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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가 아니에요. 그냥 내 삶이죠”

가정문화원 김영숙 원장 | 안양교도소 교정위원, 가정법원 조정위원

수명이 길어지면서 두 번의 인생을 설계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전반기에는 열심히 일하고 후반기에는 봉사하고 싶다는 이들이 많다. 전·후반기 따지지 않고 일과 봉사를 동시에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고희를 넘긴 나이에 안양교도소 교정위원과 가정법원 조정위원으로 전문 봉사를 펼치는 가정문화원 김영숙 원장을 만났다.

안양교도소를 34년째, 가정법원을 12년째 출입하는 그에게 지인들은 꾸준히 활동하는 저력의 근원을 궁금해한다. 가정문화원 활동에다 칠성산업 두상달 회장과 함께 대한민국 부부 강사 1호로 활약하기에도 바쁜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약학과를 졸업하고 제약회사에 다니다 결혼한 김 원장은 자녀 셋을 낳고 전업주부로 살았다. 그러던 중 지인의 소개로 1984년부터 안양교도소를 출입하게 되었다.

“성경을 가르치라는 거예요. 절대 안 간다, 무섭다, 그랬죠. 그런데 친구들이 돈을 걷어 성경공부 책을 사서 들려주니 안 갈 수가 있나요. 두렵고 걱정되고 왜 내가 해야 하나, 별생각이 다 들었어요.”

34년째 매주 금요일 오전 9시에 출발하여 90분간 가르치고 낮 12시에 돌아온다. 1980년대만 해도 아예 글자를 모르거나 초등학교만 졸업한 재소자가 많았다. 요즘은 대개 고등학교 정도는 졸업했고 더러 명문대 출신도 있다. 성경공부반이 없어지면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20대와 30대가 대부분이고 더 나이 든 사람들도 제법 된다고 한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교도소 내로 음식 반입을 할 수 없게 되었어요. 그 전에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음식을 만들어 싸 갔지요. 우리 반 인원이 30명 좀 넘었는데 닭백숙도 해 가고 떡도 해 가고 수박도 썰어 가고 그러면 다들 굉장히 좋아했어요.”

김 원장은 직접 교재를 만들고, 영시 암기와 3분 스피치 같은 자신만의 교육법을 개발했다.

“영어로 시를 외우면 자존감이 살아나요. 다들 몇 편씩 외웠어요. 출옥하여 어린 자녀 앞에서 외국 갔다 왔다며 영시를 외웠다는 소식을 알려온 사람도 있어요. 학교 다닐 때 발표를 한 번도 안 해본 이들이어서 처음에는 자기표현 훈련을 굉장히 어색해했어요. 몇 번 하면 확실히 달라져요.”

정성을 다해 가르치는 김영숙 원장의 진심이 전해져 재소자들은 편지도 보내오고 출옥하여 결혼 주례를 부탁하기도 한다.

“선입견을 갖지 않기 위해 무슨 죄목으로 들어왔는지 절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어요.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은 다를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에요. 우리와 똑같은 생각을 하며 살고 있어요. 그 사람들을 보면 악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 원장은 가정만 바로 선다면 범죄가 많이 줄어들 거라고 말했다.

“자라온 환경과 삶의 태도가 굉장히 중요해요. 어릴 때 얼마나 인정받고 사랑받았나 하는 점이 인생을 좌우합니다. 가정과 학교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밖으로 돌고, 그러다가 범죄와 연루되는 경우가 많아요.”


안정된 가정의 기운을 퍼트리다


우선 김영숙 원장의 가정이 안정되고 마음이 열려 있었기에 재소자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었다. 교정위원으로 봉사하기 1년 전인 1983년에 지인에게 끌려가다시피 하여 남편과 함께 부부학교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마음속 얘기를 하다가 내가 펑펑 우니까 남편이 충격을 받은 거예요. 그때까지 자신은 아주 모범적인 가장이라고 생각해왔던 거죠. 나는 서울 출신으로 감성적인 데 반해 시골 출신인 남편은 가부장적이었어요. 예의 바르다고 생각했던 아이들까지 경직되어 있었다는 걸 남편이 깨달았고, 서로 노력하면서 부부 사이가 좋아졌지요.”

미국 CCC ‘패밀리 라이프’ 프로그램 창시자 레이니 박사로부터 가정생활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받는 등 꾸준히 공부했다. 부부는 자신들의 변화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어 1990년 가정문화원을 설립했고 남편이 이사장을 맡았다. 결혼예비학교, 신혼부부캠프, 부부행복학교, 부부대화학교, 시니어부부학교, 중년학교, 노년학교, 아버지학교, 어머니학교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특강을 3000여 회나 진행했다.

“처음부터 남편과 함께 강의를 했는데 둘이 주고받으며 하는 게 독특해서인지 여기저기서 우리를 초청한 겁니다. 가정문화원에서 주최한 강연도 하고 관공서, 지방자치단체, 사회단체, 교육단체, 기업체, 교회 등에서 초청을 많이 받았어요.”


KBS 1TV 〈아침마당〉을 비롯해 주요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일간지에서 주최하는 강연에 초청강사로 나서기도 했다. 부부는 결혼 주례도 동시에 하는데 결혼식을 통해 신혼부부는 물론 하객들에게 행복한 가정을 위한 메시지를 전한다.

“남편 덕분에 박사학위도 받았어요. 강의를 잘하려면 공부를 더 해야 한다며 남편이 저를 미국 풀러신학교에 보내 가정회복 박사과정을 밟도록 했어요. 50대에 시작해 60대에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그 나이에 공부해서 뭐하려고 그러냐’고 할 때면 ‘남들에게 주려고 한다’라고 답했어요.”

가정문화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두상달 이사장은 2004년에 서울시 부부상과 국무총리표창을 받은 데 이어 2009년 가정의 달에 대통령표창을 수상했다. 김영숙 원장은 국무총리 표창과 법무부장관 표창, 2014년 제17회 유재라봉사상을 받았다. 남편과 함께 《아침키스가 연봉을 높인다》를 비롯해 여러 권의 책을 냈는데 인세와 강연료를 가정문화원 운영과 관련 사업에 사용하고 있다. 가정문화원이 김 원장의 본업이지만 그것 역시 봉사 영역인 셈이다.

김 원장은 가정문제도 무료로 상담하고 있다. “내 인생은 끝났다”며 울던 사람이 상담을 마친 후 이혼서류를 찢을 때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가정문화원 홈페이지(www.familyculture.net) ‘온라인 상담실’ 코너에 질문을 하면 충실한 답변을 달아주는데 그 일을 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든다고 한다.


가정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중요

김영숙 원장은 2006년부터 가정법원 조정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그간 쌓은 지식과 경험을 활용하고 있다. 일주일에 가정법원에서 두세 건의 자료를 보내주면 완전히 숙독한 후 부부를 직접 만난다. 각자의 주장을 듣고 요약해서 정리하고 자신의 의견을 덧붙여 판사에게 보내는 게 조정위원의 역할이다.

“10년 전에는 남자가 이혼을 신청하는 예가 많았다면, 요즘은 여자들도 이혼 청구를 많이 해요. 이제 여자들도 참지 않는다는 거죠. 돈을 꽉 쥐고 아내한테 생활비를 풀칠할 정도로만 주거나 가부장적 태도로 일관하다가 이혼 청구를 당하는 등 황혼 이혼도 많아졌어요.”

외도를 한 유책 배우자가 제아무리 원해도 상대가 이혼해주지 않는 일도 있다고 한다.

“이혼의 원인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해요. 결혼하기 전에 결혼생활에 대한 공부를 미리 하고 가정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갖는 게 중요하죠. 예전에는 조정위원의 권유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었다면 요즘은 이혼을 작정하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재산을 더 많이 분배받으려 애쓰고, 자녀는 서로 양육하려고 합니다.”

오랜 봉사 활동을 돌아보면 감회가 새롭고 보람이 클 것 같은데 김영숙 원장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냥 사는 거예요. 봉사가 아니에요. 그냥 내 삶이죠.”
  • 2018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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