면의 아름다움까지 표현하는 옷을 만들고 싶거든요. 고객들에게 되도록 직접 옷을 찾아가시라고 권합니다. 새 옷을 입혀드리면서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이나 신발, 메이크업까지 조언해드리니까요.”

최근 《보그(Vogue)》 등 세계적인 패션 전문 매체들은 방탄소년단을 2019년 그래미상 시상식의 베스트 드레서 중 하나로 꼽으면서 그들의 옷을 디자인한 제이백 쿠튀르를 주목했다. 《보그》는 방탄소년단이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한국 디자이너의 옷을 입고 등장해 놀랐다면서 굉장히 산뜻하고 깔끔하면서도 각자의 매력을 잘 살려준 의상이었다고 평가했다.

2019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방탄소년단은 제이백 쿠튀르 슈트를 입었다. © 뉴시스
그의 바지정장은 남성뿐 아니라 여성들도 좋아한다. 드레스 대신 그가 만든 바지정장을 입고 시상식이나 영화 시사회 등 공식적인 자리에 등장하는 여성 연예인들이 하나둘 늘고 있다. 이영자도 2018년 KBS와 MBC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받을 때 백지훈 디자이너가 만든 검은색 바지정장과 흰 바지정장을 입었다. 하얀색 바지정장을 입은 이영자는 따뜻하면서도 카리스마가 넘쳐 보였다.

“(이영자 씨가) 제 옷을 입고 대상을 받으신 데다 화면에 예쁘게 나와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시상식이 끝날 때마다 ‘예쁘게 만들어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더 빛났어요’라고 꼬박꼬박 문자메시지를 보내주셨죠.”

그는 요즘은 여성 CEO들이 바지정장을 많이 주문한다고 덧붙였다.


체형에 딱 맞게 입으면 누구나 아름답다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잖아요. 머릿속에 파워풀한 여성상을 그리면서 여성의 옷을 디자인하고, 섬세한 남성상을 그리면서 남성의 옷을 디자인할 때가 많아요. 옷이 아니라 사람을 돋보이게 하고 싶어서 지나치게 튀는 옷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대신 좋은 소재를 사용하고, 어딘가 한 부분 파격을 시도해서 개성을 살립니다. 좋은 옷은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아야 합니다. 자신의 체형에 딱 맞게 만든 옷을 입으면 누구든 아름다워질 수 있어요. 각자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내 돋보이게끔 해주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걸어온 길은 색다르다. 제이백 쿠튀르를 시작한 건 2012년. 디자이너로서 경력은 그다지 길지 않다. 그가 직접 만든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보고 “내 옷도 만들어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제이백 쿠튀르도 친구들이 “우리가 먼저 주문하겠다”고 권해서 작업실 형태로 시작했다.

“어머니가 의상실을 운영하셨어요. 어릴 때부터 《보그》 같은 패션 잡지를 뒤적이고, 버려진 원단이나 단추 같은 부자재를 가지고 놀았습니다. 그때부터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이었죠. 옷에 너무 집착해 옷차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학교에 가기 싫을 정도였어요. 디자이너인 어머니조차 ‘네 취향은 맞출 수가 없다’면서 ‘네 옷은 네가 직접 사서 입어라’고 하셨어요.”

그는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예고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대학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현대 무용을 배우면서 몸의 구조와 움직임도 익혔다. 대학 시절부터는 옷을 직접 만들어 입고 다녔고, 누나의 웨딩드레스도 만들어줬다. 현대 무용을 배운 덕분에 움직일 때도 편안한 옷을 만들 수 있었고, 튀는 옷을 다양하게 입어본 경험이 있어 절제되고 세련된 의상도 만들 수 있었다.

어디서든 옷으로 시선을 모은 그는 대학생 때부터 패션 회사들의 의뢰로 이탈리아와 일본에서 옷을 골라 오는 머천다이저 일을 했다. 2009년부터는 한 패션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연출하는 비주얼 머천다이저로 일했다.

“3년 반 정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주말도 없이 일했어요. 그 사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제 삶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시작됐어요. ‘아들 역할도 제대로 못하면서 일만 하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서른 살이었고, 삶의 방향을 바꿔야 할 때였죠. 일단 퇴사하고 주5일 근무를 하는 곳에 다시 취직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원하는 근무 환경을 갖춘 곳을 찾기가 어려웠어요. 그때 친구들이 ‘너처럼 패션에 미친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네 브랜드를 시작하는 게 어때? 우리가 먼저 주문할게’라고 용기를 불어넣어줬어요. 그 덕에 한남동에 작은 매장 겸 작업실을 마련해 간판도 달지 않고 시작했죠.”


있는 그대로 인정해준 어머니


그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매력을 찾아주면서 옷을 만들고 싶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최선을 다하다 보니 스타일리스트, 패션 에디터 등 패션 전문가들이 먼저 알아주기 시작했다. 그들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유명인들이 찾아오면서 스타들의 옷을 만들어주는 디자이너가 됐다. 10대 아이돌 스타부터 70대 원로배우까지 남녀노소 구분 없이 그의 옷을 입는다. 여성복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지만 남성 고객도 많이 찾아오는 바람에 남성복과 여성복을 반반씩 만들고 있다. 하지만 그가 탄탄대로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시작한 지 3년쯤 됐을 때 운영난에 부딪혔어요. 간판도 없이 100% 예약제로 운영해서 알음알음이 아니면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문을 닫아야 하나 고민도 했지만, 영화 의상과 무대 의상, 유니폼 제작 등을 하면서 그 시기를 넘겼습니다.”

그에게 까다롭고 예민한 고객을 만족시키는 일이 어렵지 않은지 물었다.

“누구를 만나든 ‘나만큼 까다롭겠어?’ 하고 생각합니다. 속옷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입었으니까요. 그런데도 어머니는 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셨어요. 그 덕분에 디자이너가 됐죠. 지금도 어머니를 제일 존경해요.”

항상 최고급 원단을 사용했던 어머니처럼 그도 소재를 중요시한다. 순모나 순면 같은 천연소재를 좋아하고, 누비나 천연염색, 한복의 선을 활용해 옷에 한국적인 특성을 담으려 한다. 최근에는 더 많은 고객과 만나고 싶어 기성복도 조금씩 선보이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꿈꾸던 디자이너가 되어 사람들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고 보람을 느껴요.”
  • 2019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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