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문자통역 서비스 ‘소보로’ 윤지현 대표

녹취록? 이젠 필요 없어요

글 : 장미 명예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청각장애인에게 문자통역을 해주면 얼마나 편리할까?
대학 프로젝트 과제를 위한 문제제기였다. 학점 떼우기용이 아닌 실전을 위한 수업은 현실이 됐다.
개발에 필요한 수업을 주 20시간 이상 듣고, 200명 이상의 청각장애인을 직접 만났다.
말을 텍스트로 변환해주는 서비스, ‘소보로’의 탄생이다.
인사를 나누는 기자와 윤지현 대표 사이에 특별한 손님이 있었다. 타닥타닥 둘 사이의 대화를 받아 적어 노트북 화면을 메웠다. 똑똑한 비서다. 인공지능 문자통역 서비스 ‘소보로’는 실시간으로 자막을 만든다.

띄어쓰기와 맞춤법은 물론이고 윤 대표의 부산 사투리까지 제대로 옮겼다. 음성인식 정확도는 80~95% 정도. 한글뿐만 아니라 영어, 중국어 서비스도 가능하다. 하려던 질문을 멈추고 감탄사부터 내뱉었다. 윤 대표는 “중국어를 배운 적 없어 아직 테스트를 제대로 못 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기술이 삶을 바꾼다는 말이 떠올랐다.

소보로(SOVORO)는 ‘소리를 보는 통로’다. 말소리를 문자로 변환하는 인공지능 기술 STT (Speech to Text)를 활용해 실시간 자막 서비스를 제공한다. 소보로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서비스를 구매하면 문자통역이 필요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소보로는 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과 정보 접근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청각장애인들에게 문자통역은 수어 못지않게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이다. ARS 전화, 병원 상담 등 일상 곳곳에서 문자통역이 필요한 순간을 만난다. ‘실시간 문자통역 서비스가 있다면 이들이 좀 더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윤 대표가 소보로를 창업한 이유다.


청각장애인 문자통역에서 시작

인기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 에 이런 대사가 있다. “마치 천국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책상만 쳐다보며 학창시절을 보낸 청각장애 학생이 대학에 가서 문자통역을 경험하고 밝힌 소회다. 윤 대표는 이 웹툰을 보고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문자통역을 간편하게 구현하겠다는 생각은 곧 현실이 됐다. ‘창의IT설계’라는 대학 수업을 통해서다. 윤 대표가 다니던 포스텍 창의IT융합공학과에선 프로젝트 수업이 필수인데, 이 과목도 그중 하나다. 일주일에 20시간 이상 수업을 들으며 문자통역 서비스 개발에 매달렸다. 윤 대표에게 이 프로젝트는 학점 채우기용이 아닌 실전이었다.

간단하게 사용 가능한 프로토타입을 완성하자마자 현장으로 나갔다. 포항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대구대학교부터 멀리 부산의 농아인협회까지. 서비스를 체험해보겠다는 청각장애인이 있는 곳이라면 직접 찾아갔다.

“또래 청각장애 학생들이 학교에서 느낀 점을 많이 이야기해줬어요. 소보로가 있어서 꼭 듣고 싶었던 세미나에도 참석할 수 있었다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윤 대표는 그간 청각장애인들을 200명 정도 만났다. 프로토타입을 만든 것에서 프로젝트를 끝내지 말고 서비스 상용화까지 했으면 좋겠다는 응원이 많았다. 이는 창업을 결심하게 만든 중요한 계기가 됐다.


스타트업계에 도전장

음성통화도 실시간 문자로 변환된다.
학기를 마친 윤 대표는 본격적으로 창업에 뛰어들었다. “마음 맞는 팀원을 구해 서울로 가라”는 학과 선배의 조언에 따라 휴학 신청을 하고 포항을 떠났다. 열의에 차 서울로 왔으나 시작은 단출했다. 어렵게 설득해 동료가 된 팀원 둘과 공용 사무실이 전부였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좋은 기회다. 그리고 학교에선 얻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될 거다’라고 결의를 다졌어요. 적어도 우리에겐 일할 공간과 라면이 있다면서요.”

팀원들을 설득한 방법을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소보로 사무실은 세 번 이사했다. 네이버 D2 스타트업 팩토리에서 시작해 MARU180을 거쳐 현재는 성수동 카우앤독에 둥지를 틀고 있다. 세 곳 모두 스타트업계에서는 꽤 입소문이 난 코워킹 스페이스다. 지원서를 받고 심사를 거쳐 입주자를 선발한다. 다시 말하면 소보로의 가능성을 알아본 이들이 있었다는 얘기다. 지난해 제6회 정주영창업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거머쥐었고, 올해는 소셜벤처 인큐베이터 에스오피오오엔지(sopoong)에서 투자를 받았다.

소보로 서비스는 이용시간에 따라 요금이 부가된다. 개인 고객은 시간당 2000원(24시간 이상 결제 시), 기관 및 기업은 시간당 1만 원(200시간 이상 구매시)이다. 소보로 프로그램을 내려받고 로그인한 뒤 버튼을 누르면 자동 번역이 시작된다. 무선 마이크와 수신기를 사용하면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현재 7개 기관과 사용계약을 맺은 상태다.


1%의 힘


이력은 화려하지만 무엇 하나 쉽게 얻은 건 없다. 창업 과정이 순탄했느냐는 질문에 윤 대표는 “전혀 아니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시작한 지 6개월도 안 돼 팀이 와해됐다. 윤 대표처럼 휴학 상태였던 팀원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가버렸기 때문이다. 정주영창업경진대회를 끝으로 윤 대표는 구성원을 떠나보내야만 했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게 돼 마음고생이 심했다.

“사업 하다 보면 사람들이 떠나고 들어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일에 대한 의지만 있으면 새로운 사람을 구하거나 사무실을 얻는 건 그저 할 일 목록에 불과하다고 하시더군요. 그만두는 건 언제든 결정할 수 있으니까요.”

홀로 남은 윤 대표의 곁에 다행히 조력자가 있었다. 정주영창업경진대회에서 멘토로 만난 한상엽 에스오피오오엔지(sopoong) 대표다. 한 대표는 그가 포기하지 않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한 대표의 말에 따라 자신의 마음에만 집중했다.

“사업을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는데, 그래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51%였어요. 그때 포기했더라면 소보로, 그리고 동료들은 얻을 수 없었겠죠.”

1%의 뚝심이 지금의 소보로를 있게 했다. 당시 고민했던 시간은 다가올 어려움도 헤쳐나갈 힘이 됐다. 1%를 믿고 지금까지 왔으니 앞으로도 견디며 가겠다고 윤 대표는 말한다.


공학은 사람을 향한다


소보로는 소통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펼치고 있다. PC 버전 외에도 안드로이드 기기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모바일 버전 소보로가 있다. ARS 인증처럼 민감한 개인 정보가 필요한 경우에도 청각장애인들이 걱정 없이 통화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앱을 설치하고서 가장 먼저 부모님께 전화를 거는 고객들도 다수다. 최근에는 태블릿 PC 서비스 도입도 계획하고 있다. 병원 진료, 관공서 상담 등 언제 어디서든 편리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웹툰에서 소보로를 떠올렸다고 했는데, 아이디어를 구상하면서 염두에 둔 게 청각장애인들의 수업 참여권을 보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초중고 교육에서도 소보로 서비스가 사용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협력을 통해 서비스를 현장에 도입하는 게 올해 목표입니다.”

윤 대표는 이날 인터뷰 말미에 자료를 내밀었다. 청각장애에 대한 편견 타파를 위해 기억해야 할 것들을 지금껏 정리해왔다고 했다.

“공학 기술은 누군가가 쓰는 것이어서 늘 사람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왕이면 좋은 방향으로 공학을 활용하고 싶습니다.”
  • 2018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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