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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의 품격

“주연과 조연은 편의상 나누는 언어 연기자가 있을 뿐”

배우 송영창

배우 송영창은 1958년생 개띠다. 우리 사회에서 개띠들이 썰물처럼 밀려나고 있지만 배우 송영창은 여전히 메이저급 영화에서 단골 조연이다. 대개 불같이 화를 내거나 그악스럽고 불의에 침묵하는 배역이 많다. 하지만 실제 그의 음성은 부드럽고 눈매는 서글서글하다. 악역과 정반대다. 그래서 더 섬뜩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사진 : 뉴시스
“중국 아들(아이들) 1억 6000만 명이 대마 하고, 2600만이 매산베타딘, 1100만이 헤로인 한다. 노다지다 말이다. 유엔이 그래 말해. 3일이다. 중국 아들 잡아둘 수 있는 게 3일이야. 너거들 사람고기 장사하니까 그기 무슨 말인지 잘 알제? 삼청교육대 다시 세워가 싹 다 처넣어야 나라가 산다.”

이 대사는 배우 원빈의 어두운 누아르 영화 〈아저씨〉(2010)에서 오명규 사장의 섬뜩한 말이다. 오 사장을 연기한 이가 바로 배우 송영창(60). 그는 경남 진해 출생이다. 해군 장성인 아버지(故 宋旺鎬, 해사 3기)를 따라 어린 시절을 경상도에서 보냈다. 그래서 사투리 연기가 자연스럽다.

영화 〈아저씨〉에는 이런 대사도 나온다. 만석(김희원 분)이 오 사장에게 소리 지르며 “58년 개띠 오명규 사장님, 내가 한마디 할게. 판검사 똥구녕 핥아봐야 스무 바퀴야. 알아들어? 이 58년 개띠야.” 스무 바퀴는 ‘징역 20년’을 의미한다.

오 사장을 연기한 송영창은 실제 1958년생이다. 우리 사회에서 58년 개띠들이 썰물처럼 밀려나고 있지만 배우 송영창은 여전히 메이저급 영화에서 단골 조연이다. 대개 불같이 화를 내거나 그악스럽고 불의에 침묵하는 배역이 많다. 하지만 기자가 들어본 그의 음성은 부드럽고 눈매는 서글서글하다. 악역과 정반대다. 그래서 더 섬뜩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어렵게 배우 송영창과 연락이 닿았다. 영화 〈아저씨〉의 오 사장이 58년 개띠인 이유를 묻자 “내가 58년생이라서 일부러 넣은 대사가 아니다”며 껄껄 웃었다.

배우 배종옥이 작년 11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대학 시절(중앙대 연극영화과) 연기를 못해 “‘국어책은 집에서 읽으라’는 꾸중을 곧잘 들었다”며 이런 말을 했다.

“당시 조교가 송영창 오빠인데, 나중에 고백하기를 ‘대학 때 널 보면 저게 나중에 뭘 할까 한심했다’고 하더라.”

배종옥의 인터뷰를 전하니 그 역시 웃었다. 그때 송영창이 배종옥을 가르친 것처럼 지금은 배종옥이 후배들에게 연기를 가르치고 있다.

송영창 “강의할 때 싹수가 있다고 생각한 후배 중에 연기자가 된 경우가, … 적어요. 거참 …. 하정우·김강우도 내 수업을 들었고, 그때 배종옥도 있었고 김희애·전인화·박중훈이 학생 시절이었어요. 손현주·변우민도 제가 조교 할 때 학생이었죠.”

지금은 톱스타들인데 학창 시절 그들은 어땠을까.

송영창 “(성공할지) 전혀 몰랐어요. 배종옥이나 손현주도 학교 다닐 땐 (연기를 잘할지) 몰랐는데 연기자가 된 경우예요, 하하. 특이한 친구라면 박중훈? 그 친구는 말런 브랜도 흉내를 기가 막히게 했어요.”


송영창은 배우와 병행하여 1987년부터 2000년까지 대학에서 연기를 가르쳤다. 사실 힘들고 가난한 연극을 평생 붙들기 위해선 웬만한 성격이어선 곤란하다. 감정을 쏟아내기 위해, 혹은 절제하기 위해 혹독한 수련을 거쳐야 한다. 거멀못 같은 뚝심과 고집은 필수다.

그는 “가정환경이 중요하다”고 했다.

송영창 “자라 온 환경이 성격을 만드니까요. 감정표현의 직업인이 배우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가정·학교에서 감정을 숨겨야 한다, 참아야 한다고 배웠거든요. 도덕·윤리가 그래요. ‘존경받는 인물’이란 감정을 절제한 이들이 대부분인데, 배우는 감정을 발산해야 하니까 힘든 거죠. ‘감정기술’을 익히는 게 정말 어렵습니다.”

지나가는 말로 “가정사가 복잡한 배우들이 연기를 잘하겠네요”라고 하자 그는 의외로 맞장구쳤다.

송영창 “평범한 가정에서 유복하게 자란 이들이 배우 되기가 가장 어려워요. 때론 종교도 연기에 걸림돌이죠. 결손가정(한부모 가족)이나 다툼이 잦은 가정에서 자란 배우 중에 성공한 이가 많아요. 감정 기복이 심하고 욕도 잘하고 싸우기도 잘하는 분들이 관객 마음을 잘 흔들죠. 제가 연극 〈신더스〉에 출연할 때 화를 내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몰라요. 살면서 화낼 일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그는 1987년 연극 〈숲속의 방〉으로 데뷔, 같은 해 〈신더스〉로 백상예술대상 연극 신인상을, 1989년엔 〈실비명〉으로 서울연극제 신인상을 탔다. 남들보다 빨리 주목받았다.

송영창 “화를 내는 신(scene)이 〈신더스〉에 많았는데, 극중 화를 내는 연기가 어색하게 느껴졌어요. 하상길 선배도 저더러 어색하다고 자주 말씀하셨어요. 공연 들어가기 직전까지 그게 가장 큰 딜레마였죠. 그래서 진짜 화를 많이 내려고 연습했던 기억이 나요.”

이 대목에서 그의 성격이 궁금해졌다.

송영창 “뭐 … 외향적이라기보다 내성적인 면이 많죠. 조교 할 때 학생들이 절 무서워했어요. ‘학교생활 어려우면 찾아오라’고 했는데 한 명도 안 왔어요. 그때 175cm에 몸무게가 56kg 나갈 때였어요. 날카롭고 차갑게 느껴졌나 봐요. 지금은 80kg쯤 돼요. 아무래도 무대에 서려면 에너지가 있어야 하니까요. 투수가 빠른 공을 던지기 위해 체중을 늘리는 것과 똑같아요.”


에스트라공·블라디미르를 모두 경험한 유일한 〈고도〉 출신


서울 서교동 산울림 소극장의 사뮈엘 베케트 작, 임영웅 연출의 〈고도를 기다리며〉(이하 고도)가 떠오른다. 1969년 국내 초연 이후 45년간 1300회 넘게 〈고도〉를 무대에 올렸다. 임영웅 하면 〈고도〉, 〈고도〉 하면 산울림이 머릿속에 박혀 있다.

반세기를 거치며 블라디미르 역에 정동환·송영창·한명구, 에스트라공 역에 박용수·안석환·박상종 등이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런데 두 역을 모두 경험한 유일한 이가 송영창이다. 에스트라공이 섬세하고 아이 같다면 블라디미르는 스케일이 크고 지적이다. 둘의 성격을 모두 지녔다는 의미일까.

송영창 “제가 에스트라공 역을 맡았을 때 정동환 선배가 블라디미르 역을 했어요. 에스트라공을 연기할 때 제 몸무게가 62kg쯤 됐어요. 왜소한 편이었죠. 이후 살이 많이 쪘어요. 어느 날 연출가 임영웅 선생이 ‘넌 살이 쪄서 안 되겠다’ 하셨어요. 그래서 블라디미르 역으로 옮겨 갔고 저 대신 안석환이 에스트라공 역을 하게 됐죠.”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 두 배역 중 어느 쪽이 자연스러울까.

송영창 “글쎄요, 블라디미르를 연기할 때는 블라디미르가 주인공인 것 같고, 에스트라공을 하면 주인공이 에스트라공이라 생각했어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고도〉의 주인공은 블라디미르더라고요. 중요한 대사는 다 해요.”


한때 그는 주인공을 도맡아 연기했다. 이명세 감독의 영화 〈첫사랑〉(1993)에서 김혜수의 상대역으로 지저분하고 골초에 술꾼인 대학 연극반의 초빙 연출자 ‘강창욱’으로 분(扮)했었다. 이 영화는 평론가들 사이에 한국 영화로는 드물게 10점 만점에 10점을 받은 ‘초절정 순수영화’다.

하지만 나이는 속일 수 없다. 마흔이 넘자 주연 대신 조연 섭외가 주로 들어왔다. 2000년 불미스런 일로 한때 대중 곁을 떠난 일도 있다. 물론 대학로 연극판에서는 지금도 주연으로 객석에 오른다. 2014년 9월 이순재, 고두심과 함께 연극 〈사랑별곡〉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됐었다.

송영창 “꼭 주인공만 하라는 법이 없어요. 나이가 들면 주인공에서 조연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게 배우의 숙명이죠. 마치 늙고 병든 수사자가 무리에서 쫓겨나 하이에나의 밥이 되는 것과 같아요. 안성기 선배도 처음 조연(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을 맡았을 때 고민을 많이 하셨다고 해요. 한진희·박근형 선배도 젊었을 땐 다 주연이었지만 지금은 조연입니다.”

주연과 조연, 작품 속 역할과 의미가 다르니 어쩔 수 없다. 때론 주인공이 빛을 못 보고 조연이 빛을 발하는 경우도 많다.

송영창 “영화 〈디어헌터〉(1978)에서 주인공을 연기한 로버트 드 니로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못 탔지만, 조연을 맡은 크리스토퍼 월켄이 남우조연상을 탔거든요. 드 니로의 연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월켄이 훨씬 연기를 잘했던 거죠. 아카데미상 수상자를 봐도 한 작품에서 주연·조연상을 모두 가져가는 경우는 드물어요. 배우 황정민은 얼마 전 출연한 영화 〈아수라〉에서 조연을 했어요. 다른 영화에선 죄다 주연이었는데 말이죠.

숀 펜, 미키 루크, 더스틴 호프먼, 제레미 아이언스, 브루스 윌리스 같은 스타들도 한땐 주인공만 했는데 요즘엔 조연이나 단역으로 나오거든요. 저도 젊었을 땐 주인공을 주로 맡았는데 마흔을 넘기니 점점 조연 역이 많아졌어요. 처음엔 ‘이제 나도 밀리는 건가?’ 하고 불안감이 밀려왔죠. 하하.

하지만 지금은 배우 수명이 늘어났어요. 5년 전 돌아가신 장민호(1924~2012) 선생 같은 분이 큰 희망입니다. 돌아가실 때까지 무대에 섰으니까요. 배우 최민식만 해도 쉰여섯이고, 송강호는 쉰둘 … 옛날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죠. 마흔이 넘으면 연기를 접는 경우가 허다했고 신성일 선배 같은 분들이나 40대에 주인공을 하다가 연기를 접었었죠.

그런데 조연으로 밀리더라도 ‘이 사람 아니면 이 역은 절대 안 된다’는 이미지가 중요해요. 그게 배우의 존재 의미거든요. 주연이든, 조연이든, 단역이든….”

배우는 아주 가끔, 자신의 습성과 닮은 캐릭터를 맡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역에 충실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연출가 오순택은 “배우는 캐릭터와 배우 자신이 닮았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부터 배우 자신과 캐릭터는 멀어지고 결국 결별하게 된다”고 강조한다. 배우는 가면을 쓰게 마련이다. 가면(배역) 속에 온갖 본능과 욕망을 분출한다. 그 순간은 해방의 시간이다. 배우·관객이 함께 해방을 만끽한다.


“상대 배우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낮추는 이가 진정한 배우”


송영창 “세상에 선한 사람만 있으면 재미없겠지요.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화낼 일 없는데 화내는 것, 죄지을 일 없는데 죄지어보는 것,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것, 그게 연기자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습니다.”

많은 배우가 캐릭터에 자신을 맞추려 하거나 자신에게 캐릭터를 맞추려 안간힘을 쓴다. 그 과정에서 자기분열에 빠지기도 한다.

송영창 “보통 두 가지 부류의 연기자가 있는데, 하나는 작품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는 연기자, 다른 하나는 자신보다 작품 속 인물을 더 중요시하는 연기자가 있어요. 자기를 사랑하는 연기자는 작품보다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모든 역을 자기 자신에게 맞추고, 상대 배우들은 정말 힘들어지죠. 그런 배우 중에 톱스타가 된 이도 있지만 작품이 좋을 수 없어요. 또 다른 연기자는 자기를 배역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연출가가 ‘왜 이 인물을 창조했을까’를 끊임없이 분석하고, 그 역에 자신을 맞추려 합니다. 상대 배우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낮추기도 하고요. 저는 후자(後者) 쪽이 진정한 배우라 생각해요.”

올해로 연기 30년째인 송영창은 철저하게 사실적인 연기를 하는 배우다. 대본을 받아 들면 인물의 속내에서 작은 동작까지 계산해서 표현한다. 말투도 문어체적인 단어를 옮기는 것이 아닌 일상어 그대로다. 그래서 악역에서 어색함이 없이 섬뜩하게 느껴진다. 여러 감독들이 그를 캐스팅하는 이유도 ‘믿고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깡철이〉(2013)에서 보듯 사실적 연기는 점점 완숙미를 더해가지만 달라진 것이 딱 하나 있다. 연극에선 여전히 주연급이지만 영화에선 조연에 캐스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는 “어느 누구도 영원히 주인공일 수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송영창 “주인공만 하던 배우가 언젠가 조연할 생각을 해야 하는 게 무대고 배우의 인생입니다. 평생 한 번도 주인공을 못한 조연배우도 있겠지만 그것도 소중한 연기자의 삶이라 생각해요. 주연과 조연은 편의상 나누는 언어 같아요. 연기자가 있을 뿐이죠.

연극판에선 열심히 하는 배우보다 즐기는 배우가 더 무섭다고들 합니다.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배우가 있는가 하면 타고난 배우가 있는데 저는 노력하는 타입입니다.

저나 윤석화 선배는 엄청 긴장하는 타입입니다. 솔직히 무대에서 한 번도 즐겨본 적이 없어요. 무대는 저에게 투쟁의 대상이죠. 객석에선 못 느낄 테지만 동료들은 제가 얼마나 투쟁하는지 다 압니다.”
  • 2017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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