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라북스’ 공동대표 V. 기타와 기타 울프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그림책 만드는 인도 여성들

“인도 중부에 사는 곤드족은 나무가 세상의 중심, 삶의 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그림들을 보세요. 나무에서 새가 나오고, 나무에서 동물이 나오고, 나무에서 뱀이 나오잖아요. 그들은 인간이 나무를 통해 새와 연결되고, 동물과 연결되고, 뱀과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뱀은 땅 혹은 지구의 상징입니다. 곤드족은 원래 숲속에서 살았던 소수민족입니다. 나무 열매를 따 먹고, 나무로 악기를 만들면서 나무에 의지해서 살았습니다. 요즘 인도도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숲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제는 곤드족조차 숲에서 살지 않아요. 그들은 삶의 근본을 잊지 않으려고 나무를 그린다고 합니다. 그것은 과거에 대한 기억이자, 미래를 위한 기억이기도 하지요.”

작품에 영감을 준 인도의 거대한 나무 © Kodai MATSUKA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인도의 그림책 출판사 ‘타라북스’의 공동대표 기타 울프(Gita Wolf·62)와 V. 기타(V. Geetha·55)를 판교 현대어린이책미술관에서 만났다. 이 미술관은 7월 12일부터 10월 28일까지 ‘타라의 손’이라는 제목으로 타라북스에서 만들어온 독특한 그림책과 그림책의 원화(原畫), 또 그림책이 만들어지기까지 과정을 전시한다.

나무들의 밤_The Night Lift of Trees © Bhajju Shyam, Durga Bai, Amsingh Urvet
그들의 그림책 중 먼저 《나무들의 밤(The Night Lift of Trees)》이 눈에 들어왔다.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나무에서 원초적인 에너지가 물씬 느껴졌다.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강렬한 형태와 색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곤드족 사이에 구전(口傳)되는 이야기를 가지고 곤드족 아티스트 3명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황폐해지고 있는 환경에서 미래를 걱정하는 우리에게 그들의 오래된 이야기가 주는 영감을 생각하니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리-호지가 인도 북부를 방문한 뒤 썼던 책 《오래된 미래》가 떠올랐다.


볼로냐 라가치상 뉴허라이즌스 부문 우수상

물 속 생물들_ Waterlife © Rambharos Jha
기타 울프는 “낮에는 이런저런 일로 바빴던 나무들이 밤이 되면 휴식을 취합니다. 그때 나무의 정령이 밖으로 나오면서 더욱 신성한 본성을 드러내지요. 그래서 ‘밤의 나무’를 그렸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책은 어린이도서 관련 상 중 세계 최고 권위의 상으로 꼽히는 볼로냐 라가치상에서 뉴허라이즌스(혁신적 작품) 부문 우수상(2008년)을 받았다. 《물 속 생물들 Waterlife》 역시 2012년 라가치상에서 같은 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이번에는 나무가 아니라 물이다.

“갠지스강 근처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그린 물고기 그림이에요. 갠지스강 물고기도 그리고, 대양에 사는 물고기를 상상해서 그리기도 했습니다. 보세요. 간단한 선만으로도 물고기의 생동감 있는 움직임을 정말 잘 보여주지 않나요? 너무 아름답죠? 그들은 갠지스강 가까이에서 살기 때문에 물을 중요하게 여겨요. 이곳도 다른 부족이나 마을처럼 주로 여자들이 집을 장식하기 위해서 그림을 그렸어요. 결혼식을 하거나 아이가 태어나거나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그림을 그리면서 기념했죠. 1960년대 어느 때인가 인도에 심한 기근이 닥쳐 모두 굶주리게 되었을 때예요. 정부관리가 찾아와서 ‘종이에 그림을 그려서 팔면 먹고살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그때부터 너나없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보세요. 색감도 얼마나 화려해요?”

하다!_ Do! © Ramesh Hengadi, Shantarm Dhadpe, Gita Wolf
《하다! Do!)》도 독특한 책이다. 일하다(Work), 춤추다(Dance), 읽다(Read), 요리하다(Cook), 말하다(Talk)라는 문자와 함께 사람이나 동물이 그런 동작을 하고 있는 그림들을 모아 놓았다. 고대인이 바위에 새긴 암각화 같기도 하고, 그림으로 뜻을 전하는 그림문자 같기도 한 그림들에서 삶의 활기가 느껴졌다. 인도 서부 왈리족이 그린 그림이다.

“왈리족은 진흙과 소똥으로 지은 집의 벽에 흰색 석회가루나 분필로 그림을 그려요. 일상생활의 모습이나 축제, 잔치 같은 장면을 그리는데, 단순하지만 굉장히 표현력이 뛰어나죠. 어떤 장면인지 금방 알아볼 수 있어요. 그들에게 각각의 주제에 맞는 그림을 종이에 그려달라고 했어요. 진흙 벽에 그림을 그린 것 같은 느낌을 살리기 위해 갈색 바탕에 흰색 그림으로 책을 만들었습니다.”


이 책 역시 전 세계에서 호평을 받았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특히 ‘교육용’으로 인기라고 한다. 여러 부족과 함께 작업해온 타라북스의 책은 다채로울 뿐 아니라 과감한 실험으로 더욱 눈길을 끈다. 위에서 아래로 길게 펼쳐지는 그림에 이야기를 담던 서벵골 지역의 전통대로 두루마리 책을 만들고, 인도 서부의 목판화 기술자 공동체와 함께 목판기술과 천연염색 기법을 활용해서 천으로 만든 책을 내기도 했다.

그들이 만든 책을 둘러보면서 ‘그림책이 이렇게 창의적일 수 있을까?’ 감탄하게 되었다. “책이라기보다 예술작품 같다”고 했더니 그들이 “맞아요. 그래요. 새로운 시각 경험으로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영감을 주고 싶었어요”라면서 반긴다. 다양한 시각 경험을 위해 요즘은 인도뿐 아니라 전 세계 작가와 디자이너, 주민들과 협업한다고 말했다. 같은 아시아 국가로서 한국의 전통에도 관심이 많다면서 “한국 작가나 디자이너와 함께 일하고 싶어요”라고 몇 번씩 강조했다.


쌍둥이처럼 통하는 두 친구


기타 울프(Gita Wolf)와 V. 기타(V. Geetha), 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두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한목소리를 듣는 듯했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쌍둥이 같았다. “어떻게 친하게 되었느냐?”니까 “이름이 비슷하잖아요?”라고 농담을 한다. 그러더니 “서로 공통점이 많아요. 둘 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아이들도 좋아하죠. 생각도 정말 비슷해요”라고 말한다.

1988년 12월, 인도 남부 첸나이 북페어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보자마자 서로 통했다. V. 기타는 기타 울프에게 함께 여성단체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독일 유학 중 잠시 첸나이에 들렀던 기타 울프는 V. 기타에게 주소만 남기고 사라졌다. 3년 후 기타 울프가 가족과 함께 인도로 귀국해 첸나이에 정착하면서 두 사람은 매주 토요일마다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소송을 돕고 아이들을 돌봐주면서 지원하는 자원봉사단체도 함께 꾸렸다.

그리고 1994년, 기타 울프가 먼저 출판사 타라북스를 시작했다. ‘타라’는 산스크리트어로 ‘별’이라는 뜻이다. 여성문제와 사회문제를 연구하고 가르치고 집필하느라 바빴던 V. 기타는 1998년 합류했다. “어떻게 출판사를 세웠느냐?”고 물었더니 기타 울프는 “천천히(slowly)”라고 대답한다. “책을 한 권 두 권 내면서 출판사가 나무처럼 자라났죠”라고 덧붙인다. 여러 책 중 왜 어린이 도서에 끌렸을까?


“그림과 글을 모두 좋아했기 때문에 그림책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우리 둘 다 책을 굉장히 좋아해요. 어린 시절 책을 통해 세상을 배웠죠. 우리가 자랄 때는 인도 책이 별로 없었습니다. 주로 번역된 외국 책을 읽었죠. 그래서 ‘아이들에게 인도 이야기가 담긴 책을 읽히자’고 생각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지루하지 않은 책’, ‘설교하려 들지 않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삶이 얼마나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며 멋진지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여자아이들을 위한 책도 많이 만들었다.

“그때까지 어린이 책에 등장하는 영웅은 주로 남자였어요. 우리는 여자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습니다. 틀에 박히지 않은, 다양한 여성상을 보여주려고 했죠. 도시 출신뿐 아니라 소수민족 출신 여성이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다룬 책도 만들었습니다.”


문맹의 소수민족 여성들을 작가로


그들의 책으로 인해 실제로 인도 여성의 삶에 변화가 생겼느냐고 묻자 “글쎄요. 저희와 함께 일하는 소수민족 여성들의 삶은 확실히 바뀌었습니다. 글을 읽지 못하던 여성들이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된 책의 작가가 되었습니다. 유명해진 데다 매년 꼬박꼬박 인세를 받죠. 부자가 되어 집도 새로 지었어요.(웃음) 무엇보다 자부심과 그림 그리는 재미, 행복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맨 처음 어떻게 그들과 일하게 되었느냐고 묻자 “15년 전쯤 조사원이 1년 동안 인도 전역을 다니면서 각 부족의 예술활동에 관한 자료를 모았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수공예 장인들을 만나기도 했다. 책을 만들면서 자주 만나 이제 친구가 되었다면서 “그들로부터 배우는 게 많다”고 말한다.

타라북스는 수제 종이에 실크스크린으로 인쇄하고 손으로 제본하는 수제 책을 만드는 회사로도 유명하다. 실크스크린 인쇄는 미국의 대표적인 팝아트 작가 앤디 워홀이 작품을 제작하던 방식이다. 대량 제작을 할 수 없어 실제로도 그들의 책은 책과 작품의 중간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수제 책을 만들려면 작가와 책 디자이너, 인쇄 장인 모두의 역할이 중요하다. 기타 울프는 “그래서 우리 책에는 작가와 책 디자이너뿐 아니라 인쇄 장인의 이름까지 싣는다”고 말한다. 품질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너무 잘해주고 있어서 자랑스러워요. 저희는 이래라저래라 명령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게 가능해요? 어떻게 생각해요?’라고 묻는 식이지요. 서로 아이디어를 내고 대화를 많이 하면서 일을 해 나갑니다”라고 설명한다.


기타 울프는 천천히(slowly)라는 말을 자주 했다. 빨리 크게 성장하기보다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천천히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들은 수제 책을 만들 때 폐직물, 폐지, 쌀겨 등으로 제작한 수제 종이를 사용한다. 역시 환경을 생각하면서 천천히 만들어지는 종이다. 그들은 그 종이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환경에 도움 될 뿐 아니라, 질감이 좋아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내용이나 그림뿐 아니라 질감, 소리, 향기까지 오감을 자극하면서 영감을 주는 책을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에게 출판사를 시작한 후 가장 어려웠던 때가 언제냐고 물었다.

“서점이 줄어들고 유통방식이 바뀌면서 출판사들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은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잖아요. 독립출판사로서 우리 역시 살아남기 위해 언제나 투쟁해야 했지요. 하지만 전통적인 책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어요. 어린이 책은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린이뿐 아니라 성인에게도 영감을 주는 책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들 역시 ‘오래된 미래’에서 희망을 발견한 것 같다.

  • 2018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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