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 박사 김태우

내가 게으르다고? 베짱이가 억울해!

글·사진 : 서경리 기자

〈개미와 베짱이〉는 대표적인 이솝우화다. 개미가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할 때 놀기만 한 베짱이는 겨울이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우화는 지금은 힘들더라도 ‘열심히 노력’해야 겨울날 추위에 떠는 베짱이 신세를 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실제 베짱이는 이솝우화에서처럼 게으른 곤충일까?

국내 최초 메뚜기 박사로, 20년 동안 베짱이 생태를 연구해 온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사, 김태우 박사를 만나 물었다. 베짱이는 메뚜기목 여치과 베짱이류의 곤충으로, 넓은 범위에서 메뚜기에 해당한다.

“여름 내내 짝짓기를 위해 열정적으로 울부짖는 베짱이가 들으면 참으로 억울한 이야기죠. 베짱이 노래가 아름다운 소리로만 들리겠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주어진 삶에서 최선을 다하는 피나는 노력입니다.”

동물의 세계에서 짝짓기는 필생의 과업이다. 베짱이는 알 상태로 겨울을 나고 봄에 부화해 여름이 되어야 완전한 성충이 된다. 우리가 아는 베짱이의 모습으로는 두어 달 사는 게 고작. 가을이 지나면 다시 알을 낳고 죽는 게 그들의 삶이다. 일 년 남짓의 짧은 생, 베짱이가 한 철을 힘차게 울다 가는 이유다. 베짱이 중에서도 소리를 내는 쪽은 수컷이다. 소리로 암컷을 유인해 후손을 남기기 위한 치열한 노력이 바로 ‘베짱이 연가’다.

“풀숲을 걷는데 유독 한곳에서 소리가 명쾌해요. 가까이 가 보니 베짱이 수컷 한 마리에 암컷 네다섯 마리가 있어요. 또 소리가 맹렬한 곳을 가 보면 암컷 한 마리에 수컷이 여럿이에요. 소리를 크게 내야 선택받으니 누구보다 열심히 울어댄 거죠. 또 한곳에서는 다 죽어가는 소리가 나요. 생을 다하면서도 짝짓기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던 겁니다. 보다 잘, 더욱 멀리, 좀 더 멋진 소리를 내기 위해 수컷들은 엄청난 경쟁을 합니다. 베짱이계에서는 노래를 잘해야지만 선택받을 수 있거든요. 인간으로 따지자면 방탄소년단인 거죠.”


〈개미와 베짱이〉의 반전 교훈


학자들은 사랑을 갈구하는 베짱이의 노래를 아름답게 묘사하기도 한다. 곤충학자 파브르는 곤충 관찰기에 “베짱이가 소리 내는 것은 삶의 환희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썼다. 김 박사는 베짱이의 이름에 대해서도 사람들의 오해가 있다고 했다. 개미가 일하는 동안 ‘배짱 좋게’ 노래만 부른다고 해서 베짱이로 불리는 것으로 알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베짱이는 베를 짜는 소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입니다. 중국에서는 ‘직조충(織造蟲)’으로도 부르죠. 농경사회에서는 낮에 나가 밭일을 하고 해가 져야 집에 돌아와 베틀로 모시 옷감을 짰는데, 베짱이는 야행성이라 주로 베틀 돌릴 때 소리를 냈습니다.”

김태우 박사는 곤충의 소리에 관심이 많다. 그는 국립생물자원관에서 2008년부터 5년 동안 한국 자생 생물의 소리를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했다. 한국의 여치와 귀뚜라미, 매미 등 소리로 소통하는 곤충군을 찾아 매일 산과 들로 다녔다. 그 결과를 모아 지난 2010년 《소리 도감》을 냈다.

그는 “점점 인공 소음에 가려 곤충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없게 됐다”며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라는 라디오 광고처럼 사라져 가는 자연의 소리도 기록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소리에는 생물의 유인이나 회피의 효과가 있어요. 멧돼지 피해가 있는 곳에 호랑이 소리를 녹음해 켜 두거나, 코끼리 피해가 있는 지역에 코끼리가 무서워하는 벌 소리를 들려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죠. 또 소리에 반응하는 곤충을 유인하는 효과도 있어요. 잔디밭 해충인 땅강아지를 동족의 소리로 유인해 박멸함으로써 피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다. 김 박사는 원활한 생태계 유지에도 소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멸종 위기종 중 소리로 통신하는 동물들에게 동족의 소리를 들려주면 더 활발하게 활동하며 번식합니다.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소리로 마음을 움직이는 거죠. 《소리 도감》은 동물 통역기, 곤충 통역기인 셈입니다.”


50여 종 메뚜기 찾아내


김태우 박사가 곤충에 관심을 둔 건 어린 시절부터다. 외할머니가 책방에서 사다 준 《어린이 학습 도감》을 겉표지가 닳도록 읽었다고 한다. 어느 페이지에 어떤 곤충이 나오는지 다 외울 정도였다. 아직도 책장 구석, 곤충 도감이 보물처럼 자리해 있다.

“사슴벌레 잡으려고 나무 구멍 뒤지고, 벌레를 잡아다 싸움 붙이거나 애벌레를 키워 나비로 부화시켜보기도 했어요. 스스로 즐거운 걸 찾아가는 아이였습니다.”

고교 시절에는 의사나 수의사도 꿈꿨다. 건국대 농공학과에 진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군 제대 후 학력고사를 다시 치르고 생물학과로 진학했다. 곤충으로 관심을 돌린 건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면서다. 곤충을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어 ‘풍뎅이’ 박사인 김진일 성신여대 교수 제자로 곤충 세계에 입문했다. 국내에서 생물군에 관한 연구가 미진했을 때, 그는 누구도 가지 않은 ‘메뚜기’ 연구에 올인했다.

“1994년에 건국대 출판국에서 출간한 《한국곤충명집》을 보며 공부했는데, 지금 제가 그 명집을 만들고 있어요. 당시만 해도 미기록 종이 수두룩했죠. 지금은 웬만한 곤충이 데이터화되어 있습니다. 생물자원관이 생기면서 이 분야에 인력도 투입됐고, 정부 예산을 들여 우리나라 생물들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가 메뚜기 연구에 바친 세월만 20년. 1999년, 그가 처음 메뚜기를 연구할 당시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메뚜기 개체 수는 120여 종이었는데, 지금은 170여 종까지 발견됐다고 한다. 50종 이상을 김태우 박사가 찾아낸 셈이다. 새로 발견된 생물 종에는 학명에 발견자의 이름을 넣는데, 김태우 박사의 이름을 따 ‘Kim’이 붙은 메뚜기만 5종이다. 그가 연구를 이어가는 사이 우리나라 곤충학자들이 밝힌 곤충 종도 1만 2000종에서 1만 8000종으로 늘었다.

“지금까지 제가 메뚜기 종을 밝히고 저변을 넓히는 기초 작업을 했다면, 후배들은 심도 있는 연구를 이어가야 합니다. 경제 성장 못지않게 기초과학 분야도 압축 성장하고 있어요. 이제 한국의 생물군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가 필요합니다.”

김태우 박사는 곤충, 그중에서도 ‘메뚜기’와 관련해 우리나라에서 독보적인 연구 결과를 보유하고 있다. 그는 곤충관을 피력했다.

“생태계의 모든 종은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합니다. 60만 종에 달하는 곤충은 다양성이 가장 높은 생물군이죠. 곤충이 다양해진 이유 중 하나는 항상 새로운 길을 개척했기 때문입니다. 곤충은 깊은 물속이나 모든 곳에 침투해 적응하고 살아요. 곤충의 세상은 항상 새롭습니다. 곤충을 통해 배울 점이 많죠. 시야를 넓게 보고 길을 찾다 보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 보입니다.”
  • 2019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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