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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규의 젠더 사이언스

남자들의 바람기와 수명의 관계는?

비–김태희, 송중기–송혜교. 결혼 당시 화제를 모았던 대표적인 연하남–연상녀 스타 커플이다. 2016년 65세 기준 한국 남자의 기대수명은 83.4세, 여자 87.6세로 여자가 약 4.2년 더 산다. 남성이 여성보다 수명이 짧은 것은 인간사회와 동물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이렇게 볼 때 연하남–연상녀는 생물학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커플인 셈이다.

남자들의 수명이 더 짧은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남자가 흡연이나 음주 등 건강에 안 좋은 행동을 더 많이 하기 때문이라는 주장부터 사냥 등의 힘든 육체노동으로 에너지를 더 많이 소비하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그 밖에 여성 세포의 강인함 등 다양한 가설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유력한 가설은 바로 남성의 바람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바람 잘 피우는 남성들에게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깊은 저음의 목소리를 내며 턱수염이 많아 면도 자국이 유난히 푸르스름하다. 또한 유난히 성욕이 높아 여성들에게 관심이 많은 것은 물론이고 게다가 어깨나 팔 등의 근육이 발달한 대신 체지방이 적어 나이가 좀 있어도 몸매는 날씬한 편이다.

그들의 이 같은 매력적인 특징을 조절하는 것은 바로 테스토스테론이란 남성호르몬이다. 그런데 바람기 많은 남성에게 테스토스테론은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테스토스테론이 많이 분비될수록 수명이 더 짧아지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예가 호주에 서식하는 ‘북부쿠올’이라는 주머니고양잇과의 유대류다. 이 동물의 암컷은 수명이 3년이지만 수컷은 고작해야 1년이다. 수컷이 빨리 죽는 이유는 일생 단 한 번 겪는 짝짓기 시기에 암컷을 서로 차지하기 위한 수컷끼리의 싸움과 테스토스테론의 급격한 증가로 인한 지방 부족 현상으로 생존 확률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한 생태학자는 북부쿠올 수컷들의 짝짓기 행태를 ‘마치 죽음과 섹스를 하는 것 같다’고 비유할 정도다.


환관들의 평균수명은?


여러 동물실험 결과에서도 테스토스테론이 수명을 단축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류학자들이 수컷 새에게 테스토스테론 보충제를 꾸준히 섭취하게 한 결과, 예상대로 보충제를 먹지 않은 개체에 비해 둥지를 더 많이 만들고 경쟁자를 쫓아내는 전투능력이 향상됐다. 그런데 지방 비율이 낮아지는 현상 등으로 인해 그들의 생존력은 더 떨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동물실험 결과만으로 인간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다. 또한 인간을 대상으로 테스토스테론을 변화시키는 비윤리적인 실험을 감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테스토스테론을 분비할 수 없는 매우 특별한 남성 집단이 있다.

왕을 모신 환관이나 17~18세기 유럽의 소년 합창단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단지 성기만이 아니라 음경과 음낭을 포함한 남성 생식기 전체를 거세당했다. 이들이 일반 남성들과 가장 다른 점은 테스토스테론의 유무이니, 평균수명을 비교하면 테스토스테론이 얼마나 남성 수명에 악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변성기를 거치지 않도록 일찍 거세해 소프라노 소리를 내는 카스트라토 가수들은 거세하지 않은 다른 가수들과 수명 차이가 없었던 것. 하지만 몇 년 전에 결정적인 자료가 한국에서 나왔다. 16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 사이에 살았던 조선 환관 385명의 기록이 담긴 ‘양세계보’라는 내시 가문 족보를 조사한 연구결과가 바로 그것이다.

조선시대 임금을 비롯해 왕족 남성들의 평균수명은 45~47세다. 또한 당시 궁궐 출입이 잦았던 관직을 많이 배출하는 등 생활환경 면에서 궁궐에서 일한 환관과 비슷했던 3개 가문 남성들의 평균수명을 조사한 결과 51~55세로 나타났다. 그에 비해 양세계보에 기록된 환관 중에서 다른 역사기록에서도 확인된 환관 81명의 평균수명은 70세였던 것. 사대부 남성보다는 15~19년, 임금과 왕족 남성보다는 무려 23~25년을 더 오래 살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100세 이상 산 환관이 3명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81명 중 3명이니 100세인의 확률이 27명 중 1명꼴이었던 셈이다. 이는 현대의 일본인(3500명 중 1명)과 미국인(4400명 중 1명)과 비교해도 놀라운 수치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길 수밖에 없다. 거세당한 환관 가문에 어떻게 족보가 있나 하는 점이 바로 그것. 족보란 자손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의 왕들은 중국 등의 다른 문화권과는 달리 환관들에게도 결혼할 권리와 함께 다른 집안의 거세된 소년을 양자로 들여 대를 이을 수 있게 했다.

환관들은 양자 역시 고자에 한해 입양해야 했으므로 같은 성을 찾기가 쉽지 않아 양자들에게 생가에서 쓰던 성과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게 했다. 이처럼 여러 집안의 남자들이 혼합된 족보이기에 ‘양세계보’의 통계는 더욱 신뢰 있는 연구 결과로 전 세계의 연구자들에게 인용되고 있다.

만약 테스토스테론이 원인이라면 남성들은 좀 억울할 수 있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면역기능 강화 및 세포 손상을 방지하는 효과까지 있는데, 남자들만 번식을 위해 수명 단축이라는 위험을 감내해야 하니 말이다. 그 이유는 번식에 대한 남성과 여성의 근원적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

바람기 많은 남성의 경우 1년에 100명의 각기 다른 여성과 섹스를 해 100명 이상의 자손을 남길 수 있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 아무리 많은 남성과 섹스를 해도 1년에 낳을 수 있는 자식은 한두 명으로 한정된다.

다시 말해 여성에 비해 남성의 잠재적 번식 이득이 훨씬 큰 셈이다. 따라서 남성을 비롯한 포유류 수컷들은 테스토스테론을 근육처럼 유지하기 힘든 신체기관에 투자하거나 위험한 행동에 사용하기도 한다. 암컷보다 잠재적 번식 이득에 대한 대가가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남성들이 마냥 어리석진 않다.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를 적게 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 두었기 때문이다.

일부일처제가 바로 그것이다. 평생 함께할 짝이 있어 자손을 번식시킬 안정된 환경이 마련된다면 남성은 굳이 다른 여성을 유혹하기 위해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없다. 기존 연구에 의하면 이처럼 안정된 환경의 남성들은 테스토스테론의 수치가 더 낮으며, 결혼한 남성의 심혈관계 질환 위험 및 치사율이 더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 다른 장치 하나는 부성애다. 자식을 돌보기 위해서는 건강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 남성들은 근육과 위험한 행동을 포기해야 한다. 실제로 자식의 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남성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아지고 체중이 늘어난다.

혹시 오늘도 힘든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갈까 다른 데(?)로 샐까 망설이는 남성 가장이 있다면 정확히 알려주고 싶다. 집에서 기다리는 마누라와 자식들이 바로 당신의 수명을 연장시켜주는 생명의 은인들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 2018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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