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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의 품격

〈TV 손자병법〉 30년, 위대한 ‘만년 과장’

배우 오현경

배우 오현경(吳鉉京·82) 하면 〈TV 손자병법〉의 종합상사 자재과 만년 과장 ‘이장수’가 떠오른다. 1987년 첫 전파를 탔으니 올해로 꼭 30년이 됐다. 〈TV 손자병법〉은 누가 뭐래도 도시의 〈전원일기〉 같은 프로였다. 가자미 같은 눈매로 상사 앞에 새우등처럼 허리를 굽히던 약한 남자 ‘이장수’. 부하직원을 대변하다가 상사에게 눈물이 쏙 빠질 만큼 혼이 난 뒤 한잔 술에 취해 “까불고 있어!”를 외치던 오현경은 이제 여든이 넘었다. 생사를 넘나든 식도암, 위암 수술에도 굴복하지 않고 무대에서 버텨왔다.

사진제공 : 명동예술극장·오현경
연극계를 상징하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그는 지금도 조곤조곤 부드러우면서도 밀도 있는 화술을 들려준다. 지난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선생의 대표작 〈봄날〉이 다시 무대에 올려졌다. 명료하고 단아한 화술로 ‘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하는’ 경지를 보여준 아비 역(役)으로 관객의 박수를 받았다.

배우 오현경은 무대에서뿐만 아니라 TV 드라마에서 어정쩡한 빛깔의 평범한 배역을 개성 있는 캐릭터로 만드는 비범한 재주를 지녔다. 30년 전 작품인 〈TV 손자병법〉이 그 예다. 머리에 흰서리가 내렸고 왜소한 체구에 등이 굽은, 결재판을 가슴에 든 그의 모습은 샐러리맨의 전형이자 우리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그는 마치 결재판을 들듯 누런 서류봉투를 쥐고 있었다. 그 봉투 속엔 연극 데뷔 시절 무대 사진, 그가 졸업한 서울고와 연세대 학생증, 동양방송 전속 탤런트 신분증, 병적(兵籍)증명서, 심지어 중앙대 대학원 합격증, 초등학교 배지부터 대학 배지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자료들을 대학로 국립예술자료원에 기증할 예정이라고 했다.

“상사 앞에서 허리를 있는 대로 굽히고 아래위에서 공격받는 중간 간부의 비애랄까? 원래 이 드라마는 방송국에서 기획한 게 아니에요. 극단 ‘실험극장’에서 연출을 맡았던 후배가 낙하산으로 KBS에 들어갔는데 나를 만나 ‘도와달라’고 해요. ‘뭘 하고 싶은데?’ 하고 물으니 사회풍자극을 하고 싶대요. 며칠 고민해서 ‘이장수’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부하직원 불만을 받아서 윗사람에게 총대 메는, 왠지 어눌한 샐러리맨 캐릭터로 구린내 나는 현실과 맞서는 모습이랄까?”


오현경 선생은 〈TV 손자병법〉의 이 장면도 추억했다.

“극중 소제목이 ‘사내(社內) 노래자랑’이었는데, 직원들이 업무는 안 보고 전부 노래 연습을 하는 거야. 회사 옥상에 올라가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를 열심히 부르는 장면이 나오고, 제가 옥상에 올라가 야단을 쳐요. ‘뭣들 해! 일 안 할 거야? 빨리 들어가!’라고 고함 친 뒤 ‘이장수’가 양복 안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요. 거기엔 회사 사장의 십팔번 곡 김정구의 ‘눈물 젖은 두만강’ 가사가 적혀 있어요. 이 장면에서 시청자들이 배를 잡고 요절을 해.

결국 사내 노래자랑에서 이장수 부서가 상을 타요. 그런데 상금을 세상 떠난 동료의 부인을 찾아가 전달하는 장면으로 극이 끝납니다. 시청자 가슴을 찡하게끔 극중 장치를 한 거지.

얼마 후 코미디언 구봉서 선생이 분장실로 저를 찾아왔어요. ‘야! 오현경이. 이래도 되는 거야?’ 하고 화를 내요. ‘야, 인마! 직업으로 웃기는 우리를 웃겨 놨으니 이제 우리는 뭘 해야 되는 거야?’하면서요.”


바보 연기, 내시 연기로 캐릭터 창조

젊은 시절 오현경(왼쪽). 20여 편의 영화, 100여 편의 TV드라마에 출연했지만 그의 본업은 누가 뭐래도 연극이다.
만년 과장 이장수 외에도 그가 창조해낸 캐릭터가 많다. 바보 연기, 내시 연기의 전형이 오현경이라고 하면 틀린 말이 아니다. 1966년 출연했던 드라마 〈내 멋에 산다〉에서 오현경의 바보 연기가 유난히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배역은 졸부 집안의 장남이자 백수. TV에서 방송 사상 최초의 코믹 연기였다.

“(캐릭터를) 많이 만들었지. 바보 연기를 보고 1970년대 〈여로〉의 작가 이남섭이 ‘영구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해요. 한번은 ‘영구’로 유명해진 심형래가 찾아와 ‘영구의 원조가 오 선생님이라던데요?’ 그래요.

사실 사극 연기도 제가 많이 했고 억양 없는 대사로 내시 캐릭터를 만들었지. 피어리드(period, 마침표)가 없는 대사를 길게 이어 가는 식으로….”

거세를 당한 듯 맥없는 목소리로 대사에 운율을 주어 매끄럽게 리듬감을 살려 말했다. 이후 각종 사극에서 오현경식 내시 캐릭터가 대세가 됐다.

“한번은 피디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선생님. 제가 사극을 하는데, 내시의 억양은 항상 그래야 합니까’라고 물어요. 얼마나 웃기던지. ‘이보시오! 내시 억양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내가 그런 캐릭터를 재미있게 만들었다’고 했지요.”

오현경 배우가 공개한 각종 자료들. 그가 졸업한 서울고와 연세대 학생증, 동양방송 전속 탤런트 신분증, 병적(兵籍) 증명서, 중앙대 대학원 합격증, 심지어 초등학교 배지에서 대학 배지까지 다양하다.
‘만년 배우’ 오현경은 20여 편의 영화, 100여 편의 TV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그의 본업은 누가 뭐래도 연극이다. 초기 연극 무대에서 〈햄릿〉의 마셀러스, 〈포기와 베스〉의 사이먼 폴레더, 〈세일즈맨의 죽음〉의 해피로 분(扮)했다. 특히 1962년작 〈포기와 베스〉(뒤보스 헤이워드 작)에서 흑인 변호사 사이먼을 연기해 유치진(柳致眞) 선생에게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대학 시절 연극할 때는 주로 주인공을 맡았는데, 사회에 나와선 주인공을 한 게 별로 없어요. 그땐 김동훈, 이순재, 김성옥 씨 등이 주로 주연을 했어요. 나이가 다들 저랑 비슷비슷해요. 데뷔 후 두 번째 작품으로 〈포기와 베스〉에 출연했는데, 저더러 흑인 변호사 역을 해보라고 해요. ‘그 역할은 연기력이 필요한 인물이어서 배역 결정을 안 했다’는 겁니다. 모욕을 느껴 가며 연기를 했는데, 나중 유치진 선생이 ‘이것 봐, 현경이! 이제 그런 역할 좀 해줘. 배우들이 전부 주인공만 하려고 하잖아’라고 하셨어요. 저는 노역(老役)도 마다하지 않았고 바보, 내시 연기까지 했으니까….”

이후 오현경은 유치진 선생의 추천으로 연극 〈한강은 흐른다〉(1962년작)에서 비중 있는 조연인 ‘미꾸리’ 역을 맡았다. 미꾸리 역은 서울 청계천 바닥에 사는 ‘미꾸라지’ 같은 인물이었다. 탄탄한 조연의 수업을 거친 뒤 1966년 연극 〈아들을 위하여〉(아서 밀러 작, 나영세 연출)에서 조지 디버(주인공의 처남) 역을 맡아 제3회 동아연극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다른 이들은 자기 배역에 열심인데 나만 계속 헤매는 겁니다. 어떻게 연기를 하면 좋을지 성격이나 행동, 무대 위 시선 처리도 제대로 익히지 못했어요. 그때 공연장이 명동에 있었는데 터벅터벅 걷다 보니 한 여관이 보였어요. 무작정 들어가 한참을 멍하게 앉았는데 배우 생활에 대한 회의감도 들고 그랬어요. 이번이 마지막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 대본의 겉장부터 읽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모든 중압감이 사라지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어. 작품 속 역할과 성격이 그려지고, 책(대본)을 덮고 대사를 외우니 거짓말같이 술술 나와요.”

젊은 시절 오현경(오른쪽). 데뷔 초기 연극 〈햄릿〉, 〈포기와 베스〉, 〈세일즈맨의 죽음〉 등에 출연했다.
오현경의 대표작은 누가 뭐래도 〈휘가로의 결혼〉이다. 1969년과 76년, 77년, 83년, 85년까지 다섯 차례 재공연될 때마다 상대 역은 바뀌어도 ‘휘가로 오현경’은 바뀌지 않았다. 초연 당시 그의 나이 서른셋이었다.

“여러 작품 중에서 그 공연처럼 재미있는 공연도 없었어. 배우들 간 호흡이 잘 맞았고 공연이 끝나는 순간까지 웃음이 그칠 날이 없었지. 그런데 공연 시작 날, 분장실에 배우가 없는 거야. 자기 신이 끝났는데도 전부 무대 옆에 서서 연극을 보고 있었던 거지. 연습을 하면서 그렇게 봤으면서도 또 재미있는 거야. 이후 〈맹진사댁 경사〉(1969년작)도 공연했지만 그때만큼 재밌는 공연은 없었던 것 같아”라고 말했다.

오현경의 조상은 대대로 경북 영양에서 살았지만 그는 서울 안국동에서 태어났다. 북촌 출신이란 점이 배우 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 연극계에서 몇 안 되는 정확한 표준어를 구사할 줄 아는 배우라고 할까. 특히 화술 좋은 배우로 유명하다. 그의 지론은 “무대의 소리는 그냥 생소리가 아니라 발성에 의해 내야 한다”이다. 횡격막(横膈膜)을 죄어 내는 듯한 소리로, 그런 소리여야만 3~4시간 무대 위에 서도 목이 잠기거나 쉬지 않는다. 목을 자극하지 않는 발성법 때문이다.

“아무리 작은 소리도 배 안에서 ‘졸였다 늘였다’ 하면서 소리가 여기(배)서 나오게 하고, 모음과 자음을 입 모양에 따라 나오게 해야 합니다. 목을 무리하게 공명시키는 대사는 어렵고 금방 목이 쉬어요. 배에서 나와야 감동적인 소리가 돼요. 목소리 톤이야 누구는 뾰족하고 누구는 굵지만, (배에) 그릇을 놔두고 객석이 모르게 호흡을 해야 오래 연기할 수 있어요. 그런 대사를 들어야 관객도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그냥 대본 외워 소리 지르는 거야 누군들 못 해….”

입 모양이 부정확하면 올바른 발음을 내지 못한다. 사실, 각각의 발음에 정확한 입 모양을 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배우의 생명은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있다. 발성이 부정확하면 대사 전달은 물론 느낌의 전달도 어렵다. 오현경은 젊은 시절, 가방 속에 항상 우리말 발음사전을 갖고 다녔다고 한다.


“‘배우가 무대에서 노네’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오현경의 말이다.

“대사는 배우와 배우 간 소통만이 아니라 관객에게 전하는 메시지의 소통이잖아요. 무대에서 주고받는 대사의 ‘사이’라는 게 중요해요. 어떤 소리든 무대에서 소리가 반사되잖아. 작은 무대는 소리가 객석에 금방 전달되지만 조금 큰 무대는 늦게 전달되고, 더 큰 무대는 더 늦게 전달됩니다. 소리가 극장 벽에 부딪쳐 다시 무대로 돌아오기 전에 대사를 하면 말(대사)이 서로 부딪쳐 깨집니다. 입에서 (말이) 나가 내 귀에 들어오기까지의 시간을 마음속에 설정해 ‘사이’를 두고 연기 크기를 조절해야 해요. 극장 크기와 조건에 따라 배우가 조절해야 할 발성과 몸짓의 크기가 다 상관이 있어요. 그래야 ‘배우가 무대에서 노네’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선생도 공연할 때 긴장을 할까.

“그럼요. 안 그런 것 같지만 실지론 긴장합니다. 물론 (무대에) 익숙해졌으니까 조금 덜하죠. 오히려 신인들이 멋도 모르고 (연기를) 막 하는 경우가 많죠. 선배에게 연기를 배울 때, 기교가 아닌 정신을 배워야 해요. 무대에 임하는 정신 말이죠. 신인 시절, 명동예술극장에 가면 변기종(卞基鍾) 선생님이 항상 무대 곁 조그만 의자에 앉아 계셨어요. 까마득한 선배여서 목례만 했지 말을 붙이질 못했어요. 그분은 공연을 앞두고 눈을 지그시 감고 계셨어요. ‘기도를 드리시는구나’ 생각했어요. 그 뒤로 저 역시 공연 시작 전 심호흡을 하고 ‘오늘 연극이 잘되게 보살펴달라. 오늘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기도했어요.”

그럼 누구를 향해 기도하는 걸까.

“나의 신(神) … 지금은 하느님이지만 그땐 신앙생활을 안 할 때였어요. 그런데 나중 알고 보니 변기종 선생이 항상 무대 앞에서 눈을 감고 있었던 이유가, 시끄러운 잡담과 배우들의 음담패설, 흡연 탓에 분장실에 앉아 있을 수 없어 그랬다는 겁니다. 실지로 기도를 하셨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제 눈엔 기도하는 모습이셨어요. 그게 중요해요.”


배우는 연기기술을 어떻게 체득할까. 선생은 “무슨 교본이나 텍스트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어깨너머로 배운다’”며 “일종의 모방 학습이지만 시행착오를 거쳐 자기화하는 과정이 연기”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연기는 가르쳐서 되는 게 아니라 감성으로 느껴야 해요. 감성은 흉내를 못 내. 무의식 속에, 내 안의 용광로에 넣어 두었다가 ‘저 사람이 기도를 하는구나, 나도 기도해야지…’ 하며 닮아지는 과정을 거쳐 나옵니다.”

그렇다면 악역은 어떻게 해야 할까.

“무대에서 60년 넘는 세월을 보냈더니 이젠 연기하는 이의 인격이 다 보여요. 인격이 훌륭한 배우는 아무리 천한 역을 맡아도 천하게 보이지 않아. 진짜 천한 역할이 필요하면 천한 사람 불러다 앉히면 되잖아요. 연기는 결국 아름답게 보여야 해요. 아무리 악역이든, 악역을 아름답게 표현해야 합니다. 그 악역 속에 배우의 인생을 담아야 해요.”
  • 201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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