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유현준

주거 문제로 고통받는 청년들에게

글 : 이근미 객원기자  / 사진 : 서경리

마음에 꼭 드는 집에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루의 반을 보내는 직장이나 학교의 환경도 흡족하지 않은 게 현실이다. 베스트셀러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와 《어디서 살 것인가》를 통해 우리 사회에 새로운 제언을 한 유현준 홍익대 건축대학 교수를 만났다.
인구의 27.2%가 1인 가구인 시대, 원룸과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유현준 교수가 외치는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는 과연 실현 가능할까. 유 교수는 건축에 대한 최저 수준이 점점 낮아지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예전에는 20평대 아파트가 최저 아니냐고 했는데 원룸에 이어 창문이 없는 고시원이 나왔어요. 아파트 건축법규에 동지일 기준으로 햇볕이 4시간은 들어야 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런 법규에 저촉받지 않는, 말도 안 되는 주거 형태들이 생겼어요. 1인 가구에 대한 최저 기준을 만들어야 합니다.”

당장 주거 환경을 바꾸기가 쉽지 않은 데다, 1인 가구가 점점 더 늘어날 게 뻔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유 교수는 원룸에서 할 수 없는 걸 도시가 해결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길거리에 벤치를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1km마다 공원을 하나씩 조성해 집에서 10분 이내에 드나들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마을 도서관이 들어서면 좋겠죠. 100만 권 장서 도서관 1개보다 1만 권 소장 도서관 100개를 만들자는 겁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세금을 공원과 도서관 짓는 데 사용할 수 있도록 청원하고 감시해야죠. 퍼블릭 공간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면 정치인들이 선거 공약을 내놓을 겁니다. 그 나라 건축의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가치관 수준입니다.”

집 문제 때문에 결혼을 미루거나 아예 포기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이 현상이 출산율 세계 최저로 이어지자 정부는 청년세대가 10년간 거주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 정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유 교수는 이에 대해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는 의견이다.

“10년 동안 임대주택에 살다 나오면 그 사람은 영원히 집을 마련하지 못해요. 혜택을 받다 보면 자칫 의존적으로 될 수 있어요. 잘못하면 링거를 꽂고 살게 하는 일이 됩니다. 집을 소유할 수 있게 해주고, 집값이 올라가는 것에 대한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어른들은 그렇게 했잖아요.”


좋은 공동체의 조건


소유보다는 공유를 외치는 시대인 데다, 집을 사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유 교수는 학교 문제와 청년 주거 문제, 지역 균형 개발과 도시 재개발을 한꺼번에 해결할 방법이 있다고 했다.

“낙후된 지역에 공립학교를 잘 지어주고, 은행에서 집값의 80~90%를 청년들에게 대출해주어 가격이 떨어진 저렴한 집을 사게 해주면 됩니다. 아니면 정부가 집을 사서 청년들에게 다시 팔면 되죠. 임대가 아닌, 소유하게끔 해줘야 좋은 공동체가 만들어집니다. 도시가 좋아지면 자연히 집값이 오르겠죠. 집값 상승분에 대한 이익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부자도 되게 하면서 세상도 좋게 만드는 거죠.”

앞 세대는 고성장 기조와 금융 시스템 덕에 부동산과 벤처 붐으로 부를 축적했다. 청년들에게도 같은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 유 교수의 주장이다.

“금융 시스템이 자산을 가진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면 젊은 친구들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발휘할 길이 없어요. 담보가 없어 대출을 못 받으니 비트코인밖에 답이 없는 거죠. 리스크 없는 투자는 없어요. 가능성 있으면 밀어줘야 합니다.”

유 교수는 청년들에게 자신들의 능력을 믿고 정책을 바꾸면서 사회의 룰도 변화시켜 나가라고 권했다.

“청년들이 직접 집을 사게 해달라는 얘기를 해야죠.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밀려나면서 임대료 낮춰달라고 할 게 아니라 낙후된 동네로 들어가면서 상가를 살 수 있게 금융 시스템을 고쳐달라, 그런 얘기를 하라는 거죠. 건물주가 되어 열심히 일하면 될 거 아닙니까. 자잘한 혜택을 받기보다 시스템을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청년들에게 희망이 없다는 말이 나도는 요즘, 제자들에게 어떤 얘기를 해주느냐고 묻자 그는 한숨을 쉬었다.

“해줄 얘기가 없어요. ‘이렇게 하는 게 맞다’는 얘기를 하기 힘들어 제 인생의 실패담을 주로 들려줍니다. 저는 생각한 대로 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이 방향으로 가고 싶다면 그 길이 아닌 약간 틀어진 길만 열렸어요. 차선을 선택해 달리다 보니 오늘에 이른 거죠. ‘지금의 실패가 장기적으로 이득이 될 수 있다. 차선을 통해 계속 노력하라’고 얘기합니다.”

힘든 가운데서도 자신의 능력과 테크놀로지를 합쳐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청년이 많아 그는 희망을 가진다고 했다.

“요즘 유튜브에서 먹방 하는 친구들, 잘 먹는 능력에 인터넷 기술을 녹여서 자기 길을 만들잖아요. 진취적인 사람들이 세상을 계속 바꿔나갈 겁니다. 모든 사람이 성공할 거라고 보진 않고, 그런 세상은 앞으로도 없어요. 진취적인 생각을 하는 10%만 성공해도 이 사회는 선순환할 겁니다. 내가 바꾼다는 책임의식을 갖고 달려야죠. 한 가지만 조심하면 됩니다. 서로 미워하고 책임 전가하면 자멸합니다. 다양성과 다름을 인정하면서 화합해 나가야죠.”


북한이 열리면…

유현준 교수는 ‘앞 세대보다 정보가 풍부한 것, 이전과 달리 세계로 나갈 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이 청년들에게 유리한 점이라고 진단했다.

“우리나라 청년들은 주입식 교육으로 인해 창의력이 떨어진다고 하죠. 대신 집중력이 뛰어나 기본 지식을 빨리 습득해요. 우리나라 수준의 교육과 능력이라면 전 세계 어디를 가든 경쟁력이 있어요. 저는 외국에서 공부하고 여러 과정을 거쳐 외국 업체에 입사해 7년간 일했지만, 지금은 우리나라 대학을 졸업한 뒤 이메일로 지원서 보내고 해외로 나가는 시대예요. 대기업에 들어가려는 노력의 반만 기울이면 가능해요. 인터넷으로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영어도 잘하니 청년들이 세계와 경쟁했으면 좋겠어요.”

그는 북한이 열리면 청년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완전히 다른 사회와 융합하면 새로운 것이 나오고, 그 상황에서 신산업이 발달하고 새로운 건축도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바뀌는 시대를 어떻게 살 것인가, 비전을 가져야죠. IT 붐이 일었을 때처럼 판도를 바꾸는 새로운 산업을 청년들이 찾아내고, 해내면 좋겠어요. 변화의 바람을 잘 파악해서 최선을 향해 가되, 최선이 아닐 경우 차선을 찾아 열심히 달리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 201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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