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기타리스트 전장수

카네기홀에 퍼진 ‘독도의 사계’

글·사진 : 서경리 기자

역사의식과 철학이 분명한 이들은 일을 대하는 깊이가 다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이 우리의 뿌리 깊은 역사를 악기의 선율에 품는다면 거장 바흐나 모차르트, 베토벤과는 또 다른 웅숭깊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 클래식 기타리스트 전장수는 기타를 잡은 첫 순간부터 이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 그는 올해 독도의 날(10월 25일)에 미국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자작곡 ‘독도의 사계’를 연주한다.
“우리나라 국토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이 어딘지 아시나요? 바로 독도입니다.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우리는 독도를 일본에 빼앗겼어요. 일제의 침략으로 국권을 상실한 경술국치의 역사가 담긴 섬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뼈아픈 역사의 증거죠. 독도가 우리 땅임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독도의 의미를 되새기고 잊지 말자는 마음을 담아 ‘독도의 사계’를 작곡했습니다.”

‘독도의 사계’는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뉘어 계절별로 3악장씩 총 12악장으로 이루어진 곡이다. 독도의 자연이 갖는 고귀함과 사계절 경관, 역사의식을 풀어냈다.

그가 독도에 첫발을 디딘 건 2009년 7월이다. 독도에 닿기까지 6시간, 출렁이는 배 안에서 “독도와 왈츠를 추는 듯했다”고 회상했다.

“1953년 7월, 한국전쟁의 휴전을 앞둔 혼란한 시기에 일본 순시선이 독도에 왔어요. 홍순칠을 비롯한 33명의 민간 의용수비대가 이를 물리쳤죠. 온몸과 영혼을 바쳐 독도를 지켜낸 겁니다. 독도에 갈 때마다 ‘아픔의 역사를 잊지 마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해요. 독도를 위해 희생한 이들에게 바치는 곡이 ‘독도의 여름’입니다.”

‘여름’은 사계 중 제일 먼저 완성됐다. 섬이 주는 듬직함과 자연의 웅장함, 치열했던 역사, 뜨거운 날들이 극적인 멜로디로 그려진다. 그는 이 곡으로 2010년 카네기홀 무대에 섰다. 음악인들의 로망인 카네기홀에서 한국인 기타리스트로는 처음으로 독주회를 연 것. 홀을 가득 메운 300여 명의 관중이 기타 선율로 풀어낸 우리 땅, 독도 이야기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이후 2015년 ‘봄’을 발표했다. 사계를 완성하기까지 총 8년,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물었다.

“먹고살기 바빴죠. 강연도 다니고, 무엇보다 클래식 기타를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습니다. 우리나라 대학에는 기타 전공이 몇 없어요. 기타라는 악기를 가볍게 생각해서죠. 이런 인식을 바꾸기 위해 공연도 많이 다니고 대학도 찾아다녔습니다.”

‘독도의 사계’가 한국에서 나고 자란 그의 사명이라면 클래식 기타 전도는 인생미션이다.

“기타에도 종류가 다양합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반주를 위한 기타가 통기타고, 일렉트로닉 기타, 클래식 기타 등, 음악에 따라 여러 가지 소리를 내죠. 기타는 노래 반주용으로만 생각하는데 클래식 기타 단독으로 바흐의 곡을 연주할 수도 있어요. 앙상블이나 오케스트라와 협연도 가능하고요.”

그는 클래식 기타를 알리기 위해 2014년부터 2년여 동안 11개 도시를 돌며 독주회도 열었다. 또 음악페스티벌에 음악감독으로 참여해 기타의 대중화에도 힘쓰고 있다.


음악으로 철학하다

기타리스트 전장수가 클래식 기타에 입문한 건 중학교 때다. 버스정류장 앞 레코드 가게에서 들려오는 기타 연주가 ‘마술피리’처럼 그를 음악으로 이끌었다고 한다.

“통기타 음악이 유행할 때였어요. 공부보다는 음악에 빠져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타를 접했습니다. 독서실에서도 이어폰으로 라디오를 들었어요. KBS 클래식FM 93.1을 즐겨 들었는데, 클래식을 오케스트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악기, 그중에서도 기타로도 연주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부모님을 졸라 기타를 배우러 갔죠.”

본격적으로 기타를 배우려니 주변의 시선이 좋지 않았다. 개인 지도를 받고 오면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냐’ ‘밤무대나 나갈 거 뭐 그리 열심히 하냐’는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에게 처음 기타를 가르쳐준 스승은 달랐다. 진정한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철학을 가진 이였다. 레슨 전에도 한 시간은 눈을 감고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추상적인 소재를 화두에 올리고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역사의식과 철학을 사유하며 교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악기를 다루더라도 음악가 정명훈이나 사라 장, 장한나의 뒤꽁무니를 쫓아 최고가 되기 위해 애쓰기보다 ‘내가 행복하고 나의 인격과 철학이 담긴 노래를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에게 음악은 곧 정신이었다.

“백과사전을 보면 음악은 음을 재료로 사람의 철학이나 사상, 감정을 나타낸다고 쓰여 있어요. 음악을 통해 내가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세상을 대하는 자세를 철학 하는 거죠. 역사와 철학에 대한 사유가 깊어요. 음악인이라는 직업이 그래서 행복합니다.”

고교 시절을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를 마친 그는 미국 예일대학원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고 기타를 수학했다. 이후 빈 국립음악대학교에서 최고 연주자 과정을 마쳤다.

누구에게나 인생을 살며 전환점을 맞는 순간이 있다. 유학 시절, 전공 교수는 그에게 “다른 작곡가들의 곡만 연주하지 말고 너의 곡을 써라”라는 말을 종종 했다. 클래식 기타를 배우면서 베토벤과 바흐의 곡은 꾸준히 연주했지만, 우리의 소리, 국악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서양악기를 다루면서 정작 핏줄인 국악을 모른다는 데에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국악기 중에 대금을 배웠어요. 또 해금과 기타와의 협연 곡을 써서 국립국악원에서 공연도 했죠. 그때부터 우리 것을 소재로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독도에 관심을 가진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11월 11일 예술의전당 오케스트라 공연


전장수는 ‘독도의 사계’를 기타 연주곡으로 한정하지 않고 60~70명의 오케스트라 연주곡으로 확장했다. 오케스트라 버전은 11월 1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된다. 이 공연은 전장수가 직접 지휘를 맡았다.

‘독도의 사계’ 악보도 곧 출간할 예정이다. 음악인에게 악보는 자서전과 같은 의미다. 그는 “악보가 출판되면 더 많은 이에게 전달되고 후대까지 이어질 수 있다”며 “우리의 국토, 독도를 알리는 기록으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독도의 사계를 널리 알려 즐기도록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종종 젊은 친구들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찾아라. 그 안에서 역사의식을 가져라. 그래야 너의 일이 철학이 되고 사람을 세울 수 있다. 우리의 핏줄, 뿌리를 알고 살아라’고요. 끊임없는 자아 성찰을 통해 내면의 뿌리를 찾을 때 우리는 비로소 성장할 수 있습니다.”

40대 중반에 들어선 그는 일생을 놓고 볼 때 여름의 끝자락 혹은 가을의 초입에 있다. 인생의 사계에서 반을 넘어선 셈이다. 기타를 처음 잡아 인성을 다지는 봄을 거쳐 역사의 뿌리를 찾아가는 혈기로 여름을 보냈다. 이제 가을, 무르익은 열매를 딸 때다. 성공보다 과정에, 삶과 철학에 집중하며 충실하게 보낸 그의 시간이 음악으로 무르익어가고 있다.
  • 201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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