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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의 품격

“결국 연기는 인간학”

강렬한 이미지의 연기파 배우 이재용

배우 이재용(55)은 강렬한 이미지의 배우다. 굵은 목소리, 삭발(원래 대머리인데 요즘은 아예 머리를 빡빡 밀었다)한 181cm의 비쩍 마른 그는 드라마 〈피아노〉(2001)에서 ‘독사’로, 드라마 〈야인시대〉(2002)에서 일경(日警) 미와 경부로 악명을 날렸다. 영화 〈친구〉(2001)에서 20세기파 보스 ‘차상곤’이 그다. 극중 수표를 흔들며 “니, 의리가 뭔지 아나? 이기 바로 의린기라”고 했던 대사가 떠오른다.
선악의 경계를 넘어 야수와 같은 권력의 속성을 드러내는 역에서도 연기 솜씨를 발휘했다. 〈제5공화국〉(2005)의 이학봉, 〈주몽〉(2006)의 부득불, 〈이산〉(2007~2008)에서 노론 벽파의 수장 장태우, 〈순수의 시대〉(2015)에서 야심가 정도전, 〈징비록〉(2015)에서 동인의 영수 이산해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사진제공 : 이재용
경기도 일산 자택 부근에서 만난 이재용은 “아무리 악역이라도 내가 맡은 배역을 변호할 수 있어야 한다. 극중 인물과 현실의 배우 사이에 간극이 생기면 안 된다”고 말했다. 머릿속에선 선악을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겠지만 현실은 불가능하니까.

“이 인물의 인간적 변명부터 사회적 변명까지를 죄다 유추하고 데이터로 백업을 해 놔야 한다. 선량한 사람도 갑자기 끼어드는 얌체 운전자를 만나면 입에서 십 원짜리가 12개 날아가질 않나. 그게 인간이다. 한쪽 면만 보고 악인의 탈을 씌우면 그에 상응하는, 반대 방향의 가치들은 전혀 보지 못하니까.”

— 연기방법론으로 들어가 보자. 어떻게 연기하나.

“연기는 인간행위의 재연이자 삶의 재구성이다. 특별한 인물의 후경(後景, 그는 후경을 ‘라이프 스토리’라고 칭했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연기방법론이 다르다. 호랑이가 사슴을 바라보듯 생태계 포식관계로 악인을 재단해선 곤란하다. 인간은 번뇌에 가득 찬 복잡한 존재니까. 예전에 깡패 연기를 하면 자주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워야 했다. 그러면 피곤한 인상이 배어 나와 나쁜 기운이 생기게 된다. 그런데 대놓고 나쁜 짓만 하는 악한은 관객이 ‘나쁜 새끼’라고 말하며 그 배우를 잊어버린다. 촛불이 일렁이듯 눈빛이, 그 짧은 순간에, 흔들리는 걸 보여줘야 한다. 마냥 고함치고 살벌하게 하는 연기야 누구나 할 수 있다.”

— 그게 진짜 연기겠다.

“그게 인간에 대한 이해고 현실에 대한 해석이다. 배우는 왜 저 인간이 저럴까, 왜 분노할까 같은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한다. 부패한 권력이 만든 불합리, 폭력성에 대해서도 분노해야 한다.”

— 배우는 보통 사람보다 내공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결국 연기는 인간학이다. 무대에서든 어디서든 만나는 모든 이가 연기 표현을 위한 재료들이다. 결국 세상엔 삶의 얘기들로 가득하다. 인간의 얘기를, 인간인 내가 표현하기에, 인간학일 수밖에 없다. 구체적인 (연기)방법론은 그저 스킬일 뿐이다.”


이재용은 1963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지만 유년은 경남 마산에서 보냈고 초등학교는 서울에서 다녔다. 그러다 다시 마산에 내려가 마산중앙고를 졸업하고 대학은 부산대 철학과(82학번)를 나왔다. 그는 “유년 시절 6개 도시를 떠돌았다. 그래서 사투리, 표준말 모두에 능하다”고 했다.

대학에선 철학 공부 대신 연극 동아리에서 배우 연습만 했다.

— 이사를 많이 다닌 걸 보니 아버지가 군인이셨나.

“아니다. 아버지는 요리를 하셨는데 바람처럼 떠돌기를 좋아하셨다. 아버지가 떠나면 어머니는 머리에 궤짝을 이고, 젖먹이 동생을 둘러업고서 내 손을 끌고 아버지를 쫓아 추격전을 벌였다.”

— 어머니가 가정을 지키려 무던히 애쓰셨나 보다.

“나도 한량기는 아버지를 닮아 타고났다. 먹고 노는 걸 좋아하니까. 그런데 꼬장꼬장하고 원칙적인 건 어머니를 닮았다. 어머니는 매사에 엄하셨다. 어른들이 집에 오시면 나는 무조건 무릎을 꿇고, 함부로 (어른들) 앞에서 사부작대지 않게 하셨다. 그리고 굉장히 자비로운 분이셨다. 정신적으로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게 많다.”


“연극은 마약 같아서 사람의 피를 마르게 하지만 재미가 있다”


이재용은 배우 경력이 35년째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연기 경력을 쌓았다. 부산대 연극 동아리 ‘극예술연구회’에서 활동하며 연기 수업을 했다.

“그땐 연기 트레이닝이란 게 없었다. 이호재, 전무송의 공연을 보러 입장료만 들고 상경했다. 앞자리에 앉아 몇 번이고 공연을 보면서 ‘저 사람은 이렇게 말하는구나’ 하고 배웠다. 연극은 마약 같아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사람의 피를 마르게 하지만 재미가 있다.”

— 어떤 재미?

“연극은 삶의 압축이다. 연애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연애 과정에서 온갖 졸렬함을 다 겪지 않나. 드라마에선 모든 게 함축돼 있다. 지우고 생략하고 사랑의 진액만 뽑아서 그 최대치를 한정된 시간 안에 표현하니까 보통 사람이 못 느끼는, 마치 가상현실에 빠지는 듯한 매력이 연극에 있다.”

— 아무리 배고파도?

“대학 3학년 때 이렇게 연극을 하다간 굶어 죽을 것 같아 일본으로 유학을 가려 했다. 하숙집 형님이 양장점을 했는데 거기 놀러 갔다가 패션잡지를 보니 신세계더라. 일본 가서 패션도 배우고 상업사진도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유학을 준비했는데 신원보증이 필요했다. 보증을 서기로 한 친구 매형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몇 년 기다리다가 뜻을 접고 말았다. 그 무렵 부산대 출신 선후배가 주축이 돼 ‘극단 여명’을 창단했다.”

— 극단 창단 작품은 뭔가.

“〈미시시피의 결혼〉이라고 스위스 작가 작품인데 이 사람이 좌파 계열이었다. 그런데 창단 공연에 온 관객이 4000명이나 됐다. 지금 생각해도 꿈의 숫자다. 대박이 났다. 당시(1987년) 민주화 열기가 있었고 그런 욕구를 담았다. 연희단거리패 이윤택 선배하고 우리랑 사회문제를 건드리는 내용을 무대에 올렸다.”


— 송강호, 김윤석도 부산에서 연극을 했었다.

“두 사람은 부산에서 빛을 못 보고 서울로 올라와 극단 연우무대에서 연극을 했다. 당시 연우무대는 좋은 체제, 깨어 있는 사람이 많아서 배우 사관학교로 유명했다. 거기 출신 중에 명배우가 많이 나왔으니까. 연극이 예술지상주의에 빠지지 않고 대중의 현실적 삶과 호흡하는 명제를 기치로 세웠다.”

— 부산에서 연극할 때 꿈은 뭐였는가. 성공해 서울 무대에 진출하는 거였나.

“그런 건 없었다. 부산에서 성공하고 싶었다. 그런데 부산 사람들이 서울에서 내려온 극단은 높이 평가하고 부산 연극단은 저평가했다. 그들도 별것 없는데 말이다. 당시 나는 자꾸 진화하고픈 욕구가 있었다. 고전의 반복, 뻔한 연출 이런 게 싫었다. 혁신적이고 재미난 연극으로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는 연극팀을 구성해 평생 연극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곰곰이 생각해 보면, 부산 출신 배우가 많다. 가수나 개그맨도 많다. 지리적 특징과 관련이 있나.

“그렇다. 부산만큼 바다, 산, 강, 평야가 한꺼번에 있는 도시가 드물다. 그렇다 보니 사고가 개방적이고 다양한 자극에 노출된다. 대도시의 풍모도 갖추고 있고 역사적으로 축적된 히스토리도 많다. 그 안에서 보이지 않게 받는 영향이 많나 보다.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의 제자 김현숙이 이런 얘기를 했다. 김현숙은 내가 연기학원에서 연기 지도를 한 적이 있다. ‘선생님. 서울 것들은 내가 바다 보고 싶어 운다고 하면 그걸 이해 못 해요’라고. 바다 향수라는 게 거의 본능처럼 각인돼 있다. 진짜 웃기는 게 서울에서 아무리 편하게 지내도, 부산에 내려가 짠 내를 맡아야 등줄기에서 뭔가가 싹 내려가는 듯한 느낌이다. 집에 내려가 이틀 있으면 2kg은 찌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그의 집은 아직도 부산이다. 부산 서구 서대신동에 살다가 얼마 전 결혼 20년 만에 해운대 쪽으로 이사했다. 그가 머무르는 경기도 일산 집은 그냥 잠만 자는 오피스텔이다.


— ‘내 인생의 작품’은 뭔가.

“영화 〈친구〉(2001)가 연기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곽경택 감독을 만난 것도 운명이다. 곽 감독 연출부에 있던 후배가 나를 추천해 그의 데뷔작 〈억수탕〉(1997)에 처음 출연했다. 그 인연으로 다음 작품 〈닥터 K〉(1997), 〈친구〉와 인연을 맺었다. 곽 감독이 나를 ‘생뚱맞은 배우’로 소개받았다.

나는 당시 부산 서대신동에 살고 있었고 곽 감독은 동대신동에 살 때다. 집이 1km 거리였다. 선술집에서 만나 코가 비뚤어지게 마시며 온갖 얘기를 다 했다. 좋아하는 만화 얘기까지 했다. 곽 감독이 ‘형은 참 재밌는 사람 같다’고 하더라.”

— 참, 유명한 대사, ‘이기 바로 의린기라’에서 이재용식(式) 의리는 뭔가.

“믿음이다. 예를 다해 믿음을 지키는 게 의리다. 난 아직 40년 지기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도 존댓말을 쓴다. 장난칠 때는 십 원짜리 욕을 하지만 평소엔 ‘그러시게’, ‘어떠신가’ 하고 말한다. 처음 나를 대하는 이들은 깐깐하게 보지만, 세 번 같이 술을 마시면 안다. 속을 다 까발려서 보여준다. 뭔가를 포장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이재용이 멜로 역을 맡게 된다면 …


다시 연기 얘기로 돌아가 보자. 영화 〈도마뱀〉(2006)의 이재용이 기자의 기억에 오래 남는다. 흥행은 그저 그랬지만 그는 주인공 아리(강혜정)의 삼촌인 서정 스님으로, 부모 잃은 어린 조카가 여인이 되기까지 애틋한 시선으로 감싸 안는다. 어쩌면 그의 내면과 가장 가까운 인물인지 모른다. 그는 “조연이기 때문에 감정이 너무 드러나지 않도록 자제하고 한 그루 소나무처럼 서 있으려 했는데도 아리와 조강(조승우)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어쩌면 내 현실적인 모습은 〈달려라 울엄마〉의 ‘이 선생’, 〈도마뱀〉의 ‘스님’ 속에 다 들어가 있는지 모른다. 사실 〈도마뱀〉 찍다가 불가에 귀의하라는 정식 제의도 받았다. 할 걸 그랬나? 사실, 살아가는 과정이 모두 배우고 얻고, 그러면서 ‘내’가 되어 가는 과정이 아닐까. 어쩌면 ‘나’라는 이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 나는 지금도 자유롭게 산다. 힙합 하는 이도 만나고 DJ 하는 동생들과도 어울린다. 금기하는 영역을 스스로 안 가지려 노력한다.”

— 35년 차 배우도 연기가 어렵나.

“연기는 복잡한 신경생리학적 과정을 거친다. 주어진 대본을 해석하고, 대본 속 상황을 상상하고 재구성해서 거기에 자기의 감각과 사고를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컨트롤한다. 여기에는 배우 나름의 인문학적·사회학적 해석이 필요한데 그게 없으면 정확한 게 안 나온다. 대본을 받아 들고 짧은 시간에 연기를 생산하는 과정이 고통스럽다.”

— 배우 이재용은 깡패 연기도 그렇지만 우는 연기를 잘할 것 같다.

“맞다. 나 눈물이 많다. 어릴 때부터 감수성이 예민했던 것 같다. 사람들은 내가 ‘하드’한 줄 아는데 마누라는 나를 천덕꾸러기라고 놀린다. 신문 기사 읽다가 울고, TV 다큐멘터리 보다가 울고…. 그러면 마누라는 ‘저 봐라. 또 저런다’ 하고 혀를 찬다.”

3시간 이상 그와 대화를 나누니 배우 이재용의 내면이 느껴졌다. 깡패나 악한 같은 겉모습과 달리 그의 내면은 한없이 부드럽고 섬세해 보였다. 그가 멜로영화의 주인공이 된다면… 대박이 나지 않을까?
  • 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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