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증인〉 배우 김향기

바르다 김 선생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2000년생인 김향기는 2003년 잡지 모델에 발탁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올해로 경력이 17년 차 배우라 현장에서는 ‘김 선생님’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의 이름은 할아버지가 지었다.
집안이 모두 ‘기’자 돌림인데, 손녀의 이름을 어떻게 지을지 궁리하던 조부는 ‘향이 나는 사람이 돼라’며 ‘향기’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어릴 적부터 조부모와 함께 살았던 김향기는, 어린 시절 데뷔한 것 외에는 특별할 것 없는 성장기를 보냈다. 또래 친구들도 그를 연예인으로 대하지 않았다. 하정우가 지었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오래된 별명인 ‘김냄새’도 어릴 적부터 불리던 이름이다.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김향기에게는 그만큼 오래된 친구들이 그곳에 있다.

“제가 특별히 친구들과 다르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촬영도 거의 방학 때 했고, 학교에도 빠짐없이 갔으니까요. 중·고등학교 때는 1년에 한 작품 정도 했기 때문에 친구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고요.”

자아가 형성되기 전에 대중에 알려졌지만, 아역 배우로서 고충을 크게 느끼지는 않았다. 부모는 언제든 “연기는 네가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했다. 김향기는 오히려 작품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춘기도 고요히 지나간 것 같다고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늑대소년〉을 하게 됐다. 이때 연기가 재미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좋아서 하는 연기의 맛을 알게 됐다.


누군가에게 상처 되지 않길
현장에서는 누가 되지 않길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때 만난 작품이 〈증인〉이다. 이미 〈우아한 거짓말〉과 〈오빠생각〉으로 인연을 맺은 적 있는 이한 감독의 작품이다. 이한 감독은 영화로 인간에 대한 사려 깊은 연민과 애정을 표현한다. 그의 영화에는 〈완득이〉의 완득이처럼 다문화 가정의 아이나, 〈우아한 거짓말〉의 천지처럼 왕따를 당하는 아이, 〈오빠생각〉의 상렬처럼 전쟁 통에 가족을 잃은 아이가 나온다. 무언가를 잃은 이들에게 ‘세상은 아직도 살 만한 곳’이라고 이야기해주는 게 그의 영화다.

〈증인〉에는 평범함을 잃은 한 소녀가 나온다. 김향기가 맡은 지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앓고 있다. 지적 장애를 수반하지 않은 자폐성 장애다. 한번 본 일은 사진처럼 기억하고, 미세한 소리도 천둥처럼 알아듣지만 세상이 보는 그는 ‘정상이 아닌’ 소녀일 뿐이다.

“제가 연기하는 모습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까 봐 고민이 많았어요. 영화를 준비하면서 저 역시 이들을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다가가기 힘든’ 이들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죠.”

〈증인〉의 소재는 평범하지 않다. ‘살인사건을 목격한 유일한 증인이 자폐 소녀’라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지우는 자신이 목격한 것을 그대로 이야기하지만, 법원은 증인의 말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저는 한 번도 현장에 계산하고 나간 적이 없어요.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느낌을 믿고 갔죠. 그런데 이번 작품은 제가 준비하고 긴장하고 있더라고요. 촬영 전에 본 자료들과 책을 기억하려고 애썼어요. 누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이한 감독은 “자폐에도 다양한 모습이 있다”고 말했다. 김향기가 해석한 지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된다고 말이다. 그의 걸음걸이나 말투, 눈빛의 흔들림이나 손가락의 모양은 계산한다고 나올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현장이었어요. 함께 호흡을 맞춘 정우성 선배님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게 몸에 밴 분이었고요. 제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조용히 곁에 있어주셨어요.”

지우의 엄마 역을 맡은 장영남 배우와는 벌써 네 번째 모녀로 호흡을 맞췄다. 이제 현장에 가면 정말 엄마 같은 느낌이다. 자신이 자라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분이라, 더 각별하다고 김향기는 말했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신과 함께〉의 덕춘 역으로 10대에 쌍천만 배우의 반열에 오르고 청룡영화제 여우조연상까지 받은 김향기지만, 그의 행보는 그렇게 대중적이지만은 않았다. 〈신과 함께〉 이후 그가 선택한 영화는 〈영주〉 그리고 〈증인〉이다. 〈영주〉는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졸지에 가장이 된 영주의 이야기를 담은 작은 영화다. 학업을 포기하고 동생을 돌보려 애쓰지만, 동생은 엇나가기만 한다. 믿었던 어른들의 민낯은 냉혹하기만 하고, 결국 영주는 자신의 부모를 죽게 만든 가해자 부부를 찾아간다. 하지만 가해자의 얼굴을 한 이들은 영주에게 한없이 따뜻하고 정답다. 이 혼란을 표현하는 게 김향기의 몫이었다.

“〈영주〉는 저 자신을 한 단계 성장시켜 준 작품이에요. 하고 나서 제가 조금 더 단단해진 느낌이었어요.”

〈영주〉에서 가해자의 아내는 자신의 가게에서 돈을 훔친 영주에게 이렇게 말한다.

“영주야, 넌 좋은 애야. 아줌마는 알 수 있어.”

그리고 〈증인〉에서 지우는 순호(정우성)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도, 나를 이용할 겁니까…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김향기의 작품에는 ‘좋은 사람’에 대한 고민이 묻어 있다. 그 고민을 온몸으로 통과하고 나면 또 한 뼘 자란 그가 서 있다.

“지우는 정의로운 친구가 아니라 정직한 친구라고 생각해요. 지우는 상황에 따라 거짓말을 하지 않거든요.”

그리고 스스로를 돌아본다. ‘나는 정직한 사람이었는가.’ 이한 감독은 김향기를 ‘연기 천재’라고 부른다. ‘미세한 눈빛으로 진심을 전달하는 몇 안 되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아마 그가 천재가 된 건 아직 거짓 없이 정직한 눈빛을 간직하고 있어서인지 모른다.

“스무 살이 돼서 좋은 건, 이제 뒤풀이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거예요. 선배들과 함께 어울려서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싶어요.”

스무 살이 되어 또 하나 좋은 점은, 19학번 새내기가 되어서다. 그는 2019년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수시 전형에 합격했다.

“같은 꿈을 꾸는 친구들과 함께 공부한다는 게 기대돼요. 같은 고민을 나눌 수 있다는 것도 좋아요. 연기에 대해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점도요.”

어서 운전면허를 따서 SUV 같은 큰 차를 몰아보고 싶고, 대학교 구내식당에서 파는 학식을 먹어보고 싶다고 말할 때 김향기는 ‘김 선생님’이 아닌 또래 아이로 보였다. 애어른 같기도 하고, 어른 아이 같기도 한 김향기의 스펙트럼은 그래서 넓다. 그리고 그 스펙트럼을 하나로 모으는 빛은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일 테다.
  • 2019년 03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01911

201911

구독신청
낱권구매
전체기사

event2019.11

event
event 신청하기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30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