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석 호우비스트로 셰프

서른 살 청년 셰프, 요리에 바친 3만 시간

글·사진 : 서경리 기자

tvN 〈수미네 반찬〉이 인기다. 최현석, 미카엘, 여경옥 등 양식·중식 스타 셰프가 총출동하는데, 유독 한식 가정식에서는 꼬리를 내리고 절절맨다. 어느 분야든 경지에 오르면 다 통할 것 같은데 요리는 예외인 듯하다.

이탈리안, 프렌치 파인다이닝을 아우르면서도 일찍이 한식에 주목한 청년 셰프가 있다. 서교동에 있는 ‘호우비스트로’의 최병석 셰프. 이제 서른 살이지만 경력은 화려하다. 한국조리사관학교 호텔조리과를 졸업한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요리학원을 다니며 중식, 일식, 양식 조리사 자격증에 제과제빵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출전한 한국국제요리대회에서는 찬요리, 더운요리 부문에서 모두 금상을 수상했다. 최근 들어 일찌감치 요리사의 길에 들어서는 ‘요리영재’들이 제법 눈에 띄지만 당시만 해도 특이한 경우였다.

이후에도 최 셰프는 군 복무 기간을 제외하고 인생의 모든 시간을 요리에 오롯이 바쳤다. 아시아 50대 레스토랑에 선정된 압구정 ‘톡톡’과 한남동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아르모니움’ 파트장을 거쳐 이태원 유명 프렌치 비스트로 ‘꽁뜨와’의 헤드셰프에 올랐다. 헤드셰프에 오를 당시 그는 스물여덟 살이었다.

너무 일찍 정상에 오른 탓일까, 그는 한계에 부닥쳤다. 남들처럼 유럽 유학길도 생각했지만, 그의 선택은 엉뚱하게도 ‘한식 파인다이닝’이었다. 앞으로 제대로 된 퓨전을 하려면 한식을 먼저 깨쳐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게다가 만성신부전으로 오랜 기간 신장 투석을 하던 어머니가 신장 이식수술을 받으면서 그는 한식 재료 연구에 더욱 몰두했다.

그의 다음 행보는 미쉐린가이드 별 두 개를 받은 정통 한식 레스토랑 ‘권숙수’였다. “이곳에 셰프 드 파티(파트장)로 들어갔습니다. 김치 담그기부터 반찬 만드는 것까지 하나하나 배웠죠. 귀한 재료도 많이 다뤄봤고, 무엇보다 흔한 재료를 새롭게 다루는 시각을 가지게 됐습니다.”


지하철역에서 김밥 팔아 요리학원비 마련

최병석 셰프가 고등학교 때 출전한 ‘국제요리대회’에서 ‘찬요리’ 부문 금상을 수상한 ‘아무스부쉬’.
최 셰프가 요리에 일찍 눈을 뜨게 된 건 외할머니의 영향이 크다. 어릴 때부터 서울 정릉 외할머니댁에 가면 늘 맛있는 음식이 넘쳤다.

“외할머니가 흔한 재료들로 뚝딱뚝딱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내는 모습이 마술사 같았어요. 외할머니의 음식에는 마음속 깊은 곳까지 따뜻하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었죠. 옆에서 구경하던 저에게 ‘요리는 항상 먹는 사람을 생각하고 만들어야 그 따뜻함이 전해진단다’고 하시던 말씀이 아직도 가슴에 ‘콕’ 박혀 있습니다.”

중학교 때까지 수영 유망주였던 그는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엉뚱하게 요리사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부모님은 물론 외할머니까지 모두 말렸지만 그럴수록 그는 더 고집을 부렸다. 결국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방과 후에 보습학원 대신 요리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반대가 극렬했던 부모님이 학원비를 줄 리는 만무했다. 그는 학원비를 벌기 위해 김밥을 만들어 지하철역 근처에서 행상을 시작했다.

“김밥이 꽤 잘 팔려서 생각보다 많은 돈을 벌었어요. 학원비를 내고도 남아 방학이 되면 지방으로 미식 기행을 다니곤 했죠. 그때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한국에서의 양식은 장단점이 분명하다. 다른 나라의 요리를 다른 나라에서 하는 거라 한계가 있지만 재료를 다루는 조리 기법이 섬세하게 발달해 있다.

양식의 조리기법을 한식 재료에 접목해서 편안하게 다가가는 퓨전요리를 개발하는 것, 이것이 최 셰프의 지향점이다. 여기에 외할머니처럼 요리에 따뜻함까지 담아내고 싶어 한다.


파인다이닝에서 16시간 근무

‘국제요리대회’에서 ‘더운요리’ 부문 금상을 수상한 ‘해산물테린’. 홍합과 홍게살, 새우살을 채워넣고 야채로 감싼 후 요거트소스를 곁들였다.
보통 셰프들의 근무시간은 하루 12시간 정도다.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버티기 어렵다. 소수의 셰프만 발을 디디는 파인다이닝일수록 더 치열하고 고되다. 그는 “그 세계에서 살아남고자 하루 16시간 넘게 일했다”고 고백한다. 남들보다 두세 시간 먼저 출근하고 두세 시간 늦게 퇴근하는 악바리 생활을 7년 가까이 했으니 근성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수준이다. 그와 같이 요리를 시작한 대학 동기 수백 명 중 아직까지 요리사의 길을 걷는 사람은 1%도 안 된다고 한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죠.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 1만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제가 지금까지 요리에 바친 시간이 3만 시간도 넘어요. 이제야 뭔가 알 것 같습니다. 그동안 파인다이닝에서 고급 요리에 몰두했으니 이제는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요리를 하고 싶어요.”

최 셰프에게 요리는 이제 넘어서야 할 벽이 아니라 안식처가 됐다. 그는 조심스레 “건방지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요리를 즐기면서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강남에 주로 몰려 있는 유명 파인다이닝을 떠나 주머니 사정 가벼운 사람들이 모인 홍대 쪽에 자리한 호우비스트로를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다소 경직돼 있는 파인다이닝과 달리, 창조적 요리를 개발할 수 있는 자유가 많아진 것도 그의 모험심을 자극했다.


신메뉴 ‘욜로볼’


얼마 전 최 셰프는 하와이안 샐러드인 ‘포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샐러드와 밥을 결합한 한 그릇 음식을 개발했다. 볶은 보리와 현미 등 곡물과 샐러드 위에 참치타다키, 명란, 스테이크 같은 메인 요리들을 토핑처럼 얹은 음식이다. 이름은 ‘욜로볼’. 인생은 한 번뿐(You Only Live Once· YOLO)이라는 뜻의 용어에서 따왔다.

“어릴 때 외할머니가 말씀하셨어요. 공부는 대신 해줄 수 있어도 밥은 대신 먹어줄 수 없다고. 지나간 한 끼는 되돌릴 수 없다고 하셨죠.”

욜로볼은 손님들에게 반응이 좋다. 회사에서 도시락으로 먹고 싶다는 요청이 쇄도하면서 B2B(Business to Business) 공급으로도 이어졌다. 욜로볼의 재료는 고정불변이 아니다. 제철음식을 활용해 그때그때 창의적으로 바뀐다.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어요. 봄나물을 욜로볼에 넣어서 제철 신메뉴를 만들어볼 계획이거든요. 도다리 쑥 욜로볼 같은 것도 생각 중이고요.”

최 셰프는 욜로볼에 이어 프렌치 달팽이 요리 레시피를 참골뱅이에 접목한 메뉴도 개발 중이다. 그의 손에서 앞으로 또 어떤 요리가 탄생할지, 요리 마술사 최 셰프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 2019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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