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터 키크니

“본명도 안 돼요, 얼굴도 안 돼요. 그냥 키크니로 봐주세요”

글·사진 : 서경리 기자  / 그림 : 키크니 

실없는 아재 개그에 낄낄거리며 웃다가도 따뜻한 위로 한마디에 뭉클해진다.
그가 던진 농담 같은 그림 한 장이 가볍지만 묵직하고 ‘웃프’다.
인스타그램에서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으로 댓글에 대한 답을 그려주는 일러스트레이터 키크니.
말도 많고 생각도 많은 자칭 ‘일러스트레이터미네이터’, 작가 키크니를 망원동에서 만났다.
이름처럼 정말 키 큰 사내가 나왔다. 185cm를 훌쩍 넘어 멀리서도 한눈에 띈다. 그가 만든 사이버상의 자신과는 사뭇 다른, 그림보다 조금 더 홀쭉하고 강한 인상을 가졌다. 또 의외로 훈남이다.

“사람들은 키크니 캐릭터 이마에 그린 ‘짝대기’를 주름으로 알아요. 얼굴에 툭 튀어나온 이마(눈썹)뼈를 특징으로 잡아 그린 거죠. 살은 예전보다 많이 쪘어요. 빼야 하는데….”

말도 많다. 두서없는 말이라기보다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데 거침없다고 해야 할까. 작가 키크니와는 이메일로 처음 소통했다. 그는 인터뷰에 응하는 조건으로 ‘얼굴 비공개’를 내걸었다. 그와 마주하자마자 왜 이름이나 얼굴을 공개 안 하느냐고 물었다.

“감추는 게 아니에요. 드러내지 않는 거죠. 사람들의 관심에 익숙하지 않아요. 사진 찍히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SNS에 연재하며 알려진 건 얼마 안 됐지만, 프리랜서 작가로는 10년 차예요. 이름도, 얼굴도 굳이 알려야 할 필요가 없죠.”

일러스트레이터 키크니가 SNS에 올린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
‘키크니’를 검색하면 그가 그린 그림은 여럿 뜨지만, 사진은 거의 없다. 물론 찾으려면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의 말마따나 ‘굳이’ 들춰낼 필요는 없다.

“제 그림을 좋아한다면 그 정도 거리에서 바라봐줬으면 좋겠어요. 유명해지고 싶진 않아요.”

키크니는 요즘 대외 활동이 많아졌다. 강연을 하거나 팬들과 만남도 종종 갖는다. 하지만 단 한 장의 사진도 공개되지 않았다는 건, 그의 뜻을 지켜주는 ‘팬심’일 거다.

“기념촬영은 하지만 한 번도 제 사진을 웹에 올린 사람은 없어요. 고맙게도 선을 지켜주는 거죠.”


일단은 해보겠지만 안 되면 안 해보겠습니닷

키크니의 일상이 담긴 네 컷 툰 ‘그저 그런 일러스트레이터로 살아가는 중’
‘키크니’라는 필명으로 활동한 건 최근. 갑작스럽게 몸이 아파 모든 일을 접고 나서다.

“집안 사정으로 제가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시기가 있었어요. 부담감과 책임감이 컸죠. 일이 해결되고 나서 갑자기 몸에 반응이 왔어요. 워낙 강골이었는데, 어느 날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심장이 뛰었어요.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었습니다.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 내가 죽겠구나 하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매일 산책하며 걷고 또 걸었다. 그림에서 손을 떼고 반년이 흘렀을 때, 가깝게 지내던 형이 “낙서라도 해야 한다”며 SNS에 그림 올릴 것을 권했다. 2018년 2월 인스타그램에 ‘키크니’라는 필명으로 일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에게 그림은 자기 암시와 같다. ‘일러스트레이터미네이터’도 그때 지은 이름이다. ‘나는 터미네이터처럼 단단한 사람이다, 나는 터미네이터처럼 그림 그릴 수 있는 일러스트 작가다’라는 자기를 향한 담금질과 같았다.


그가 SNS에 올리는 ‘그저 그런 일러스트레이터로 살아가는 중’은 짧은 네 컷 만화임에도 기승전결이 있다. 짧지만 강렬한, ‘웃픈’ 그의 일상에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서너 달 만에 팔로어가 1000명으로 늘었다. 그는 “누군가로부터 지지를 받으니 용기가 났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 기운을 받아 뭐든 해보자 해서 시도한 게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이다. 댓글로 ‘○○○을 그려주세요’ 하면 그려주는 식. 그는 여기에도 단서를 달았다. ‘일단은 해보겠지만 안 되면 안 해보겠습니닷’이라고. 반응은 뜨거웠다.

‘노을 진 한강에서 자전거 타는 걸 그려주세요’ ‘제가 키우는 고양이의 속마음을 알고 싶어요’ 등의 댓글에 그는 성심성의껏 펜을 들었다. 한강에서 자전거가 활활 타는 장면과 ‘지가 나를 키운대~’ 하며 배꼽 잡고 웃는 고양이. 어이없는 말장난이 묘하게 실소를 뿜게 한다.

“의도라기보다 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말도 많고 말하는 것도 좋아하니까. 평소 성격 그대로예요. 그림 그릴 때만 조금 예민하고 평소엔 무던한 편입니다. 그림 그리는 사람 같지 않다는 얘기를 자주 들어요. 그림은 일이기도 하면서 제일 좋아하는 것이어서 만족하며 살고 있어요. 그리고 내가 만족해서 올린 걸 또 사람들이 재미있어 해주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죠.”


길치, 방향치, 기계치… 하지만 ‘칼 마감’


‘무엇이든’을 시작하고 5회가 지나면서 팔로어가 일주일에 3~4만 명씩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출판 제의도 들어왔다. 작년 말부터 작업해 지난달 책이 나왔다. 키크니 이모티콘이나 굿즈도 만든다. 그림 그리는 키크니와 일상은 얼마나 다를까 궁금해졌다.

“그림 외에는 잘하는 것도 관심사도 없어요. 쉴 때는 친구와 농구나 볼링을 치며 시간을 보내죠. 길치, 방향치, 기계치에다 깜빡깜빡 잘 잊습니다. 그림 하나가 커서 다른 게 안 보여요.”

일할 때의 그는 또 다른 모습이다.

“어린이 책, 기업, 사업 등 안 해본 것이 없어요. 그림체는 클라이언트한테 맞추고요. 마케팅도 계산적이고 공격적으로 합니다. 마감을 철칙으로 여겨요. 칼 마감! 일단 클라이언트와 관계를 맺으면 일이 끊이지 않는 이유죠. 인스타도 같은 식이에요. 일상 만화는 화·금에 올리고, ‘무엇이든’은 월·목에 올립니다. 저와의 약속이죠.”

지난 3월 20일 발간한 책 《키크니의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
SNS에 그림을 올릴 때도 원칙이 있다. 회사원들의 출근 시간에 맞춰 7시 40분에 올린다. 그림 올리고 댓글을 30분 정도 보고 나서 작업실로 출발하는 일상을 2년째 반복하고 있다.

인터뷰 마지막까지 그는 이름, 나이, 학력 등 개인정보를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그의 짧은 손톱을 보며 ‘혹시 손톱 물어뜯는 버릇은 써도 되느냐’ 했더니 ‘아’ 하며 머뭇거린다.

“어렸을 때부터 버릇이에요. 집중할 때 나오는 버릇 같아요. 아, 근데 이거 나오면 댓글로 혼날 것 같은데요, 손톱 물어뜯지 말라고. 워낙 피드백을 잘 주시거든요.”

그와 나눈 수다가 독자들에게 또 어떤 피드백으로 돌아올지 궁금하다.
  • 2019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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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 2019-04-10 ) 찬성 : 0 반대 : 0
기사가 좀 이상함
2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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