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의 품격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배우 김응수

“가난이 싫으면 무대를 떠나라 대신 거기가 지옥인 줄 알아라”

사진제공 : 김응수
영화 〈잔혹한 출근〉에서 형사반장, 〈뷰티풀 선데이〉에서 강력반장, 〈반가운 살인자〉에서 형사반장, 〈나쁜 남자〉의 곽 반장, 〈하이힐〉의 박 반장 등 배우 김응수(58)는 ‘형사반장’ 역이 단골이다. 사극에서는 임금 다음 가는 고관(高官)이 많다. 드라마 〈추노〉에서 좌의정 이경식,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영의정 윤대형, 〈닥터 진〉에서 안동김씨 가문의 우두머리 김병희로 분(扮)했다. 대개가 악역이다. 아직까지 또렷이 기억에 남아 있는 〈임진왜란 1592〉에서 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명(名)연기를 보여주었다.

강렬한 이미지와 카리스마로 조연을 ‘굉장한’ 조연으로 만들어버렸다고 할까. 악역이라도 그가 연기하면 악역의 색깔이 달라진다.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 주로 형사반장이나 경찰 역을 많이 맡았더군요.

“실제 형사인 후배 말이 ‘인간처럼 야비하고 거짓말 잘하며 잔인한 족속이 없다’고 해요. 증거가 있는데도 딱 잡아떼는 모습을 보며 인간에게 많이 실망했다고 해요. 하지만 그런 악한을 구원하는 이가 바로 인간이죠. 어쩌면 정의감이 인간을 구할 수 있어요. 철창 속에 악한을 가둘 때 느끼는 짜릿한 통쾌함이 형사들에게 있나 봐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제가 형사처럼 느껴지고 그런 느낌을 표현하려 하죠.”

― 경찰 관련 영화가 많은 이유는 뭔가요.

“인간의 욕망과 관련돼 있지 않을까요? 원초적 욕망을 컨트롤하지 못하면 서로 싸우고 범죄를 저지르는데 불가피하게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누군가를 억누르죠. 영화 소재로선 그만한 게 없죠.”

김응수 연기의 최고봉은 〈임진왜란 1592〉(2016)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닐까.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다운 연기를 했다고 할까. 일본인 배우들마저 그의 연기를 보고 “어떻게 한국 배우가 ‘대악당’ 히데요시를 이처럼 맛깔나게 연기할 수 있었냐”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그는 일본 유학 경험 때문인지 일본인 연기에 특화돼 있다. 드라마 〈각시탈〉, 〈조선 총잡이〉, 〈자유인 이회영〉, 영화 〈기담〉, 〈원스어폰어타임〉, 〈2009 로스트 메모리즈〉, 〈한반도〉 등에서 일본인 역할을 맡았다.

〈임진왜란 1592〉는 임란 기간 중 한산대첩(1592.7.8)부터 부산포해전(1592.9.1)까지 2개월간 펼쳐진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 이야기다. 이 작품은 ‘뉴욕 Film&TV 페스티벌’에서 작품상 금상 및 촬영상, ‘휴스턴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그리고 한국의 에미상으로 불리는 제44회 한국방송대상에서 최고의 영예인 대상을 받았다.


“50분 동안 50번의 얼굴이 있다?”


― 〈임진왜란 1592〉에 출연할 때 에피소드는요.

“촬영하면서 고생고생 했어요. 그 더운 날 2시간 동안 가발을 붙이고… 제작이 거의 끝나고 김한솔 PD가 그래요. ‘50분 동안 50번의 얼굴이 있다’고요.”

― 무슨 의미인가요.

“히데요시의 극 중 표정 중에 같은 표정이 한 번도 없었다는 거예요. (김 PD 말이) ‘편집을 마치고 자기도 너무나 감정이 벅찼다’고 하대요. 배우가 된 보람을 느꼈어요.”

현재 〈임진왜란 1592〉 후속작인 영화 〈귀선〉의 시나리오 작업이 한창이다. 2019년 개봉 예정이다. KBS의 자회사 몬스터유니온과 영화사 트리니티가 참여한다. 물론 〈임진왜란 1592〉를 연출한 김한솔 PD가 메가폰을 잡았다. 현재 배역은 단 한 명만 정해졌다. 그 한 명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김응수다.

“‘귀선’에서 ‘귀’는 여러 의미가 있어요. ‘거북이 귀’를 뜻하는 귀선(龜船)이기도 하고, 왜적이 거북선에 느꼈을 귀선(鬼船)이기도 하죠. 또 당시 우리 수군 대부분이 농부들 아닌가요? 전쟁이 끝나 고향으로 돌아가길 원했겠죠. 그래서 ‘돌아갈 귀’인 귀선(歸船)을 의미하기도 하죠.”

〈임진왜란 1592〉는 제작비가 13억 원이 들어갔지만 후속작은 180억 원의 투자비를 현재 확보한 상태다.

― 이순신 역이 정해졌나요.

“아뇨. 히데요시 역만 정해졌어요. 제게 히데요시 역할이 각별합니다. 좀 더 몰입하고 싶어요. 당분간 일본에 있으려고 해요. 풍신수길(豊臣秀吉·도요토미 히데요시) 묘도 가보고 그가 살던 집도 둘러볼 생각입니다. 180억 원에 대한 책임을 제가 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망하면 어떻게 합니까.”


― 충분히 공부하셨을 텐데, 뭘 더 배우려고요.

“어쩌면 공부란 단순화·보편화하는 작업일 겁니다. 배우는 텍스트를 읽고 복잡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밖에 없어요. 연극은 몇 달간의 연습을 통해 한 인물을 갈고닦을 수 있어요. 하지만 영화는 안 돼요. 영화는 1초에 22프레임이 드르륵 지나가버려요. 배경지식은 다 껍데기예요. 제가 아는 상식이나 지식, 철학은 오히려 인물 창조를 방해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저는 버리려고 해요. 일본 가서 지금까지 알던 히데요시를 버리려 합니다.”

이 대목에서 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그랬어요.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卷氣)’라고, 만 권의 책을 읽고 글을 써야 그 글에서 향기가 난다고요. 만 권의 책을 읽고 가만히 있으면 멍청해집니다. 그것이 진리인 줄 알기 때문이죠. 집어넣는 재미도 있지만 만 권의 책을 읽고 ‘천릿길’을 걸어야 합니다. 길을 걸으려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더 단순화시켜 버려야 해요. 어쩌면 버리는 쾌감이 더 클지 몰라요. 배경지식은 다 껍데기입니다. 히데요시를 버리러 갑니다.”

1961년 충남 서천이 고향인 김응수는 학창시절, 삼중당 문고에 빠져 300~500원 하던 책을 10권씩 끼고 살았다.

군산제일고를 다닌 그는 머리 빡빡 깎고 군산의 명물 이성당 빵집에 다니곤 했다. “그때 빵집에 DJ가 있었다. 거기서 여성 듀오 바카라가 부른 ‘Yes sir, I can boogie’를 신청하곤 했다”고 한다.

동기들 대부분이 명문 대학에 진학했으나 그는 배우의 길을 택했다. 서울예술대학 연극과를 나와 ‘배우들의 사관학교’라는 극단 목화에 들어갔다. 목화에 가자마자 연극 〈운상각〉에서 주연이 됐다.

“진각(연극배우 장진각)이 형이 그랬어요. ‘누구는 걸레질 3년은 해야 목화에서 역 하나 맡을까 말까인데, 너는 오자마자 주인공이냐. 감독과 고향(충남 서천)이 같으니까 그러시냐?’고요.”

그런 그가 목화를 그만두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마무라 쇼헤이가 교장으로 있던 ‘일본영화학교’에서 7년간 연출 수업을 받고 귀국했으나 그는 연출 대신 배우의 길을 걸었다. 그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이다.

그는 7년간 열심히 공부해 일본 영화학교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하라 가즈오 감독 밑에서 조연출로 일을 배웠다. 하라 가즈오는 〈가자 가자 신군(神軍)〉(1986), 〈극사적 에로스〉(1974) 등으로 유명한 일본 기록영화계의 전설로 불리는 다큐 감독이다.

김응수는 일본에 머무를 때 영화 〈깡패수업〉(1996)으로 데뷔했다. 배우 박중훈, 박상민이 주인공이던 이 영화의 일본 촬영 때 김상진 감독의 연출부로 참여했다. 그러다 김 감독의 제안으로 단역(술집 웨이터)을 맡게 됐다.

“그때 술집 사장이 명계남 씨였어요. ‘너 손님들에게 외상 주지 마’라고 애드리브를 했는데, 웨이터인 제가 이렇게 받아쳤어요. ‘시팔, 술 처먹고 나서 돈 없다는데 어떻게 해요.’ 그 애드리브를 듣고 김 감독이 퍼뜩 깨달은 것이죠. 김응수가 극단 목화 출신이라는 것을…. 그걸 계기로 귀국 후 계속 배우로 활동할 줄 그땐 몰랐어요. 운명으로 느낍니다.”


― ‘인생 작품’이랄 수 있는 영화는.

“음… 〈그때 그 사람들〉(2005)입니다. 거기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백윤식)의 오른팔인 ‘민 대령’ 역할을 제가 맡았는데, 그가 현실에선 박흥주 대령이죠.”

이 영화는 일부 장면을 삭제하라는 판결이 내려질 정도로 논란이 됐던 작품이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권력자 ‘박흥주 대령’도 자기 가족은 안 돌봤어요. 그의 동생은 아파트 경비원, 여동생은 구로공단 ‘미싱 시다’였어요. 청렴결백한 분이죠. 그분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어떤 분인지 물었어요. 묘소도 찾아갔어요. 초라하기 이를 데 없더군요. 술 한 잔 따르고 누를 끼치지 않고 잘 (연기)하겠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김응수는 “배우에게 중요한 것은 호기심”이라며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했다.

“호기심을 가져야 머릿속에 뭐가 잡혀요. 영화 속 인물들이 어떤 인생으로, 어떻게 살았는지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해요. 저는 박흥주가 좋아했던 팻 분(Pat Boone)이란 가수를 알게 돼 팻 분의 음반을 구하려고 돌아다닌 적이 있어요. 그렇게 하지 않고 배우가 할 일이 뭐가 있나요?”

― 대본만 읽어도 척 감이 오지 않나요.

“개뿔은 무슨 영감… 영감이 올 리가 없죠. 리얼리티를 살리는 작업이란 버리고 단순화시키는 작업이에요. 쉽게 표현하기 위해 복잡한 것을 고치는 것이죠.”


“무명이란 말을 하루 수십 번 가슴에 새겨”


― 어떤 사람이 배우가 돼야 하나요.

“잘난 척하는 놈이 배우가 돼야 해요. 사람들이 저더러 ‘왜 배우가 됐냐’고 물으면 저는 ‘잘난 척하려고 배우가 됐다’고 말해요. 사람은 누구나 남들 앞에서 잘난 척하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저도 그래서 배우가 된 거예요.

그런데 얼마나 잘난 척하기 어려운 줄 아세요? 그걸 연기라고 하느냐고 욕을 먹어요.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한다고 지랄을 해요. 하지만 그런 허섭스레기 다 잊어버리고 진짜 연기를 해야 합니다. 다른 것 생각하지 않고….”

― 하지만 배우의 길은 예나 지금이나 가시밭길 아닌가요? 대개는 잊히고 스타는 소수잖아요. 배우로서 무명을 견디는 힘은 어디서 오나요.

“저는 대학로 후배들에게 ‘가난을 즐겨라’라고 말합니다.”

― 네? 가난을요.

“연극… 가난할 줄 모르고 택했나요? 그 가난을 못 견디고 못 버틸 바에야 뭐 하려고 연기하나요. 직장 가보세요. ‘꼰대’ 과장과 ‘악질’ 부장이 버티고 있고, ‘지옥철’을 타고 출퇴근합니다. 어쩌면 무대보다 더 큰 지옥일지 몰라요. 후배들에게 ‘가난이 싫으면 무대를 떠나라. 대신 거기가 지옥인 줄 알아라’라고 말해요.”

그는 무명 시절 “하루에 무명이란 말을 수십 번 가슴에 새기며” 이렇게 되뇌었다고 한다.

‘나는 무명이다. 나는 무명이다….’

그런 되새김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 2018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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