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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요를 현대감각에 맞는 새로운 음악으로 만듭니다”

정통 국악인의 길을 걸은 소리꾼 김용우

김용우는 국악고등학교와 서울대 국악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전문사 등 국악인으로서 정통 엘리트 코스를 거쳤다. 하지만 그는 국악만 고집하지 않는다. 그가 공부한 국악은 클래식, 재즈, 아카펠라, 심지어 클럽음악과 접목하면서 현대감각에 맞춰 다양하게 변신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소리꾼이라고 부른다.
지난 6월 30일 저녁 서울 상수동 블러섬랜드에서 소리꾼 김용우와 아카펠라그룹 제니스가 함께 무대에 올랐다.

‘군밤타령’ ‘뱃노래’ 등 김용우와 제니스가 함께 호흡을 맞춰 부르는 우리 민요를 들으면서 ‘민요와 아카펠라가 이렇게 잘 어울렸나?’ 놀라웠다. 국악클럽을 표방하는 블러섬랜드를 가득 채운 관객은 어깨를 들썩이며 공연을 즐겼고, 공연이 끝나자 김용우 씨에게 달려가 함께 사진촬영을 했다. 이 중에는 김용우 씨 공연 때마다 찾아오는 골수팬도 많다고 했다. 올해로 쉰 살이 된 소리꾼 김용우 씨의 인기가 아이돌 스타 부럽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민요를 부르면서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행복을 전할 수 있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죠.”

김용우는 국악고등학교와 서울대 국악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전문사 등 국악인으로서 정통 엘리트 코스를 거쳤다. 하지만 국악에 문외한인 사람도 그의 음악에는 쉽게 다가갈 수 있다. 클래식, 재즈, 아카펠라 심지어 클럽음악과 접목하면서 현대감각에 맞춰 다양하게 변신하기 때문이다. 국악고등학교와 서울대 국악과에 다닐 때까지 그의 전공은 피리였다. 하지만 인간문화재들에게 정가와 민요를 배우고 전국을 돌며 민요를 채집하면서 노래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자신의 음악인생 이야기를 시작했다.

“충북 영동에서 보낸 어린 시절부터 그저 음악이 좋았습니다. 제 어린 시절은 영화 〈시네마 천국〉과 비슷해요. 영동군청 문화공보과에서 근무하셨던 아버지가 산골을 누비면서 주민들에게 영화를 보여줄 때마다 따라다녔거든요. 그 뒤 아버지가 영동극장 영사기사로 일하실 때는 영사실에 들어가 영화를 봤습니다. 어머니가 노래를 좋아하셔서 집에 음악 테이프도 쌓여 있었습니다. 시골에 살았지만 부모님 덕분에 일찍이 문화 혜택을 누린 셈이죠. 초등학교 2~3학년 때 그릇을 잔뜩 꺼내놓고 보니엠의 ‘라스푸틴’ 리듬에 맞춰 젓가락으로 두드리다 깨뜨려 혼났던 기억도 나요. 중학생이 된 다음에는 국악 동아리에서 피리를 불다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피아노가 너무 치고 싶어 음악실을 기웃거리던 저를 보고 음악선생님이 6개월 동안 방과 후에 가르쳐주셨어요. 단식투쟁 끝에 우리 집에도 피아노가 생긴 다음에는 그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중3 때 그는 영동에서 열리는 난계국악경연대회에 우연히 참가해 피리 연주로 상을 받으면서 국악의 길에 들어섰다.

“그때 만난 국악고 선배들이 ‘우리 학교로 와’라고 한 말에 솔깃했습니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입학시험에 합격했고, 혼자 서울에 올라와 자취하면서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제 전공인 피리뿐 아니라 국악 전반을 두루 접하면서 ‘우리 음악이 이렇게 재미있구나’ 하고 느낀 때였어요. 김용배 선생님에게 사물놀이를 배워 공연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는 1986년 피리 전공으로 서울대 국악과에 입학하자마자 국립국악원에 전화해 ‘정가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 접한 정가의 매력을 제대로 탐구하고 싶어서였다. 민중의 노래인 민요와 달리 정가는 가곡, 가사, 시조 등 상류층이 즐기던 고상한 노래다. 곱고 부드럽게 소리를 내는 창법이 민요와 다르다. 운 좋게도 바로 인간문화재 이양교 선생의 전수자가 되어 1991년까지 5년간 12가사를 배울 수 있었다.

처음 배운 소리가 정가였기 때문에 그는 요즘도 곱고 부드러운 미성(美聲)으로 노래할 때가 많고, 아카펠라와도 잘 어울리는 음색을 가지게 되었다.

“1988년에는 한 해 휴학하고 전국을 누볐습니다. 농촌활동하면서 들었던 농부들의 노래가 너무 좋아 ‘이런 노래를 찾아다니면서 들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소리꾼들이 부르는 노래가 통속민요라면 각 지역의 주민들이 생활 속에서 부르던 노래는 토속민요라고 합니다. 그 지역에서만 들을 수 있는 노래죠. 술 한 잔 걸친 채 촌부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의 노래를 녹음하는 과정이 재미있고 좋았어요. 보통 전라도에 노래가 많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충청도에서 강화도까지 서해안 지역에 새롭고 재미있는 노래가 더 많았습니다.”

대학 졸업 후 국악실내악 그룹인 슬기둥에서 활동하던 그는 우연히 무대에서 노래하기 시작했다.

“몇 년 동안 슬기둥에서 장구를 쳤어요. 노래는 공연 뒤풀이에서나 불렀는데, 어느 날 선배가 ‘너 무대에서 노래해봐’라는 거예요. 입으로는 ‘내가 무슨 노래예요?’라고 사양했지만 ‘무슨 노래를 부를까?’라는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산도깨비’ ‘소금장수’ 같은 국악가요를 부르다 차츰 대학 시절에 채집했던 토속민요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민요를 제대로 부르고 싶어 조공례(진도민요와 들노래), 오복녀(서도소리), 이춘희(경기민요와 12잡가), 박병천(진도무악) 등 전국의 인간문화재를 찾아다니면서 배웠다.

“민요를 부르는 창법이 지역마다 달라요. 전라도의 육자배기가 굵게 소리를 낸다면 경기민요는 가늘게 떨면서 꾸밈음이 많고, 서도민요는 추켜올렸다 흘러내리듯이 부릅니다. 각기 다른 매력이 있죠. 그때 그렇게 배워둔 덕에 노래마다 창법을 바꿔가며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96년 그는 첫 음반 〈지게소리〉를 내면서 민요에 피아노, 바이올린 등 서양악기와 아카펠라가 어우러진 새로운 음악을 선보였다.

“어렸을 때부터 클래식과 팝, 재즈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두루 좋아했기 때문에 그 음악적 자산을 바탕으로 나만의 음악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민요를 편곡해서 다른 음악과 접목하는 일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민요마다 ‘이 노래는 어떤 장르의 음악과 만나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1999년 음반 〈모개비〉에 실린 민요 ‘만드레 사냐’는 테크노 음악과 접목했다.

“‘육칠월 만물에 메뚜기 뒷다리헌티 치어죽은 영감아. 부귀다남 백년동락 아 살자드니 나 홀로 어디 두고 어디를 갔나 영감아’라는 노랫말이 슬프면서도 해학적이잖아요? 지금의 음악으로 어떻게 풀어낼까 고민하다 테크노 음악과 만나게 했죠.”

그의 새롭고 다채로운 시도에 대중도 화답했다. 국악계에서는 드물게 2000년에 팬클럽이 만들어져 회원이 3000명에 이른다. 하지만 그는 인기를 바라고 음악을 한 적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고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게 예술가의 삶이라고 믿었습니다. 새로운 음악으로 대중이 따라오게 만들어야지 내가 대중을 좇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지난해 데뷔 20주년을 맞은 그는 두 개의 음반 〈노들강변〉과 〈십이난간〉을 내놓았다. 〈노들강변〉은 피아노, 베이스, 드럼, 트럼펫, 트롬본, 플루트 등 재즈연주자들과 함께한 민요 음반이고, 〈십이난간〉은 오랜만에 부른 정가를 담은 음반이다.

“정가는 제가 처음 시작한 노래잖아요. ‘처음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를 담아 정가만 불러보고 싶었어요. 술도 먹지 않고 미친 듯이 연습하니 목이 풀리더라고요. 대금, 장구, 단소, 거문고 등 우리 악기만 사용해 고즈넉하게 만들었는데, 너무 좋았어요. 정악은 민요보다 덜 알려졌지만, ‘김용우가 불렀다니 한번 들어보자’며 듣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젊은 소리꾼’이란 별칭이 붙어왔다. 쉰이 된 지금도 ‘젊은 소리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이로는 젊다고 할 수 없지만, 언제나 젊은 감각으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는 어울리는 별명이라고 생각해요. 요즘도 클럽을 다니면서 음악을 듣다 제 음악 색깔과 맞겠다고 생각하면 먼저 다가가 ‘함께 연주해보자’고 제안합니다. 앞으로 제 관심이 어디로 향할지, 제 음악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낼지는 아직 모르죠.”
  • 2017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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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소리사랑춤사랑   ( 2017-08-09 ) 찬성 : 4 반대 : 0
용우 님에게 관심을 두게 된 것은 그의 음악적 깊이와 넓이에 놀라서였습니다. 서양음악과 함부로 섞어 연주하는 것 좋아하지 않고 지금도 전통 국악을 더 좋아하지만 용우 님은 분명한 국악의 바탕을 가지고 또 서양음악을 깊이 연구하여 접목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존경합니다. 소릿길 책 한 권 내 주세요
   4768   ( 2017-07-28 ) 찬성 : 2 반대 : 5
소리꾼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것 전통을 중요하는 저는 그다지바람직 하지는 않은듯 전통문화를 기초로 그리공부를 많이 하신분이 현대적으로만 부르는 소리가 대중적이긴 하겠지만 중요문화재 선생님께서 환영할일은 아닌듯. 전통문화를 전통적으로 하면서 간혹 일탈하는것은 신선하지만. 가요같은 소리를 그러면 전통문화하는. 우리는 식상합니다
 제 관점에서 본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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