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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대를 나온 후 ‘홍어 전도사’가 되다

서울 망원시장 ‘홍어 아가씨’ 전희진

글·사진 : 서경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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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넷의 젊은 아가씨가 시장에서 홍어를 판다.
요즘 세상 청년이 시장에서 물건 파는 일이 흔하다지만, 아가씨가 시장에서 음식을, 그것도 ‘홍어’라니. 홍어만큼 호불호가 뚜렷한 음식이 또 있을까. 홍어는 코끝을 아리게 하는 특유의 향으로 마니아를 거느리면서도 또한 그 향 때문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도 많은 음식이다. 그는 왜 시장에서 홍어를 팔게 됐을까? 망원시장의 ‘홍어 아가씨’로 불리는 전희진(34)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올해 2월 말 망원시장에 홍어 전문점 ‘무침 프로젝트 홍어무침’ 가게를 연 전희진 씨는 도시적인 외모와 앳된 얼굴이다. 야무지게 머리띠와 앞치마를 두르고 서 있는 폼이 예사롭지 않다.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한번 잡숴봐. 안 사도 좋으니 일단 먹어보기만 해요” 하며 넉살 좋게 웃는데 알싸한 홍어 냄새만큼이나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다.

전희진 씨가 시장에서 파는 메뉴는 단 하나, 홍어무침이다. 삭히지 않은 홍어를 사용한다는 게 특이한 점이다. 즉석에서 무쳐 내주는 홍어무침은 삭힌 홍어 특유의 냄새가 없는 대신 쫄깃한 식감에 새콤한 소스가 어우러져 입안에 착 감긴다. 홍어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한번 맛보면 입안에 군침이 돌 만큼 당기는 맛이다. 그는 “홍어라면 이름만 들어도 눈살 찌푸리는 사람들에게 홍어의 또 다른 매력을 알리기 위해 망원시장에 가게를 열었다”며 “망원시장은 인근 주민들과 맛집을 탐방하는 데이트족에게 홍어의 맛을 알릴 수 있는 핫 플레이스”라고 했다.

포장 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홍어 가게 앞에는 6000원부터 10만 원대까지 가격대별 포장 용기에 담긴 홍어무침 모형이 나란히 놓여 있다. 주문이 들어오면 아침에 손질한 홍어와 채소를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내준다. 주인장의 손맛이 들어간 특제 소스는 먹기 직전 무쳐 먹으라고 따로 포장한다. 행여나 손님들이 무침 방법을 모를까 손 글씨로 정성스럽게 쓴 레시피도 잊지 않는다.

가게 인테리어나 간판, 심지어 포장지 하나까지 시장의 여느 가게와는 달리 독특하고 세련됐다. 입구에 붙인 ‘가오리 출입금지’라는 푯말이 미소를 머금게 한다. 모두 중앙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한 전희진 씨의 손끝에서 나온 것들이다.


예술가의 꿈을 키워오던 그가 갑자기 홍어 사업에 뛰어든 것은 1년 전 홍어 전문점을 운영하던 어머니가 몸이 안 좋아지면서다. 그는 가업처럼 이어온 홍어 가게를 지키기 위해 다섯 살 아래 남동생과 함께 서울 은평구 응암동 대림시장의 어머니 가게에서 홍어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부터 어머니가 홍어 가게를 했어요. 구리구리한 홍어 냄새가 늘 집안에 가득했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구수한 된장찌개와 생선구이가 오르는 네 식구의 따뜻한 저녁상이 평범한 일상이었어요. 어머니가 몸이 안 좋아 가게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고 하니 20년의 세월이 떠올랐어요. 그대로 문을 닫을 순 없었죠.”

전희진 씨는 화장실 청소부터 홍어의 해체작업과 손질, 홍어무침 손맛 하나까지도 빠짐없이 어머니에게 배웠다고 한다. 식당일은 만만치 않았다. 낮에는 홍어 시식 홍보를 하고 오후에는 가게에 오는 손님을 응대하는 일을 해야 했다. 처음에는 어머니를 도와 가게를 지켜가고자 시작한 일이었지만 남매는 그 안에서 홍어의 상품으로서의 가능성을 봤다.

“삭힌 홍어를 못 드시는 분을 위해 만든 메뉴가 홍어무침이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홍어무침이 유명세를 타면서 포장해 가는 손님도 생기더라고요. 홍어는 못 먹는데 무침이 맛있다며 이것만 사러 오는 손님도 있었고요. 가능성이 보였죠. 마니아층으로만 국한돼 있는 홍어를 더 알리고 싶은 욕심이 들었어요.”


그는 어머니에게서 이어받은 손맛을 살려 홍어무침을 특화했다. 여기에 남매의 젊은 감각이 더해지며 홍어 장사는 더욱 활기를 띠었다. 이에 힘입어 누구나 홍어를 즐기게 하겠다는 포부로 문을 연 게 바로 망원시장의 ‘무침 프로젝트 홍어무침’ 가게다.

“‘블루오션’이라고 봤죠. 동생과 제 입맛에도 맞았기 때문에 충분히 젊은 사람들을 겨냥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외관을 잘 꾸미고 홍보나 마케팅을 젊은 감각으로 하면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1년여를 준비했습니다.”

대부분의 청년 창업이 그렇듯 창업 자금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매가 하나부터 열까지 두 발로 뛰면서 준비했다. 미술을 전공한 그가 인테리어 공사를 맡았고, 주방 경력이 있던 동생이 요리 시스템과 유통을 책임졌다.

“동생이 매일 새벽 부산에서 올라오는 홍어를 받아다 직접 손질해요. 중간 도매를 거치면 가격을 맞추기 힘들어 유통망을 좁힌 거죠. 우리는 무조건 싱싱한 재료를 최우선으로 합니다. 무침에 들어가는 채소나 홍어 모두 당일 재료만 사용합니다.”


그는 최고의 맛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맛을 일정하게 내는 것이 무엇보다 어려웠다고 한다. 어머니에게 전수받은 손맛을 바탕으로 채소와 소스, 홍어를 모두 계량화해 일정한 맛을 내기 위한 작업만도 1년여가 걸렸다.

“주위 상인들이 홍어 한 종류만 판다고 하니 걱정을 많이 해주셨어요. 처음에는 홍어 맛을 잘 모르는 젊은 손님을 고객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난관이었죠. 홍어의 참맛을 체험적으로 알게 됐기 때문에 그 정도는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시장을 오가는 이들에게 무조건 시식을 권하며 맛을 알렸어요.”

그의 확신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는 “홍어 맛을 보여주면 손님들의 동공이 확대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외국인 고객도 제법 늘었다. 삭히지 않은 홍어라 거부감도 없고 매콤 새콤한 맛이 ‘한국의 맛’을 느끼게 해준다는 이유다. 망원시장의 홍어 가게에서는 하루 평균 200여 명이 홍어무침을 포장해 간다.

주말은 평일의 배 이상으로 손님이 몰린다. 시식만 하고 가는 이만도 평일에만 600여 명에 이른다. 모두가 다음을 기약하는 잠재 고객이다. 한 번 온 손님들이 다시 가게를 찾는 비율이 늘어나며 초기 투자금도 거의 회수했다. 이제는 택배 영업을 시작으로 사업 범위를 넓히려 노력 중이다.

전희진 씨는 지금의 작은 성공에서 그치지 않고 먼 미래를 내다본다. ‘홍어의 매력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그는 ‘홍어의 한류화’라는 야무진 꿈을 꾸고 있다.

“전라도 고유의 전통음식인 홍어를 통해 함께 나눠 먹고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네 정 문화를 널리 알려 나눔, 소통, 공감을 선도하는 문화 아이콘으로 성장하고 싶어요. 궁극적으로는 망원시장을 기점으로 전 세계 코리아타운에 홍어 가게를 열고 비빔밥이나 불고기처럼 홍어 요리를 세계화하고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는 해외 교민은 물론 전 세계 누구나 즐기는 한국 전통음식으로 널리 알리는 게 목표입니다.”
  • 2017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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