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규의 젠더 사이언스

인간은 왜 일부일처제를 선택했을까

글 : 이성규 과학칼럼니스트  / 일러스트 : 셔터스톡

“결혼은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일이지만 모든 사람이 일부일처제를 따르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고 봐요. 그것은 인간의 본능에 어긋나기 때문이죠.”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섹시 스타 스칼릿 조핸슨이 성인잡지 《플레이보이》와의 인터뷰에서 털어놓은 자신의 결혼관이다. 2번의 이혼과 6번의 공개 연애 등 화려한 애정 경력을 지닌 어느 한 배우의 극단적인 발언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내용이다. 사실 일부일처제는 생물학자들에게도 오랜 수수께끼이기 때문이다.

동물 세계에서 대부분의 수컷은 자신의 유전자를 될 수 있으면 널리 퍼뜨리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암컷 역시 건강한 새끼를 낳기 위해 최상의 수컷을 고르는 데 전념한다. 그런데 이 자연의 법칙에 들어맞지 않는 매우 부자연스러운 짝짓기 제도가 바로 일부일처제다.

약 5000종의 포유류 중 일부일처제를 채택한 동물은 비버와 수달, 여우, 일부 박쥐와 몇몇 발굽동물 등 3~5%에 불과하다. 인간 사회만큼 일부일처제를 유독 강조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셈이다. 그 때문에 이를 설명하기 위한 가설이 많은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미숙아 양육설’이다.

소나 말 같은 대부분의 포유류 새끼들은 낳자마자 걸어 다닌다. 그에 비해 인간은 미숙아를 낳으므로 꽤 오랜 기간 적극적인 양육이 필요하다. 엄마 혼자서는 그 부담을 지기 힘들므로 자연스럽게 부부가 힘을 합쳐 미숙아를 잘 돌본 경우에 생존 확률이 높아져서 일부일처제가 정착되었다는 것이 바로 ‘미숙아 양육설’이다.

조류의 90%가 일부일처제를 채택하고 있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새들은 둥지를 틀어 알을 품어야 하며, 새끼가 태어난 후에도 스스로 날 수 있을 때까지 암수가 번갈아 가며 먹이를 부지런히 물어다 줘야 한다. 일부일처제의 가장 큰 장점은 이처럼 암수가 협력해 새끼를 건강하게 양육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육 효과만으로는 일부일처제를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아프리카에 사는 작은영양은 일부일처제를 하는 경우이지만 수컷은 새끼 양육에 별로 관여하지 않는다. 따라서 동물학자들은 동물 세계의 일부일처 습관을 세 유형으로 분류한다. 일정 기간 한 짝과 짝짓기를 하는 ‘성적’ 일부일처제와 암수가 짝짓기한 뒤 새끼를 공동으로 양육하지만 바람도 피우는 ‘사회적’ 일부일처제, 그리고 한 암컷이 평생 한 수컷의 새끼만 낳는 ‘유전적’ 일부일처제가 그것이다.

한편, 암컷의 주거 밀도설도 일부일처제를 설명하는 가설 중 하나다. 주거 습성상 암컷이 낮은 밀도로 분포할 경우 수컷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먼 거리를 이동하며 여러 암컷을 관리하거나 아니면 한 곳의 암컷을 선택해 사는 경우다. 그런데 한 암컷과 사는 것이 종의 번식에 유리해 결국 일부일처제가 채택되었다는 주장이다.

이 가설을 가장 잘 설명하는 동물이 바로 북미에 사는 흰발생쥐와 올드필드흰발생쥐다. 두 종은 발생학적으로 매우 가까운 종으로서 서로 교배할 경우 생식능력을 지닌 새끼를 낳을 정도다. 그런데 흰발생쥐는 여러 상대와 짝짓기를 하지만 올드필드흰발생쥐는 일부일처제를 지킨다. 흰발생쥐는 비교적 넓은 지역에 고밀도로 분포하는 데 비해 올드필드흰발생쥐는 사막에 띄엄띄엄 분포한다는 것이 바로 그 차이점이다.

하지만 영장류는 이와 정반대다. 서식 밀도가 높은 인간은 일부일처제이지만, 서식 밀도가 낮은 침팬지와 고릴라, 보노보 등은 일부일처제가 아니다. 여기서 등장한 또 하나의 새로운 가설이 ‘성병설’이다.


성병과 일부일처제의 상관관계는?


인간이 저밀도로 흩어져 살던 수렵사회에서는 침팬지처럼 난교 생활을 해도 성병이 크게 확산되지 않았다. 그러나 농사를 시작하면서 한 지역에 정착하게 되며 사회 규모가 커지고 집단 간 접촉이 늘게 된 이후 성병이 급속히 늘자 일부일처제가 정착되었다는 것. 즉, 성병의 확산이 일부일처제로 사회적 규범제도를 변화시켜 왔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가설로는 ‘착한 남자설’을 들 수 있다. 자연계에서 암컷을 차지하는 경우는 보통 다른 수컷과 힘겨루기에서 이기는 알파 수컷들이다.

건강하고 경쟁력 있는 새끼를 원하는 암컷 역시 알파 수컷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알파 수컷과 싸우는 데 힘을 소비하는 대신 암컷을 위해 헌신하는 하위 서열의 수컷을 선택하는 암컷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자신은 물론 새끼를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한 남성 대신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장기적으로 제공해주는 ‘착한 남자’가 여성의 선택을 받으면서 일부일처제가 자리 잡게 되었다는 주장이 바로 ‘착한 남자설’이다.

일부일처제는 수컷들끼리의 힘을 겨루는 데 소모되는 에너지를 다른 쪽에 투자할 기회를 제공했다. 예를 들면 다부일처제인 침팬지는 암컷을 차지하지 못할 경우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릴 수 없으므로 난자 소유 경쟁에 유리한 방향으로 유전자가 발달할 수밖에 없다.

그에 비해 일부일처제인 인간은 그럴 필요가 없으므로 정자의 능력보다는 두뇌나 손의 기능 등 다른 능력을 발달시키는 쪽으로 진화할 수 있었다. 실제로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박홍석 박사팀이 인간과 침팬지의 정소 유전자를 비교분석한 결과 정자의 수, 운동속도, 지구력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유전자에서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여성에게 자신의 것을 마냥 내어주는 착한 남자는 결코 없다. 일부일처제를 이루기 위해선 여성도 남성에게 무언가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 그 보상이 바로 섹스와 정절이다.

대부분의 동물은 암컷이 배란기에만 발정해서 섹스와 임신을 한다. 그런데 여성은 ‘배란 은폐’를 함으로써 예외적으로 발정기가 아닐 때도 섹스가 가능하다. 그 섹스를 여성은 자기에게 무언가를 주는 착한 남자에게만 제공하는 ‘정절’이라는 또 다른 보상과 함께 제공함으로써 일부일처제란 제도를 정착시켰다.

그럼 일부일처제하에서 암컷의 정절 수준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DNA 지문분석법의 일종인 친자 확인 검사법의 등장 이후 부성불일치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게 됐다. 생물학자들은 일부일처인 조류를 대상으로 그런 연구를 많이 했는데, 그 결과는 놀라웠다.

부부 금실이 좋은 새의 상징으로 여겨져 온 원앙의 경우 암컷이 낳은 새끼 중 약 40%가 남편이 아닌 다른 수컷의 새끼로 밝혀졌다. 오랫동안 일부일처의 상징이었던 고니 역시 새끼의 부계를 조사한 결과 6마리 중 1마리 정도가 다른 수컷과의 관계에서 태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조류 전체를 대상으로 하면 대체로 약 10%가 부성불일치인 것으로 나타났다. 수컷 조류들이 자기 부인에 대해 다른 수컷의 접근을 좀처럼 허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는 매우 이례적인 결과다.

이를 바탕으로 과학자들은 사람도 부성불일치가 10%쯤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오래된 집안의 족보에 있는 사람들의 Y염색체를 조사해 친자 여부를 확인하는 최근 연구 결과들은 그 같은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 10%의 약 10분의 1에 불과한 1%밖에 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줄줄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과학적인 조사 결과 ‘유전적’ 일부일처제를 유지하고 있는 종은 인간뿐이었던 셈이다.
  • 2018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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