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 노명우 교수의 ‘니은서점’

부모님을 기린 ‘순수박물관’

지난 9월 7일, 서울 은평구 연서로26길에 작은 서점이 새로 생겼다. 외관을 온통 초록색으로 칠한 ‘니은서점’. 안으로 들어서니 벽을 빙 둘러 책장이 있고, 한가운데에는 긴 탁자가 놓여있다. 33㎡ 남짓한 공간은 서점이라기보다 누군가의 서재나 거실 같은 느낌이었다.

이 서점을 만든 노명우 교수(아주대 사회학과)는 창가의 초록색 의자를 가리키면서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앉아계셨던 의자”라고 설명했다. 반대편 벽에는 어머니가 쓰시던 찻잔을 모아놓은 찬장이 있었다. 사랑했던 연인과 관련 있는 물건을 모아놓은 오르한 파묵의 《순수박물관》처럼 니은서점은 노명우 교수가 돌아가신 부모님을 기리는 공간이다. 부모님 사진과 여권, 수저, 모자, 가방, 공책 등을 모아놓았다.

“2015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년 만에 어머니도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까지 계시지 않으니 우리 가족이 구심점을 잃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어요. 어머니가 중심축 역할을 하시면서 무슨 문제가 생기든 지혜로운 해결책을 제시하셨거든요. 가족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어머니에게 속내를 털어놓으면서 위로를 받았어요. 폐암으로 돌아가시던 날도 어머니는 병원에 찾아온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뜰히 챙기셨습니다. 어떻게 마지막까지 그렇게 의식이 명료하셨는지 의사들도 이해할 수 없다고 해요.”

노명우 교수와 가족은 부모님 장례식 후 조의금을 ‘레인보우 펀드’라는 이름으로 보관했다. 살아계실 때 드리던 용돈을 계속 그 펀드에 넣으면서 뜻있는 일에 쓰려고 준비했고, 궁리 끝에 서점을 열기로 뜻을 모았다. 서점은 항상 주변을 돌아보면서 도움을 주던 부모님, 특히 배움에 대한 갈증이 심했던 어머니를 기리기에 적당한 공간이었다.

노명우 교수는 《세상물정의 사회학》,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을 꿈꾸다》, 《텔레비전, 또 하나의 가족》 등 여러 권의 스테디셀러를 펴낸 사회학자다. 이 공간은 노 교수가 독자들을 직접 만나 소통하는 공간이자, 직장생활에 시달리면서 점점 책과 멀어진 노 교수의 조카들이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었다. 가족의 새로운 구심점이 되도록 모두 쉽게 찾아올 수 있는 장소를 찾아 서점을 열었고, 노 교수와 조카들이 함께 운영하기로 했다.

‘레인보우 펀드’는 노명우 교수의 부모님이 파주에서 운영했던 ‘레인보우 클럽’에서 따왔고, ‘니은서점’은 사람들이 그들 가족을 ‘삼거리 노씨네’라고 부른 데서 착안한 이름이다. 노명우 교수는 올해 초, 시대상을 보여주는 영화와 소설을 통해 부모님 삶을 조명하는 책 《인생극장》 을 펴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어머니가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고, 10시간 정도 녹음해놓은 게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점점 더 솔직하게 마음에 담고 있던 이야기를 하셨어요. 반면 아버지 이야기는 녹음해놓은 게 거의 없었습니다. ‘현장에 가면 당시 아버지에 대해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아버지 고향인 충남 공주, 10대 때 생활하셨던 만주, 강제 징집당해 복무하셨던 일본 나고야를 찾았습니다. 아버지는 나고야 일본군대의 상병으로 광복을 맞았다고 하셨습니다.”

1924년 충남 공주군(현 공주시) 반포면 송곡리,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아버지는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만주 봉천(지금의 선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던 친척의 조수로 일했다. “‘만주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 마음이 어땠을까’ 궁금해서 선양을 찾아갔어요. 당시 역과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지금 보아도 어마어마한 규모예요. 근대적인 대도시 풍경이 10대 시골 소년의 눈에 어떻게 보였을지 짐작이 됐죠. 아버지는 농사꾼으로 되돌아갈 수 없었을 거예요. 만주에서 익힌 사진기술과 모던한 감각으로 시대의 흐름을 좇았죠.”


어머니의 ‘무지개다방’이 사회학자로 키워


아버지는 광복 후 공주와 유성, 조치원을 거쳐 경기도 양주군(현 양주시) 주한 캐나다 부대 앞에서 사진사로 일했다. 이때 어머니와 만나 결혼했고, 캐나다 부대가 철수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미군 부대가 있는 파주로 이사해 사진관을 차렸다. 미군이 편지와 함께 고국에 보낼 사진을 찍어주면서 돈을 모은 아버지는 미군을 위한 술집 ‘레인보우 클럽’을 차렸다. 미군 부대가 철수하고 한국군이 들어오자 ‘레인보우 클럽’은 무지개다방과 술집인 무지개홀로 나뉘었다.

“4남매 중 막내인 저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어머니가 있는 무지개다방으로 달려갔습니다. 중학생 때부터는 주방에 들어가 일하기도 했죠. 어머니는 다방 종업원들을 딸처럼 챙기셨어요. 결혼해서 떠난 사람들이 어머니를 찾아오고, 어머니도 그들 집에 찾아갈 정도였으니까요. 어머니 옆에 딱 붙어서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때부터 인간의 희로애락에 관심이 많았어요. 학자로서 지금 저의 주된 관심사도 삶의 희로애락입니다. 무지개다방이 저를 사회학자로 만들어준 셈이지요.”

그의 말을 들으며 피나 바우슈가 떠올랐다. 레스토랑이 딸린 여관을 운영한 부모님 밑에서 성장하면서 어릴 때부터 인간의 희로애락에 관심이 많았던 독일의 현대무용가 피나 바우슈.

1936년 서울 창신동 산동네에서 태어난 그의 어머니는 집안 형편 때문에 중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어머니는 자신이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었기 때문에 ‘좋은 엄마’가 되려 했고, 하고 싶은 공부를 포기했기 때문에 자식 공부만은 끝까지 지원하려 했다. 그래서 아낌없이 책을 사주셨다. 노명우 교수는 어머니의 바람대로 독일에 유학해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저에게 재능이 있다면 모두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니은서점은 ‘인문사회예술 전문 동네서점’을 지향한다.

“사회과학이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도록 한다면, 인문과학이나 예술은 현실을 뛰어넘어 꿈꿀 수 있게 합니다. 삶에 대한 균형감각을 갖추려면 사회과학과 인문과학, 예술이 모두 필요합니다. 철학과 사회학, 예술을 넘나들면서 연구한 아도르노를 제일 좋아하고, 저도 그런 학자가 되고 싶었어요. 사회학자는 바쁘게 사느라 골똘히 생각할 여유가 없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고하는 ‘사유의 대리인’입니다. 그러니 그 사유의 결과물을 사람들에게 열심히 전달해야 하지요. 그동안에는 책이나 강연 등을 통해 전달했는데, 이제 서점이 또 하나의 통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5명의 북텐더


니은서점에는 ‘북텐더’가 있다. ‘북’과 ‘바텐더’를 합친 말로, 어렵고 딱딱한 책을 부드럽고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노명우 교수 그리고 대학원을 졸업한 제자 4명이 북텐더를 맡고 있다. 식당에 가서 메뉴를 추천받듯 니은서점에서는 북텐더에게 책을 추천받을 수 있다. 북텐더가 고른 책을 읽은 후 서점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독서 모임도 시작했다.

“페이스북을 통해 함께 읽을 책을 알리고, 최소 5명에서 최대 10명까지 독서 모임 참가자를 모집합니다. 10명 이상은 앉을 자리가 없거든요. 공간이 크지 않기 때문에 친구 집에 놀러와 함께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북텐더가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역할을 하지요.”

전문가 수업, 저자 초청 강연, 낭독 모임도 때때로 열린다.

“우리 서점이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공유 서재처럼 되었으면 좋겠어요. 전문 서점으로서 잘 알려지지 않은 좋은 책을 발굴하는 일도 중요한 역할이죠. 얼마 전에는 동네분이 찾아오셔서 군대에 있는 조카에게 선물할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셨어요.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적당한 책을 골라드렸습니다. 작은 서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주제별로 읽을 만한 책 몇 권씩을 묶어서 꾸러미로 판매하기도 합니다. 인터넷 서점처럼 1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고, 서점에 없는 책은 따로 주문을 받습니다.”

노명우 교수는 부모님에 관한 책을 쓰고 서점을 준비하면서 부모님을 잃은 슬픔을 이겨냈다고 이야기한다. 베풀기 좋아하고 배움을 갈망했던 그의 부모님도 사람들이 모이고 배움을 나누는 이 공간을 좋아하시지 않을까?
  • 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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