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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시각장애인을 위해 점자로 읽을 수 있는 디지털기기 만들어요”

벤처기업 ‘닷’ 김주윤 대표, 성기광 CTO

글 : 이선주 객원기자  / 사진 : 장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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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시게 발달하고 있는 디지털 기술의 혜택을 시각장애인도 누리게 하고 싶었습니다.”
세계 최초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스마트워치를 개발해 세계 각국에 판매하고 있는 벤처기업 ‘닷’의 김주윤 대표(CEO)와 성기광 CTO(최고기술책임자)를 만났다. 두 사람은 1990년생 동갑내기로 미국 유학 중 학업까지 중단한 채 이 일에 전념해왔다.
‘닷’이 개발한 점자 스마트 워치인 ‘닷 워치’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같은 모바일 기기와 연동해 정보를 점자로 바꿔준다. 시간은 물론 문자와 SNS 메시지, 이메일이나 모바일 뉴스 등의 정보가 동그란 시계 위에 점자로 튀어나와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읽을 수 있다. 시각장애인이 인터넷을 이용하기 위해 사용하던 기존 점자정보 단말기에 비해 크기는 20분의 1, 가격은 10분의 1~20분의 1로 낮췄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세상에 없던 제품을 개발하고 부담 없는 가격에 제공하겠다’는 게 이 일을 시작할 때 이들의 목표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다. 기술적으로 어려울 뿐 아니라 시장이 작아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성기광 CTO는 “몰라서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젊기 때문에 ‘잘못 되어봤자 제자리로 돌아가는 일밖에 더 있겠어?’라는 마음으로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한다.

먼저 사업에 도전한 사람은 김주윤 대표였다. 그는 음향엔지니어링 관련 사업을 하던 아버지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사업가를 꿈꾸었다. 중학교 때부터 아이디어 노트를 쓰면서 사업 구상을 했고, 고등학교를 마치고 미국 시애틀의 워싱턴 대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롤 모델이었던 재일동포 사업가 손정의씨처럼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어서였다. 미국 유학 중 그는 유학생을 위한 멘토링 서비스, 화물차 예약 서비스 등 세 차례 창업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일 당장 죽는다고 해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고 싶을까?’라는 물음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시각장애인 친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점자책이나 크고 비싼 점자정보 단말기에 의지해 글을 읽는 그들에게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은 남의 일이었다. 점자로 읽을 수 있는 책은 일반 책의 1%(우리나라는 0.1%)도 되지 않고, 점자정보 단말기는 너무 비싼 데다 기술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느 나라나 사정이 비슷했다. 영국의 한 시각장애인 칼럼니스트가 “시장이 작아서 우리 시각장애인들은 디지털 기술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가 보다”라고 자조했을 정도다. 그래서 아예 점자를 배우지 않으려는 시각장애인도 많다. 글을 읽지 못하니 공부를 할 수 없고, 원하는 일자리도 얻지 못한다. 그는 2억 8500만 명에 이르는 전 세계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성기광 CTO도 뜻을 같이했다.


두 사람은 아버지들끼리 중·고등학교 동창이라 어릴 적부터 알던 사이였다.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사업 구상을 하던 이들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일을 해보자’고 뜻을 모은 후 2014년 여름 한국으로 돌아왔다. 성씨가 받은 장학금 200만원을 자본금으로 명지대 용인캠퍼스 실험실을 빌려서 연구를 시작한 게 ‘닷’의 출발점이 되었다. 2015년 이들은 점자를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는 구동장치를 세라믹에서 전자석으로 바꾸면서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원천기술을 개발했다. 그 덕분에 ‘스마트 워치’같이 작고 가벼운 점자 디지털기기를 만들면서 가격도 낮출 수 있었다.

운도 따랐다. 2014년 9월부터 용인시 창업경진대회 대상, 창조경제대상 슈퍼스타V 미래창조과학부장관상, KBS 창업오디션 프로그램 ‘황금의 펜타콘 시즌 2’ 우승 등 각종 대회에서 상을 받으면서 관심을 모았고, 상금으로 시제품 개발을 할 수 있었다. 2015년 ‘테크 인 아시아 인 도쿄(Tech in Asia in Tokyo)’에서 아시아 톱10 선정, 2016년 세계 스타트업 경연대회 겟 인 더 링(Get in the ring) 우승 등으로 세계적으로도 주목받았다. 타임지, BBC 등 세계 각국 언론이 앞다퉈 보도하고 투자도 이어졌다. 단순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눈길을 끌면서 독일의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하고, 칸 국제광고제 등 각종 광고제에서도 상을 받았다. 제품이 나오기 전부터 선주문이 이어져 10여 개국에서 수백억 원 규모의 주문을 받았다. 시각장애인 가수 스티비 원더와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도 주문했다.

시제품은 일찍 나왔지만 제품이 출시되기까지는 몇 년이 걸렸다. 국내외 시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거듭하면서 그들의 요구를 반영하고 문제점을 찾아내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그 과정에서 무게를 27g으로 줄이고, 사용 시간을 24시간에서 240시간으로 늘리는 등 기능을 개선했다.

시각장애인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시각장애인 콜센터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하면서 소비자 전화를 받는다. 최고경영자(CEO)와 최고기술책임자(CTO), 최고디자인책임자(CDO)는 모두 20대이지만 50~60대가 고문 역할을 하면서 주니어와 시니어가 협력하는 게 이 회사의 특징이기도 하다. 김주윤 대표의 아버지인 김지호씨가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고 있다.

“은퇴를 하셨거나 은퇴를 앞두고 ‘젊은 친구들을 도와주면서 좋은 일을 한다’는 생각에 합류하신 분들입니다. 신구 세대가 함께 브레인스토밍을 하면서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기술 개발이나 인사, 경영 모든 면에서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닷 워치는 현재 영어와 한국어판이 나와 있다. 지난 4월 영어판을 먼저 내놓았고, 한국어판은 7월에 시판된다. 일본어, 아랍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폴란드어, 스웨덴어, 덴마크어, 네덜란드어, 중국어판도 개발 중이다. 가격은 30만원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정부보조를 받을 경우 6만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다. ‘닷 워치’뿐 아니라 전자책 단말기 형태로 점자 교육을 돕는 ‘닷 미니’, 태블릿 형태인 ‘닷 패드’도 곧 세상에 내놓을 예정이다. 공공장소에서 시각장애인의 편리를 돕는 ‘닷 공공점자’도 개발하고 있다.

“시각장애인의 75%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살고 있고, 이들의 90% 이상이 점자를 모릅니다. ‘닷 미니’는 재미있게 점자를 가르치면서 학교를 다니지 않는 아이들에게도 교육 혜택을 줄 수 있습니다. 시각장애인들도 손쉽게 전자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목적입니다.”

한편 ‘닷 패드’에는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강화된다고 성기광씨는 설명한다.

“‘닷 미니’가 텍스트 위주라면 ‘닷 패드’에는 도형과 그래프가 많이 들어갑니다. 사진 촬영 후 자신이 촬영한 장면의 윤곽을 손으로 만져볼 수 있고, 점자로 장면 설명을 읽을 수도 있는 기능을 넣으려고 해요. 도형을 직접 그릴 수도 있고요. 시각장애인에게는 새로운 세계를 여는 일입니다.”

‘닷 패드’의 목표 가격은 100만원이다. 지나친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닷 공공점자’는 공공장소에서 시각장애인들에게 실시간 정보를 제공하는 게 목적이다.

“현재 공공장소에 있는 점자판은 고정된 ‘죽은 정보’만 제공합니다. 몇 번 버스가 몇 분 후에 도착하는지 실시간 정보를 제공해 시각장애인도 비시각장애인과 같은 혜택을 누리게 하고 싶습니다. 2020년 지하철이 처음 개통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가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를 강화하겠다면서 저희와 협의 중이죠.”

이들은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게 첫 번째 목표라면서 수익은 그 부산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직원들도 행복한, 지속가능한 회사로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들의 뜻깊고 패기 있는 도전에 박수치면서 응원하고 싶었다.
  • 2017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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