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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속 카나리아처럼 세상을 감지하는 예민한 촉수

〈옥자〉의 봉준호 감독

‘순해 보이지만 어딘가 내성적이고, 무언가 억울해 보이는 덩치 큰 동물’, 이수대교 남단을 지나던 봉준호 감독의 눈에 들어온 생명체다. 이 생명체는 결국 영화 〈옥자〉가 됐다. 그가 본 것은 사실 상상이다. 감독은 종종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 한 사람의 머릿속에 있던 어떤 이미지가 모두의 눈앞에 펼쳐진다는 게 영화의 신비다.

사진제공 : NEW, 넷플릭스
봉준호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순해 보이지만 어딘가 내성적이고 무언가 억울해 보이는 덩치 큰’ 생명체가 눈앞에 와 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건 그의 덩치(?) 때문이기도 하고, 대화를 나눌 때 상대의 말을 헤아리는 사려 깊음 때문이기도 하다. 〈옥자〉의 개봉을 앞두고 숱한 내외신 기자와 인터뷰를 나누었을 그는, 모든 이야기를 ‘처음 하는 이야기’인 것처럼 흥미롭게 들려주었다. 타고난 이야기꾼인 그는 예리한 촉수로 세상의 ‘억울한 이야기’들을 끄집어낸다. 그 세상 안에는 동물이 내는 신음소리도 포함돼 있다.

봉준호 감독이 유일하게 챙겨 보는 프로그램은 〈TV 동물농장〉이다. 그는 그 안에서 동물과, 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두루 살핀다. 반려인인 그에게 동물은 동무다. 상업영화 첫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부터 〈괴물〉, 그리고 〈옥자〉까지 그의 영화에서 동물은 소품이 아니라 역할로 존재했다. 이들은 제각기의 생명력을 갖고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옥자〉는 하마에 코끼리, 남미의 매너티를 섞은 상상의 동물이자 슈퍼 돼지다. 그가 ‘돼지 이야기’를 하게 된 건 돼지만큼 억울한 동물도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진돗개보다 영리하고, 신변이 깔끔한 이 동물은 인간에게 그저 “하나도 빠짐없이 먹을 것”일 뿐이다. 이 돼지가 금이야 옥이야 키운 ‘옥자’라면? 내 가족이 도살장에 끌려가더라도 우리는 아무 일 없이 잘 살 수 있을까?


내 가족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잔혹동화


옥자와 미자는 자매처럼 자랍니다. 위기에 닥치면, 둘은 서로를 위해 몸을 던지기를 마다하지 않죠. 문득 이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둘의 이름은 누가 지었을까.

“(변)희봉 선생님의 횡포죠(웃음). 옥자가 처음 미자 집에 왔을 때 미자는 아주 어린 아이였을 겁니다. 할아버지인 희봉은 미자를 미자라고 짓고, 옥자를 옥자라고 짓죠. 요즘 세상에 안 맞는 이름이지만, 희봉에게는 최선이었을 거예요.”

영화 속에서는 ‘옥자’를 대하는 각 사람의 태도가 드러납니다. 비교적 선한 축에 속하는 희봉이나 ALF(동물해방연대) 인물들도 어떤 면에서는 한계를 드러내고요.

“영화 속 모든 인물이 한계에 부딪힙니다. 아마 우리의 모습이 그럴 겁니다.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도 그 동물을 품에 안고 마트에서 장을 봐요. 그 마트에는 분쇄된 고기들이 가득하죠. 가장 대표적으로 돼지는 모든 부위가 고기와 부속물로 치환되죠. 저는 육식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명을 대하는 지금의 시스템은 문제가 있다고 봐요. 지난 어느 시대보다 더 대규모로, 잔혹하게 학살이 계속되고 있거든요.”


그 컨테이너 벨트 위에 ‘옥자’가 올라서는 순간, 관객도 각성하게 되죠. ‘아, 옥자는 안 되는데’ 하는 마음이 들고요.

“그런 불편함을 주고 싶었어요.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보는 풍경이 사실은 그런 풍경이 아닐 수도 있거든요. 〈옥자〉는 기본적으로 ‘내 가족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이야기’입니다.”

그 벨트를 멈추는 건 결국 미자죠. 소녀가 세계로 돌진해서 그 세계를 바꾸는 이야기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여러 번 변주된 모습입니다.

“그런 모습에 제가 매혹되는 것 같습니다. 미자를 맡은 안서현 양이 보여준 태도도 그랬어요. 들뜨거나 호들갑 떨지 않으면서, 앞으로 돌진해 나갔죠. 제가 생각한 미자의 이미지는 한 집안에 한 명씩 있는 ‘걔는 아무도 못 당해~’라고 생각하는 아이였습니다.

어른들도 막을 수 없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만드는 아이죠. 미자는 허들을 넘는 게 아니라 허들 자체를 무너뜨려요.

영화 속 인물들이 제각기 한계에 부딪힐 때도 미자는 한계를 뛰어넘죠. 그런 모습이 주는 아름다움이 있어요.”


오늘날 일어나는 어떤 억울한 이야기들


강원도 정선의 깊은 산골 마을과, 돼지 도살장이 주는 이미지는 대조적입니다. 한국과 미국의 차이가 아니라 정서적인 차이라고 할까요.

“실제로 취재를 위해 도살장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그 규모와 분위기의 10분의 1도 담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섬뜩했던 건, 그 안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이 이 시스템을 자랑스러워 한다는 거였어요. 돼지의 눈으로 봤을 때 그곳은 홀로코스트죠. 영화 속에서 도살장이 끔찍해 보였다면, 그건 이미 관객이 옥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죄책감이 들기도 하더군요. 소비가 없다면 유전자 조작이나 대량생산도 없었을 테니까요.

“소비는 선사시대부터 있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오늘날에는 어떤 도를 넘었어요.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는데 그렇게까지 해버려요. 거기에 대해 무감각해지고요. 영화 속에서도 흔들리는 루시와는 달리 언니인 낸시는 ‘돈을 벌 수 있다’면 다른 어떤 것도 상관없다는 입장이잖아요? 그런 인물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아요. 미자처럼 금돼지를 던져 주는 수밖에 없죠.”


영화를 만드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끝없는 대화를 하는 작업일 것 같습니다. 〈옥자〉는 배우는 물론 스태프까지 다국적 인재들이 모여 만든 작품인데 어려움은 없었을까요?

“국적이 다르기 때문에 느끼는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저부터가 〈옥자〉라고 특별히 다른 태도로 만들지는 않았으니까요. 영화를 만드는 저의 자세는 동일합니다. ‛제가 하고 싶고, 제가 보고 싶은 이야기’를 하려는 겁니다. 거기에 동의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거고요. 〈옥자〉가 투자를 받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일단 국내에서는 500억 상당의 투자를 얻기가 어려웠고, 다른 영화인들에게 민폐를 끼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해외로 눈을 돌렸는데, 영화의 편집권을 보호해주는 곳은 넷플릭스가 유일했습니다.”

간담회 때도 〈옥자〉라는 영화가 가진 운명에 대해 언급했었죠. 개봉 전부터 ‘영화인가, 아닌가’를 두고 이야기가 많았고, 개봉을 한 뒤에는 불법 유출 등으로 홍역을 앓고 있고요.

“저로서는 칸에서부터 시작한 이야기를 지금도 하고 있는 터라, 〈옥자〉가 한참 된 이야기 같아요.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의 내용 그 자체라면 좋을 텐데, 그 외의 이야기와 논란이 많아지니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영화는 영화로 즐길 수 있을 때 가장 영화다운데 그러질 못하니까요. 10년 후 쯤에는 〈옥자〉만 두고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10년 후, 〈옥자〉를 다시 보게 된다면 옥자는 지금보다 나은 세상에 살고 있을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영화는 “지금 이 상태로 계속 흘러간다면 세상이 어떻게 될 것 같은지”에 대한 상상이다. 광산의 카나리아처럼 다가올 재앙에 대해 기민한 날갯짓을 하는 것이다. 그 날갯짓의 의미를 알아들은 이들은 나비효과처럼 다른 길을 내어 재앙을 막아낼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유독가스는 우리의 삶을 잠식할 것이다.

그럼에도 봉준호 감독의 이야기가 캠페인이나 구호가 아니라 ‘영화’인 이유는, 그의 이야기에는 여전히 아름다움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고난을 겪어도 망가지지 않는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대한 소망이 관객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다.
  • 2017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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